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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패악질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 선위wwe가 제일 족같은거같음 선위 받는순간 역적되는데 역적되기싫으면 몇날며칠 석고대죄하면서 왕 삐진거 풀어줘야함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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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화군 정원군 임해군은 임진왜란 때 죽는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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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은 논한다. 삼가 주상(主上)을 살피건대 춘추가 아직 높지 않은데 질병이 계속되어 약이(藥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듣건대 작년 가을 전교에 '천하에 어찌 어미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 하면서 군신(群臣)들을 협박하여 급급하게 나이 어린 비(妃)를 맞아들였다... 재취(再娶)하지 않는 예(禮)로 말한다면, 1후(后) 3부인(夫人) 9빈(嬪) 27세부(世婦) 81어처(御妻)가 이미 등극하던 초기에 갖추어졌으니, 1후가 훙(薨)하였어도 궁(宮)을 대신 다스릴 사람이 있는데 재취하는 데 급급한 것은 어째서인가.... 국가가 한번 패란된 후로 기세가 쇠약해져서 위망(危亡)의 조짐이 한둘이 아니었다. 중흥(中興)에 대한 계책 가운데 급박한 것이 많은데도 먼저 백성에게 국모(國母)가 없는 것을 걱정하였으니, 질병의 발생이 아마도 여기에서 말미암았을 것이다.... 지금 이 천리의 나라는 바로 자기 한 사람의 물건인데도 병 때문에 일을 폐하니, 기미를 아는 군자라면 반드시 미리 근심하였을 것이다. 선조가 재혼하려 하자 나온 사신의 극딜 죶같은 로리콘새끼 니가 지금 정신팔려서 나라 죶망하는중이다 ㅋㅋ를 박아넣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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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왕 되고 나서 한 짓거리들이 솔직히 왕 노릇 했다고는 보기 힘든 좀 폐급찐빠가 많기는 한데 선조 자식들 중에서 제일 고점이 그나마 광해군인것 같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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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은 논한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충용(忠勇)하고 재략(才略)도 있었으며 기율(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전일 통제사 원균(元均)은 비할 데 없이 탐학(貪虐)하여 크게 군사들의 인심을 잃고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배반하여 마침내 정유년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 왔다. 원균이 죽은 뒤에 이순신으로 대체하자 순신이 처음 한산에 이르러 남은 군졸들을 수합하고 무기를 준비하며 둔전(屯田)을 개척하고 어염(魚鹽)을 판매하여 군량을 넉넉하게 하니 불과 몇 개월 만에 군대의 명성이 크게 떨쳐 범이 산에 있는 듯한 형세를 지녔다. 지금 예교(曳橋)의 전투에서 육군은 바라보고 전진하지 못하는데, 순신이 중국의 수군과 밤낮으로 혈전하여 많은 왜적을 참획(斬獲)하였다. 어느날 저녁 왜적 4명이 배를 타고 나갔는데, 순신이 진린(陳璘)에게 고하기를 ‘이는 반드시 구원병을 요청하려고 나간 왜적일 것이다. 나간 지가 벌써 4일이 되었으니 내일쯤은 많은 군사가 반드시 이를 것이다. 우리 군사가 먼저 나아가 맞이해 싸우면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 하니, 진린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다가 순신이 눈물을 흘리며 굳이 청하자 진린이 허락하였다. 그래서 중국군과 노를 저어 밤새도록 나아가 날이 밝기 전에 노량(露梁)에 도착하니 과연 많은 왜적이 이르렀다. 불의에 진격하여 한참 혈전을 하던 중 순신이 몸소 왜적에게 활을 쏘다가 왜적의 탄환에 가슴을 맞아 선상(船上)에 쓰러지니 순신의 아들이 울려고 하고 군사들은 당황하였다. 이문욱(李文彧) 곁에 있다가 울음을 멈추게 하고 옷으로 시체를 가려놓은 다음 북을 치며 진격하니 모든 군사들이 순신은 죽지 않았다고 여겨 용기를 내어 공격하였다. 왜적이 마침내 대패하니 사람들은 모두 ‘죽은 순신이 산 왜적을 물리쳤다.’고 하였다.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ㅂㅅ년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었겠는가. 아, 애석하다. - 칠천량 해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 되새겨보는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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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삔또상하면 귀양가는거 아니냐고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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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위파동에 고생면서 멀쩡한 사람이 망가졌다는 말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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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삔또상하면 귀양가는거 아니냐고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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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패악질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 선위wwe가 제일 족같은거같음 선위 받는순간 역적되는데 역적되기싫으면 몇날며칠 석고대죄하면서 왕 삐진거 풀어줘야함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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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굶고 선조 지나갈 때마다 머리 돌바닥에 받아서 피나게 하고. 영창대군 세자로 세운다고 쌩쇼하고. 그걸 흉내낸 영조라서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광해군보다 더한 행보를 보였을 엔딩. ㅜㅜ 근데 순화군 정원군 임해군 모두 싸패 쏘패네? 선조의 자식교육이란.... 그걸 보고 좋다고 벤치마킹한 영조란..... | 26.09.16 07:5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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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화군 정원군 임해군은 임진왜란 때 죽는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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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은 논한다. 삼가 주상(主上)을 살피건대 춘추가 아직 높지 않은데 질병이 계속되어 약이(藥餌)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듣건대 작년 가을 전교에 '천하에 어찌 어미 없는 나라가 있겠는가.' 하면서 군신(群臣)들을 협박하여 급급하게 나이 어린 비(妃)를 맞아들였다... 재취(再娶)하지 않는 예(禮)로 말한다면, 1후(后) 3부인(夫人) 9빈(嬪) 27세부(世婦) 81어처(御妻)가 이미 등극하던 초기에 갖추어졌으니, 1후가 훙(薨)하였어도 궁(宮)을 대신 다스릴 사람이 있는데 재취하는 데 급급한 것은 어째서인가.... 국가가 한번 패란된 후로 기세가 쇠약해져서 위망(危亡)의 조짐이 한둘이 아니었다. 중흥(中興)에 대한 계책 가운데 급박한 것이 많은데도 먼저 백성에게 국모(國母)가 없는 것을 걱정하였으니, 질병의 발생이 아마도 여기에서 말미암았을 것이다.... 지금 이 천리의 나라는 바로 자기 한 사람의 물건인데도 병 때문에 일을 폐하니, 기미를 아는 군자라면 반드시 미리 근심하였을 것이다. 선조가 재혼하려 하자 나온 사신의 극딜 죶같은 로리콘새끼 니가 지금 정신팔려서 나라 죶망하는중이다 ㅋㅋ를 박아넣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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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당시 왕비가 없으니 새로 맞이하긴 해야했음 후궁을 왕비로 승격시킨다? 그런 전례 하나 만들면 궁중암투 확정이라 | 26.09.16 09: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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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은 논한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충용(忠勇)하고 재략(才略)도 있었으며 기율(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전일 통제사 원균(元均)은 비할 데 없이 탐학(貪虐)하여 크게 군사들의 인심을 잃고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배반하여 마침내 정유년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 왔다. 원균이 죽은 뒤에 이순신으로 대체하자 순신이 처음 한산에 이르러 남은 군졸들을 수합하고 무기를 준비하며 둔전(屯田)을 개척하고 어염(魚鹽)을 판매하여 군량을 넉넉하게 하니 불과 몇 개월 만에 군대의 명성이 크게 떨쳐 범이 산에 있는 듯한 형세를 지녔다. 지금 예교(曳橋)의 전투에서 육군은 바라보고 전진하지 못하는데, 순신이 중국의 수군과 밤낮으로 혈전하여 많은 왜적을 참획(斬獲)하였다. 어느날 저녁 왜적 4명이 배를 타고 나갔는데, 순신이 진린(陳璘)에게 고하기를 ‘이는 반드시 구원병을 요청하려고 나간 왜적일 것이다. 나간 지가 벌써 4일이 되었으니 내일쯤은 많은 군사가 반드시 이를 것이다. 우리 군사가 먼저 나아가 맞이해 싸우면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 하니, 진린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다가 순신이 눈물을 흘리며 굳이 청하자 진린이 허락하였다. 그래서 중국군과 노를 저어 밤새도록 나아가 날이 밝기 전에 노량(露梁)에 도착하니 과연 많은 왜적이 이르렀다. 불의에 진격하여 한참 혈전을 하던 중 순신이 몸소 왜적에게 활을 쏘다가 왜적의 탄환에 가슴을 맞아 선상(船上)에 쓰러지니 순신의 아들이 울려고 하고 군사들은 당황하였다. 이문욱(李文彧) 곁에 있다가 울음을 멈추게 하고 옷으로 시체를 가려놓은 다음 북을 치며 진격하니 모든 군사들이 순신은 죽지 않았다고 여겨 용기를 내어 공격하였다. 왜적이 마침내 대패하니 사람들은 모두 ‘죽은 순신이 산 왜적을 물리쳤다.’고 하였다.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ㅂㅅ년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었겠는가. 아, 애석하다. - 칠천량 해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 되새겨보는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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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왕 되고 나서 한 짓거리들이 솔직히 왕 노릇 했다고는 보기 힘든 좀 폐급찐빠가 많기는 한데 선조 자식들 중에서 제일 고점이 그나마 광해군인것 같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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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比奈 まふゆ
선위파동에 고생면서 멀쩡한 사람이 망가졌다는 말이 있지 | 26.09.16 06:1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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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되고 나서는 진짜 개ㅂㅅ같은데 막상 왜란 도중에는 일을 꽤잘함. 사도처럼 귀신이라도 들린거 아닌가하고 존나 궁금함. | 26.09.16 07:2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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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측으로는 선조가 선위한다고 개지랄쑈쑈쑈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 쌓인거에 광해군 자체가 난세에는 성군인데 치세에는 암군인 스타일이 아니였나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봄 물론 왜란 끝난 이후가 치세였냐고 하면 백번 양보해도 치세라고는 죽어도 말 못하긴 한데 | 26.09.16 07:4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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