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섯 개가 넘는 세력이 충돌한 전장의 흔적은 피와 파괴의 흔적들로 뒤덮여 있었다.
"으.......윽........"
무너진 잔해 아레에서 한 여성이 휘청대며 일어났다.
총을 점검한 그녀는 완전히 망가졌다는 걸 확인하고 어께에 걸쳤다. 고장났으면 고쳐 써야지, 그녀가 속한 그리폰의 사정은 고장난 총도 함부로 버릴 사정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지휘관님은?"
마지막 순간, 패러데우스 병력과 E.L.I.D들이 양쪽에서 지휘부에 들이닥쳤다.
가용한 제대의 수가 적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의 수보다 적다는 게 비극이었다. 적은 너무 많았고, 그리폰은 너무 적었다. 지역을 지켜야만 했지만, 그들이 지켜야만 하는 지형은 지키기는 어렵고 공격하기만 쉬운 지형이었다.
그때, 그녀의 시야에 익숙한 것이 잡혔다.
"지.......휘관님?"
유탄에 맞아 반파된 기둥 아래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지휘관님, 정신차리세요! 지휘관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안도하며 그를 깨우려 했다.
그때, 그녀의 장갑에 뭔가 끈적한 것이 묻어났다.
피였다.
"아..... 지휘관님! 지휘관님! 눈 뜨세요!"
"쿨럭!"
자기를 잡고 전술인형의 힘으로 탈탈 털어대는 그녀의 거친 행동에 그는 눈을 떴다.
"넌......."
"지휘관님, 정신 드세요?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미안....하하하...... 앞이 안 보이네. 쿨럭! 쿨럭! 제길......"
"지휘관님......."
"미안한데 한 가지만 물을게, 해가 지고 있어?"
그녀는 하늘을 보았다. 해가 꽤 기울긴 했지만, 지고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네."
"그래서 이렇게 어두운 거군."
"............!"
생명이 위태롭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다급히 그의 어께 아래로 손을 넣었다. 업고서라도 안전 지대까지 물러나야 했다
.
그때였다.
"크아아아악!"
"이게 무슨......"
"좀비들이다."
"예?"
"감염자들이 온다, 총 쓸 수 있나?"
"죄송해요, 무기가 망가져서......"
"어쩔 수 없지, 나도 여기까진가 보군."
"안 돼요, 지휘관님, 걸을 수 있으면 걸어요, 못 걷겠으면 제가 업고라도 가겠어요, 여기서 죽으면 안 돼요!"
"아냐, 명령이다. 날 두고 빠져나가, 소리를 들으니 가깝지는 않은 것 같군, 한 명이라도 더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지휘관은 입을 다물었다.
"지휘관님........"
"가!"
나는 죽음을 기다렸다. 묵묵히,
좀비들은 언제가 되든 날 찾아낼 테고, 난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무기도 없고, 탄약도 없고, 날 도울 동료와 부하들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지 알 것도 같은 그녀의 목소리, 날 두고 가라고 하고 나서 발소리가 멀어지는 게 들렸으니, 아마 무사히 빠져나갔을 것이다. 일부러 누군지 못 알아본 척을 했지만, 그녀는 한 소대의 소대장을 맡을 만큼 똑똑했으니까.
하지만 내 결정에 후회는 없었다. 그녀가 날 지키기 위해 남았다면 개죽음밖에 더 당할 게 없었고, 날 억지로 데려가려 했다면 가다가 십중팔구 들켰겠지, 부상자가 소리 한 번 안 내고 10여 킬로미터를 숨어다니며 갈 순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를 보낸 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그 뒤는 어떻게 될까?
그녀가 살아 돌아가고, 카리나는 기지에 남아 있었으니.... 부대가 완전히 와해되지야 않겠지.... 부관의 권한도 있으니 딱히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테고.
문득 책상 아래에 둔 그 물건이 생각난다.
'직접 꼭 주고 싶었는데.'
아마 내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찾으면 그녀에게 가져다주겠지, 편지도 같이 놔뒀으니까.
"크르르르르......"
발걸음 소리와 으르렁대는 소리, 좀비가 근처까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 품 안의 조그마한 반지를 만졌다. 사무실에 있는 것과 같은 한 쌍인 반지,
그녀에게 주지 못했기에 한 번도 끼워 본 적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껴 보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약지에 반지를 밀어 넣자, 알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이 가슴 속에서 떨리듯이 느껴졌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내 곁을 오랫동안 지켜 준 존재에게,
"그리고........"
지금은 곁에 없는 존재에게.
'사랑해.'
마지막 순간에, 정말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그녀에게.
"크아아아악!"
"타탕!"
총성과 함께, 좀비가 거꾸러졌다.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너....?"
시간상 지원이 오진 못했을 텐데, 그녀가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지원팀이랑 만나서..... 급하게 왔어요."
뭔가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 그녀는 늘 서툴다. 거짓말도 그렇고.
"..... 총은 어디서 주워왔어?"
".........."
거짓말쟁이, 놀리듯이 말하자,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그런 명령 하지 마세요. 전.... 전......."
지휘관님을 떠날 수 없단 말이에요.
그녀는 이를 악물듯이 말했다.
"탄약은 있어?"
"아뇨, 방금이 전부였어요."
총성을 듣고 좀비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건 있어요."
내 손에 뭔가 차가운 것이 닿았다.
수류탄의 감촉을 느낀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제 것도 있어요. 이거면......"
상관없다. 이젠 어떻게 되든,
그리폰이 어떻게 될지, 다른 인형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이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그토록 지켜주고 싶어했고, 소중히 여겼던 존재가 나와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와줬으니까.
또 억지로 보내는 건 그녀의 마음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였다.
"지휘관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하고 싶어요. 전........"
그녀의 부드럽기 그지없는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맨손의 감촉을 여러 번 상상했지만, 이런 느낌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기에 더욱 그녀의 목소리와 살갖이 감미롭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전, 지휘관님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맞닿았다.
좀비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도, 나도 마지막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그녀의 손이 수류탄을 감싸 쥔 내 손을 꽃봉오리처럼 다시 감쌌다. 안전핀을 그녀의 떨리는 손이 잡는 게 느껴졌다.
두렵지는 않았다. 이제 나도, 그녀도 영원히 함께일 테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죽을 각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막 들리니까 식겁하긴 했죠."
그녀가 상큼하게 웃었다.
급히 달려온 지원제대가 주변에 널려 있던 좀비들을 쓸어버리고 날 업고 탈출했다. 보이지 않던 눈은 수통의 물을 뒤집어쓰자마자 눈을 덮은 이물질들이 씻겨나가며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의 치료 끝에 난 다시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녀는 여전히 내 부관으로써 업무를 보조해주고 있다.
"흐으으으음?"
물론, 골치 아픈 일이 없다는 건 아니다, 내 눈앞에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천사의 탈을 쓴 악마 아가씨처럼!
"후후후.... 아무튼 매우 좋은 소재를 얻었어, 당분간 재밌겠는데?"
"야! 잠깐, 너 그 일 게시판에 올릴 건 아니....."
"꺄하하하하!"
MDR은 초고속으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하필 구해주러 온 애들 중에 쟤가 있을 게 뭐람........ 아참, 잠깐만 있어 봐."
"네? 지휘관님?"
그녀를 본 나는 헛기침을 했다.
"이거, 원래 전투 나가기 전에 주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쳤어, 고마워. 예전에도 그랬고, 그곳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자, 그녀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겠죠?"
"그래, 그럼..... 부족한 저와 앞으로도 함께해 주시겠나요? 나의 부관님?"
"...... 영광이에요, 제 사..... 친애하는 지휘관님."
사랑이라고 해주면 어디 덧나나. 물론 귀끝까지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말하라고 하긴 힘들지만.
아무튼,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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