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후일담. 여름의 이벤트라 하면 있을 법한 모험과 사랑, 하지만 어느 때에도 얼굴을 비추지 못한 한 바이오로이드의 이야기다.
모두가 겪었던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한때에 비교하면 사사롭기 그지없어 특필할 가치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렇지만 메이는 기억하고 있다. 어두운 밤하늘, 달조차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자 구름이 가볍게 감싸안았다.
성대한 불꽃놀이로 한때를 보내겠노라 소란을 피우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널찍이 떨어진 곳에서 사령관은 서있었다.
나이트 엔젤이 등을 떠민 탓에 메이는 망설이면서도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어째서 사령관 주변에는 여느 때와 달리 아무도 없었던 걸까.
좀처럼 사령관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메이를 배려해서일지도 모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주위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나이트 엔젤을 무시하고서 사령관에게 말을 걸기란 어려웠을 테니.
하지만, 그보다도 사령관의 분위기가 평소 때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메이. 나는 신경쓰지 말고 어울려도 돼."
"신경쓰기는 누가. 사령관이야말로 평소처럼 양쪽에 여자들 끼고서 헤벌레하면 어때?"
입만 열면 표독스런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심지어 이번엔 질투까지 섞여있다.
메이는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다행히도 사령관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그래도 사령관치곤 노력했잖아. 뭘 그렇게 풀이 죽어있어?"
이번 탐험, 우리들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모종의 탐험에서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끌고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메이는 서면상으로 봤을 뿐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은 아니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아려온다.
사령관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이제는 몇 번째인지도 셀 수 없는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
자신은 제자리에 서있기에도 벅찬데, 사령관의 옆에 꿋꿋이 서있는 것조차 이렇게 힘겨운데.
이렇게나 가슴이 뛰어서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그렇게 보였나? 딱히 풀이 죽어있는 건 아냐. 그냥 잡념이 들어서."
"흥, 그래봤자 누가 다쳤느니 죽었느니 그런 것 때문이겠지. 사령관, 우리는 전쟁중이야.
겨우 그런 거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이럴 때마다 일희일비해서야 어떡해? 그러니까, 그, 그러니까... 그런 거야..."
문득 사령관은 메이를 바라보았다.
"위로해주는 거야? 고마워."
"위, 위, 위로?! 내, 내가?! 하! 나, 나는 그저 이겨놓고서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야! 부, 불만있어?!"
이내 사령관이 크게 웃자 메이는 얼굴을 빨갛게 하고선 고개를 푹 숙였다.
한동안 웃던 사령관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바이오로이드들을 바라보았다.
불꽃놀이라더니 어디선가 장작을 들고와서는 성대하게 불을 피우고 있다.
몇몇은 사령관과 메이쪽을 쏘아보았지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사령관과 메이가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얼마 없는 기회라며,
나이트 엔젤을 비롯한 블랙 리버의 대원들이 두 눈을 살벌하게 치켜뜨고서 주변을 지키고 있다.
메이는 그들을 슬쩍 바라보고서 가공를 다졌다.
그래,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다가가야지. 예를 들자면, 손을 잡는다거나.
메이의 시선은 사령관의 손을 향했다. 가슴 앞에 가지런히 두었던 두 손, 그 중 오른손이 천천히 사령관의 손에 다가간다.
좁혀지는 거리에 반비례하여 가슴이 거칠게 뛰기 시작한다.
흘러가는 구름들 사이에서 달빛이 뱀처럼 빠져나오고, 어느덧 사령관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저도 모르게 올려다본 메이는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메이, 나는... 사랑받고 있다고 새악해. 그렇지?"
"사, 사랑?! 착각도 유분수지! 내, 내가 널 사, 좋... 그, 그치만 싫어하는 건 아냐..."
사령관은 또다시 웃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어딘가 메말라있다.
메이는 사령관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지. 나는 인간이니까."
"사령관...? 아냐, 난 그런 뜻이 아니라..."
"알고 있어. 너희들의 감정에 거짓은 없다는걸. 그렇지만... 그래, 예를 들어... 어디까지나 예시지만,
내가 아니었어도 너희들은 사랑하지 않았을까?"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라면, 이라며 사령관은 덧붙였다.
메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이라는 불길한 상상이 메이의 뇌리에도 스쳐지나갔다.
"탓하려는 게 아냐. 그건 너희들에게 있어선 본능이니까 부정해봤자 소용없는 거잖아.
비뚤어진 인간이지, 나도. 그렇지만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를 않아.
이런 이야기를 바이오로이드인 너에게 해봤자 도리어 심란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해버렸네."
메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이곳에 서있는 유일한 인간이, 사령관이 아는 다른 누군가였다면.
사령관보다 더 멋있고 똑똑한 남자, 아니면 보호욕을 자극하는 가련한 소년,
그것도 아니라면 바이오로이드들보다도 듬직한 강한 청년...
이마저도 바이오로이드로서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는 본능이 불러일으킨 환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날 위로해주려는 거야?"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먹을 꽉 쥐고서, 사령관을 정면에서 쳐다보았다.
"...한 번밖에 말 안할 거니까 똑똑히 들어."
심호흡을 한다. 시선을 돌려서는 안 된다. 눈과 눈이 마주한다.
"나, 멸망의 메이는 당신을 좋아, 아니, 사랑합니다.
당신보다 잘난 당신도 아니고, 당신보다 못난 당신도 아냐.
나는 당신을,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바이오로이드를 걱정하고 살아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이, 이... 이 바보야."
울지 않으려고 했다. 메이의 뇌가 내리는 명령을 무시하고서 멋대로 흐른 것뿐이다.
이 마음을 담기에는 두 손은 작기만 한데, 사령관은 이마저도 의심한다.
정면에서 고백을 거절당한 것보다도 참기 힘겨웠다.
아무리 말해도 닿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 감정을, 그럼에도 입에 담아도 헛손질하는 듯하다.
처음으로 보는 메이의 우는 모습에 사령관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메이는 울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사령관을 쳐다본다.
"모르겠다면 알 때까지 곁에 있겠어. 모든 싸움이 끝나고, 세상에 인간이 넘쳐흘러도."
그때도 당신 곁에 있다면 알아주시겠나요?
메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뒤돌아서서 사령관의 곁을 떠났다.
나이트 엔젤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걸로 된 겁니까?"
메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이트 엔젤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만류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후일담. 모든 것이 끝나도, 결코 끝나지 않을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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