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율령 반포가 373년 소수림왕인데
촉이 항복한게 263년임.
몇번을 이야기 하지만, 삼국시대(중국)은 철기시대라니까?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임.
소위, 물가가 개씹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란 현상이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계기가 신대륙 발견과 신대륙 식민지에서 뿜어져나오는 금과 은 이었음.
근데 뭔 기원후 200년대, 그것도 파촉 귀투성이에서 화폐를 무진장 뽑아내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다느니 그게 말이 됨? 그렇게 선진적이었다고?
화폐를 만드는거하고, 그 화폐를 유통하는 거 하고, 유통된 화폐가 거래되는거하고
전부 전혀 다른 문제라니까?
차라리 후한200년간 낙양이 쌓아온 부를 싸그리 갈취한 동탁이 뒤지는 바람에
동탁이 갖고 있던 금은보화나 비단이 시중에 풀려서 인플레가 났다면 또 몰라
아니면 제갈량이 전쟁에 미쳐서 내정을 싹 다 전쟁에 올인해서(이건 사실이지)
나라가 십창이 났다 뭐 이런 주장이면 (정사의 기록과는 다르지만)
이해라도 할 수 있지
아니면 당시에는 비단 또한 대체화폐로 쓰였었으니,
중국의 비단 주산지인 촉한에서 비단 수출길이 막혀서 비단값이 싸지는 바람에
비단에 대한 쌀값이 올랐다 뭐 이러면 논리라도 맞는데
뭔 금속화폐에 의한 인플레이션이야...
뭐 파촉에 금광 은광이라도 포토시만하게 터져서 은이 쏟아져서 인플레이션이 났다 그런건가?
ps. 지폐...? 종이가 개발된건 채륜(50~121)의 시기임.
(IP보기클릭)223.131.***.***
??? : 아무튼 촉은 까고 까여야 한다고요.
(IP보기클릭)119.193.***.***
사실 인플레로 보이는 현상(=쌀값이 비싸지는 현상)은 삼국지에 자주 보여오긴 했음. 대표적으로 반동탁 직후 연주 쌀값이 X창난거. 근데 이건 농사를 망친 탓이고. 당시의 운송능력이 너무 일천해서 지역별로 쌀값이 의도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할 능력이 안됬었음.. 그래서 당시의 인플레이션은 대체로 농사 X망, 전쟁으로 인한 수탈, 약탈 등에 의해 이루어졌음,
(IP보기클릭)222.104.***.***
내가 전에 중국 역사책 읽었을 때는 오수전 이후로는 꽤나 조악한 화폐들이 나오다가 송대가서야 화폐경제가 복구된다고 들었는뎅
(IP보기클릭)106.101.***.***
근대여서 영향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은 당백전이라면 모르는데 2000년전 화폐에 대해 영향이나 기록 분석이 없는 직백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게 좀 그렇긴하지 중국 학자들도 의견이 존나 갈리더구만
(IP보기클릭)119.193.***.***
화폐가 없었다 X 화폐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화폐주조능력은 없었다 ㅇ + 중앙에서 화폐가 통제 가능할 정도로 조폐통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주조에 의한 화폐가치는, 근대에 오기 전까지는 화폐 자체의 금속적 가치에 의존했었음. 금속화폐를 녹이느니, 은 함유량이 어쩌고 악화가 양화를 어쩌고 하는 내용이 전부 이 "금속적 가치"라는거. 우리가 생각하는 초인플레이션(짐바브웨 달러 같은) 같은게 존재할라면 일단 신용화폐라거나, 아예 로마제국처럼 국가 신용이 국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상업이 발달해야 하는건데 촉땅에서 그게 되겠냐고... 아니 뭐 철전이라도 철이니까(철 자체가 가치가 높았음) 철값은 나오겠지만 그건 철값이 올랐다고 해야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없음;
(IP보기클릭)119.193.***.***
이 시기에 유의미한 인플레를 일으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군량을 약탈하는거임. 곡식의 양이 줄어드니까 곡식의 가치가 오르잖아? 뭐 그럼 사람도 잡아먹고. 무제기 선주전에 먹을 게 없어서 끔찍한 사람잡아먹는 이야기가 하나씩 나오는데 겨우 화폐주조 "따위"로 그 지옥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싶음. 화폐도 금속인데.
(IP보기클릭)119.193.***.***
애초에 동탁이 화폐 만들어서 X창 냈다는 것도 우스운게, 사실상 동탁 집권이 9개월인가 그런데 그 사이에 화폐를 찍어내봐야 얼마나 찍어냈겠냐고.. 동탁이 화폐 찍는데만 전념한 것도 아니고, 사치도 부리고 사람도 패죽이고 정치도 하면서 미오성까지 지었는데. 애초에 동탁 정권 실무자는 왕윤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왕윤도 책임자인거 아님? ㅋㅋㅋ
(IP보기클릭)116.255.***.***
(IP보기클릭)119.193.***.***
사실 인플레로 보이는 현상(=쌀값이 비싸지는 현상)은 삼국지에 자주 보여오긴 했음. 대표적으로 반동탁 직후 연주 쌀값이 X창난거. 근데 이건 농사를 망친 탓이고. 당시의 운송능력이 너무 일천해서 지역별로 쌀값이 의도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할 능력이 안됬었음.. 그래서 당시의 인플레이션은 대체로 농사 X망, 전쟁으로 인한 수탈, 약탈 등에 의해 이루어졌음, | 25.08.31 18:29 | | |
(IP보기클릭)223.131.***.***
??? : 아무튼 촉은 까고 까여야 한다고요.
(IP보기클릭)27.119.***.***
(IP보기클릭)119.193.***.***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2114554 | 25.08.31 18:29 | | |
(IP보기클릭)27.119.***.***
직백오수전에 직백도 오수도 글찾는걸로는안나오게 되어있으니 못찾은게 당연했네 | 25.08.31 18:30 | | |
(IP보기클릭)118.235.***.***
(IP보기클릭)61.82.***.***
촉한화폐관련해선 사서내에 기록이 너무나 적어서 그냥 판단 보류해놓긴 하는데.. 일단 한나라 자체의 화폐의 량 자체는 상당히 많지 않았어? | 25.08.31 18:52 | | |
(IP보기클릭)119.193.***.***
화폐가 없었다 X 화폐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화폐주조능력은 없었다 ㅇ + 중앙에서 화폐가 통제 가능할 정도로 조폐통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주조에 의한 화폐가치는, 근대에 오기 전까지는 화폐 자체의 금속적 가치에 의존했었음. 금속화폐를 녹이느니, 은 함유량이 어쩌고 악화가 양화를 어쩌고 하는 내용이 전부 이 "금속적 가치"라는거. 우리가 생각하는 초인플레이션(짐바브웨 달러 같은) 같은게 존재할라면 일단 신용화폐라거나, 아예 로마제국처럼 국가 신용이 국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상업이 발달해야 하는건데 촉땅에서 그게 되겠냐고... 아니 뭐 철전이라도 철이니까(철 자체가 가치가 높았음) 철값은 나오겠지만 그건 철값이 올랐다고 해야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없음; | 25.08.31 20:29 | | |
(IP보기클릭)222.104.***.***
내가 전에 중국 역사책 읽었을 때는 오수전 이후로는 꽤나 조악한 화폐들이 나오다가 송대가서야 화폐경제가 복구된다고 들었는뎅
(IP보기클릭)119.193.***.***
거야..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는 법(화학적으로) 이니까. 10개로 12개를 만드는 마~술(화학) | 25.08.31 21:26 | | |
(IP보기클릭)106.101.***.***
근대여서 영향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은 당백전이라면 모르는데 2000년전 화폐에 대해 영향이나 기록 분석이 없는 직백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게 좀 그렇긴하지 중국 학자들도 의견이 존나 갈리더구만
(IP보기클릭)211.234.***.***
(IP보기클릭)211.234.***.***
(IP보기클릭)211.234.***.***
대놓고 왕망도 했고 동탁도 했는데 유비는 안 했다가 말이나 됨?
(IP보기클릭)211.234.***.***
유비 손권도 다 했고 국가 재정 충당하고 민간에게 인플레이션 피해 떠넘기기는 흥선대원군도 성공한 건데 왜 하필 유비만 아니라는 사람이 나오는 걸까
(IP보기클릭)61.82.***.***
아마 전반적으로 직백오수 자체가 기록이 적어서 그런듯, 그래서 나도 판단을 보류한 편인데. 별개로 후한 화폐 유통량이나 그 자체도 상당히 많았던걸로 기억하는지라... 물론 당백전의 조선시대와 후한 시대의 차이도 분명히 있겠지만. 별개로 농경국가였던 조선이랑 달리 중국은 상업 발달이 엄청났던터라, 그런 점도 고려해봐야하는 건 맞긴 함. | 25.08.31 19:38 | | |
(IP보기클릭)211.234.***.***
애초에 고조선에서도 출토되는 게 후한 화폐인데 왜 지들 맘대로 인플레 없었다는 거야 진짜 빠심인가 | 25.08.31 20:03 | | |
(IP보기클릭)211.234.***.***
진짜 철기라 오수전이 유통이 안 되었다는 건 뭔 소리인지 | 25.08.31 20:05 | | |
(IP보기클릭)61.82.***.***
위에도 적혔듯이 직백오수는 그냥 사료부족으로 어느쪽도 판단할 수 없다에 가까우니까. 다만 인플레가 없었다는건 어느 한쪽으로 확정짓는 말일 수도 있으니 님 말도 이해는 함 | 25.08.31 20:06 | | |
(IP보기클릭)119.193.***.***
잘봐, 처음부터 설명해줄 게. 인플레이션이라는건 물가가 상승하는거야. 근데 단순히 물가가 오르고 내리는 건 기록이 안되겠지? 그래서 후한 말에 제대로 "인플레이션" 이라는게 될 정도면 이정도, 기록에 남는 수준으로 값이 올라야 해. 인플레이션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후한 말 기준으로 화폐-곡식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요인은 농사가 씹망해서 곡식의 가치가 오르거나, 화폐를 존나 많이 찍어서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이 두가지 경우야. 나라가 망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려면, 적어도 193년 연주 정도는 되어야지 비빌 수 있다고. 너를 위해 예시를 가져와줬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건 덤이야. | 25.08.31 20:41 | | |
(IP보기클릭)119.193.***.***
그 정도의 화폐를 가져오려면 얼마나 많은 금속이 필요하냐고? 너를 위해 예시를 가져와줬어. 은 18,000톤 + 금 200톤 =밀값 4배 야. 당연히 정량적인 비교는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겠지만, 이 정도의 "금속 재료"가 당시 촉한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 애초에 촉한은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나는 철로 화폐만 만드는게 아니라 전쟁할 무기도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럼, 금속이 없는데 어떻게 화폐를 초-대량생산해서 인플레이션을 만들까? 정답은 국가가 망할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게 불가능하다는거야. 물리적으로. | 25.08.31 20:44 | | |
(IP보기클릭)61.82.***.***
어... 근데 철기 무기를 만드는 금속과 구리를 사용한 동전은 생산지가 다르지 않아? | 25.08.31 20:45 | | |
(IP보기클릭)119.193.***.***
선생님 철보다 구리가 귀합니다... 철기시대에는 애초에 구리하고 철을 혼용해서 쓰기도 했고. 애초에 기원후 200년 기술력으로 화폐유통 만으로 인플레이션 일으키는 것도 우습고. 그 시절에 금속화폐만 썼던 것도 아님. 포목이나 비단도 대체화폐였었으니까. 마침 그 비단 주요생산지가 파촉이네. | 25.08.31 20:49 | | |
(IP보기클릭)220.124.***.***
촉은 대량발행보다도 액면가가 실제 금속가치보다 더럽게 높은 화폐를 발행해서 국고를 가득 채웠다는게 유일한 기록인데 사실상 대규모의 물자공출과 착취를 한 거 아닌가? 고고학상으로 지속적 발생과 유통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걸로 군수물자 공출을 했지 싶고, 그나마도 나중에는 여의치 않아서 함량을 더 낮춘 거고 | 25.08.31 20:51 | | |
(IP보기클릭)220.124.***.***
이렇게 강제 유통된 동전이 어떤 식으로 활용이 됐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은 | 25.08.31 20:52 | | |
(IP보기클릭)119.193.***.***
그럼 물자공출과 착취라고 해야지 왜 인플레이션이냐고. 까놓고 따지자면 그건 공명첩에 가깝지. | 25.08.31 20:53 | | |
(IP보기클릭)119.193.***.***
뭐 동전도 금속이니까 어케든 민간에서 썼겠지. 녹여서 더 저품질의 주화를 만들거나. | 25.08.31 20:53 | | |
(IP보기클릭)61.82.***.***
뭔 말인지 이해는 하겠다만... 무엇보다 촉한의 구리 생산량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한 수치는 알수 있을까 해서 내가 예전에 찾아본 바로는 어느정도 구리산지를 찾아서 동전을 뽑아낸 느낌이라서. | 25.08.31 20:55 | | |
(IP보기클릭)119.193.***.***
나도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진나라 때 파촉에 조폐소를 뒀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음. 정사 기록에도 남아있으니까 아마 광산이 있었겠지? 뭐 그랬으니 북벌도 여러번 할 수 있었겠지만. 근데 그게 인플레를 일으킬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같은 건 좀. | 25.08.31 20:58 | | |
(IP보기클릭)61.82.***.***
근데 그 기록부터가 이전 화폐 인플레이션들 상황들 고려하면 진짜 시장가에 맞는 가치로서 화폐를 냈는지 아닌지 모르니까 이게 화폐를 만들어서 시장을 돌아가게 만든건지, 착취인건지 갈리는거 아닌가 묻고 싶은거임. 왕망부터 시작해서 환영시대때 사출오수, 동탁등 화폐 인플레이션이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오수전이 여러모로 많이 훼손된 시기였던데다가, 당백전 발행전 처럼 화폐가치가 오히려 상승하던 디플레이션이랑 거리가 멀거든 | 25.08.31 20:59 | | |
(IP보기클릭)61.82.***.***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9698092 내가 예전에 유게에 올렸던 정리한 자료, | 25.08.31 21:00 | | |
(IP보기클릭)119.193.***.***
정사 기록에 착취라고 나와 있으니 착취가 맞지 않을까? 뭐 군표나 공명첩처럼 "제 값 못받을 건 아는데, 그렇다고 교환 안했다가는 맞아죽을 것 같으니까 바꿔주는" 느낌? 애초에 이 시기에 군량 긁어모으는 건 대부분 약탈이었고.. 맨입으로 하면 좀 미안하니까 부루마블달러 주는 느낌이지. | 25.08.31 21:01 | | |
(IP보기클릭)61.82.***.***
사실 이게 좀 이상한게 인플레를 일으켰고 파장이 있었다면 기록이 있다면 막 확증해놓고 판단하는걸 이해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는데 왜 자기 주장이 당연히 맞다는 식으로 각자 주장하는지 모르겠음; 나도 자료 조사한 게 '이러저러한 걸로 반박은 되지만, 결국 사서에 적힌 내용이 적어서 유보해야한다.' 는 이유로 적은거거든. | 25.08.31 21:02 | | |
(IP보기클릭)119.193.***.***
애초에 동탁이 화폐 만들어서 X창 냈다는 것도 우스운게, 사실상 동탁 집권이 9개월인가 그런데 그 사이에 화폐를 찍어내봐야 얼마나 찍어냈겠냐고.. 동탁이 화폐 찍는데만 전념한 것도 아니고, 사치도 부리고 사람도 패죽이고 정치도 하면서 미오성까지 지었는데. 애초에 동탁 정권 실무자는 왕윤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왕윤도 책임자인거 아님? ㅋㅋㅋ | 25.08.31 21:03 | | |
(IP보기클릭)119.193.***.***
이 시기에 유의미한 인플레를 일으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군량을 약탈하는거임. 곡식의 양이 줄어드니까 곡식의 가치가 오르잖아? 뭐 그럼 사람도 잡아먹고. 무제기 선주전에 먹을 게 없어서 끔찍한 사람잡아먹는 이야기가 하나씩 나오는데 겨우 화폐주조 "따위"로 그 지옥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 싶음. 화폐도 금속인데. | 25.08.31 21:05 | | |
(IP보기클릭)61.82.***.***
기록 전문이 워낙 짧아서 나도 잘 모르지만, 일단 관고가 부유해졌다는 말이 미심쩍긴 하기에 나도 약탈했다는 것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은 함 그렇지만 그것 외에는 기록이 없다는 점이고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때는 또 화폐가 먹힐만한 상황이기도 했던지라 여러모로 생각이 나뉘는거라. | 25.08.31 21:06 | | |
(IP보기클릭)61.82.***.***
밭은 나눠줬으니 화폐정도는 삥듣어도 ㅇㅋ 라는 느낌일라나 | 25.08.31 21:07 | | |
(IP보기클릭)220.124.***.***
기본적으로 약탈로 국고가 텅비었는데 제로에서 대규모 이익을 창출했다는 식의 찬양 기록이다보니. 특히 원나라 교초 같은 지폐가 아니고 금속화폐를 쓴다는 건 그 동전의 값어치를 어느정도 보장해준다는 이야긴데 그 금속 함량 통용가치의 백배를 때려버렸다고 해버리면 이게 똑바로 돌아갈 수 있나 싶은 거지. 민간에서 통용이 되었다고 해도 정부에서 물자를 '구매'한 것과는 투트랙으로 함량 가치에 맞춰서 이루어졌지 싶음. 정부에서는 백원을 주고 만원어치 음식을 사갔는데 손에 남은 건 백원이고, 개쌍욕이 나오지만 백원 있는 거 쓰긴 쓰는 느낌으로 | 25.08.31 21:08 | | |
(IP보기클릭)119.193.***.***
근데 이 시기에 철보다 싼 금속이 존재할 수 있음? 애초에 철기시대 초중입이라 철값도 동값하고 크게 차이 안날텐데. 은이나 금이면 뭐 함량차이가 효과가 크겠지만, 애초에 동전을 철전으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가치가 크게 요동칠라나... | 25.08.31 21:11 | | |
(IP보기클릭)61.82.***.***
그거는 몇번을 얘기하긴 했는데, 이미 음식이 만원~10만원 하는 상황이라 화폐가 적절한거 아니냐 하는 거였음. | 25.08.31 21:12 | | |
(IP보기클릭)119.193.***.***
쌀도 화폐고, 비단도 화폐고, 화폐도 화폐고. 난 그냥 대규모로 착취(약탈은 상호협의가 없는거니까) 하면서 그 댓가로 금속쪼가리 나눠준 정도? 라고 정리하고 싶음. 애초에 전쟁하겠다는 애들이 동전이 필요하겠냐고.. 쌀하고 포목이 필요하겠지. 아 물론 무기도 필요하고. 아... 그래서 제갈량이 북벌에 목맸다 싶네 또. 교역로가 장강루트로 한정되니까 그런건가? | 25.08.31 21:12 | | |
(IP보기클릭)220.124.***.***
현존 직백오수 실물은 크기와 중량이 극히 다양하다. 대형(지름 29mm, 무게 10g 내외)은 장무(章武) 연간 이전 주조품이며, 건흥(建興) 이후 점차 축소·감량되었다. 최소 규모(지름 24mm, 무게 2~3g)의 유물도 확인된다. 조회원(趙會元). 〈촉한 화폐 논의(談蜀漢錢幣)〉. 《중국전폐》. 2000-05-20, (02기): 쪽 12. 이러한 화폐는 후에 점차 무게가 줄어들었다. 촉한의 저명한 정치가 제갈량이 사망할 무렵에는 '직백오수'전 한 닢의 무게가 원래의 4분의 1로 줄었고, 후주 유선이 항복할 무렵에는 원래의 20분의 1까지 줄었으니, 이는 고액권에 무게 감소까지 더해진 이중의 평가절하였다. 모훙구이(莫洪貴), 「촉한 '직백오수'전에 대한 소고(小議蜀漢「直百五銖」錢)」, 『중국전폐(中國錢幣)』, 1986, (03호): 57-58쪽. ㅈ무위키에 정리된 거 보니까 걍 금속덩어리 크기 자체를 뒤로 갈수록 작게 만든듯 | 25.08.31 21:15 | | |
(IP보기클릭)61.82.***.***
뭐 동주병 정리해주고 밭도 나눠줬으니 철만 받아간다라고 하면 그럭저럭 납득될지도 모르지 형평성 측면에서 적절한 내용이긴 함. | 25.08.31 21:17 | | |
(IP보기클릭)119.193.***.***
그래도 아시냐하고는 다르게 금속 가치는(미량이지만) 존재하잖아? 한잔해 | 25.08.31 21:20 | | |
(IP보기클릭)119.193.***.***
사실은, 재화만 약탈하는 건 진짜, 진짜진짜진짜 온건한 방식의 행정집행이니까. 후한 말 ~ 삼국시대 ~ 위진남북조 다 합쳐도 이만큼 온건한 방식의 착취가 없었다는게 진짜 두려운 일이지 | 25.08.31 21:24 | | |
(IP보기클릭)61.82.***.***
뭐 일반 백성보단 물류를 다루는 상류층 입장에서 더 싫을만한 세출 방식이긴 한데... 하, 역시 이 부분은 기록이 너무 부족해. | 25.08.31 21:26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