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하나에서 둘로, 다시 하나로.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게임개발부실.
"미도리, 부탁이야-!!"
"하아… 언니, 좀 진정해 봐..."
사이바 자매의 목소리가 꽤나 소란스럽게 울려퍼지고 있다. 처음에는 평범한 대화 수준이었던 음량은, 어느새 부실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뒤흔들 정도가 되었다. 대부분은 모모이 쪽에서 나는 목소리가 주 원인이었다.
'미치겠네. 하필이면 둘만 있을 때...'
유즈와 아리스는 각자의 볼일로 부재중인 터라, 둘 사이의 언쟁은 말려주는 이도 없이 격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아니지. 오히려 둘만 있을 때니까 이런 얘기를 한 걸지도.'
미도리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린다.
-...그, 있잖아, 미도리. 나 조만간 선생님한테 고백하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
-아니, 미도리는 샬레 당번으로 자주 가니까, 나보다는 선생님 잘 알잖아?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하면 선생님한테 OK 받을 수 있을지 알려주라! 나는 잘 모르겠어서 말야.
-도와주면 네가 달라고 한 게임 타이틀 세… 두 개 줄 테니까! 응? 내 게임기도 원할 때 아무때나 가지고 놀아도 되니까!
선생의 연인인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참 어이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응?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딱히.
-선생님? 좋은 분이시지.
-선생님이 그냥 선생님이지, 뭐 다르게 생각할 게 있다고.
이상한 부분에서 눈치가 빠른 모모이가 모르게 하기 위해, 미도리는 평소에 철저히 연막을 쳐 두었다. 자신은 절대로 선생을 이성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공연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헌데 그것이 악수로 작용했다.
'미도리는 선생님 안 좋아하는구나! 그럼 고백 도와달라고 해도 되겠지?'
모모이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미도리는 선생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없다고 굳게 믿어 버린 것이다.
호감이 없기는 커녕, 이미 진작에 일선을 넘어 할 짓 못할 짓 다 해본 사이인데 말이다. 당장 저번 샬레 당번때만 해도 날이 새도록 짐승처럼 교미해댔는데!
"제발 도와줘~ 미도리! 이 은혜는 절대로 안 잊고 평생 갚을 테니까!"
자신의 타들어가는 속도 몰라주는 모모이를 보며, 미도리가 속으로 한숨을 몰래 픽 쉬었다.
왠지 요즘 들어
"난 나중에 같이 게임해주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라던가
"이게임 선생님이 좋아하는건데." 라던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면 정말 연애에 도움이 될까?" 하는 등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한다 했더니...
언니의 속에서 선생님을 향한 연심은 착실하게 부풀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난 그런거 몰라. 언니가 알아서 해."
라고, 딱 잘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응? 응?"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저 '언니'가 그간 얼마나 애달픈 마음을 억눌러왔을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미도리였기에 그런 매몰찬 반응은 하지 못했다.
"알겠어, 알겠어. 내일 모레 당번일이니까 한번 넌지시 떠볼게."
"정말이야?! 고마워, 미도리! 넌 정말 최고의 동생이야!!"
결국 모모이의 간절한 눈빛에 항복한 미도리.
자신의 마음도 모른채 해맑게 웃으며 안겨드는 이 철없는 언니를 내려다보며, 미도리는...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가슴 한복판을 쿡쿡 쑤시는 양심의 가책을 애써 무시해야만 했다.
-이얍! 하앗! 토오옷!
한결 마음이 편해진 모모이의 게임플레이는 자비가 없었다.
-끄아아악-!!
반대로 가슴이 어느때보다도 무거워진 미도리는 번번이 모모이의 현란한 플레이에 농락당할 뿐이었다.
모모이는 갑작스레 처참해진 미도리의 플레이에 "무슨 일 있어?" 하고 걱정스레 물었지만, 미도리는 "오늘따라 손이 좀 둔하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미도리는, 양심의 가책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기 때문에.
----
"언니가 선생님한테 고백하는 것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푸웁!"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으로 업무 보조를 하던 도중, 미도리의 폭탄 선언에 선생은 커피를 거하게 뿜고 말았다.
커피방울이 책상 위의 서류에 뿌려졌지만, 천만 다행히도 중요한 서류들은 멀쩡했다.
"그,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선생이 손수건으로 흘러내린 커피를 닦아내며 묻는다. 가능한 평이한 어투를 가장했지만, 목소리가 잘게 떨리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뭐라 하기는 좀 곤란해서… 일단 넌지시 떠본다고만 해뒀어요."
"으음…."
선생이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을 내뱉는다.
"미도리는 어떻게 하고 싶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묻는다.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7,
모르는척 훼방 놓고 싶다는 마음이..."
한 번의 호흡.
"3... 정도일까요."
조금 부자연스러운 공백. 선생은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단 말이지..."
7대 3이라면 모모이와 선생을 이어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이야기다. 선생은 기특한 마음을 먹은 자신의 귀여운 연인에게 칭찬의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무서워 가능한 감정을 숨기고 무미건조한 대답을 건넸다.
"하지만 한가지 걱정되는 건... 이제껏 선생님과의 관계를 숨긴 것에 대해 언니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하긴."
모모이도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이 이미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고 몸까지 섞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탓에 이런 부탁을 한 것일 테지.
그렇다고 그냥 생각없이 "사실 우리 사귀고 있었어!" 라고 고백한다면 모모이가 적잖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게 뻔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버린 것이다.
"음… 그럼 말야."
선생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제까지 사귀었던 사실은 비밀로 묻어두고, 두 명이 동시에 고백해서 사귄다는 걸로 하면 어때?"
그 뒤로 이어진 것은 그럭저럭 현실적인 제안이다.
"절대로 싫어요."
허나 미도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선생을 쏘아봤다. 시선만으로도 심장을 꿰뚫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살벌함이다.
"넵."
"첫번째는 저예요. 누가 뭐라고 해도."
즉시 꼬리를 말고 물러서는 선생에게 확실히 못을 박아두는 미도리.
"아무리 언니라고 해도 그건 허락 못 한다고요."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른다. 이렇게 못된 마음을 먹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 탓일까. 사랑하는 남자의 한켠을 내주어야 하는 무력함 때문일까.
-홱.
미도리는 분노의 감정을 가장해서 고개를 돌린다.
이 눈물은 선생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기에.
"미안, 미안! 내가 괜한 소릴 했어. 용서해 주라, 미도리."
화들짝 놀란 선생이 순식간에 다가와 미도리를 등 뒤에서 꽉 안는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달라며 애걸복걸하는 선생의 태도에, 미도리는 자신의 양심이 한층 더 아파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예요. 저야말로 대책 논의하자고 해놓고 화내서 죄송해요."
하지만 그것을 티낼 수는 없었다.
자신의 얄팍한 양심보다도 선생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으니까. 양심을 영원히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첫번째 자리는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피를 절반 나눈, 자기를 똑 닮은 언니라 할지라도, 내줄 수 없었다.
-쪼옥.
"선생님. 저, 마음이 복잡하니까… 일단은 아무 말 없이 안아줄래요?"
몸을 돌린 미도리가 선생을 마주 껴안고 입을 맞췄다.
평소보다도 갈구하는 듯한 요구.
그것은 육체관계로라도 선생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응석이었다.
자신이 선생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몸에 새겨달라는 애원이었다.
"후우, 후욱."
선생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 더욱 헌신적인 몸놀림을 보였다.
그 배려에, 헌신에… 왜인지 또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버텨냈다. 버텨내야만 했다.
눈물을 보였다간 이 바보같은 어른이 또 끝없이 자책할 것이 뻔했으니까. 확신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이 뻔했으니까.
미도리는 주체할 수 없이 피어나는 질척한 감정을 쾌락으로 덧씌웠다.
인간이 아닌 한 마리 짐승으로서, 암컷으로서.
가슴을 불태우는 쾌락과 사랑만을 좇아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우는 듯한 그 감각만이, 이 불안함을 잊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골 라인에 도달한 두 명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거친 숨을 내쉰다.
미도리는 천장을 바라보는 선생의 옆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을 공유한다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선생의 반대편 옆구리에 자신의 언니가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심장이 잘게 조각나는 것만 같다.
아아, 선생님. 당신은 왜 이리도 좋은 남자인 건가요. 난 당신이 조금쯤은 글러먹어도 괜찮은데. 왜 이렇게까지 완벽한 건가요.
...왜 이렇게 멋져서, 다들 눈독들이게 만드는 거냐고요. 왜 모두들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거냐고요.
공허한 원망을 마음속으로 쏟아낸다.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한 그 감정은 미도리의 가슴 속에서 그저 부풀어 올라, 터질 것처럼 답답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미안해요, 선생님. 거짓말했어요.
역시 선생님은 아무하고도 공유하고 싶지 않아.
훼방놓고 싶은 마음, 3이 아니라 93이예요.
언니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남의 남자를 넘보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언니뿐만 아니라, 이 키보토스의 모든 여자들한테 꿈도 꾸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만 선생님을 독점하면 선생님이 곤란해질 테니까...'
'그러니까, 이게 맞는 거겠죠?'
미도리가 선생의 품 안으로 폭 안겨든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마주댄다.
자신의 표정을 선생이 보지 말았으면 했다. 이 추악한 마음을 선생이 알아차리지 못했으면 했다.
"주말에… 셋이서 놀아요. 언니를 최대한 즐겁게 해주고… 저녁에 러브호텔에 가서 고백하는 걸로 해요."
선생님의 반대쪽 팔짱을 끼고 있는 언니. 어렴풋한 상상만으로도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지만...
"그러면 언니도 이해해 줄 테니까요."
미도리는 굳은 결심으로 그 결정을 확정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구나. 이것이 과연 잘한 선택일지는 신만이 알테지.
미도리의 의식은 아득한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미도리의 45가지 그림자에서 이어집니다.
쓰다보니까 사랑과 전쟁이 되어버렸네




(IP보기클릭)118.235.***.***
미도리 하면 메스가키와 모성이 같이 공존하는 대꼴 눈매라는 말밖에 안떠올라
(IP보기클릭)223.62.***.***
(IP보기클릭)118.235.***.***
미도리 하면 메스가키와 모성이 같이 공존하는 대꼴 눈매라는 말밖에 안떠올라
(IP보기클릭)110.70.***.***
(IP보기클릭)223.39.***.***
고마워요! | 22.04.15 19:0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