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낙봉파에서 장임의 매복에 당해 전사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실제 역사상 낙봉파라는 지명은 존재하지 않고 지금 중국에 전하는 낙봉파는 삼국지연의가 인기를 끌면서 만들어진 가짜 지명이고
자치통감에 의하면 장임은 방통보다 1년 먼저 죽음.
그리고 제갈량, 장비, 조운은 방통이 죽기 전에 (214년 1월에) 입촉한 상태였고 낙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음. 결국 낙성은 유비, 황충, 위연 등이 자력으로 함락시킴.
장임은 낙성 앞의 안교라는 지역에서 유비와 방통에게 사로잡혀 처형당함.
방통은 익주 평정 (214년 5월) 한달 전인 214년 여름에 낙성 앞에서 군대를 지휘하다가 유시(눈먼화살)에 맞고 전사함.
솔직히 정사 기준으로 보면 방통은 통솔력 상향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일단 방통이 매복에 죽은건 소설에서 창작된 얘기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장군의 에이스로 등장한다. 유비가 서천으로 침공해 오자 유비군의 공격에도 오랫동안 낙성을 지켜냈다. 낙봉파에 유비를 죽이기 위해 매복했지만 대신 방통을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렸고, 이후 낙성을 포위하다 지친 유비까지 죽이려고 했으나 때마침 엄안을 항복시키고 구원하러 온 장비와의 일 대 일 대결에서 승부를 내지 못하고 물러난다.
어쨌든 방통 대신 대책을 세우기 위해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고 파촉에 온 제갈량의 계략에 빠지고 만다. 제갈량이 일부러 부실한 군사를 데려가서 '네가 이 제갈량을 아냐 모르냐' 운운하며 허세를 부리는 척하자 공격하러 성을 나섰고, 그 순간 매복했던 조운이 낙성으로 가는 다리인 금안교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산으로 도망치지만 역시 매복했던 장비를 만나 사로잡힌다. 같이 행동했던 탁응이나 같은 에이스였던 엄안 등이 이미 항복했지만, 유비의 거듭된 권유를 뿌리치고 정사와 비슷하게 "충신은 죽더라도 두 주인은 섬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유비는 그를 기리기 위해 충혼비를 세웠다고 한다.
단, 자치통감에 따르면 정사에서는 방통보다 장임이 먼저 죽었다. '낙봉파' 자체가 연의의 창작이므로 방통을 죽인 적도 없고, 장비가 촉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유비에게 처형되었다. 제갈량, 장비, 조운은 낙성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고 유비가 자력으로 낙성을 함락시키고 성도를 포위할 무렵에나 유비군과 합류했다. 그러므로 장비와 벌인 단기전 역시 거짓이다.
- 나무위키 '장임' 문서
노신은 『중국소설의 역사적 변천(中國小說的歷史的變遷)』에서 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삼국지연의 가운데 서술된 이야기는 70%가 사실이고 30%가 허구인데, 사실이 많고 허구가 적기 때문에 아마 사람들이 허구를 진실로 믿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왕어양(王漁洋)은 이름난 시인이며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중에 「낙봉파에서 방사원을 조상하다」란 시가 있다. 낙봉파라는 지명은 단지 『삼국지연의』에만 나올 뿐, 달리 근거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왕어양은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라고 평했다.
오늘날 전하는 낙봉파라는 지명은 후세사람들이 억지로 갖다 붙여 생겨난 허위 지명임을 말해준다.
내용 요약
1.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낙봉파에서 매복 작전으로 방통을 사살한 장임은 실제 역사에선 방통보다 먼저 죽음.
2. 제갈량, 장비, 조운은 방통이 죽기 전에 이미 형주를 떠나 입촉한 상황.
3. 방통은 매복에 죽은게 아니라 공성전 도중에 유시(눈먼화살)에 맞고 전사함.
4. 제갈량, 장비, 조운은 낙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고 낙성은 유비가 자력으로 함락시킴.
5. 낙봉파라는 지명은 중국 명나라 시기에 소설인 삼국지연의에 처음 등장하고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