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들어가기 전에 까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잠깐 딴 얘기 좀 하자.
1화 내용임. 신이라서 농구가 뭔지 모름
신이라서 경마가 뭔지 모름
근데 신이라도 야구는 알고 있음
고시엔도 알고 있음
끝내기 홈런이 멋있다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고 있음
심지어 각종 용어와 구질에 따른 차이까지 자세히 알고 있음
...저기요 작가님아?
누가 마에다 준 야구 안 좋아한달까봐 야구 얘기만 나오면 설정오류고 나발이고 관심 없다는 듯 투머치토커가 됨.
근데 지금 할 얘긴 이게 아니고
마에다 준이 애니메이션 각본 쓸 때 분량 조절 못해서 욕 처먹긴 하지만
대놓고 아무 생각없이 각본 쓰는 사람은 아닌데
이번 작품은 진짜 약 빨고 쓴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용 전개에 아무 맥락이 없음
2화 내용이 영화 촬영인데 전혀 말이 안 되는 걸 개그로 포장하고 있음.
그래도 이건 애들이 찍는 학교 숙제 같은 거라서 이해해줄만 함.
3화 내용이 망해가는 라면집 되살리는 내용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개소리임.
일반상식이 결여된 히나가 알려주는대로 라면 조리법을 바꿔서 의외로 맛이 있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시의적절하게 방송사에서 촬영하러 오는 거나 야쿠자랑 싸우는데 미리 발자국 표시해서 이기는 거나
평범한 고딩이 안경 하나 쓰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데 순순히 속아주는 거나...
뭐 하나 말이 되는 구석이 없는데 이런 걸 전부 개그라고 퉁치고 넘어감.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진 코미디니까 뭐...하면서 이해해줄 사람도 있을 거임.
4화에 들어서면 이제 도저히 개그니까 걍 넘어가자고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이 튀어나옴.
마작을 하는데 아예 규칙을 무시함.
물론 난 마작에 대해선 ㅈ도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룰 따윈 ㅈ까고 아무 패나 들이밀면서 아무튼 내가 이겼음! 하는 꼴이라는 듯.
문제는 주최측이 그걸 인정해준다는 거임. 심지어 주인공 요타의 패에만 특별히.
정식 대회가 아니라 단순 예능 방송이라고 해도 상대 선수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는데 그냥 우승해버리고 유명 연예인이랑 썸까지 타고 있음.
5화 내용도 엉터리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비디오가 있는데 아버지가 딸에게 그 비디오의 존재를 수년간 숨김.
그리고 그 사실을 자기 딸한테는 얘기 안 했으면서 딸 남자친구(?)에게는 가볍게 말해줌. 그리고 우리 딸에게 얘기하지 말게?????
상식적으로 아버지가 어머니의 비디오를 숨기고 있다면 그 비디오의 내용이 뭔지는 몰라도 딸한테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되는 중요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임.
하지만 아무 생각 없는 주인공 일행은 딸이 그 비디오의 존재를 알게 되면 소원해진 부녀관계가 회복될 거라는 근거없는 희망을 가지고 딸에게 멋대로 그 사실을 알려줌.
그리고 부녀가 같이 비디오를 보고 나니 진짜로 부녀관계 회복되고 해피엔딩.
더 황당한 건 5화는 그 전과는 다르게 개그 스탠스도 아니라는 거임. 마에다 준이 좋아하는 신파극에 가까움.
어제 이미 글 썼지만 난 여기까지 보고 이거 가상현실 같다고 판단했음.
왜냐하면 너무 말이 안 되거든.
내용이 무슨 의식의 흐름대로 그리는 병맛만화도 아니고
거의 나오는대로 지껄이고 보는 수준임.
그런데 그 와중에 매화마다 세계멸망 카운트다운은 착실히 하고 있다는 게 어이없잖아.
마에다 준이 개연성 핍진성 챙기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욕을 먹을 때 먹는 한이 있더라도
애초에 그딴 거 모르겠고요 닥치고 그냥 보세요 시전하는 스타일은 아니란 말이야.
근데 그 짓을 이번 작품에서 하고 있는 거임.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단 얘기.
그리고 오늘 보니 6화가 나와 있음.
일본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마을 축제 이벤트가 주내용인데,
히나가 노점상에서 딴 금붕어를 가지고 냉동트럭에 갇혀서 요타가 구해주는 내용임.
그런데 우리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따져보자.
평범한 고딩 두 명이 달리는 트럭을 스쿠터로 따라잡아서, 그 중 한 명이 점프해서 트럭 위에 올라가 차를 멈춰 세우는 게 가능하냐.
그걸 개그라고 웃고 넘길 수 있냐.
그런 건 액션 영화 속 먼치킨 주인공들이나 가능한 거 아니냐.
하지만 그 어려운 걸 얘네가 해냅니다;;;
이게 진짜 머릿속에 뭔가 생각이란 걸 하면서 쓴 스토리 같음?
그러나 이 와중에도 아직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을지 모름. 요타는 농구부잖아? 당연히 점프력 좋은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그럼 진지한 농구 대회에서 이러는 건 어때. 이거 대놓고 반칙이잖아.
'주인공과 친구의 우정, 친구의 부상, 최선을 다했지만 패배했던 과거의 그림자'를 분위기 잔뜩 잡고 회상하는 중에 이딴 장면이 나오는 게 말이 됨?
하지만 이 모든 게 일반 상식이 부족한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망상에서 비롯된 사건들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꼭 그렇게 보이지 않음?
이쯤 되면 감이 올 거임.
이건 아무 생각없이 쓴 각본이 아님. 오히려 뚜렷하게 뭔가 노림수를 가지고 쓴 각본이지.
2~3화에서 온갖 개드립을 쳤는데 시청자들이 못 알아봤어. 그냥 실패한 개그인 줄 알았거든.
그래서 4화에서 더 대담하게 이래도 몰라? 라는 느낌으로 대놓고 마작 룰까지 다 무시하면서 막장스럽게 전개했는데 그래도 못 알아봤어.
시청자들이 애초에 마작 룰을 모르거나, 아는 사람은 오히려 너무 막장이라서 그거 지적하느라 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거든.
5화에선 분위기 반전해서 개소리를 지껄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몰랐고
6화에선 4화보다 더 유명한 농구 룰을 가지고 장난을 친 거임.
갈수록 심해지는 중임.
이대로 가면 7화나 8화쯤에선 아예 북반구지만 태양이 서쪽에서 뜨는 장면 같은 개드립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지도 모름.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개소리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가상현실 아니면 평행세계뿐이라고 생각함.
갑자기 아무런 단서도 없이 가상현실이 웬 말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음.
물론 나도 아무 근거없이 하는 소리는 아님.
정확한 물증은 아무 데도 없지만, 심증은 있다.
이건 3화 중간에 개뜬금없이 튀어나온 장면임.
갑자기 등장한 신캐가 즉석에서 주변 일대의 CCTV를 해킹해서 미아를 찾아내는 장면인데,
완전히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장면을 이어붙인 것처럼 이질적임.
이게 요타가 살고 있는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 나올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임.
근미래 배경의 SF나 판타지처럼 보이지 않음?
그렇다면, 요타가 현대 일본에 살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지.
혹은, 요타가 사는 세계와 저 신캐가 사는 세계가 같은 세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고.
하지만 요타가 TV에 나오는 걸 신캐가 보는 장면이 나온다. 평행세계라기엔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내 눈엔 이게 마치 요타의 세계와 신캐의 세계는 같은 세계입니다-라고 묻지도 않은 말에 변명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훼이크처럼 보였다는 말임.
그리고 잠시 후 저 신캐가 아직 작중에 직접 등장한 적이 없는 한 과학자의 뒤를 캐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람의 경력이 상당히 의미심장함.
양자역학, 정보공학, 소프트웨어 개발
이 키워드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소재가 뭐가 있을까?
4화 첫장면. 해킹 중에 나오는 또 다른 키워드. 대규모 하드웨어 제조.
근미래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양자역학과 정보공학의 일인자가 대규모 하드웨어를 제조한다면 그 목적은 뭘까?
신캐 해커의 고용주(?)인 여자가 뒷조사 중인 물리학자의 논문 공저자 아재를 취재하는 장면.
뭔가 전문용어가 막 튀어나와서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지만 형태소가 어쩌고 자연 언어 처리가 어쩌고 하는 걸 보면
언어와 관련된 내용임에는 틀림없어 보임. 난 이게 가상현실의 AI와 관련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음.
그리고 취재 도중 튀어나오는 또 다른 키워드. 가족.
가족의 ㄱ 근처에도 안 가던 대화에서 갑자기, 마치 시청자들에게 억지로 정보를 주입하겠다는 듯이 튀어나오는 대사임.
그러니까 정리하면,
코로기 박사라는 물리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의 전공분야는 양자역학이랑 정보공학이고,
덤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고,
용도 불명의 대규모 하드웨어를 제조하고 있으며,
언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논문을 썼고,
그 논문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만든 어떤 제품이 대박을 쳐서 돈방석에 앉은 한 기업의 CEO가 그 박사를 추적 중이며,
그 박사는 사랑을 수치화 해보고 싶어했는데,
아마도 그의 가족이 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거임.
우리 일본 애니 하루이틀 보는 거 아니잖아.
저기서 말하는 코로기 박사의 가족이 지금 요타 집에 얹혀 살고 있는 히나를 가리키는 거란 사실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거임.
근데 히나랑 성이 다른데? 사토 히나인데?
어쩌면 엄마 성을 따른 걸 수도 있고, 어느 한쪽이 가명을 쓴 걸 수도 있고, 개명을 했을 수도 있고.
히나 본인이 아니라 히나의 원본(?)을 가리키는 걸 수도 있고...
아무튼 그건 사소한 문제임.
저 모든 키워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게 가상현실 말곤 생각이 안 난다는 게 진짜 문제지.
가족에 대해 물으면 대답을 회피하는 자칭 신.
곧 세계가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공부도 할 필요 없다는 자칭 신.
그러나 세계 멸망을 막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음.
게임기를 처음 보는 자칭 신. 노는 데는 관심 많음.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 RPG 게임을 즐긴다(2화)
3화에서도 같은 게임을 플레이 중
4화에서도 나온다. 노트북으로 마작 게임을 하는 장면이 이미 나왔는데도 그건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게임을 한 걸로 안 치는 건지 RPG는 따로 나옴.
꾸준히 같은 게임을 하는 장면이 '스토리 진행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자꾸 반복해서 나왔음.
마치 무슨 암시라도 던지는 것처럼.
그리고 오프닝 마지막 장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임기. 이 게임기는 대체 뭐길래 스토리와 아무 상관도 없고 캐릭터 속성과도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등장하는 걸까?
마찬가지로 오프닝에 등장하는 이 어항 속 금붕어와,
엔딩에서 전뇌 공간을 헤엄치는 금붕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6화에서 냉동 트럭에 갇힌 히나가 금붕어에게 했던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세계 멸망까지 9일 남았음.
30일 무료이용권이 9일 남았단 소리로 알아들어도 되는 거 아닐까?
한 쪽에선 그냥 히나가 안드로이드 같은 거 아니냐고 하는 애들도 있음.
그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저 미친 말도 안 되는 개소리들이 설명이 안 되잖아.
히나 안드로이드 설은 연막이고 이게 진실이라고 생각함. 혹은 둘 다거나.
룰을 무시하고 이겨버리는 마작에, 손으로 발판을 만들어서 동료를 던져올리는 농구다.
마에다 준이 아무리 한물 간 작가라지만, 이런 세상이 현실세계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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