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구스팀, 진입완료. 범인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 앞에 도달했다.”
“양호. 다음 지시까지 대기.”
현장의 무거운 긴장감과 여름의 후텁지근한 공기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적과 나 사이의 거리는 고작해야 이 벽의 두께에 불과하다. 방 안에서 무전을 주고받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미호, 밖에서 뭔가 보이는가?”
“여기는 미호. 아지랑이 때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방 중앙에 VIP가 의자에 묶여있고 별다른 움직임은 없어.”
“양호. 작전대로 간다. 몽구스팀, 위치로.”
나무로 된 문 옆의 벽에서 불가사리를 필두로 드라코와 내가 이어서 선다. 이번 작전에 교란은 필요없기 때문에 드라코의 후방지원을 맡게 되었지만, 이런 일은 정말이지 적성에 맞지 않다.
“연막탄 발사 3초전. 착탄음 보고할 수 있도록.”
“악.”
어젯밤에 이상한 영상을 보며 혼자 낄낄대던 드라코가 실실대며 대답한다. 선두에 있던 불가사리도 뭔가 아는지 드라코를 돌아보고는 피식하며 볼을 꼬집는다. 뭘까? 나도 이 작전이 끝나면 보여달라고 해야겠다.
“...우리는 해병대가 아니다. 연막탄 발사.”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방 안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막탄일 것이다.
“착탄음 확인. 명령 대기 중.”
“이쪽에서도 확인했어.”
“양호. 미호를 포함한 몽구스팀 전원 열화상카메라를 장착하고 대기. 적이 뛰쳐나올수도 있으니 문을 주시하라.”
“수신 확인.”
우리의 작전은 유탄발사기로 연막탄을 방 안으로 쏘아넣고 연막이 차오를 때까지 대기한 다음, 문 옆의 가벽을 돌파하여 열화상카메라를 이용해 인질을 제외한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나는 드라코의 뒤를 따라 들어가 드라코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돌파 5초전. 불가사리, 준비됐지?”
“맡겨만 줘~”
돌파 직전의 최고로 고조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현장을 휘저으며 총알을 피하는 스릴은 많이 느껴 봤지만, 이렇게 고요한 상황 속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그 느낌이 또 다르다… 잠깐, 고요해? 연막탄이 저렇게 들어왔는데? 뭔가 잘못됐다.
“잠깐만! 뭔가 이상-”
“지금이다! 브리칭! 브리칭! 브리칭!”
쾅 하는 굉음을 내며 불가사리의 파일 드라이버가 가벽을 박살냈다. 동시에 드라코가 방패를 앞세우고 산탄총을 조준하며 구멍으로 뛰어들어갔다. 꺼림칙 하지만 드라코를 혼자 보낼수는 없기 때문에 나도 뒤를 따라서 뛰어들어갔다.
“...?”
하지만 우리가 총을 쏘는 일은 없었다. 열화상 카메라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보고하라.”
“그게… 안에 아무도 없는 것--”
삑
방의 중앙에서 전자음이 울려퍼졌다.
“함정이다! 모두 내 뒤로--”
드라코의 다급한 비명과 함께 시야가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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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핀토! 일어나, 핀토!”
“으에?”
“악몽이라도 꾼 거야? 괴로운 건 알겠지만 조금만 참아. 저녁쯤 되면 이 주변의 철충은 대충 정리될 것 같으니까.”
“으.. 이건 그게 아니라… 아냐, 고마워.”
또 이 꿈이다. 더운 여름만 되면 이런 꿈을 꾼다. 겪지도 않은 일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만 같은 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결말이 항상 좋지 않게 끝난다.
“지금 몇시지?”
아직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에서 옆에 있는 드라코에게 습관적으로 시간을 물어봤다.
“6시 반. 좀 있으면 나가야 해.”
“어어. 불가사리도 깨워야지. 미호는?”
“조깅하러 간 것 같아. 뭐, 초코바 먹으려면 어쩔 수 없대나.”
미호답다면 미호답지만… 미래의 히어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좋아, 우리도 갈까?”
“어? 아, 조깅? 그래!”
“나 이기면 꿍쳐놓은 스팸 줄게.”
“앗, 정말이다? 나중에 무르기 없기다?”
“히어로는 거짓말 안 해~”
“이거는 내가 이겼지~ 스팸 딱 대!”
드라코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연하게도 승리는 내 차지였다. 공중기동이 보이는 것보다 하체의 힘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달리기라면 자신이 있다.
“하~ 좀만 더 하면 이길 수 있었는데.”
“마지막 스퍼트 때는 확실히 위험했어. 스팸은 다같이 먹자구.”
“히히,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우리는 가벼운 복장에서 활동복으로 빠르게 환복한 뒤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이 임시초소를 만든 스틸라인에서 파견된 많은 브라우니들과 레프리콘들이 있었고, 먼저 와서 배식을 받아 자리를 잡고 있는 불가사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늘도 역시 핀토가 승리?”
“아~ 오늘은 아쉬웠어. 거의 따라잡았는데!”
“어린이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영웅이 할 일이지~”
“야! 내가 왜 어린애야? 볼따구는 우리 중에 제일 말랑한 게!”
드라코에게 볼따구를 습격당했다.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바로 드라코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이익! 이거 달고 있으면 절대 못 이기거든? 메렁메렁~!”
“야!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라고 말하면서 본인도 내 볼따구를 놓아줄 생각을 않는다. 나도 손을 뗄 이유는 없다, 고 생각했으나 갑자기 느껴지는 뒷목의 서늘함에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다.
“흐익!?”
“진짜 유치해서 못 봐주겠네. 방을 잡아, 이 바보들아.”
뒤를 돌아보니 미호가 캔음료를 내밀며 우리를 한심한 듯이 보고 있었다.
“아까 둘이 달리는거 봤어. 조깅인지 육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셔.”
“와! 맛스타! 고마워, 미호.”
“땡큐, 잘 마실게.”
“미호, 내 껀 없어?”
아까부터 웃으면서 지켜보기만 하던 불가사리도 음료수가 먹고 싶은 눈치다.
“자, 니꺼.”
“아싸~”
미호가 불가사리에게 무심하게 캔음료를 하나 던져준다.
“엑, 버디언? 자기는 네스퀵 먹으면서!”
“싫음 말고~”
“아니, 뭐… 싫은건 아니고... 차가운 버디언이면 선녀지...”
불가사리가 궁시렁대는 동안 배식을 받아온 미호가 불가사리 옆에 앉았다.
“뭐 재밌는 일 없어?”
“아, 그러고 보니.”
미호의 물음에 불가사리가 뭔가 생각난 듯 운을 띄었다.
“얼마 전에 서버에 선생님이 올린 영상 봤어? 저번 연말에 찍은 거.”
“무, 뭐, 무무무, 무슨 영상?”
미호가 당황하는 것을 보니 딱 봐도 그 영상을 얘기하는 것 같다.
“아~ 그건 모를 수가 없지~”
“아! 그거 나도 봤어!”
드라코도 본 모양이다.
“시작을 어떻게 하더라? 아! 사령관, 요새 피곤하지?”
드라코가 혀 짧은 소리를 섞으면서 나를 보며 대사를 읊었다. 이건 받아줄 수 밖에 없지.
“아니? 안 피곤한데?”
낮은 목소리로 사령관을 흉내내본다.
“거짓말~ 얼굴에 다 써 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마~~~”
“아닌데? 무리 안하는데?”
“푸웁! 큽! 아하하하하하하!! 개똑같아!! 크흐흐흑!”
“야!!!”
불가사리는 웃다 못해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었다. 다른 한 명은 귀까지 새빨개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외마디 비명만 지른다. 그 와중에도 상황극은 계속된다.
“거짓말쟁이한테는 벌을 줘야겠어! 눈 감아! 움~ 쭙쭙쭙~”
“푸흐흡, 푸하하하하!! 드라코 연기 뭐냐고~ 아하하하하!”
결국 나도 드라코의 표정 연기에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이걸 어떻게 참아?
“아아아악!!”
결국 미호는 비명을 지르며 현실을 외면하듯 애꿎은 옆사람을 팼다. 아, 애꿎은 건 아닌 것 같다.
“아하하하악!!! 아퍼! 크흐흐흡! 악! 진짜 아퍼! 아하하하!”
그 때였다.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며 즐거워하는 불가사리의 뒤로 한 브라우니가 다가와 경례를 했다.
“승리! 안녕하심까!”
“크흐흡, 아, 안녕? 무슨 일이야?”
웃음을 겨우 참고 브라우니에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홍련님께서 몽구스 팀원분들 작전실로 부르시지 말임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오케이, 땡큐~”
“가 보자.”
드라코와 내가 먼저 일어나자 불가사리의 목을 조르던 미호도 체념한 듯 일어났다.
“으… 나 좀 업어줘~”
의자에 늘어진 불가사리도 일으켜 세워 작전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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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대장이 작전실에 들어오는 우리를 반겨주었다. 작전실엔 레프리콘 몇 명과 스파르탄 캡틴 한 기, 그리고 왠지 동떨어진 분위기의 에이미 씨가 있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바로 작전 브리핑으로 넘어갔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마지막 남은 Metallica 지역의 모든 철충을 섬멸 및 대형 건물의 수색을 하는 것입니다. 큰 개요는 이제까지와 같습니다. 스파르탄즈가 선두에 서서 길을 열어주고 스틸라인 여러분들은 스파르탄즈를 엄폐물로 전진합니다. 물론 스파르탄즈의 보급도 스틸라인이 담당합니다. 몽구스팀은 임무가 오전, 오후로 나뉩니다.”
대장은 우리를 보며 브리핑을 이어갔다. 대장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지만, 뭐, 죽기야 하겠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구르거나 하겠지.
“오전 임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병력 중에 공중기동 및 회피가 가능한 핀토가 단독으로 적의 세력 분포와 규모 등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공중기동 중 보급이 불가하니 자체적인 판단으로 재보급 하시기 바랍니다.”
조금이 아니었네. 다른 애들도 나를 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베시시 웃어 넘겼다. 히어로란 그런 거니까.
“미호는 이제까지처럼 후방에서 부대원들을 지원합니다. 은폐 위치는 전의 전투에서 점령한 Nirvana지역 외곽에 위치한 건물들입니다만, 필요에 따라 이동해도 무방합니다. 드라코는 전방에서 다른 부대원들을 지원합니다. 엄폐물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방패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가사리는 중렬에서 다른 분들을 지원합니다. 적이 중장갑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활약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정도의 임무는 지금까지의 임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대장이 말을 이어갔다.
“다음으로 오후 임무입니다. 몽구스 팀은 Metallica 지역에 있는 어떤 시설로 돌입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에이미씨가 브리핑합니다.”
에이미씨가 프로젝터에 사진을 띄우며 대장의 브리핑을 이어받았다.
“이 시설은 블랙 리버 계열사의 사옥으로, 경비용 터렛을 생산하는 회사였습니다. 여러분의 임무는 이 회사의 정보와 부품 등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 내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건물 돌입은 지금까지도 간간히 해온 일인데, 이렇게 오후 시간을 전부 쓰면서까지 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특이사항은 이 건물에서 바이오로이드의 구조요청 신호가 발신되었다는 점입니다.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으니 폭발물의 취급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덧붙여, 바이오로이드의 구출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사령관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사령관다운 지시지만… 뭔가 걸리는 위화감이 있다.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으니 미호가 손을 들었다.
“예, 미호. 뭡니까?”
“사령관 성격에 구조신호를 받으면 그 지역부터 점령하라 명령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있어?”
그래! 저게 걸렸어! 착한 사령관 성격에 말이야. 나도 궁금한 눈빛으로 시선을 미호에게서 대장으로 옮겼다. 대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미호의 질문에 답했다.
“구조신호를 어제 밤에야 받았습니다. 저쪽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요.”
“그런 것 치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아? Nirvana 지역을 점령하고 Metallica 지역에 접근한 이 순간에 말이야.”
“사령부에서도 변조된 신호가 아닌지 의심해서 닥터를 통해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아무 변조가 없는 바이오로이드의 구조신호가 맞았고요. 설령 함정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바이오로이드가 있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저희는 임무를 속행합니다.”
미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미호 뿐만이 아닌 작전실 전원의 표정이 미호와 같았지만, 사령관의 지시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그럼 브리핑을 계속 하겠습니다. 현재 건물 내부에 대한 정보는 없으므로 몽구스 팀의 교리와 경험을 활용해 신중하게 돌입하실 것을 권합니다. 건물 외적으로는 다수의 철충이 대형을 갖추고 있는 것이 파악되었습니다. 에이다양이 위성을 통해 알아낸 적의 구성으로, 3기의 센츄리온이 각각 소대를 가지고 북쪽을 제외한 사옥의 3면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으며, 각 소대에는 나이트 칙 캐논, 칙 쿼터마스터, 나이트 칙 디텍터가 1기씩, 레기온 2기, 나이트 칙 6기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물 내에 저격수의 유무까지는 파악이 되지 않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브리핑을 들어보면 까다로운 상대는 없는 것 같다. 평소 해오던 대로라면 우리 팀 만으로도 1개 소대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정도다. 주변을 보니 각자 머리 속에서 전투를 시뮬레이션하며 해결책을 찾는 모양이다. 아, 드라코는 아닌 것 같다.
“감사합니다, 에이미씨. 그럼 작전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대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도를 보며 브리핑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수적 우세를 이용해 큰 길을 타고 Chuck 지점과 Ribeye 지점을 돌파해 목표 건물이 있는 Tbone지점까지 도달합니다. 각각의 지점에 닥터와 포츈씨가 지원해준 전차와 스파르탄즈를 앞세워 돌파합니다. 각 지점에 도달하면 1개 소대를 2개의 분대로 나누어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나누어 점령합니다. 분대의 명명은 지점의 이름-분대 숫자로 합니다. 예를 들어 Chuck 지점의 1분대는 Chuck-1 분대입니다. 각 지점에서 1분대는 서쪽을 돌파, 2분대는 동쪽을 돌파하여 철충을 섬멸합니다. 스파르탄즈는 1분대에, 전차는 2분대에 포함됩니다. 지원이 필요한 경우 저에게 요청하십시오.”
이런 쪽은 잘 모르지만, 겨우 1개 분대가 - 정확히는 스파르탄즈와 전차를 포함해 2개 분대지만 - 점령작전을 실시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것 같다. 매복이라도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게 아닐까? 뭐가 그리 급한 거지? 브리핑이 끝나면 물어봐야겠다.
“동쪽과 서쪽의 점령이 완료된 소대는 Tbone 지점으로 집결합니다. Tbone 지점에 가는 인원은 건물 외부의 철충을 몽구스 팀과 함께 소탕한 후 점령임무를 시작합니다.”
대장은 작게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어갔다.
“작전이 시작되면 무력사용이 허가됩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철충을 섬멸하는 데 적절한 무력을 사용합니다. 오전 09시 정각에 출발하고 3대의 전차와 3개 분대 스파르탄즈가 함께 갑니다. 자기 소대에 주어진 점령지를 확인하고 정기보고를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대장은 말을 잠깐 멈추고 모두를 보며 싱긋 웃으며 다음 브리핑을 했다.
“그리고 이번 작전이 끝나면 사령관님이 조촐한 파티를 할 수 있도록 18시까지 익스프레스씨를 통해 물자를 보급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간 쌓인 피로를 조금이나마 푸셨으면 합니다.”
“아싸!”
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레프리콘들과 드라코, 불가사리가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브리핑은 이 것으로 끝입니다. 출발시각에 늦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에 작전실 인원들이 해산하려는 듯 했다. 나는 아까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위해 대장에게 다가갔다.
“핀토, 무슨 일이죠?”
“대장, 작전 말인데,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꼭 오늘 안 끝내도 다 같이 돌파하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아, 그거 말이군요. 지금 저희가 시간이 좀 지체돼서 그래요.”
“시간은 많은 거 아냐?”
“더 이상 지체하면 철충 쪽에서 우리를 알아채고 연결체를 포함한 본대를 보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남은 한 지역은 빠르게 정리할 생각입니다.”
“음… 그렇구나. 오케이! 그럼 이따 봐~”
“네. 늦지 않게 준비하세요.”
으으, 역시 대장한테는 뭔가 말하기가 힘들어. 칼 같다니까 증말.
“핀토, 대장이랑 무슨 얘기 했어?”
“아, 드라코.”
작전실을 나가는 길에 드라코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그냥 별 거 아니었어. 다른 애들은?”
“저기 앞에. 왜, 무슨 일인데?”
“으음...”
연결체니 본대니 드라코에게 말하는 건 왠지 싫다. 괜히 서두르다가 나서서 다칠 것 같고 말이야.
“미호 말인데.”
“미호가 왜?”
“제일 맛있는 초코는 우리 몰래 숨기고 있대.”
“뭐? 어디에?”
“속옷 안쪽 비밀주머니.”
“거기 넣으면 녹잖아?
“원래 녹여서 먹는 거라나 봐. 말랑말랑하게.”
“...핀토.”
드라코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너무 말이 안됐나? 라고 생각하는 찰나, 드라코가 침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내가 조만간에 그거 먹게 해줄게.”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한 웃음을 드라코에게 돌려주었다. 오르카호로 돌아가면 소완씨에게 부탁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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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챙긴 우리는 선두차량에 걸터앉아 전장을 향해 출발했다.
“으앗, 뜨거.”
한여름의 직사광선을 쬐인 장갑차의 내외부 표면은 말 그대로 불판이었다. 아침이라고 해도 여름의 열기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중기동을 하며 날아가거나 직접 발로 걷는 것보다는 체력소모가 훨씬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른 대원들도 지금까지 그것을 경험했고, 또 그것을 다 알기 때문에 아까같은 외마디 불평은 하지만 그것이 이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전차의 내부 사정은 다른가 보다.
“레뱀, 큰일났슴다.”
“뭔데요, 3095?”
“거시기가 구워져서 조개구이가 될 것 같지 말임다.”
“브라우니 3095, 멍청한 소리하지 마세요.”
차량 안에서 무전이 들려왔다. 실수로 전체 채널로 무전을 한 모양이다. 그래도 분대장 레프리콘이 브라우니를 적절하게 저지하는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 온도에서는 조개구이가 아니고 조개찜이에요. 지금은 겉이 마이야르 되고 있는 중이고요.”
다행인게 아니었다.
“아하하하! 들었어, 미호? 마이야르래! 아하하하!”
이런 농담이 취향인 불가사리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아, 침 나오지 말임다. 여기에 살얼음 낀 맥주 한 잔 있으면 소원이 없겠슴다.”
“맥주하면 또 소시지인데 말이죠.”
“그거 혹시 사령관 각하랑 같이 먹는 검까?”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의 대화가 슬금슬금 선을 넘고 있었다. 그때 한겨울의 강물보다 차가운 대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재밌겠군요. 저도 꼭 끼워주시겠습니까?”
“예? 어, 아, 죄, 죄송…”
“뭔데? 파티 얘기야? 사령관도 온대? 나도 끼워...읍읍!!”
나는 식겁해서 옆에 있는 바보의 입을 틀어막았다.
“우웁! 웁!”
“드라코! 그런 거 아니야!”
“...부탁드립니다, 핀토. 스틸라인 여러분도 이동 중에 전체 채널로 그런…”
“전방에 철충 출현! 12시 방향! 빅 칙, 200미터!”
부대 전체의 분위기가 한 순간에 식어버렸다. 선두의 전차장 레프리콘이 철충을 발견하고 보고했고, 전차 위에 타고 있던 인원들은 자세를 낮췄다.
“3095! 아래로 15도! 5243! 철갑탄 장전!”
“준비!”
“준비!”
전차에 걸터 앉아있는 나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실루엣을 보니 적들은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혼비백산한 모습을 보였다.
“발포!”
쾅
천둥 소리같은 발사음이 난 뒤 멀리서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3095, 기관총으로 갈겨!”
선두차량의 기관총이 수 분간 발사됐다.
“사격중지, 사격중지, 전방에 철충 모두 무력화 완료.”
“여기는 로터스, 전 군 정지. 현 시간 부로 보병들은 차량에서 내려 전차와 스파르탄즈를 엄폐물로 이동.”
“정지! 정지!”
“땅개들 내려!”
“브라우니들! 빨리빨리 움직입니다!”
대장의 지시에 전차와 스파르탄즈가 멈추고 위에 타고 있던 인원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분대장 레프리콘들이 이미 전장에 들어온 것을 깨닫고 브라우니들을 재촉했다. 미호는 어느 샌가 없어졌고, 나도 내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읏차. 그럼 난 가 봐야겠다.”
“그래, 이따 봐.”
“너도, 드라코.”
드라코와 짧은 격려의 말을 나누고 나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규모 점령전이라지만 공중기동이 가능한 인원이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인력이 그렇게 딸리는 걸까?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상황에 집중하는 것 밖에 없었다.
“로터스, 여기는 핀토. 당소 감명도 확인바람.”
“여기는 로터스, 잘 들린다. 통신 끝.”
무선에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이제부터는 거리를 날아다니며 정보를 모아야 한다. 우선 첫 지점인 Chuck 지점 부근을 본대보다 앞서 정찰한다. 재보급은 전차에서 해야 하니 서쪽부터 봐야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Metallica 지역은 가로 500미터, 세로 400미터 정도의 작은 지역이기 때문에 한 중간지점 당 한 번의 보급만 하면 될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새에 Metallica 진입지역인 교차로까지 도달했다. 좌측에는 창고 같은 건물이 보였다. 이런 건물에는 철충이 있기 마련이다. 들켜서 좋을 것은 없으니 조금 멀리서 상승비행하며 건물을 살펴 보았다. 마침 지붕이 뚫려 있어 안쪽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정찰 결과는 생각보다 안 좋았다.
“빅 칙 실더 하나에 매머드? 이건 별로 안 좋은데.”
선두와의 거리는 300미터 남짓 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빠르게 보고해야 한다.
“Tbone, 여기는 핀토.”
“핀토, 여기는 Tbone. 말하라.”
“양호. 귀소측 11시 방향 300미터 전방에 창고 건물이 보이는지?”
“확인했다. 진입지역 교차로 좌측에 있는 게 맞는지?”
“맞다. 지금 그 건물 내부에 빅 칙 실더 1기, 매머드 1기, 그리고 다수의 나이트 칙이 확인된다. 이상.”
“확인. 염병할, 시작부터 존나게 더워지겠군. 통신 끝.”
역시 스틸라인은 입이 거친 사람이 많아. 본대 쪽을 보니 1열 종대로 있던 전차가 1오 횡대로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첫 탄이 발포됐다. 3대 중 2대가 동시에 발포하고 나머지 한 대는 나중에 발포했다. 창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백린탄을 사용한 모양이다. 시야가 차단된 적들이 아까 뚫은 구멍으로 하나 둘 나오자 기관총으로 제압해 나갔다. 그러는 중에 빅 칙 실더도 나이트 칙과 섞여서 나왔고, 그 뒤를 매머드가 따르는 듯 했으나, 빅 칙 실더는 나오는 중에 고꾸라졌다. 미호의 활약이 분명한 장면이다. 결국 건물에서 나온 적은 매머드 한 기만 남았고 그마저도 세 대의 전차가 효력사한 철갑탄에 구멍이 뚫려 쓰러졌다.
“살벌하네.”
나는 피어오르는 연기를 피해 서쪽으로 정찰을 계속했다.
그 후로는 별 게 없었다. Chuck 지점 서쪽에는 두 세개 분대의 나이트 칙과 레기온 등의 잔챙이가, 동쪽에는 서너 개 분대의 잔챙이가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 특징적인 지역으로 서쪽에는 어린이 공원이 있었다. 다 녹슬어버린 그네와 부서져버린 미끄럼틀 옆에 철충 한 분대가 있었다. 뭔가 씁쓸해지는 광경이다. 언젠가 사령관과 누군가가 아이를 만들면 이런 곳을 다시 재건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그 누군가에 나도...
...아무튼, 잔챙이들은 실력이 형편없어서 총을 쏴 봤자 대충 피하면 다 피해졌기 때문에 별 부담도 없이 Chuck 지점의 정찰을 완료했다.
“로터스, 여기는 핀토.”
“핀토, 여기는 로터스. 말하라.”
“양호. Chuck 지점 및 주변부 정찰 완료. 현 시각 부로 Ribeye 지점으로 이동한다. 이상.”
“수신확인. 계속 정기보고 바란다. 이상.”
“양호. 통신 끝.”
Chuck 지점으로 돌아온 후 Ribeye 지점으로 가는 중에 본대를 만났다. 밑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드라코와 불가사리에게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당장 내려가서 잡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우선 Ribeye 지점에 도달하여 짧게 정찰하고 다시 본대로 돌아와 재보급을 해야 한다.
Ribeye 지점에 도달하니 그 주변엔 아무 것도 없었지만, Tbone 지점 목표건물의 철충 병력들이 나를 발견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토! 오른쪽 건물로 회피! 지금 당장!”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 동시에 긴급하게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회피기동을 했다.
쐐액
그와 동시에 총성과 함께 무언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몸 왼쪽에서 들렸다. 나는 회피기동을 하며 황급히 몸을 건물 뒤로 숨겼다. 저격수다. 아까의 무전은 상황으로나 목소리로나 미호가 틀림없다. 기동장치의 연료도 거의 다 떨어졌고, 미호가 저격수를 처리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겠다.
“핀토, 여기는 폭스헌터. 목표물 제압완료. 움직여도 좋아. 이상.”
“양호. 고마워! 통신 끝.”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아무래도 상대 저격수가 나를 보려고 자신을 노출한 모양이다. 우선 Ribeye 지점 주변에는 별게 없으니 본대에 합류해서 재보급을 해야겠다.
“Tbone, 여기는 핀토.”
“핀토, 여기는 Tbone. 말하라.”
“양호. Ribeye 지점은 깨끗하다. 그리고 Tbone 지점 목표 건물에서 당소를 발견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지금부터 재보급하기 위해 귀소 방향으로 접근하여 착지하겠다. 이상.”
“수신완료. 환영한다. 통신 끝.”
나는 다시 본대 쪽으로 돌아가 선두의 전차 위에 착지했다.
“안녕안녕~ 연료 좀 채울게~”
“어서 오세요, 핀토 씨.”
전차에 착지하니 전차장 레프리콘이 살갑게 맞아줬다.
“전차는 좀 익숙해졌어?”
“저야 지시만 하는걸요. 시가지라 도로도 편하고… 고생은 우리 애들이 다 합니다.”
“그래도 첫 전차인데 어렵지 않아?”
“저보다 우리 애들이 더 어렵겠죠. 그, 브라우니니까 말이에요. 이정도면 모범적인 브라우니라 생각합니다”
“와, 5243, 방금 들었슴까? 진짜 돌아버릴 것 같지 말임다.”
“허어… 한탄스럽슴다. 이럴줄은 몰랐는데. 밤길… 아니 밤 침상 조심하십쇼”
“5243. 우리 분대장은 밤에는 그렇게 앙앙거리면서 왜 낮만되면 이렇게 우리한테 못되게 구는검까?”
“둘 다 아가리 닥치세요. 남 앞에서 무슨 그런…”
말은 험악하지만 레프리콘은 귀까지 빨개져있었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그럼 난 다시 가 볼게.”
“예. 조심하세요.”
“이따 봐~”
나는 Ribeye 지점 주변의 정찰을 위해 다시 날아올랐다. 역시나 서쪽부터 정찰을 했는데, 특징적인 지역이나 위협은 없었다.
동쪽을 정찰하기 위해 Ribeye지점을 다시 가던 중 선두가 Tbone 지점에 도달했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Ribeye 지점에 돌아왔을 때는 목표건물 쪽에서 교전하는 소리까지 들려와서 괜히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정찰을 대충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전차가 포함된 2분대가 진격한 지점까지 만이라도 서두르기로 했다.
Ribeye 동쪽 지역도 다른 곳과 비슷하게 큰 위협이 될만한 존재나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으로 들렸다.
“Tbone!! 퇴각해!!! 건물에 디스트로이어!! 다시 말한다!! 건물에 디스트로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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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Ribeye 소대에 빠르게 정찰 보고를 마친 후 건물을 가로질러 Tbone 지점에 도착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전차는 구멍이 뚫린 채 연기가 나며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보병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않는 전차 뒤에 웅크리며 소리치거나 가끔 응사만 할 수 있었다. 스파르탄즈도 방어태세에서 개인화기를 간간히 쏴보지만 화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레뱀!! 레뱀!! 정신차리십쇼!! 레뱀!! 우리 여기서 벗어나야합니다!!”
“ㅆㅂ! 위에 어떻게 됐슴까?!!왜 반격을 안합니까?!! 개ㅆㅂ, 답을 하십시오!! 벗어납니까, 맙니까!!”
“무전병!!! 무전병 어딨습니까!!!”
“아아아악!!!”
“부상 발생!! 부상 발생!!”
“무전병!!! 무전병!!”
“총 맞고 정신을 잃었슴다!!”
“이쪽으로 끌고오세요!”
“포화를 뚫고 갈수가 없슴다!!”
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어깨를 피격당하거나, 머리를 피격당해 정신을 잃거나, 심지어 얼굴에 피격당해 얼굴 반쪽의 이와 잇몸이 피로 물들어 훤히 보이고 탄이 도탄되며 뽑힌 이빨이 튀어 반대쪽 볼 마저도 구멍이 난 인원도 보였다. 정신을 잃지 않았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어졌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있었다.
“으으으으!!! 으으으으으!!!!”
“쉿, 진정하시지 말임다. 쉬이이… 안죽었슴다. 안죽슴다. 아직 걸을 수도 있슴다. 총도 쥘 수 있슴다. 저 새끼들한테 복수해야지 않슴까? 정신차리십쇼.”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인원은 침착했지만 눈에 초점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혈제로 피가 멎고 고통으로 모르핀을 사용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나도 무언가 해야만 한다. 우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임시 엄폐물로 쓰고있는 건물 잔해 뒤로 착지했다.
“핀토!”
건물 잔해 뒤에는 몇 명의 브라우니와 함께 드라코가 있었다. 그런데 불가사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드라코! 불가사리는?”
“전차 뒤에 있어.”
불가사리는 중렬에서 보호받고 드라코는 측면을 방어하다 나눠진 모양이다. 아까 무전병을 찾는 사람은 전차 뒤에 있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코, 나를 전차 뒤로 데려다 줄 수 있어?”
“그거야 쉽지만, 어쩌려고?”
“글쎄. 일단 가 봐야 알겠어.”
“알겠어. 내 옆에 붙어있어.”
드라코는 방패를 오른손으로 들며 나를 왼쪽에 끼고 포화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팅 팅 팅
방패에 부딪히는 총알의 소리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드라코와 발을 맞춰갔다.
“드라코 씨, 핀토 씨!”
전차에 다다르자 분대장 레프리콘이 우리를 알아봤다.
“무전병은 데려왔어?”
“아직입니다! 저기 서쪽에 쓰려졌는데 데려올수가 없습니다!”
“자, 내 무전을 써.”
나는 정찰보고를 해야하기 때문에 장거리 무전을 가지고 있었고, 마이크를 레프리콘에게 건네주었다. 레프리콘은 고개를 끄덕 하고 마이크를 받았다.
“로터스, 여기는 Tbone!”
무전이 전달되는 동안 3초정도의 정적에 레프리콘이 매우 불안해 보였다.
“Tbone, 여기는 로터스. 말하라.”
“놈들이 디스트로이어로 전차를 무력화시켰다! 포화때문에 후퇴도 불가능하다! 지원이 필요하다! 반복한다! 지원이 필요하다! 입감했는지? 이상!”
“수신완료. 지금 바로 지원을 보내겠다. 디스트로이어가 몇 분 전에 마지막으로 발포했나? 이상.”
“4분 전이다! 반복한다! 4분 전이다! 이상!”
“전차 피해는 얼마나 큰가?”
“움직이지 않지만 외관상으로는 멀쩡하다! 알아보고 보고하겠다!”
“1분내로 보고하라. 이상.”
“알겠다! 통신 끝!”
레프리콘은 무전기를 나에게 돌려주며 단거리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워카우에 생존자! 생존자 없습니까?!”
“있슴다! 사망 1명, 부상 1명, 생존 2명임다!”
“전차 상태는 어떻습니까?!”
“시스템이 망가져 주포와 기관총 모두 사용불가임다! 움직일 순 있는데 안쪽에서 우리쪽 병력이 어떻게 붙어있는지 몰라 꼼짝 못하고 있슴다!”
“전차장은?”
“부상이 전차장임다! 디스트로이어의 공격이 포수의 가슴을 관통해서 전차장의 다리를 날려버렸슴다! 전차장은 기절상태임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대기하십시오!”
레프리콘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별 말 않고 다시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로터스, 여기는 Tbone.”
“Tbone, 여기는 로터스. 보고하라.”
“현재 전차 안에 사망 1명, 부상 1명, 생존 2명. 전차는, 발포는 불가능하나 이동은 가능. 이상.”
“수신 완료. 우선 전차를 돌려 중앙에서 이탈하라. 디스트로이어의 재장전 시간은 10분이니 3분내로 완료하라. 이상.”
“양호. 통신 끝.”
레프리콘은 무전기를 돌려주고 다시 단거리 무전기를 입에 댔다.
“30초 뒤에 전차를 90도 돌려 동쪽 건물로 천천히 이동하십시오. 입감했습니까?”
“양호. 30초 뒤에 시작하겠슴다!”
레프리콘은 무전기를 입에서 떼고 외쳤다.
“지금부터 이동합니다! 전차에서 조금 떨어지십시오!”
“이동! 이동!”
“전차에서 떨어짐다!”
브라우니들은 부상병을 부축하거나 옷을 잡아 끌며 바짝 업드린 채 전차에서 떨어졌다.나와 드라코도 브라우니를 따라 조금 떨어졌다.
“핀토! 드라코! 무사했구나!”
“불가사리!”
전차의 다른 쪽 끝에 있었던 불가사리가 우리를 발견하고 머리를 숙이고 우리를 찾아왔다.
“난장판이네.”
“그러게.”
“응.”
불가사리의 한마디에 우리는 그저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이런 상황에는 너무 쓸모가 없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쉽지않아.”
“기다리면 때가 오겠지. 지금은 안전만 생각하자.”
불가사리의 한탄섞인 푸념에 딱히 위로해줄 말이 없었다. 이렇게 포화가 거세면 나도 몇 초 정도 밖에 교란하지 못하니 따지고 보면 나도 쓸모가 많지는 않다.
잠깐동안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으니 전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깔리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전차를 따라 이동합니다!”
전차와 그 뒤의 인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듯이 보였다.
“아아아악!!!”
갑자기 무전에서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카우, 무슨 일입니까?”
“전차장이 깨어났슴다! 고통이 심한 것 같습니다!”
“몰핀 한 방 놔주십시오!우리는 전차장이 필요합니다!”
“양호! 레뱀, 정신차리십쇼!”
이윽고 전차가 건물 뒤로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전차장도 정신을 차린 듯 상황을 묻는 무전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상황파악이 끝난 전차장은 지휘부에 무전을 했다.
“로터스, 여기는 워카우-Tbone. 계획을 알려주길 바란다. 이상.”
“워카우-Tbone, 여기는 로터스. 현재 Chuck-2와 Ribeye-2분대가 출발했다. Chuck-2는 서쪽, Ribeye-2는 동쪽에서 접근할 예정이다. 도착하는 대로 양 쪽에서 철갑탄 2발로 디스트로이어를 제압한다. 이상.”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지원을 기다린다. 도착 예정시간은 +20이다. /다음/ 폭스헌터가 지원하여 곧 소강상태에 돌입할 것이다.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고 더 이상의 피해가 없게 하라. 이상.”
“수신완료. 통신 끝.”
전차장은 무전이 끝나고 다시 우리에게 무전을 했다.
“현재 50미리 운용 가능한 인원 있습니까?”
“1명 있습니다.”
“전차 위의 50미리를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리를 다쳐 설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브라우니 9104!”
“9104!”
전차 위에 달린 50미리 기관총으로 방어태세를 갖추기 위해 보충인원을 부른 모양이다.
“부르셨슴까?”
“전차 위에 50미리, 잡으세요.”
“예알슴다.”
그 후 지원이 도착할 때 까지 몇몇 기웃거리던 철충 몇 마리를 제압한 것 빼고는 별 일이 없었다. 미호의 저격으로 정면의 적은 하나 둘 쓰러지다가 엄폐를 하기 시작해 우리쪽에서도 못들어가고, 저쪽에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로터스, 여기는 Ribeye-2, 위치에 도달했다. 이상.”
“Ribeye-2, 여기는 로터스. 대기하라. 이상.”
“수신확인. 대기하겠다. 통신 끝.”
한 분대가 위치에 도달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전장에 퍼져나갔다. 잠시 후 Chuck-2 분대도 위치에 도달했다는 소식도 퍼지자 우리쪽의 사기가 올라갔다.
“여기는 로터스. 현 시간 부로 디스트로이어 제거 작전을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빨리 이 악몽을 벗어나고 싶다.
“전 워카우는 철갑탄을 장전. Tbone이 발사하는 신호탄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디스트로이어를 일제사격한다. 디스트로이어가 제압되지 않으면 후퇴해 워카우-Tbone을 제외한 워카우 2대는 자리를 옮겨 다시 한 번 시도한다. 이상.”
“수신확인. 10초 후 시작하겠다. 통신 끝.”
분대장 레프리콘이 플레어 건을 장전하며 통신을 끝냈다. 잠시후, 목표 건물을 향해 플레어 건을 쐈다.
“신호확인. 이동중.”
“여기는 워카우-Chuck! 놈이 이쪽을 보고있다!! 정보가 샜다!! 후퇴한다! 반복한다! 후…”
쾅
몇 블럭 떨어진 서쪽에서 큰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카앙
그와 거의 동시에 쇳소리가 들리며 디스트로이어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워카우-Ribeye! 도탄됐다! 후퇴한다!”
“여기는 로터스! 정지하라! 반복한다! 정지하라! 다음 디스트로이어의 포격까지 계속 사격하라!”
“수신확인! 재장전!”
타타타타타타
우리쪽 전차 위의 브라우니가 열심히 50미리를 쏘아서 에너지 역장의 생성을 방해했다.
“저새끼 죽긴 하는 검까? 5초후 재장전함다!”
“장전완료, 발포!”
깡
“관통! 관통! 재장전!”
이번엔 관통했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멀쩡해 보인다. 느릿한 움직임으로 동쪽의 전차를 조준하기 위해 돌아선다.
“젠장할! 놈이 이번엔 이쪽을 본다! 화력이 부족하다! 워카우-Chuck은 어떻게 됐나!”
“여기는 Chuck-2! 주포가 박살나고 탄약고가 폭발했다! 전차 안의 인원들은 기절했다!”
“로터스! 여기는 원카우-Ribeye! 후퇴하겠다! 놈이 언제 쏠지 모른다!”
“여기는 로터스, 불허한다. 자리를 유지하라. 반복한다. 자리를 유지하라. 이상.”
“여기서 뒈지라는 겁니까? 사령관 각하가 바라는 게 그겁니까? 이상!”
“지금부터 +3까지 계속 발포한다. 제압되지 않을 경우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후퇴한다. 이상.”
“개ㅆㅂ! 통신 끝!”
사기가 올랐었던 전장은 한 순간에 다시 식어버렸다. 패색이 짙어진 지금 뭔가 해결책이 절실하다.
“우리가 갈게.”
무전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더니 불가사리와 드라코가 나란히 서서 무전을 보내고 있었다.
“간다니?”
나는 둘에게 무슨 말인지 물어보았지만 둘은 나를 보며 웃기만 할 뿐 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여기는 패트릭. 워카우-Tbone은 시스템만 고장났고 주포는 아직 멀쩡해. 내가 파일 드라이버로 노리쇠뭉치 역할을 하고 마포대교*가 포신을 움직인다. 해 볼 만한 도박이잖아?”
*드라코를 의미함.
“파일 드라이버로 발포하겠다는 거야? 그러면 너 팔이…”
“상관없어. 수복하면 되겠지. 이 방법이 지금 내 최선이야.”
“드라코! 저런 곳에 나가는건 ■■행위야! 그냥 작전 취소를 기다리고 후퇴…”
드라코는 말 없이 내 볼을 잡아늘였다.
“이걸 놔두고 어떻게 죽어? 아~ 힐링된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 볼을 계속 만지작대다 손을 떼고 말했다.
“이따 봐.”
“...너도, 드라코.”
“뭐, 둘이 사겨? 밤에는 나도 좀 불러주라?”
옆에서는 불가사리가 불쾌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다 멋쩍은 듯 뒷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건 못하겠다. 쩝, 갔다올게.”
“응…”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드라코의 방패를 앞세워 전차 안으로 들어갔다. 무전으로 안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저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으아, 뭐가 이리 좁아?”
“이래뵈도 꽤 큰 거랩니다. 저도 첫 차라 잘 모르지만요.”
“다리는 괜찮은거야?”
“아니오, 급성 몰핀 중독으로 안죽으면 다행입니다.”
“어쨋든, 브라우니, 설명좀 해줄래?”
“예, 제가 탄을 넣으면 여기 구멍에, 저, 그러니까, 팔을 넣으시고 발포를, 아니, 파일 드라이버를 사용하면 아마 발포될겁니다.”
“간단하네. 드라코, 준비됐어?”
“어, 자리 잡았어.”
“좋아, 시작하자. 레프리콘, 명령해줘.”
“예. 포신 위로 12도, 왼쪽으로 5도.”
드라코가 힘을 쓰자 위잉 하는 소리를 내며 포신이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철충은 드라코에게 포화를 집중하여 작업을 방해했다.
“윽, 이 쯤이면 돼?”
“조금만 더 위쪽으로 부탁드립니다. 5243, 철갑탄 장전.”
“준비!”
“발포.”
쾅 하는 소리를 내며 전차에서 포탄이 발포되었다. 도박이 성공한 모양이다.
“명중.”
“아악!”
무전 너머로 불가사리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전차장은 이미 그런 곳에 신경을 쓸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재장전.”
“불가사리 씨! 팔을 빼주십시오!”
“으으… 좀 도와줘야겠어.”
불가사리가 신음을 내며 장전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괴로움에 몸을 웅크려 버렸다.
“윽!”
이번엔 드라코가 갑자기 주저앉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드라코 씨.”
“미안, 총알이 스쳤어.”
“...위쪽으로 15도, 오른쪽으로 7도.”
“장전 완료! 불가사리 씨, 팔을!”
“크윽…”
“발포.”
쾅 하는 소리를 내며 전차가 다시 발포했다.
“놈이 휘청거린다!!”
누가 봐도 디스트로이어의 모습은 거의 다 죽어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쪽의 전차를 계속 조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제발 좀 뒈져!! 발포!!”
동쪽에서도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발포를 계속했다.
“아아악!!”
“불가사리 씨! 좀만 더 참아주십쇼! 거의 다 왔슴다!”
“...재장…”
나는 무력했다. 불가사리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들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장의 공기는 이렇게나 뜨거운데, 나는 무력감과 공포에 그저 한기를 느끼면서 어깨를 감싸며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장전 완료!! 불가사리 씨, 부탁드립니다!”
“...발...포.”
쾅
주포가 큰 소리를 내며 디스트로이어를 향해 발포했다. 마지막 포탄을 맞은 디스트로이어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조금씩 균형을 잃다가 2층 높이에서 앞으로 떨어졌다.
쿠웅
“전군, 돌격!!”
디스트로이어가 쓰러지는 소리는 기폭제였다. 잔뜩 움츠렸던 아군은 한번에 터져나와 적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전차로 다가가 드라코와 불가사리의 상태를 살폈다.
“드라코! 괜찮아?”
“...뭐라고?! 윽, 총에 좀 스쳤어!”
“괜찮은거야?”
“잘 안들려! 크게말해봐!”
드라코의 오른쪽 귀에서 피가 베어 나오기 시작했다. 귀마개를 했어도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폭발소리를 들으면 어쩔 수 없나보다. 나는 미안함에 드라코를 한 번 가볍게 안고 왼쪽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부축해 줄테니까 내려가자. 좀 쉬어.”
“알겠어! 땡큐!”
드라코를 부축해 전차를 내려간 뒤, 엄폐물 뒤에 숨어 간단하게 지혈한 뒤 드라코를 두고 다시 전차로 향했다.
전차의 해치를 열자 안은 피와 기름이 섞인 냄새로 가득했다.
“불가사리! 괜찮아?”
“지금 처치중임다! 좀만 기다려주십쇼!”
“우우움…!”
불가사리는 고통으로 이빨이 깨지지 않게 재갈을 물린 상태였다.
“어떻게 된건데? 여기선 잘 안보여!”
“팔이 찢어졌슴다!”
“뭐?”
“부러진 뼈가 타버린 근육을 뚫고 나왔슴다! 여기선 지혈만 하고 고정해서 수복실로 가야함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몰핀 있으면 하나 주시지 말임다! 저희껀 전차장에게 다 썼슴다!”
나는 품에서 모르핀을 하나 꺼내 해치 안으로 건넸다.
“부상병을 옮길 차량 지원을 요청해 주십시오! 저는 장거리 무전기가 없슴다!”
“알겠어.”
나는 곧바로 무전을 날렸고, 20분 후에 도착한다는 말을 들었다.
“처치 끝났슴다! 핀토 씨, 같이 끌어올려 주십시오!”
불가사리를 꺼내야 한다. 나는 브라우니가 지시하는 대로 불가사리를 잡고 들어 올려 전차에서 무사히 꺼냈다. 불가사리를 부축해 드라코가 있는 엄폐물까지 데려왔다.
“핀토! 불가사리, 팔이...”
“...”
드라코 옆에 불가사리를 앉히고 나는 일어섰다.
“불가사리를 부탁해.”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대로 전장에 가서 브라우니와 합세해 철충을 격파했다. 특히 접근하기 까다로운 엄폐물 뒤의 철충 위주로 무력화시켰다. 그런데 신경쓰이는 무전이 들렸다.
“나이트 칙 캐논이 목표 건물을 향해 곡사포를 쏩니다!”
“상관없어요. 겨우 나이트 칙 캐논이 건물을 무너뜨리지도 못할테고, 철충은 무조건 제압합니다.”
왜일까? 위화감이 너무나 심하게 든다. 마치 여름만 되면 꾸는 꿈속의 그런 장면 처럼…
“분대장님! 건물에서 뭔가 나옴다!”
“사격중지! 사격중지! 피아 식별하십시오!”
나이트 칙 캐논이 쓴 곡사포로 흙먼지가 건물 내부에 자욱하게 끼어서 육안으로는 피아식별이 힘들었다.
“가까이 있는 인원, 뇌파로 분석하세요!”
“철충, 철충입니다!”
“사격개시! 사격개시!”
지상의 병력들은 철충이 나오는 구멍으로 화력을 집중했다. 그런데도 많은 양의 작은 실루엣이 계속해서 꿈틀대며 빠르게 움직였다.
“타란튤라다! 후퇴하라! 타란튤라다!”
엄청난 양의 타란튤라가 나이트 칙 캐논이 뚫은 구덩이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만한 숫자가 모두 폭발하면… 전부 죽는다.
콰앙
어디선가 날아온 폭탄으로 타란튤라가 몇 마리 폭사했다.
“Tbone, 후퇴하라! Ribeye-2가 지원사격 하겠다!”
아까 전 동쪽의 전차에서 고폭탄을 쓴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타란튤라가 나올때 지상의 병력은 너무 근접해 있는 상태였다.
“...”
또 다시 이 무력감이다. 머리로는 무언가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난 왜이리 무력한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모두 살리고싶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핀토! 도망쳐!”
콰직
몸이 얼어붙어 있을 때 왼쪽 종아리에서 격통이 느껴지며 공중에서 균형을 잃었다. 직전에 무언가 들은 것 같은데… 세상이 빙빙 돈다. 아니, 내가 빙빙 돌고있다. 왼쪽 다리의 프로펠러가 박살나 오른쪽 다리의 프로펠러 만으로는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격통과 위기가 동시에 찾아오니 다른 생각보다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른쪽 프로펠러 만으로 최대한 균형을 맞춰 떨어지는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결국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윽!”
나는 처참하게 땅에 떨어져 굴렀다. 몇 초 동안 고통에 괴로워 하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다리의 장비를 벗기 위해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 누운 채로 장비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내 장비를 벗는 것을 포기했다. Tbone 지점의 병력과 뒤섞인 채로 눈 앞까지 다가온 타란튤라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후회였다. 그 다음은 분노였다. 그 다음은 미안함이었다.
“드라코… 불가사리… 미호… 대장… 미안, 미안해…”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아스팔트는 뜨거운데, 나는 왜 이리 추운걸까.
콰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타란튤라가 일제히 터졌다. 최소한 고통스럽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따뜻해.”
“그래? 난 뜨거워 죽겠는데.”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옆을 바라보았다. 드라코였다.
“내가 이거 놔두고 못죽는 댔지. 반대도 마찬가지야.”
드라코는 떨리는 왼손으로 내 볼을 쥐었다. 그러나 아무 힘도 없었다. 그러다 툭 하고 힘이 완전히 빠졌다.
“드라코! 정신차려!”
나는 드라코의 품에서 벗어나 옆에 앉았다.
치이익
드라코의 방패는 시뻘겋게 된 타란튤라의 잔해로 뒤덮혀 있었고 거기서는 무언가 타는 소리와 냄새가 났다. 우선 이 시뻘건 쇳덩이를 치워야 한다.
“크윽.”
방패에 손을 대자 엄청나게 뜨거운 쇳덩이에 내 손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손을 뗄 수는 없다. 드라코는 온 몸에 이 방패가 닿아있다.
“아악! 드라코! 죽지마, 제발!”
나는 드라코에게서 말 그대로 방패를 뜯어냈다. 드라코의 오른쪽 팔, 어깨, 등, 허리, 심지어 뒷통수까지의 살이 전부 녹아 방패에 엉겨붙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방금 뜯어낸 방패에 붙어있던 살이 떨어지며 피가 베어나오기 시작했다. 흰색 가루형태의 지혈제를 꺼내 드라코의 온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제발 드라코를 살려달라고 빌면서…
“으아아아악!!!!”
드라코가 깨어났다. 격통에 몸부림치려 한다. 나는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 드라코를 바닥에 누른다. 몸부림 치다가 상처가 아스팔트에 쓸려 더 큰 피가나면 죽을 확률이 더 올라간다.
“드라코! 제발 진정해! 드라코!”
“아아아악!!!”
“괜찮슴… 도와 드리겠슴다! 필요한 것을 말씀해주십쇼!
드라코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엄폐물 뒤에 있던 부상병이 나와 도와주려 했다.
“몰핀, 몰핀을 놔줘! 더 이상 놔두면 쇼크사로 죽을지도 몰라!”
“알겠슴다!”
브라우니는 품에서 몰핀을 꺼내 드라코에게 놓았다. 이내 드라코는 비명이 줄어들었다.
“핀토…”
“드라코! 나 여기있어! 정신차려봐!”
“...다행…”
내 이름을 부른 드라코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드라코! 드라코!”
눈물을 소매로 대충 닦으며 드라코의 목에서 맥을 짚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잘 못짚은 거겠지. 나는 드라코의 윗옷을 벗겨 살갗에 직접 귀를 대 심장 박동을 들으려 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핀토 씨…”
“브라우니, 옷을 벗어서 바닥에 깔아줘.”
브라우니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바닥에 깔아주었다. 나는 드라코의 상처 부위가 바닥에 닿지 않게 옷 위에 상처를 두고 드라코를 굴려 똑바로 눞게 했다. 그리고 심폐 소생술을 시작했다.
“1, 2, 3… 1, 2, 3…”
“핀토 씨…”
“1, 2, 3, 1, 2, 3”
“핀토 씨!”
“아가리 닥쳐! 드라코가 죽는다고!”
“이미 돌아가셨슴다! 그리고 우리도 ㅆㅂ 뒈지기 일보 직전임다! 무전을 쳐 들으십쇼!”
“뭐?”
“여기는 Chuck-1! 남쪽에서 연결체를 포함한 다수의 철충이 접근한다! 우리로서는 방어나 돌파가 불가능하다! 지원이 필요하다! 반복한다! 지원이…”
“여기는 Ribeye-1! Chuck-1과 접촉하려다 서쪽에서 몰려온 철충에게 당했다! 남은건 나 하나다! 반복한다! 남은건 나 하나다!”
“로터스! 여기는 워카우-Ribeye! 북서쪽에서 익스큐셔너 2기가 동시출현! 반복한다! 익스큐셔너 2기가 동시…”
무전에서는 지옥에 온 것 같은 절규가 끝없이 들려왔다.
“...”
“저희는 부상병 밖에 남지 않았슴다. 도망가거나… 숨어야 함다. 제발 정신 차리시지 말임다.”
“...”
모든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처럼 느껴진다. 이 상황이 꿈이라는 뜻일까? 이대로 잠에서 깨면 드라코가 옆에서 자고있고, 불가사리는 코를 골고, 미호는 조깅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핀토.”
나는 친숙한 목소리에 한 순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위를 올려다 보니 불가사리였다.
“드라코는…”
“...잠깐 쉬고있어. 우리가 업어서 가야해.”
“...그래. 저기 보이는 건물로, 옮기자.”
우리는 드라코를 들쳐엎고 3층 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무전기를 브라우니에게 건네 Tbone 지점의 남은 인원도 그곳으로 모이게 했다.
남은 인원은 총 12명. 모두가 부상자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브라우니들은 둘러앉아 작은 목소리로 흐느끼며 노래하고 있었다.
“자, 불가사리.”
내 무전기랑 연결된 이어폰 한쪽을 빼서 불가사리에게 건네줬다. 불가사리는 이어폰을 받아들고 말없이 자기 귀에 끼웠다.
“여기는 몽구스. 미호, 거기 있어?”
“핀토? 핀토! ㅆㅂ, 이거 놔! 핀토가 살아있다고! 핀토! 지금 갈게! 어딘지 말해줘!”
“미호.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옆에 불가사리도 있어”
“어어. 나도 있어.”
“불가사리! ㅆㅂ, 이거 놓으라고! 불가사리도 살아있잖아! 강아지들아! 빨리 구해주러 가야한다고! 핀토, 불가사리! 드라코는! 드라코는 어떻게 됐어!”
“...미안해.”
“......”
“미호, 고마웠어.”
“고마워? 뭐가 고마워? 지금부터 고마워 해야할걸! ㅆㅂ 지금 당장 구해주러 갈테니까! 좌표, 좌표를 불러!”
“...대장, 거기 있죠?”
“그래, 핀토.”
“무적의 용에게 함포사격을 요청해 주세요. 좌표는 호텔 탱고 16471173.”
“호텔 탱고 16471173.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핀토, 불가사리. 같은 팀이어서 영광이었다.”
“영광이었습니다. 통신 끝”
“뭐해? ㅆㅂ 뭐하냐고! 당신 거기다 진짜 함포를… 핀토! 조금만 참아! 구하러 갈…”
여기까지였다.
불가사리는 남은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아주었다.
나도 똑같이 드라코의 오른손을 잡았다.
서로의 온기를 전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났다.
푸른 하늘에 수없이 반짝이는 예쁜 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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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치킨머신입니다.
소설로는 처음 완결을 내보는 작품입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거의 이틀만에 20페이지 정도를 한번에 써내려 갔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성의가 없어 보일 수 있다는게 안타깝네요.
다 써놓고 보니 대회의 입상 기준이 여름에 부합하는 거라서 큰일이 났습니다.
처음에야 여름의 후텁지근한 느낌을 내보려 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연결을 잘 시키지 못했네요.
무전 내용은 미국의 무전수칙을 조금 들고와서 흉내내보려 노력했습니다. 무전병이었던 적도 없고 검색하며 하나하나 찾아볼 열정이 없어서 고증은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뜨거운 여름에 먹는 답답한 고구마같은 느낌이라고 우기면 입상할 수 있을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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