부모님의 전언이었다.
[이놈의 자식아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결혼 안 하고 있냐. 네 동생까지 결혼했는데 너만, 우리 집안에서 너만 안 했다 이놈아. 지금 당장 결혼하라고는 안 할 테니까, 선이라도 봐라, 응?]
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유교 국가의 자식 된 도리로서 싫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선을 보겠노라, 그렇게 답변을 드리자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곧바로 되돌아왔다.
아마…이럴 거라고 전부 예상하고 준비 다 해두셨겠지. 놀랍지도 않다.
한숨을 푹 내쉬며 달력과 펜을 들고 스케줄을 수정했다. 다행이라면 토요일이라는 것이다. 업무를 내팽개치고 가지 않아도 된다니, 정말로 다행이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과의 통화를 듣고 있는…일곱 개의 귀가 있었다는 것을.
* * * * * * * * * *
토요일 오후, 개인실이 딸린 메지로 호텔 최상층의 작은 카페에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약속 시간까지 3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동안 할 게 없다. 어차피 대충 보고 이야기 좀 하다가 정중하게 거절하고 돌아갈 시나리오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맞선 상대의 프로필은 부모님이 비밀, 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특별히 정보를 받아보고 온 것은 아니다. 아마 그것은 상대측도 마찬가지이리라.
애초에 그게 선인가? 소개팅조차 상대방 사진 정도는 보여주지 않던가? 그런 의문과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상대방을 알건 그렇지 않건 결과는 달라질 리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 생각에 정신이 팔린 사이, 눈앞에 한 여성이 와서 다소곳하게 앉았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 보았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라니. 그 단아하고 청초한 어투에 할 말을 잃었다. 지끈해지는 머리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적어도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안녕한가, 트레이너 군. 이라고 말을 해야 하잖아.
“왜 여기 있느냐, 라뇨. 당연히 선을 보러 온 것 아니겠나요?”
“그러니까, 왜 네가 선을 보러 온 건데!?”
“저라서 실망하셨나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으니, 놀란 거야.”
“일어난 시점에서 이미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은 아니게 되었네요♪”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그녀의 생기발랄한 모습과 환하게 핀 웃음에 어이가 없어 픽, 하고 실소를 머금었다.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너.
“최소한, 평소처럼 말해주면 안 될까, 심볼리 루돌프?”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이쪽의 부탁에도 어쩐 일인지 입가를 손으로 살짝 가리고 호호 웃으며 말했다.
“어머, 심볼리 루돌프라니요. 루나, 라고 불러주셔야죠.”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뭐지, 뭘 잘못했는데 모르고 있는 걸까. 마치 골드 십의 컨디션이 절부조일 때 청초해지는 것처럼, 심볼리 루돌프의 컨디션도 절부조가 된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심볼리 루돌프의 컨디션 하락을 겪어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이 녀석 컨디션 최악일 때 어떤 행동들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적어도 지금처럼 요조숙녀 흉내 내기는 아니다.
“야, 루돌프.”
“루나, 라고 불러주셔야죠, 트레이너 씨?”
“…….”
심지어 호칭이 트레이너 군도 아니고 트레이너 씨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오라에 당장 카페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심볼리 루돌프의 G1 트로피만 일곱 개다. 칠관이다. 도망가는 히토미미 수컷 하나 잡지 못할 리 없다.
“심볼리.”
하지만 순순히 그녀의 뜻에 따라주진 않는다. 애초에 이 녀석이 여기에 왜 있는지도 의문이고,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 알고 온 것인지도 모르고, 일단 이쪽이 주도권을 잡고 이야기를 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루나.”
“심볼리 루돌프.”
“루우나아!”
“루돌프.”
“…….”
심볼리 루돌프가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다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호호 웃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소첩에게 너무 냉정하신 것 아닌가요, 트레이너 씨.”
“……소첩?”
귀가 이상한가? 심볼리 루돌프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 이 녀석이 여기, 이 맞선 자리에 있느냐. 그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대충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몇 개 있었지만, 아니길 빌었다.
“너 오늘 트레이닝은 어쩌고 여기 나와 있냐?”
“트레이너 씨야말로 오늘의 업무는 어쩌시고 휴가를 내셨나요?”
“아니, 연차도 내 마음대로 못 써?”
“최근 들어 무리하셨으니까, 쉬기 위해 휴가를 내셨다면 두 팔 벌려 환영했을 거예요.”
“…….”
“그런데, 맞선? 저는 학생회장 업무와 트레이닝, 그리고 트레이너 씨가 어디 갔느냐 떼를 쓰며 달라붙는 토카이 테이오 양을 돌보는 일까지, 하루가 모자랄 정도인데…트레이너 씨는 맞선?”
“아니, 이거 내 의지는 아니었―”
“이 정도로 암컷에 굶주린 분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사옵니다만.”
말투는 다소곳하지만, 그 안에는 짜증과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방치해놓고 맞선을 보러 나간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리라.
그렇지만 이쪽도 할 말은 많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심볼리 루돌프의 스케줄에 영향을 줄 정도의 일은 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분명 혼자 트레이닝 할 수 있는 최적의 메뉴와 최적의 병주 상대를 맞춰주고 휴가를 쓴 것이다.
솔직히 휴가 중에 맞선을 보건 결혼을 하건 심볼리 루돌프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않은가.
그보다 일단, 묘하게 짜증 나고 위화감이 드는 것부터 해결하자. 한숨을 푹 내쉰 뒤, 싱긋 웃으며 이쪽을 보고 있는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말했다.
“다시 부탁하지만, 제발 그 말투부터 어떻게 해 주지 않을래? 솔직히 소름 돋아.”
“……얌전하고 다소곳한 심볼리 루돌프도 나다, 바보 트레이너 군.”
“역시 이쪽이 편안하다니까.”
“정말이지, 이런 게 황제의 트레이너 군이라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쿡쿡 웃는다. 그녀 또한 평소처럼 말하는 것이 편안한 것은 사실이리라.
“그래서 트레이너 군, 예전처럼 루나라고 부를 생각은 여전히 없나?”
“너도 이제 고등부 3학년이잖아.”
“재작년까지는 가끔 루나라고 불러주지 않았나. 갑자기 변한 이유가 있을 테지?”
“어린애 취급 안 해주려고 그랬는데, 불만이라도?”
“앗, 그런 거였나♡”
“…….”
말실수를 한 것 같다. 선택지가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면, 배드엔딩으로 직행하는 선택지를 골라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이대로 담당 우마무스메의 흥분치를 100까지 올리면 게임오버!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심볼리 루돌프의 흥분치를 떨어뜨릴 만한 말을 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말은,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설명해 봐.”
“보면 모르나, 트레이너 군? 맞선 보러 나온 거잖나.”
“그러니까 학생인 네가 왜 어른들의 맞선 자리에 있냐, 이 말이잖아. 못 알아들은 척하지 마시지, 똑똑한 학생회장 나으리.”
“재미없는 어른이군, 트레이너 군은.”
피식 웃으며 심볼리 루돌프는 그녀의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쪽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강렬한 눈빛에 슬그머니 눈동자를 회피했고, 심볼리 루돌프는 그제야 하하 웃더니 이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트레이너 군은, 그러니까…미리 말하자면 트레이너 군을 욕보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거라면 말하지 마.”
“아니, 트레이너 군도 알아야겠지. 트레이너 군은 아무래도 커다란 책임이 뒤따르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니까, 내 고민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
진지한 말을 내뱉기 어려웠던 것일까, 심볼리 루돌프의 표정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심볼리라는 성을 가진 이상, 그 이름의 값어치에 대한 의무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심볼리 루돌프의 혼사 또한, 가문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지.”
“그래그래, 정략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말이야?”
“정략혼을 마음에 들어 하는 자는 없다. 하지만 황제라면,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법이지.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 심볼리의 이름을 존속시키고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상대, G1 레이스를 제패할 수 있는 씨앗을 가진 상대.”
“그게 네가 여기 나온 이유는 되지 않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아직 까지는 내게 선택권이라는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지. 아직 까지는.”
“그 선택권을 나한테 쓸 필요는 없잖아.”
“황제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선택권을 아무한테나 쓸 수는 없는 법임을 트레이너 군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
심볼리 루돌프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그녀의 말대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아무리 심볼리 루돌프가 그녀의 반려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아직 까지는 남아있다 하더라도, 황제가 길거리의 아무나 데려와 결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춘 상대, 심볼리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을 수준의 상대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 주변에서 그런 남성을 찾아보면, 손에 꼽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손에 꼽는 사람 중의 하나가,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군.
하지만 그 담당 트레이너 군은, 심볼리 루돌프의 생각보다 똑똑하고 발이 넓다는 것은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는데, 너 중등부 때 너희 부모님도 다 만나 봤거든? 요즘 시대에 무슨 정략혼이냐고 어이없어하실 게 뻔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나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네가 아무나 선택할 녀석도 아니고. 그런데 그게 네 담당 트레이너여서는 안 돼.”
그 말에, 심볼리 루돌프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왕은 사람의 마음을 모르고 황제 또한 사람의 마음을 모르듯이, 평민 또한 황제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다.
“……어째서지?”
그 반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저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쪽이 말하지 않아도, 현명한 심볼리 루돌프라면 그 이유를 꿰고 있을 것이다.
“말해다오, 트레이너 군. 어째서지?”
그런데도 재차 답변을 강요한다면, 꼭 귀로 들어야겠다는 고집이라도 발동한 것이리라. 작게 한숨을 내쉬곤,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일단, 너는 지금 미성년이야.”
“결혼 가능한 나이다만? 정 싫다면, 지금은 약혼부터 시작하면 될 터.”
“두 번째로, 너와 나는 우마무스메와 담당 트레이너의 사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정분이 나는 것은 도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야.”
“법적으론 문제없지.”
“세 번째론, 너와 나는 꽤 나이 차이가 커. 사회의 시선이 고울 리 없어.”
“역시 법적으론 문제없다. 그리고 나는 연상 취향이기도 하다.”
“……그런 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담당 우마무스메의 남자 취향 같은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네 번째론, 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여성으로 안 보여.”
“일단 나는 트레이너 군이 수컷…아니, 남성으로 보이니까 문제없다.”
방금 수컷이라고 했지, 이 우마무스메? 중앙 트레센의 학생회장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삼 여신 자식들아.
“아니, 내 의견과 내 취향은?”
“내게 말해주면 트레이너 군의 의견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심볼리 루돌프와 루나쨩이 되도록 하지.”
“…….”
삼 여신아, 이 녀석 정신상태가 좀 위험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나는 별로 결혼할 생각이 없어. 오늘 맞선도 거절할 생각으로 나온 거고.”
“그거 기쁘군.”
“왜지?”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지 않나.”
“긍정적인 사고는 칭찬해 줄게.”
“그래도 뭐, 트레이너 군의 마음이 바뀐다면 이쪽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생각 있으면 여기에 지장 찍어서 돌려주면 고맙겠고.”
“이게 뭔…야, 심볼리 루돌프 너 이 녀석아!”
“후후, 때로는 사랑을 증표로 남겨야 하는 법이지.”
담당 우마무스메가 건넨 종이를 받아들었고, 내용물을 보는 순간 손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등부 학생이 왜 이런 걸 들고 다니지?
“일단 이건 압수.”
아무래도 이걸 그냥 버리면, 누군가가 공란에 이름과 지장을 찍어 구청에 제출해 버리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중에 불태워야지, 그런 생각으로 이 종이를 두 번 접어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마음 내킬 때 지장 찍어서 줄 거라 믿고 있다.”
“혼인신고서를 왜 가지고 다니는데.”
“아, 그렇지. 오늘 맞선 상대는 최고였고, 반드시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전하겠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내가 거절하면 그만이잖아.”
“과연 그럴까? 후후…기대하게, 트레이너 군.”
“이상한 계획 같은 거 짜지 마라.”
“이상하다니. 엄연히 밝은 미래를 위한 가족 계획이라네.”
“…….”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표독스럽고 모든 것을 지배하지 못해 미쳐 날뛰는 우마무스메였는데, 지금은 왜 생각도 없는 가족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뭐, 그래. 상대방 배려하지 않는 본성은 아직 완전히 못 고친 것 같지만.
“그리고 나를 버려두고 맞선 같은 거나 보러 온 트레이너 군에게, 그 정도 귀찮음을 선사해 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어라, 내가 잘못한 거야?”
“물론. 언제 어디서나 황제의 곁에 있어야 하거늘, 나를 버려두고 일탈한 죄는 무겁다.”
“그래그래, 어련하시겠어요. 사죄의 의미로 커피는 내가 살게.”
“어차피 누가 나오건 사주려 했던 것 아닌가? 그런 마음에도 없는 사죄는 싫다, 트레이너 군.”
“……영악한 녀석.”
히죽,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심볼리 루돌프는 살그머니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꽃봉오리처럼 턱을 괸 채, 이쪽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왜, 뭔데. 뭘 바라는데.”
담당 우마무스메의 매달리는 듯한 눈빛에 조금 마음이 약해졌을까,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바라면 들어줄 것처럼 말한 것은 분명 위험하다. 들어주지 않았을 때의 컨디션은 분명히 절부조, 삐진 것을 달래는 데 며칠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상외로, 심볼리 루돌프는 생긋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조금 두려웠지만, 그래도 제법 오랜 기간 담당해 온 우마무스메가 아닌가. 이쪽이 거절할 법한 과도한 요구는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바라는 것이라…그래, 오랜만에 오늘 정도는 루나, 라고 불러주는 것이 어떤가?”
“……꼭 그래야 해?”
일부러 살짝 난색을 보였다. 루나, 라는 그녀의 애칭을 부르는 것을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들에게 걸린다면, 하나같이 각자의 애칭으로 불러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쿡쿡, 손으로 입을 가리며 청초하게 웃는다. 이 녀석도 아가씨긴 아가씨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마음만 먹으면 남자 정도는 가볍게 후리는 마성의 여인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쪽이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자 심볼리 루돌프는 그녀답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고 산뜻하게,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루나의 부탁이에요, T씨.”
“……너 그런 거 어디서 배운 거야.”
평소처럼 트레이너가 아니라 본명, 이름을 부르며 말하는 것은 확실히 어쩔 수 없네, 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이런 여우 같은 화법을 누구에게 배웠는지…조금 짐작은 간다.
물어보나 마나 룸메이트인 메지로 라모누 아니면…같은 담당 우마무스메인 메지로 아르당이겠지. 그리고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심볼리 루돌프는 후후, 조용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T씨?”
“부탁인데 그냥 트레이너 군으로 해 줘.”
“글쎄요, 어떨까요. T씨 하기 나름 아닐까요.”
협박까지 하는 것을 보니 메지로 라모누가 틀림없다. 룸메이트를 잘못 붙인 게 아닐까 아키카와 이사장에게 따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평소에는 말 짧은 애가 자기 담당 트레이너 앞에서는 여우가 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뭐, 이 정도로 끝난다면 뱉은 말에 비해 다행인 것이다. 애초에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이기는 담당 트레이너가 어디 있다고, 혀에 조금 씁쓸한 맛이 깃돈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평소처럼 해 줘……루나.”
“와―! 루나야! 트레이너 군의 루나쨩이야! 트레이너 너무 좋아♡”
“……제발.”
조금 전의 청초는 온데간데없이, 양팔을 활짝 벌리며 이쪽으로 다이빙하는 담당 우마무스메의 그림자를 보며, 망했구나,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카페에 사람들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고, 개인실이라서 또 다행이다.
품에 안겨들어 새끼 고양이마냥 갸르릉거리는 루나쨩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학생회장의 위엄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한숨을 깊게 푹, 내쉬었다. 오늘 하루 내내 이러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창밖에서 비치는 햇볕이 따스하다. 루나쨩의 온기만큼이나 따스하다. 자연스레 노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르르 눈이 감긴다. 품속의 새끼고양이도 헤헤 웃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일해야 하는데. 속으로 투덜거리지만 이미 신체는 본능을 따르고 있었다. 햇빛이 사그라들 때까지만 이러고 있자, 패배를 인정했다.
초여름의 한적한, 어느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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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루나뾰이 당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트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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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맞선.... 그리고 6+1의 담당(+전) 우마무스메... 결말은.... T/R/A/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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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보았는데 마지막에 '1/7' 이라는건 설마 테이오, 맥퀸, 아르당, 키타산, 다이아, 타즈나와도 마주치는 if가 있다는 뜻인가요? 넘무 무섭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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