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내 이름은 프로스트 서펀트.
펙소 콘소시엄에서 만든 소방관 바이오로이드다.
정확히 말하면 였다겠지.
실전 테스트에서 탈락한 나는 폐기 처분이 내려졌다.
다른 자매들이 보내던 그 끔찍한 시선이 아직도 기억난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의 탁월한 비행 능력을 눈여겨본 펙소의 한 간부가 나를 사들였다.
아들이 운영하는 해수욕장의 해양구조대원으로 쓴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훈련은 전부 취소되었고, 이렇게 일기를 쓸 시간도 생겨났다.
내일은 그 해수욕장으로 떠난다.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긴장되어 글을 쓰는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6월 28일.
여긴 정말 최고다!
이 해수욕장은 내가 알고 있던 다른 어떤 곳과도 다르다.
왜 내가 해양구조대원이 되었는지 알 거 같다.
이곳은 바이오로이들을 위한 해수욕장이다.
방문객들, 매점 주인들, 관리자들까지 전부 바이오로이드들이다.
이런 시설을 왜 운영하는지 궁금해서 소유자인 인간님에게 물어봤다.
왜 이런 시설을 운영하느냐고.
리차드 씨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고 웃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라고.
이곳의 방문객들은 전부 주인이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다.
주인들은 멀리 떨어져서 리차드 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바이오로이드가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바이오로이드 복지 시설이지만, 인간이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법.
아직은 마음을 열 때가 아니다.
7월 4일.
단체 관광객이 방문해서 일기를 쓸 시간이 없었다.
블랙 리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 바이오로이들의 휴가라고 한다.
다들 지치고 어딘가 다쳐 있었다.
그들은 넓게 펼쳐진 해변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젯밤에 돌아간 그들은 마지막까지 바다를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바이오로이들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LRL이라는 작은 바이오로이드다.
아주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다.
이곳에 오는 관광객 바이오로이드에게 수건과 물을 나누어준다.
그냥 그런 평범한 아이이면 좋으련만.
LRL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LRL은 원래 등대의 역할을 대신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
눈 한쪽에서 말 그대로 등대의 불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곳의 LRL은 그렇지 않다.
양 눈 모두 평범한 눈동자.
쉽게 말해서 불량품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강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이 해변의 직원 바이오로이드들을 만나 볼 것이다.
그들 모두 불량품이라면…….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이다.
7월 12일.
내 예상이 최악의 상황으로 들어맞았다.
이곳의 모든 직원은 모두 불량품들.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다.
불을 무서워하는 소방관인 나나, 등대 역할을 할 수 없는 LRL처럼.
사격 능력이 형편없는 브라우니, 요리를 못 하는 콘스탄챠,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리폰.
그들에게 물어봤다. 이 상황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모두 불량품만 모여 있는 이 해변을 수상쩍게 느끼지 않았다.
그저 이곳의 주인인 리차드 씨가 착하기에, 버려진 불량품들을 구원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저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그전 내가 인간을 미워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저 무언가 너무 불안하다.
7월 21일.
또 한 번 단체 관광객들이 찾아 왔다.
블랙 리버의 군사 바이오로이드들.
모두 부상병이고 PTSD에 시달리는 바이오로이드들이다.
리차드 씨는 블랙 리버와 친한 것일까.
평소에 오는 관광객들도 블랙 리버 소속이 대부분이다.
한 무리의 브라우니들과 레프리콘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들 신체 한 부분이 결손 되어 있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처음에는 절망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웃음을 되찾았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생각이 지나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리차드 씨는 바이오로이드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는 착한 인간일 수 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종류의 인간.
좀 더 지켜봐야겠다.
7월 31일.
여름이 점차 깊어가고, 문제가 발생했다.
LRL이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27일 저녁 식사 후에 모습을 보지 못했다.
LRL을 찾기 위해 주변을 수색하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아무도 LRL을 보지 못했다.
다들 LRL의 처우를 걱정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리차드씨는 지난주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땅한 관리자가 없으니 우리는 명령 받은 일에 묶여 LRL을 찾을 수 없다.
제발 LRL에게 아무런 일도 없기를.
그 조그마한 아이가 무사하기를.
8월 2일.
젠장! 젠장! 젠장!
리차드 씨에게 부탁해 이동의 자유를 받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LRL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리차드 씨에게 물어보았지만, 곤란하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바이오로이드의 복지를 위한 시설?
개뿔도 없는 거짓말이다.
이 인간님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관심이 없다.
자기 바닷가에 LRL이 있는지도 몰랐다.
리차드 씨가 허락해준 시간은 사흘.
그 안에 LRL을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는 직감을 느낀다.
8월 6일.
찾았다.
LRL을.
리차드 씨는, 나에게 이동의 자유를 허락하고,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리차드 씨의 개인 사무실도 아무런 제한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시체가 썩어들어가는 악취와 함께.
홀린 듯이 책상을 밀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보았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을.
블랙 리버의 공장 바이오로이드들이, 블랙 리버의 전투 바이오로이드들이, 이곳에 방문했던 다른 바이오도리드들이, LRL이 그곳에 있었다.
이해할 수 없어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적는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지?
8월 7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8월 8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브라우니가 사라졌다.
8월 9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8월 10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8월 11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이 찾아 왔다.
8월 12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그리폰이 사라졌다.
8월 13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새롭게 바닐라가 들어왔다.
8월 14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콘스탄챠가 사라졌다.
8월 15일.
난 아직 살아있다.
프로스트 서펀트는 살아있다.
다음은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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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역시 납량특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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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확연하게 따온 건 아니지만, 영향은 받았습니다. | 20.08.16 22: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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