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9.
{8:03pm} 이번, 방문때 있었던 일이다.
의사는 “지난번에 11시까지 잔다고 했죠?”
“더 나아진 거라구요?”
맞다고 해야 한다.
“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렇지도않다.
여전히 오후 3시에 일어날 때가 많았다.
딱딱 시간을 정해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서 안졸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날 의사는
11시에서 10시로 바뀐줄만 안다.
애초부터 일관된 진술이 가능할리 없다.
“정신”이란 문제에서는!
이 엄청난 일들을
“그들”은 없애려고 이번 문제를 이용한거라고 말했다.
즉 나는 확실하지 않은 “진실”을 가지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기존의 가해자의 입장도 생각할 수 있는 단서를 만들어놓았다.
그것은 내 마음이었다.
과연.. “그들”의 말에 따라 최순실과 박근혜를 죄인으로, 전과자로 생각하는게 순리일까.
적어도 약먹으러다는 상황은 치료해야 될 것 같은데.
내가 미쳤다고 판단되는건
비밀조직에 심취했을 2002년에 근처 전봇대 주변에서 비밀조직의 차가 오나 안오나 기다린 것,
주위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한 것,
그리고 2013년까지 미치진않았다고생각한다.
세 번째는 2013년 8월이후.
세 번째의 이유도알고 있다.
2013년 3,4월쯤 강원도 원주에 신학대학 다니면서 자취를하게되었을 때
너무 많이 사먹거나 PC방에서 놀아서 돈이 다떨어졌을 때.
돈달라고 부모님께 전화하니 목사님한테 받아라 그러고
그러질 못한다는걸 알아서 동생한테 전화해보니
“돈없으면 밥과 고추장만으로 생활하는거야”
라는 말을 듣고 진짜 그렇게하니까 얼마 안 돼서,
자포자기하는심정으로 [죽자]
이생각으로 몇시간 거리를 배회한 게 이유란걸안다.
우리는 행동을 잘해야하는데 행동에서 어이없게 마음의 방향을 정하면
후에 탈이나게된다.
이것은 그것이다.
8월쯤에는 원주가 아니라 춘천이지만 역시 다른집에 세들어서 살고있었다.
하늘에 돈이 생긴다거나 하는 망상을 하며 지냈다.
누군가는 운다고 생각하였지만 따라울며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쁜일 맞다.
의사의 관점에선 말이다.
하지만 집밖에 나가면 정숙했다.
물론 3,4월쯤 그 행동 때문에 혼잣말하는 증상이 처음 생겨났다.
그러나 집밖에선 정숙했다.
한번도 난리친적이 없었다.
다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애들과 논 기억이 있다.
거기서 마음이 꼬인 아이가 내 신발을 불태우는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려고 신발을 쥔 손을 넣자,
내가 “형 정말 아퍼.. 그거 줘”
해서 돌려받은 기억이있다.
9월 16일 아침, 다시 말한다.
일생에 한번뿐이 없는 증상이있었다.
젓가락이 2개에서 3개로
숟가락이 변한다거나 하는
그증상이있었고
그날 바로 ‘의사에게 말해서 멀쩡한걸 알리고 이 시국을 이겨내자’
라는 생각에 병원에 간 것이다.
거기서 의사는 소리치며 화냈고,
“내가 시간이 많은 줄 알아?”
거기에 나도..
왜 이런 이야기가 있지않은가.
영국여왕 찾아온 거지가 발닦는 대야물을 마시자 여왕도 마신 것.
그것처럼 화냈는데
돌아온건 입원이었다.
입원이 좋았던것인지, 숟가락 증상은 아침의 그 사건으로 끝났다.
이 생각을 지금만 하는 줄 알 사람도 있을거로 믿는다.
이미 2000년도 초반의일이다.
진짜 악마의증명이지만 써야지 어쩌겠는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미 처음 병원 들어갔을 때
환자들은 전부 나보고 정상이라며,
왜 들어왔냐고
한목소리로 그랬단말이다.
2005년 홍천에서 있었던
어머니가 날 찾아다닌 사건.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다.
우범식이라는 사람이 만든 카페를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들어가 보게되었고 거기서 유리상자의 존재를 알게된다.
스워드 피쉬 같은 영화가 증거라고 하고, 책도 알려줘서 [이 때가 아닌, 나중에 읽었다]
이사람 멋진사람이라 생각되어 만나러가야지 생각해서 그 장소인 갈마PC방에서 나와서 자전거를 탔다. 터미널 있는 장소에서 더 이상 나가질 못했다.
코스는 PC방에서 다리타서 건너 병원이있는 그 지역으로 간 후 쭉가서 연봉에서 아파트 있는쪽에서 터미널쪽으로 돌아왔다. 무서워서다. 그리고 홍천초등학교에서 보초를 서는 한 남자를 보고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달리고있었다) 집으로 왔다.
병원에 입원된건 그 다음이다.
후에 이게 억울하다고 계속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않았다.
병원에 입원만이 또 있었을 뿐이다.
거짓말이아니다.
그럼 춘천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가?
악마의증명이다. 또 얘기해야한다.
그래. 약 안먹은 적이 있었을까? 의문을 던져본다.
그당시 꼬박꼬박 먹었다.
하루는 산보를 하러 길거리로 나갔다.
다시 돌아올 때 어머니와 동생을 보고
인사하는 그모습을보고 욕했다.
큰 소리로.
왜욕했는지는 궁금하지않는가.
왜일까요?
욕하는게 나쁘지 않아서그렇다.
그때 내 생각은 그랬다.
욕하는게 범죄가 아니었고 나쁜일도 아니었고 그런정신이었다.
하지만 정신분열증 조현병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도!
철이 없었을 뿐이다.
바로 다음날 입원했다.
어느날은 부모님께 내일 붙잡아올거다. 준비해라 라는 소리를듣고
국선변호사를 찾아갔다.
거기서 이런말을 들었다.
“영장없이 체포가 되나요?”
“제 주변에 미친사람이있다면 어떻게하나요. 입원시켜야죠”
그때 나는 그말듣고도 “영장보여주세요”라는 말이 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날 점심 12시, 129구급대원들 두명이 와서 내가 영장보여달라는 말을 하자 코웃음을 치고는
“그게 통할거같아?”
zzz
두손을 뒤로 묶고
거기에다가 마취탄을쏘았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입원 했던 적도 있다.
{9:11pm} 병원에서 다른 사람을 때린건 전적으로 그 이전에 그사람이 잘못해서다.
아닌경우는 없다. 맨 처음 2002년 입원했을 때, 그땐 때리질 못했다. 용기가 없었으니까.
같이 입원한 사람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매일 그사람들이 내가 잘 때 때리려고 신발을 준비해놓고. 이래서
‘이번만큼은 때리는걸 성공해야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입원, 즉 레지던트 여의사가 더좋은 약이 있다고 (지금 실험중인 약) 입원해보라고 했을 때 덜컥 입원해서,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트러블을 일으켜서 내가 맞아서,
크리스마스행사때 그놈이 앉아있는걸 보고 등을 후려쳤다.
물론 지금생각해보면 보는사람도 있고 발각되면 죄를 추문당하는게 정상이지만
그땐 그 순간밖에 포착하지 못했던거다.
의사에게 불려나가 조사받고 1인실에 감금당했다.
그리고 앞으로 열번 정도 입원 퇴원 반복하고 서인병원에서의 일이다.
같은방에 도발하는놈이 또 있었다.
내가 자는 걸 방해한거다.
이불을 가져간다거나 그 자리를 차지한다거나.
가만히 있으려니 같이 입원한 아저씨가 날 험악한 눈으로 보는거다.
몸으로 깨달았다.
견딜수가 없던거다. 그 아저씨가.
왜 쳤는데 가만있냐. 이거다.
몸으로 깨달아서 그 후에
또 동일하다. 어떻게 이렇게 동일할 수 있냐.
중앙 거실에서 그놈이 앉아있을 때 또 등을 주먹으로 쳤다.
간호사에의해 주사맞고 감금됐지만
그이후에 그 아저씨가 엄청 친해지고
그아저씨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때리면 영창이다.
물론 니가 입원해 있을 때 한정이다.
미친사람은 때리면 안된다.
이게 진리지.
{9:18pm} 글 뉘앙스가 마치 내가 다른사람 때리는걸 미화하는것처럼 보인다.
절대 그런생각 없다.
확대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놈 책임이다.
{9:31pm} 2013년 9월달, 약 안먹었던거 생각이난다.
일반적으로 약 안먹으면 병이 재발된다 그러지만 나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약 자체에 함정이 있다.
먹던 약을 중단하면 어떤 일이 나타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라고.
그러나 2007년 프로게이머 당시 의사가 약먹지 않고해야 집중된다면 하루 안먹고 나가서 해보라고.
그랬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1등을 못해서 아버지가 욕하는 상황이 다수 나타났고 심신이 피폐해져 입원을 또 많이 했다.
병원도 바뀌어서 기독교 병원을 거쳐서 모래재고개로 가게되었다.
모래재고개를 두 번 정도 입원 후 2013년이 다가온 것이다.
저 1등이야기. 뭐냐면 결승갈 때 아버지가 전폭지원한다고 했고 우승 못해도 좋다. 열심히 해라. 가 와전되어 집에서 나가라. 로 된 것. 물론 내 글은 정중하다만.
{9:38pm} 정작 일기쓰는 본인은 다른 생각 할 수도 있지..만약 누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진실을 그대로 쓴 거고, 바뀔 여지는 전혀 없다. 라고 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