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죽은 인물중에 백유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 백수민이 정여립의 조카 사위였다
정여립과 친한 사이라 정여립에게 여러 서찰을 보냈는데 그 서찰에 선조를 디스하는 말을 남겼다
기축옥사때 이 서찰을 보고 분노한 선조는 정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유양과 백유양의 아들들을 죽였는데
연려실기술과 광해군 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백유양이 정여립에게 보낸 서찰들의 내용은 이렇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일기
백유양의 자식은 여립의 조카 사위로 일가(一家)의 인연을 맺어 조정의 시비와 임금의 거조를 통지하지 않음이 없어 〈오가는〉 간찰(簡札)이 〈수백 리 밖에〉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임해군(臨海君)과 광해군(光海君)이 총애를 잃었고 주상(主上)의 혼미함이 날로 심해진다."는 등의 말로 편지를 써서 여립에게 주었으니, 그가 적과 함께 일을 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 말의 부도(不道)함이 심하다.
연려실기술
백유양(白惟讓)이 여립(汝立)에게 보낸 편지에, 임금에게 대하여 부도(不道)한 말이 많이 쓰여져 있었는데 임금이 그 중 가장 심한 것만 골라내어서 국청(鞫廳)에 내려 보냈다. 그 편지에, “이 사람(임금)이 시기심이 많고 모질며 고집이 세다.” 하였고, 또 “이 사람은 조금도 임금의 도량이 없다.” 하였으므로 임금은 백유양을 역적으로 처단하라고 명하였으나 정철이 아뢰기를, “경악(經幄)에서 여립같은 역적 하나가 난 것만도 큰 변고인데, 백유양이 비록 못되었으나 어찌 다시 여립같은 역적이야 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대신이 권력을 제 마음대로 한다고 말하였다.
저 기록들을 참고하면 백유양은 선조를 가리켜 시기심 많고 속이좁고 공빈김씨 소생 인 장남 임해군과 차남 광해군은 무시하면서
인빈 김씨 소생 자식들만 귀여워 하고 날이 갈 수록 정신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선조를 디스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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