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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잔잔하다.
삼엄해진 경계로 인해 한동안 숨막히는 침묵이 계속되는 듯 싶었지만, 문제의 사건 이후 진전이 나오지 않자 서서히 도시를 강타한 불안이 꺼지기 시작했다.
활기를 되찾아가는 이 거리가 여전히 공평한 침묵에 잠들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밤이 깊은 순간 뿐.
그조차도 완전한 침묵은 아니다. 주변 거리는 밤 산책하기 좋을 정도로 가로등이 밝혀주고 있으니까.
거리에는 여전히 불이 켜진 건물이 드문드문 보인다. 야근 중인지 다른 일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생이 많구나 싶었다.
그렇게라도 부지할 일상들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건물 가운데 편의점 한 곳에 찾아 들어간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이기에 밝은 정적 속에서 적당히 마실 것과 배터리를 고르고 금방 나온다.
마치 자판기를 확 넓혀놓은 것만 같은 가게였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털겠다면 털어라 하는 듯한, 극한의 시민의식의 있어야 성립되는 곳을 곳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순찰차 한 대가 잠시 정적을 가르며 지나간다. 잠시 멈춰 선 그들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가던 길을 가게 해주었다.
무슨 이변이라도 없는 이상 그들은 곧 교대를 하고 휴식에 들어갈 생각이리라.
검문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지만, 이 침묵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저런 사람들이 움직여주는 것 자체에 의미는 있을 것이다.
밤마다 찾아오게 되어 있는 질서는 이번에도 유지되는 중이다. 특히 이곳은 더더욱 철저히 지켜지고 있을 것이다.
아직 죽지 않은 불야성은, 아침이 오기 전까지 눈을 감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런 밝기에 노출되어 있다면 잠이 오기는 할까 싶을 정도다.
평화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 무방비 상태로도 아무 일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평화다.
혼자 밤거리를 돌아 다녀도 아무 일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이 충분한 안전이고 축복임을,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거리 곳곳에 있어도 24시간 감시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가 있다지만, 아무 일도 없다면 감수할 만한 가치는 있을지도 모른다.
인식할 수 없는 부자유는 자유와 별 차이 없을 테니.
이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질서에 감사하며 지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일은 그 동안의 안일한 생각이 깨지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까.
정말로 큰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진짜로 있겠어, 라며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역시 있을지 모른다.
그런 그들 모두 여전히 저마다의 일상을 취할 수가 있다.
밤의 어둠에 몸을 맡긴 채 다음 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으리라.
그야, 아직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
"…………."
둘러볼 곳은 다 둘러본지 오래다.
낮에 보나 밤에 보나 근사한 도시구나, 하고 평가해본다.
이 풍경을 앞으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산책은 이쯤 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
한동안 웬만한 운동에도 거뜬해진 몸이었지만, 그런 몸으로조차 슬슬 숨이 차오기 시작할 정도로 서문유진은 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서늘한 밤 공기 덕분인지 그나마 땀은 덜 배어오는 것 같았다.
주변을 황급하게 둘러본다. 신경 쓸만한 인기척은 없다. 피부에 닿는 수상한 기척 따위도 없다.
적어도 방금 전의 불청객이 일행을 데리고 오는 일은 없었다는 뜻이리라.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해도 좋을까.
그러나 지금 하는 행동이 안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밤거리를 혼자 뛰어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를리가 없다. 그것도 자신 같은 처지라면.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팔에 차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짐도 없고, 적어도 좇아오는 인물도 없으니까.
그러니 서두른다. 속도를 더 내야만 한다. 한 발 늦었다며 자책하고 더 위험한 선택을 자처해야 하는 상황만큼은 사양이었다.
맨션에 도착하자 마자 유진은 바로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답이 돌아오는 사이를 기다리기조차 벅찬 나머지 문을 몇 번 두드렸다.
옆 호실에 사는 사람이 뭔 일인지 살펴보러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따위 지금의 그에게는 없었다.
"있어?"
벽 너머에서 성큼성큼하는 발소리가 들리기도 잠시 바로 현관문이 열린다.
문고리를 잡은 아린의 눈매에는 당황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뭐야? 진짜로 왔어? 왜 이런 늦은 시간에…"
"여기 아무도 안 왔지?"
이런 밤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꺼낸다는 말이, 전에 이미 던졌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이라니.
그건 아린의 표정을 정색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너 진짜 왜 그러는데?"
아린의 높아진 언성에 유진이 한 순간 굳는다.
"이런 시간에 오긴 누가 온다 그래?"
"누구냐니…."
굳이 반박하자면 이 집 주인인 아린의 친척들이 있겠지. 그리고 얼마 전에 집에 쳐들어와서 인증 사진까지 띄우고 간 작자가 있었다.
후자는 유진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경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자신이 겪은 경험을 그녀가 겪을 일은 없다고 죽어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건……."
그러나 그 대답이 입밖으로 나올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말을 전할 수 없는 입술이 공허하게,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기만 할 뿐.
대신 스스로가 어떤 꼴인지를 돌아보았다.
현관 조명을 내리쬐면서 그늘을 드리운 채, 당황한 상대에게 집착하듯 캐묻는 모습. 이성을 완전히 놓지 않은 유진의 사고는 그것이 어떻게 보일지 쉽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스토커야?'
열이 없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유진은 제 이마를 짚었다. 땀이 배이긴 했어도 딱히 평소보다 더 뜨겁지는 않다.
어쩌면 방금 전까지 과열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방금 전에 움찔하면서 급속도로 식었을 뿐, 그 전까지는 머릿속 어딘가가 과열된 상태로 폭주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정말로 어딘가가 망가지기라도 한 것이라면.
그러나 방금 전에 거친 듀얼을 통해, 그리고 그 동안 나눈 말들을 통해, 결국 자신은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는다.
숨을 고르며 진단을 내렸다. 지금의 자신은 제정신이라고. 이건 제정신으로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까.
그런 생각 끝에 유진은 힘겹게 말을 꺼내다 말고 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군 채 숨을 고르고서야 다시 한 마디 꺼낼 수 있었다.
"미안."
문장으로 성립할까 말까 한 단 한 마디의 대답.
얼마나 많은 사실을 감추고 있을지 의심을 유발할 것이 뻔했음에도, 유진이 꺼낼 수 있는 말은 고작 그 정도였다.
"무슨 일 있었어?"
역시 물어본다. 무슨 일 있었으니까 이곳에 왔다는 것 정도야 당연히 눈치를 채였으리라.
그럼에도 여전히 대답하기는 곤란하다.
"………."
대신 유진이 택한 것은, 한 번 안겼던 몸을 충동적으로 와락 끌어안는 것이었다.
다시 침묵.
당황한 기색이 뚜렷하던 것도 잠시, 아린은 그런 유진이 어깨에 매달려 있도록 잠시 놔둔다.
"…진짜 미안해."
"말 안 해줄 거야?"
"지금은 못하겠어."
거짓말은 아니다. 지금 뿐만 아니라 언제쯤 꺼낼 수 있는 말인지조차 모르지만.
희미한 숨소리와 함께 작은 어깨가 살짝 들썩이는 것이 느껴진다.
잠시 후, 또다시 토탁토닥하는 손바닥의 감촉이 어깨로 전해져왔다. 마치 잠 못들고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주는 것만 같다.
온기가 전해진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옷자락 너머로 전해진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일 정도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서서히 부끄러움이 뒤따르지만 유진은 차마 떨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가녀린 몸뚱아리에 기대어 있자니, 마침내 뾰루퉁한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져왔다.
"그만 좀 떨어져. 답답해."
"어, 미안."
쳐들어오고 나서 미안하다는 소리만 몇 번째일까.
그러나 곧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고는, 다시 그 소리를 꺼낼 수밖에 없는 것을 깨닫는다.
"저기, 또 미안한 얘기인데…"
"뭐?"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겨우 한 가지 부탁을 꺼낼 수가 있었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
…
"…있잖아."
"응."
"전에 여기서 자고 간 적 있었나?"
"잤잖아. 저기 탁자에서."
"그러네."
소파에 앉아있던 유진은, 불과 몇 시간만에 남의 집 소파에 누워 있었다.
불을 끄고 머리를 눕힌다고 잠이 오는 것은 아니다. 이 거실만 해도 온갖 방해 요소가 유진을 건드려오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바닥은 아무리 담요를 깔았다고 한들 침대에 비할 수가 없다. 거기에 시곗바늘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거스르게 만든다.
무엇보다 거스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뒤에 위치한 소파 위에 누워있는 아린이었다. 자고 가도 된다는 것을 허락한 것은 좋지만, 어쩐지 본인 방이 아닌 바로 자신의 근처에서 이부자리를 깔아버린 것이다.
아무리 한 두 번 집에 놀러온 관계가 아니라지만, 지금 이 상황만큼은 유진조차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밤중에 느닷없이 쳐들어와서는 스스로가 봐도 부끄러운 짓을 막 저지른 것도 모자라, 염치없이 잠까지 청하고 있는 것이니까. 본인이 초래한 일이라지만 소파 밑에 바늘이라도 깔아놓은 것만 같다.
그럼에도 어쩐지 후회하지는 않는 자신이 있었다. 머릿속 한 구석에서 아직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해온다.
이런저런 요인으로 인해 유진의 눈은 감길 여지가 없었다.
눈을 감고서 또 무슨 일이 생겨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또 하나 부탁 있는데."
"뭔데?"
"TV 켜도 되냐?"
"안 돼. 폰이라도 보던지."
"칫."
리모컨이 손에 잡힐 일은 없으리라며 단념한다.
"요새 왜 이런대? 이렇게 염치도 없는 애로 키운 기억은 없는데."
"너 밑에서 큰 기억도 없다, 뭐."
실제로 엄청난 민폐를 저지르고 있음을 유진 본인도 자각하고는 있었다.
아닌 밤중에 쳐들어와서는 갑자기 일 없냐고 묻더니 잠까지 청하고 가다니.
본인이 생각해도 나중에 얼굴을 들기가 힘들어질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돌연 아린의 물음이 들려온다.
"아직도 말 안 할 거야?"
잠시 정적.
시곗바늘 소리를 들으면서 유진은 이래저래 나름 머리를 굴린 끝에 대답을 들려주었다.
"…안 웃을 거지?"
"응."
"그냥. 게임 해봤는데 말도 안 나오게 무섭더라고."
"뭐?"
분명 거짓말은 아니었다. 단지 생략한 것이 적지 않을 뿐.
그러나 아린 입장에서는 영 탐탁치 않은 소리였던 모양이다.
"진짜야. 죽는 줄 알았다니까? 며칠 연속으로 꿈에 나왔다고."
"그래서, 혼자 잠도 안 와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 셈이지."
콧김을 내쉬는 듯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떨리는 한숨인지 웃음소리인지는 구분하기가 힘들다.
안 웃겠다면서, 하고 유진은 속으로 잠시 투덜거렸다.
"감수성 풍부하다, 너. 평소에는 내 글 보는둥 마는둥 하면서."
"그거야, 그런 장르에는 보는 눈이 없다니까. 몇 번을 말하냐?"
"두고 봐. 언젠가는 그거랑 비슷한 급의 글을 써 올 거니까."
"응, 많이 써."
이 대답들을 믿어는 주고 있을까.
"근데, 너 그래도 호러 영화는 웬만큼 보는 편 아냐? 괴물이나 살인마 나오는 거."
"스플래터하고 정신적인 공포물은 결이 다르다고."
"네가 했다는 게 정신적인 쪽?"
"응, 쓸데없이 실감나는 어드벤처. 심지어 컨티뉴도 없어."
유진은 방금 한 말에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컨티뉴, 부활해서 다시 덤빈다는 특권이 있다는 것을 막 보고 왔으니까. 하지만 차마 그런 특권을 기대하고 싶지는 않다. 그 꼴로 전락할 바에야 차라리 패배한 채로 사라지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는 적어도 없는 것으로 치자는 것이다.
"무슨 배짱으로 그런 걸 골랐대?"
"그러게."
그런 게임을 하는 데에 선택의 자유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게임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유진이라도 남이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좀처럼 하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것이 그 동안 열의를 바쳤던 카드게임이라도.
남이 도전해오는 듀얼이라면 거절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그였으나, 그런 위험한 일이 따른다면 역시 하고 싶은 생각 따윈 없었다.
물론 거부할 권한도 없겠지.
"그 게임 깨기는 했어?"
"그럼. 끝은 봐야지."
"오오, 꼴에 자존심."
한 번이라도 지면 끝이라고 해도, 그것밖에 답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이기고 이겨서 버텨줘야 한다. 그렇게 버틴 끝에 재버워키라는 작자의 민낯을 까발려야 한다.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도 품어본다.
'걔는 괜찮으려나.'
그러던 유진은 또다시 떠올린다. 아이바 유노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언제든 지켜준다고 말을 해놨으면서 지금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다.
딱히 야속한 것은 아니다. 태스크 포스라는 수상한 업무 외에도 아르바이트까지 뛰고 있던 녀석이니까. 어지간히 바쁜 몸인 듯 하니 자신을 돌보러 올 처지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걱정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위험한 일을 견뎌야 하지는 않을까. 그녀 역시 지내던 곳에서 괴한이 들이닥치는 일을 겪어오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두 자릿수나 되는 상대를 거치면서 적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있잖아."
"응."
"큰일 난 애를 발견하면 가서 도와주는 게 맞겠지?"
"실제로 보면 모르겠지만…, 일단 그게 도리겠지."
"그치."
그렇다고 자신이 가서 뭘 해줄 수 있느냐 하면 역시 떠오르는 것은 없다. 자신과는 달리 그 애는 자신의 선택으로 이른 일이라고 단언했으니까. 가봤자 훼방만 놓는 꼴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 애에게는 '리퍼'라는 존재가 있으니까. 육체는 없어도, 머릿속에서 항상 함께 하며 대신 싸워주는 편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위험한 존재.
든든한 아군인 한 편, 수상하기 짝이 없는 힘으로 그녀는 홀몸을 이끈 채 싸움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입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존재 역시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보낼 수는 없을 듯 했다.
"새삼스레 뭘 물어? 예전에 이미 그랬으면서."
"……."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하며 유진은 쑥쓰러움을 느낀다.
그냥 알고 지내는 애가 큰일나는 걸 두고볼 수 없었기에 욱했던 것 뿐인데. 당시만 해도 주변 애들이 다 만만했으니까 가능했던, 단순한 오지랖일 뿐인데.
애들끼리의 문제라고는 해도 일대다수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한 번 험악해진 관계는 좀처럼 되돌리기 힘들다는 깨달음이 뒤따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애를 괴롭히려 들었던 쪽의 잘못이므로 딱히 후회가 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그 때고. 그냥 목소리 크고 몸만 나서면 다 될 줄 알았으니까. 철없는 시절이지."
"지금은 뭐 들었나."
"말 다했냐?"
"다 못했다."
그런 위태로워 보이던 애가 언제부턴가 곁에서 틱틱거리며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다. 병원에서 기운을 되찾은 순간부터 이미 그녀는 그런 아이였다.
적어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상대 앞에서만큼은 장난스러워질줄도 아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던 것이다.
"…고맙다고."
"아니, 뭐."
예전에 했던 소리를 이제 와서 또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이제와서 들어봤자 쑥쓰럽기만 할 뿐인데.
"응, 마침 잘 됐네. 이렇게 단 둘이 있으니까 나한테도 할 말이 있는데."
"……."
무슨 말이길래. 어째서 '단 둘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것일까.
유진은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온다.
"무슨 말?"
"음, 진짜 해도 되나?"
"말해. 나도 말했는데."
"으음……."
아까 대답을 계속 얼버무린 것을 갚아주려는 것인지 괜히 뜸을 들인다.
대체 뭘 하자는 걸까. 스스로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자니, 유진은 서서히 낯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괜한 망상이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망상이 아니라면, 그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하마터면 망상에 몸을 맡길 뻔한 자신이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니 갑자기 그녀를 쳐다보기가 곤란해진다. 그녀를 끌어안던 순간에 떠올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지금까지 일궈 온 관계가 변화하는 것이 그렇게나 두려운 걸까. 다음에 던진 물음은 그러했다.
바뀐다면 어쩔 수 없이, 혹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자신은 명백히 망설이고 있다. 그렇다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게 대답을 기다리면서 자기 자신에게 빠른 속도로 질문을 날리던 끝에, 드디어 진짜 대답이 귓가에 들려왔다.
"덱 다 짰다고 했었잖아. 테스트해보게 내일 듀얼 좀 해줘."
"……."
그럼 그렇지.
한 편으로는 유진으로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마침 D-패드를 들고 나온 참이다. 덱 케이스도 그대로 같이 붙어 있었으니 당장이라도 듀얼을 할 여건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이대로라면 진짜로 누군가가 여기로 쳐들어온다고 해도 문제는 없으리라. 적어도 자신이 먼저 패배해버리지 않는 이상은.
"알았어, 알았어. 해줄게."
"응, 그럼 잘 자."
"잘 자."
"좋은 꿈 꿔."
"그러면 좋겠네."
하품과 한숨이 섞인 무언가를 내뱉은 후,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동안 이상한 것을 겪지 않기를. 긴장이 풀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유진은 그렇게 빌어 본다.
이런 게 어딨어.
맨션 앞에 위치한 주민 전용 공원에서 듀얼 디스크를 세팅한 유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응."
"전에 여기서 자고 간 적 있었나?"
"잤잖아. 저기 탁자에서."
"그러네."
소파에 앉아있던 유진은, 불과 몇 시간만에 남의 집 소파에 누워 있었다.
불을 끄고 머리를 눕힌다고 잠이 오는 것은 아니다. 이 거실만 해도 온갖 방해 요소가 유진을 건드려오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바닥은 아무리 담요를 깔았다고 한들 침대에 비할 수가 없다. 거기에 시곗바늘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거스르게 만든다.
무엇보다 거스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뒤에 위치한 소파 위에 누워있는 아린이었다. 자고 가도 된다는 것을 허락한 것은 좋지만, 어쩐지 본인 방이 아닌 바로 자신의 근처에서 이부자리를 깔아버린 것이다.
아무리 한 두 번 집에 놀러온 관계가 아니라지만, 지금 이 상황만큼은 유진조차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밤중에 느닷없이 쳐들어와서는 스스로가 봐도 부끄러운 짓을 막 저지른 것도 모자라, 염치없이 잠까지 청하고 있는 것이니까. 본인이 초래한 일이라지만 소파 밑에 바늘이라도 깔아놓은 것만 같다.
그럼에도 어쩐지 후회하지는 않는 자신이 있었다. 머릿속 한 구석에서 아직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해온다.
이런저런 요인으로 인해 유진의 눈은 감길 여지가 없었다.
눈을 감고서 또 무슨 일이 생겨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또 하나 부탁 있는데."
"뭔데?"
"TV 켜도 되냐?"
"안 돼. 폰이라도 보던지."
"칫."
리모컨이 손에 잡힐 일은 없으리라며 단념한다.
"요새 왜 이런대? 이렇게 염치도 없는 애로 키운 기억은 없는데."
"너 밑에서 큰 기억도 없다, 뭐."
실제로 엄청난 민폐를 저지르고 있음을 유진 본인도 자각하고는 있었다.
아닌 밤중에 쳐들어와서는 갑자기 일 없냐고 묻더니 잠까지 청하고 가다니.
본인이 생각해도 나중에 얼굴을 들기가 힘들어질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돌연 아린의 물음이 들려온다.
"아직도 말 안 할 거야?"
잠시 정적.
시곗바늘 소리를 들으면서 유진은 이래저래 나름 머리를 굴린 끝에 대답을 들려주었다.
"…안 웃을 거지?"
"응."
"그냥. 게임 해봤는데 말도 안 나오게 무섭더라고."
"뭐?"
분명 거짓말은 아니었다. 단지 생략한 것이 적지 않을 뿐.
그러나 아린 입장에서는 영 탐탁치 않은 소리였던 모양이다.
"진짜야. 죽는 줄 알았다니까? 며칠 연속으로 꿈에 나왔다고."
"그래서, 혼자 잠도 안 와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 셈이지."
콧김을 내쉬는 듯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떨리는 한숨인지 웃음소리인지는 구분하기가 힘들다.
안 웃겠다면서, 하고 유진은 속으로 잠시 투덜거렸다.
"감수성 풍부하다, 너. 평소에는 내 글 보는둥 마는둥 하면서."
"그거야, 그런 장르에는 보는 눈이 없다니까. 몇 번을 말하냐?"
"두고 봐. 언젠가는 그거랑 비슷한 급의 글을 써 올 거니까."
"응, 많이 써."
이 대답들을 믿어는 주고 있을까.
"근데, 너 그래도 호러 영화는 웬만큼 보는 편 아냐? 괴물이나 살인마 나오는 거."
"스플래터하고 정신적인 공포물은 결이 다르다고."
"네가 했다는 게 정신적인 쪽?"
"응, 쓸데없이 실감나는 어드벤처. 심지어 컨티뉴도 없어."
유진은 방금 한 말에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컨티뉴, 부활해서 다시 덤빈다는 특권이 있다는 것을 막 보고 왔으니까. 하지만 차마 그런 특권을 기대하고 싶지는 않다. 그 꼴로 전락할 바에야 차라리 패배한 채로 사라지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는 적어도 없는 것으로 치자는 것이다.
"무슨 배짱으로 그런 걸 골랐대?"
"그러게."
그런 게임을 하는 데에 선택의 자유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게임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유진이라도 남이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좀처럼 하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것이 그 동안 열의를 바쳤던 카드게임이라도.
남이 도전해오는 듀얼이라면 거절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그였으나, 그런 위험한 일이 따른다면 역시 하고 싶은 생각 따윈 없었다.
물론 거부할 권한도 없겠지.
"그 게임 깨기는 했어?"
"그럼. 끝은 봐야지."
"오오, 꼴에 자존심."
한 번이라도 지면 끝이라고 해도, 그것밖에 답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이기고 이겨서 버텨줘야 한다. 그렇게 버틴 끝에 재버워키라는 작자의 민낯을 까발려야 한다.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도 품어본다.
'걔는 괜찮으려나.'
그러던 유진은 또다시 떠올린다. 아이바 유노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언제든 지켜준다고 말을 해놨으면서 지금까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다.
딱히 야속한 것은 아니다. 태스크 포스라는 수상한 업무 외에도 아르바이트까지 뛰고 있던 녀석이니까. 어지간히 바쁜 몸인 듯 하니 자신을 돌보러 올 처지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걱정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위험한 일을 견뎌야 하지는 않을까. 그녀 역시 지내던 곳에서 괴한이 들이닥치는 일을 겪어오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두 자릿수나 되는 상대를 거치면서 적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있잖아."
"응."
"큰일 난 애를 발견하면 가서 도와주는 게 맞겠지?"
"실제로 보면 모르겠지만…, 일단 그게 도리겠지."
"그치."
그렇다고 자신이 가서 뭘 해줄 수 있느냐 하면 역시 떠오르는 것은 없다. 자신과는 달리 그 애는 자신의 선택으로 이른 일이라고 단언했으니까. 가봤자 훼방만 놓는 꼴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 애에게는 '리퍼'라는 존재가 있으니까. 육체는 없어도, 머릿속에서 항상 함께 하며 대신 싸워주는 편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위험한 존재.
든든한 아군인 한 편, 수상하기 짝이 없는 힘으로 그녀는 홀몸을 이끈 채 싸움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입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존재 역시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보낼 수는 없을 듯 했다.
"새삼스레 뭘 물어? 예전에 이미 그랬으면서."
"……."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하며 유진은 쑥쓰러움을 느낀다.
그냥 알고 지내는 애가 큰일나는 걸 두고볼 수 없었기에 욱했던 것 뿐인데. 당시만 해도 주변 애들이 다 만만했으니까 가능했던, 단순한 오지랖일 뿐인데.
애들끼리의 문제라고는 해도 일대다수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한 번 험악해진 관계는 좀처럼 되돌리기 힘들다는 깨달음이 뒤따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애를 괴롭히려 들었던 쪽의 잘못이므로 딱히 후회가 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그 때고. 그냥 목소리 크고 몸만 나서면 다 될 줄 알았으니까. 철없는 시절이지."
"지금은 뭐 들었나."
"말 다했냐?"
"다 못했다."
그런 위태로워 보이던 애가 언제부턴가 곁에서 틱틱거리며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다. 병원에서 기운을 되찾은 순간부터 이미 그녀는 그런 아이였다.
적어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상대 앞에서만큼은 장난스러워질줄도 아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던 것이다.
"…고맙다고."
"아니, 뭐."
예전에 했던 소리를 이제 와서 또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이제와서 들어봤자 쑥쓰럽기만 할 뿐인데.
"응, 마침 잘 됐네. 이렇게 단 둘이 있으니까 나한테도 할 말이 있는데."
"……."
무슨 말이길래. 어째서 '단 둘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것일까.
유진은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온다.
"무슨 말?"
"음, 진짜 해도 되나?"
"말해. 나도 말했는데."
"으음……."
아까 대답을 계속 얼버무린 것을 갚아주려는 것인지 괜히 뜸을 들인다.
대체 뭘 하자는 걸까. 스스로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자니, 유진은 서서히 낯이 부끄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괜한 망상이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망상이 아니라면, 그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
아까까지만 해도 하마터면 망상에 몸을 맡길 뻔한 자신이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니 갑자기 그녀를 쳐다보기가 곤란해진다. 그녀를 끌어안던 순간에 떠올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지금까지 일궈 온 관계가 변화하는 것이 그렇게나 두려운 걸까. 다음에 던진 물음은 그러했다.
바뀐다면 어쩔 수 없이, 혹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자신은 명백히 망설이고 있다. 그렇다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게 대답을 기다리면서 자기 자신에게 빠른 속도로 질문을 날리던 끝에, 드디어 진짜 대답이 귓가에 들려왔다.
"덱 다 짰다고 했었잖아. 테스트해보게 내일 듀얼 좀 해줘."
"……."
그럼 그렇지.
한 편으로는 유진으로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마침 D-패드를 들고 나온 참이다. 덱 케이스도 그대로 같이 붙어 있었으니 당장이라도 듀얼을 할 여건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이대로라면 진짜로 누군가가 여기로 쳐들어온다고 해도 문제는 없으리라. 적어도 자신이 먼저 패배해버리지 않는 이상은.
"알았어, 알았어. 해줄게."
"응, 그럼 잘 자."
"잘 자."
"좋은 꿈 꿔."
"그러면 좋겠네."
하품과 한숨이 섞인 무언가를 내뱉은 후,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동안 이상한 것을 겪지 않기를. 긴장이 풀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유진은 그렇게 빌어 본다.
◇
이런 게 어딨어.
맨션 앞에 위치한 주민 전용 공원에서 듀얼 디스크를 세팅한 유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엑스퓨어리 하피니스: 천사족 / 빛 / 랭크 7 / ATK 2500 / DEF 1100 / ORU 5]
[에퓨어리 하피니스: 천사족 / 빛 / 랭크 2 / ATK 3200 → 5000 / DEF 1300 → 3100 / ORU 4 → 5]
뉴런즈 기어를 통해 시각으로 드러난 적진에 위치한 것은 아린이 새로 뽑았다던 덱의 몬스터들. 눈으로 보기에는 반려동물로 데려다 키우기 좋아 보이는 털뭉치 생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재롱을 부리듯이 필드에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것을 미처 막아내지 못한 결과, 지금은 명백하게 자신을 위협하는 맹수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둠의 듀얼을 한 번 이겨낸 덱을 그대로 쓰고 있음에도.
저항할 수단은 잃은 채 무방비해진 유진을 앞두고서 마찬가지로 듀얼 디스크를 차고 있는 아린이 자비없이 공격을 선언한다.
"그럼, 이번에도 '행복메모리'가 오버레이 유닛이 됐으니까 또 한 번 공격할 수가 있네. '에퓨어리 하피니스'로 다이렉트 어택!"
"윽!"
[서문유진: LP 0]
그 결과, 유진은 화려한 털뭉치 요정의 태클을 얻어맞고서 그대로 패배를 맞이했다. 그 동안 비축해 놓은 오버레이 유닛 탓인지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타격이었다.
그래도 별 충격은 없다. 피부를 살짝 압박하는 선에서만 끝날 뿐, 그 공격은 유진에게 딱히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 뒤에 어떤 불길한 일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괜한 안심이 찾아오기를 잠시, 한 편으로 이 패배는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해 보았다. 이번 판은 패가 썩 잘 따라준 편이 아니니까. 즉, 자신의 완패임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번 더 하자."
"그러지 뭐."
사이드 덱을 교체하고서 연전에 임한다.
[서문유진: LP 0]
아니, 도대체, 어째서.
다음에 품은 생각은 그러했다.
"한 번 더 할래?"
"그, 그래야지."
[서문유진: LP 0]
유진은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생각해봤자 승리의 길이 보일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낙담에 빠진 유진은 그대로 주변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째서……."
"그러게. 분명 네가 쓴 것도 좋은 카드가 맞는데…."
같이 거들어준다고 해결될 고민일쏘냐. 물론 그녀가 내뱉은 의문은 유진이 품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분명 강한 카드들이 맞는데. 한 번의 패배를 겪고 나름 재정비도 거쳤는데. 어둠의 듀얼이라는 살떨리는 의식에서 살아남게까지 해줬는데.
이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론 자체는 어렵지 않게 도출되었다. 옆에 있는 소꿉친구가 듀얼에 매우 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새로 맞췄다던 덱 역시 만만치 않게 강하다는 것.
역시 덱의 성능은 카드의 외형만으로 따져서는 안 되는 법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좋은 덱을 짰다고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잖아. 운도 실력의 일부라고 누가 그러던 것도 같고. 실력이 커버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이번에도 아린이 어깨를 토닥토닥거린다.
"세번이나 졌지만."
"콱!"
개가 짖는 것마냥 고함을 치는 유진에게서 아린은 잽싸게 손을 치웠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짖궂은 웃음을 흘렸다.
"끝을 보겠다며. 이대로 끝나도 되겠어?"
"됐어. 애초에 테스트 부탁한 건 네쪽이잖아. 잘 됐네, 뭐. 충분히 센 덱이니까."
"그런가?"
"이쯤 되면 너도 프로 자리 노려보는 거 어때?"
"그렇게까지 말하면야. 생각해볼까나?"
어우, 재수없어. 제안한 장본인인 유진이 속으로 딴지를 걸어본다.
문득 문답을 마치고 난 유진은 또다시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이전에 아린네 집에 찾아가서 테이블 듀얼을 치루던 무렵과 하등 다를 바가 없음을.
나아가, 병실에서 심심풀이로 듀얼을 하며 놀던 시절과도 다를 것이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한 편으로 마음이 놓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듀얼판에 복귀한 그녀는 현 환경에 적응을 한 것을 넘어 능숙하게 요즘 카드들을 다뤄내고 있다.
유진이 걱정하지 않아도 그녀는 충분히 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듀얼이든. 마음이든.
지금만 해도 보호받고 있는 것은 굳이 따지면 자신 쪽일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 아무리 이기는 결과가 따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따르는 고통을 그녀가 겪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숨겨둔 진짜 사정을 꺼낼 일도 없었다.
생각에 빠지며 바라본 하늘은 진즉에 밤이 지나고 아침이 한창인 와중이었다. 티끌없이 푸르고 맑은 것이 머릿속마저 청정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다.
"날씨 좋다."
"그러게."
해가 중천으로 향하는 이 밝고 푸른 풍경이야말로 진짜 하늘이라 할 수 있을 터. 어제라고 다르지는 않았겠지만, 시끌벌적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딱히 올려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당연히 그 자리에서 보일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이 하늘도 지고 다시 어둠이 드리우겠지. 어제처럼 뭐가 일어날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자신이 있다.
그런 두려움을 외면하려는 듯, 혹은 떠나기 전의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유진은 잠시 앉은 채로 하늘을 멍하니 주시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때가 편하긴 편하구나 하는 감상을 품어보았다.
'이대로면 되는 걸까….'
그렇게 남은 주말의 시간이 흐른다.
"에휴, 모자란 놈."
소식 두절. 그것만으로도 그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이야 자주 있지만 위치조차 알 수 없게 되었으니까.
결국은 실패인 모양이다. 캔필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마침 그 놈을 찾는다 싶어서 거들어줬더니만, 역시 기대하는 게 아니라니까."
"누구 얘기해?"
뭐 이상한 걸 하지는 않는지 감시하러 오기라도 한 듯, 이번에도 불청객이던 여성은 캔필드의 방에 찾아와 죽치고 있는 중이었다.
여태까지의 행태로 봐서 자신을 건드릴리 없다는 확신이 있던 것이겠지.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는 자기가 사지도 않은 만화책을 멋대로 책장에서 꺼내들고는 뚱한 표정으로 읽어내리고 있다.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냥 시간 죽이려고 읽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래서야 진중한 감상을 토론하기는 힘들겠지. 그나마 페이지를 구기거나 찢지는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잘했다고 칭찬이나 해줘야 할까. 갑자기 그 상태에서 간식이 땡긴다고 과자나 까먹지 말았으면.
그런 불청객에게 일일이 지적하기도 귀찮았던 그는 그냥 마지못해 질문에 대답해주기로 했다.
"누구더라? 이름은 알 거 없고. 얼굴이고 뭐고 피부 다 까진 놈 있었거든."
"으엑, 뭐야 그게."
"살다 보면 별에 별 놈을 다 보게 돼 있어."
"지는 얼마나 더 살았다고. 그래서 그런 놈이 왜?"
"벌칙 같은 거 받고 용케 목숨 건진 모양이던데, 그 지경이 되어서까지 꼭 발라버리고 싶은 놈이 있었다 이거지. 그래서 선행 좀 베풀어줬다."
"카드 줬다고? 얼마 받고?"
"거의 자선이야, 자선. 그런 놈이 가진 게 뭐가 있겠어? 찾는 놈이 어디 있는지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정보료는 굳었다 치고 덱 골라주는 데에나 신경을 쓴 거야."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들렸는지 불청객 쪽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뭐, 완전 공짜면 당연히 내가 손해니까 이기면 연락이나 달라고 했지. 엉뚱한 생각 마시고 나중에 천천히 갚아 달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대답 대신 혀를 차준다.
"호구 새끼."
"그래그래, 내가 호구지. 불쌍한 사람들 보살피느라 남아나는 게 없다."
욕으로 대답하는 그녀에게, 그는 양심을 지적하는 대답과 함께 쏘아보았다.
"그러니까 당신도 고마움을 좀 알아달라 이거거든."
대답 대신 쏙 내민 혀만이 돌아온다. 그리고는 다시 독서에 집중.
역시 귀여움이라고는 손톱만큼밖에 없는 꼬맹이가 아닌가.
딱히 자기 일에 관심을 갖지는 않는 듯 보이지만, 어찌 됐든 자세하게 캐묻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 태클을 뒤로 하며 캔필드는 자신이 받은 손해를 다시금 곱씹는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니까. 역시 그 놈이 다 갚아줘야겠지."
[에퓨어리 하피니스: 천사족 / 빛 / 랭크 2 / ATK 3200 → 5000 / DEF 1300 → 3100 / ORU 4 → 5]
뉴런즈 기어를 통해 시각으로 드러난 적진에 위치한 것은 아린이 새로 뽑았다던 덱의 몬스터들. 눈으로 보기에는 반려동물로 데려다 키우기 좋아 보이는 털뭉치 생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재롱을 부리듯이 필드에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것을 미처 막아내지 못한 결과, 지금은 명백하게 자신을 위협하는 맹수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둠의 듀얼을 한 번 이겨낸 덱을 그대로 쓰고 있음에도.
저항할 수단은 잃은 채 무방비해진 유진을 앞두고서 마찬가지로 듀얼 디스크를 차고 있는 아린이 자비없이 공격을 선언한다.
"그럼, 이번에도 '행복메모리'가 오버레이 유닛이 됐으니까 또 한 번 공격할 수가 있네. '에퓨어리 하피니스'로 다이렉트 어택!"
"윽!"
[서문유진: LP 0]
그 결과, 유진은 화려한 털뭉치 요정의 태클을 얻어맞고서 그대로 패배를 맞이했다. 그 동안 비축해 놓은 오버레이 유닛 탓인지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타격이었다.
그래도 별 충격은 없다. 피부를 살짝 압박하는 선에서만 끝날 뿐, 그 공격은 유진에게 딱히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 뒤에 어떤 불길한 일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괜한 안심이 찾아오기를 잠시, 한 편으로 이 패배는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해 보았다. 이번 판은 패가 썩 잘 따라준 편이 아니니까. 즉, 자신의 완패임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번 더 하자."
"그러지 뭐."
사이드 덱을 교체하고서 연전에 임한다.
[서문유진: LP 0]
아니, 도대체, 어째서.
다음에 품은 생각은 그러했다.
"한 번 더 할래?"
"그, 그래야지."
[서문유진: LP 0]
유진은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생각해봤자 승리의 길이 보일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낙담에 빠진 유진은 그대로 주변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째서……."
"그러게. 분명 네가 쓴 것도 좋은 카드가 맞는데…."
같이 거들어준다고 해결될 고민일쏘냐. 물론 그녀가 내뱉은 의문은 유진이 품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분명 강한 카드들이 맞는데. 한 번의 패배를 겪고 나름 재정비도 거쳤는데. 어둠의 듀얼이라는 살떨리는 의식에서 살아남게까지 해줬는데.
이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론 자체는 어렵지 않게 도출되었다. 옆에 있는 소꿉친구가 듀얼에 매우 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새로 맞췄다던 덱 역시 만만치 않게 강하다는 것.
역시 덱의 성능은 카드의 외형만으로 따져서는 안 되는 법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좋은 덱을 짰다고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잖아. 운도 실력의 일부라고 누가 그러던 것도 같고. 실력이 커버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이번에도 아린이 어깨를 토닥토닥거린다.
"세번이나 졌지만."
"콱!"
개가 짖는 것마냥 고함을 치는 유진에게서 아린은 잽싸게 손을 치웠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짖궂은 웃음을 흘렸다.
"끝을 보겠다며. 이대로 끝나도 되겠어?"
"됐어. 애초에 테스트 부탁한 건 네쪽이잖아. 잘 됐네, 뭐. 충분히 센 덱이니까."
"그런가?"
"이쯤 되면 너도 프로 자리 노려보는 거 어때?"
"그렇게까지 말하면야. 생각해볼까나?"
어우, 재수없어. 제안한 장본인인 유진이 속으로 딴지를 걸어본다.
문득 문답을 마치고 난 유진은 또다시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이전에 아린네 집에 찾아가서 테이블 듀얼을 치루던 무렵과 하등 다를 바가 없음을.
나아가, 병실에서 심심풀이로 듀얼을 하며 놀던 시절과도 다를 것이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한 편으로 마음이 놓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듀얼판에 복귀한 그녀는 현 환경에 적응을 한 것을 넘어 능숙하게 요즘 카드들을 다뤄내고 있다.
유진이 걱정하지 않아도 그녀는 충분히 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듀얼이든. 마음이든.
지금만 해도 보호받고 있는 것은 굳이 따지면 자신 쪽일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 아무리 이기는 결과가 따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따르는 고통을 그녀가 겪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숨겨둔 진짜 사정을 꺼낼 일도 없었다.
생각에 빠지며 바라본 하늘은 진즉에 밤이 지나고 아침이 한창인 와중이었다. 티끌없이 푸르고 맑은 것이 머릿속마저 청정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다.
"날씨 좋다."
"그러게."
해가 중천으로 향하는 이 밝고 푸른 풍경이야말로 진짜 하늘이라 할 수 있을 터. 어제라고 다르지는 않았겠지만, 시끌벌적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딱히 올려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당연히 그 자리에서 보일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이 하늘도 지고 다시 어둠이 드리우겠지. 어제처럼 뭐가 일어날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자신이 있다.
그런 두려움을 외면하려는 듯, 혹은 떠나기 전의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유진은 잠시 앉은 채로 하늘을 멍하니 주시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때가 편하긴 편하구나 하는 감상을 품어보았다.
'이대로면 되는 걸까….'
그렇게 남은 주말의 시간이 흐른다.
◈
"에휴, 모자란 놈."
소식 두절. 그것만으로도 그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이야 자주 있지만 위치조차 알 수 없게 되었으니까.
결국은 실패인 모양이다. 캔필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마침 그 놈을 찾는다 싶어서 거들어줬더니만, 역시 기대하는 게 아니라니까."
"누구 얘기해?"
뭐 이상한 걸 하지는 않는지 감시하러 오기라도 한 듯, 이번에도 불청객이던 여성은 캔필드의 방에 찾아와 죽치고 있는 중이었다.
여태까지의 행태로 봐서 자신을 건드릴리 없다는 확신이 있던 것이겠지.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는 자기가 사지도 않은 만화책을 멋대로 책장에서 꺼내들고는 뚱한 표정으로 읽어내리고 있다.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냥 시간 죽이려고 읽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래서야 진중한 감상을 토론하기는 힘들겠지. 그나마 페이지를 구기거나 찢지는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잘했다고 칭찬이나 해줘야 할까. 갑자기 그 상태에서 간식이 땡긴다고 과자나 까먹지 말았으면.
그런 불청객에게 일일이 지적하기도 귀찮았던 그는 그냥 마지못해 질문에 대답해주기로 했다.
"누구더라? 이름은 알 거 없고. 얼굴이고 뭐고 피부 다 까진 놈 있었거든."
"으엑, 뭐야 그게."
"살다 보면 별에 별 놈을 다 보게 돼 있어."
"지는 얼마나 더 살았다고. 그래서 그런 놈이 왜?"
"벌칙 같은 거 받고 용케 목숨 건진 모양이던데, 그 지경이 되어서까지 꼭 발라버리고 싶은 놈이 있었다 이거지. 그래서 선행 좀 베풀어줬다."
"카드 줬다고? 얼마 받고?"
"거의 자선이야, 자선. 그런 놈이 가진 게 뭐가 있겠어? 찾는 놈이 어디 있는지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정보료는 굳었다 치고 덱 골라주는 데에나 신경을 쓴 거야."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들렸는지 불청객 쪽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뭐, 완전 공짜면 당연히 내가 손해니까 이기면 연락이나 달라고 했지. 엉뚱한 생각 마시고 나중에 천천히 갚아 달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대답 대신 혀를 차준다.
"호구 새끼."
"그래그래, 내가 호구지. 불쌍한 사람들 보살피느라 남아나는 게 없다."
욕으로 대답하는 그녀에게, 그는 양심을 지적하는 대답과 함께 쏘아보았다.
"그러니까 당신도 고마움을 좀 알아달라 이거거든."
대답 대신 쏙 내민 혀만이 돌아온다. 그리고는 다시 독서에 집중.
역시 귀여움이라고는 손톱만큼밖에 없는 꼬맹이가 아닌가.
딱히 자기 일에 관심을 갖지는 않는 듯 보이지만, 어찌 됐든 자세하게 캐묻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 태클을 뒤로 하며 캔필드는 자신이 받은 손해를 다시금 곱씹는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니까. 역시 그 놈이 다 갚아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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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하고 착잡해지는 분위기 가운데 이번 분량을 올립니다
그냥 앞으로도 카드든 굿즈는 무사히 구할 수 있었으면 좋을 따름입니다 어흑
(IP보기클릭)211.194.***.***
흉-흉
(IP보기클릭)121.173.***.***
나올 거면 유노랑 그 장면에서 진작 나왔어야...
(IP보기클릭)121.173.***.***
아린쟝 히로인력 엄청 높아!
(IP보기클릭)39.118.***.***
여러모로 다음 싸움이 코앞이군요
(IP보기클릭)211.194.***.***
흉-흉
(IP보기클릭)58.143.***.***
| 24.05.19 17:33 | |
(IP보기클릭)121.137.***.***
(IP보기클릭)58.143.***.***
걱정 마십시오 | 24.05.19 17:32 | |
(IP보기클릭)121.137.***.***
알겠습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관람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 보면서 순간 19금스러운 장면이 나올 거라 예상했던... 이래서 음란마귀가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순애 19금 모먼트 언제 나오나 생각한 내 뇌는 썩었어...ㅠㅠ | 24.05.19 17:34 | |
(IP보기클릭)58.143.***.***
| 24.05.19 17:35 | |
(IP보기클릭)121.173.***.***
로이드온
나올 거면 유노랑 그 장면에서 진작 나왔어야... | 24.05.19 17:54 | |
(IP보기클릭)121.173.***.***
아린쟝 히로인력 엄청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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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다음 싸움이 코앞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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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미심장) | 24.05.19 18: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