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
청나라의 4대 황제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탑5를 꼽으라면 그 안에 고정픽으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은 인물임.
최근 감히 강희제에 비견할 만한 한국사의 위대한 군주로서 고려 8대 현종이 뜨겁게 조명되고 있고, 올 연말에는 역대급 스케일의 드라마도 예고돼 있는데,
이 시점에서 현종 왕순은 과연 세종에 버금가는 군주인가, 혹은 나아가 세계 최고의 성군으로 손꼽히는 강희제에 비견될 수 있는 군주인가 갑론을박이 있다.
(개인적으로 치적으로 보나 치세로 보나, 고대 광개토대왕 / 중세 현종대왕 / 근세 세종대왕이 한국사를 대표한다는 인식은 앞으로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봄)
강희제의 위대함이야 뭐 워낙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렇다면 현종이 강희제와 견줄 만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하는 플러스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살펴보겠음.
1) 이 사람은 일단 개인의 고난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진짜 말이 안 되는 사람임. 태어나면서부터 사생아로 태어나 얼마 뒤 고아가 되고 유년기에는 사찰에 숨어살면서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자신의 이모한테 살해 위협을 당하며 성장함. 청년기에는 어찌저찌 임금이 되자마자 당대 세계 최강국이던 거란이 쳐들어 오는데, 태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지 100년도 되지 않아 나라가 문을 닫을 상황에 놓이지만 여기서도 포기하지 않고 항전을 다짐.
결국 몽진길에 올라 정말 온갖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결국 전 국민들의 상하 단결을 이끌어 모든 것을 극복해 내고 결국 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룩해냄.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 중 하나의 상황만 겪더라도 정신질환 걸려서 나락행 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음. 강희제는 분명 위대한 군주이긴 하나 현종처럼 삶 전체가 생사를 넘나드는 극악의 상황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1번이 가장 큰 플러스 요소라고 생각함.
2)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의 가장 평화롭고 번영했던 시대를 열었다는 점임. 다들 "송나라에 간 고려 사신의 갑질" 같은 주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텐데 사실 그런 건 직관적으로 자부심을 느낄 만한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교과서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중세 동아시아 사회의 다원적 외교", 이때 말하는 이 다원질서라는 것이 정말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세시대만 갖는 독특한 특징임. 한족 절대주의를 벗어나 너도 나도 황제를 칭하고 심지어 황제(금나라)가 황제(송나라)를 책봉하던 시기로써 각 나라가 주체성을 가지고 경쟁하면서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인데 이것이 가능하게 했던 인물이 바로 고려 현종임.
"고려거란전쟁"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즉 이때의 균형이 유지되지 못했다면 고려가 사라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결국 송나라도 사라지고 여진의 발흥도 없었을 테니 동아시아 문명의 발전은커녕 몽골이란 괴물이 등장하기 전에 거란이 주도하는 세계가 이루어졌을 확률이 매우 높음. JTBC에서 괜히 이 전쟁을 두고 "평화전쟁"이라는 제목을 붙인 게 아니라는 거. 이 부분에서도 분명 강희제와 차별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음.
3) 앞에서 살짝 운을 뗐는데, 동아시아 세계까지 확장시키지 않고 국가 자체의 번영을 기준으로 봤을 때도 다른 점이 포착됨. 고려의 경우 현종 이후 덕-정-문-순-선-헌-숙-예종에 이르기까지 그의 치세 이래 무려 8대 동안 민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음. 그만큼 정치, 문화, 제도적으로 안정된 사회였다는 방증임.
반면 청나라의 경우 강희제 치세에 최전성기를 달리며 소위 "강건성세"라고 일컬어지지만 사실상 건륭제 말기부터 내리막을 치기 시작하는데, 이게 단순히 청나라 쇠망의 시작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것이 당시 동아시아 문명을 대표하던 청나라가 빠르게 변화하던 세계 질서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탓에 동아시아 문명 전체가 서세동점(서양 세력이 동양 세력을 점령)의 암울한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서세동점이란 화두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라 볼 수 있음. 그만큼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중국이 갖는 의미란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기에 더욱 아쉬운 대목.
4) 혹자는 고려와 후금이 팽창하는 스케일의 차이를 봤을 때 현종 따위를 강희제에 비빈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함. 하지만 잘들 몰라서 그렇지 현종 치세에 발해 영토를 무력으로 전부 수복하지는 않았지만 발해 영토에 살던 수많은 여진 부족 국가들이 줄줄이 귀부하게 되면서 그들과 불필요한 전쟁을 하는 대신 위엄을 세우고 포용하는 방법으로 상당히 광활한 간접지배 영토를 확보했음. 스케일 차이라고는 하나 사실 강희제는 자국민의 피를 댓가로 삼아 영토를 확장했고 그가 넓힌 영토 역시 준가르 지역을 포함해서 상당 부분은 간접지배 영역임. (물론 강희제의 입장에서 꼭 필요했던 확장 사업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음)
고려는 현종~문종 시기에 가장 넓은 간접 영토를 확장했는데, 같은 시기에 공존했던 거란의 요나라 또한 이 간접 영토를 모두 영토로 간주해서 매우 거대하게 표시하고 있으니 여진에 대한 고려의 지배만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고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낮추고 위대한 위인들까지 제대로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됨.
∴ 이상 고려 현종이 강희제에 비빌 수 있는 군주라는 근거를 나열해 봤음.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민족을 구원해 내고 가장 번영했던 동아시아 100년의 평화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민족을 대표하는 성군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 물론 강희제가 세계 역사에서 인정하는 성군이고 여진족의 위대한 군주인 건 맞지만 우리 민족을 반석 위에 세운 현종 역시 한민족의 위대한 성군이자 세계사적 영웅으로 평가받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함.
'현종은 사생아로 태어나 끊임없는 암살 위협 속에 왕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당대 최강대국인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100년에 걸친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를 만든 세계사적 영웅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귀주대첩과 강감찬 장군에 대한 최초의 본격 영상화 작업이 될 것'이라며 대규모 전투와 전장의 스펙터클을 생생히 구현할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조이뉴스24, https://www.joynews24.com/view/148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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