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 이 글은, 그 이전에 있던 진인환씨의 조치나 관리자03에 대한 처우가 아닌, 오로지 스마일씨의 게시판 분리 조치에 대해서만 코멘트한 것임을 밝혀 둔다)
먼저 일어난 일을 정리해보자.
어제(6월 29일) 저녁, 그 전발 저녁부터 시작된 관리03(으로 대표되는) 유게 운영진의 창작자 고로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여기에 운영진이 제대로 된 사과나 대처를 하지 못함으로써 유게에는 그야말로 대화재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정확히는, 그나마 5차 사과문까지 나오고 유저들이 겨우 누그러질락 말락할 때, 하필 바로 그 때!) 황달은,
(1) 유게의 ‘자작그림’ 탭을 분리하여 만게의 ‘일러스트 소모임’ 게시판과 통합한 후
(2) 그것을 ‘자작 그림 유게’로 명명하고
(3) 거기서의 게시물도 유머 베스트에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별다른 통보나 유저들의 의견 수렴은 없었다.
(6월 30일 자정 이후의 베스트글 목록들이다 그림유게 글이 상당수 보인다.)
그 불길이 마악 지나간 6월 30일 새벽의 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그 결과 자체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우려와는 달리 ‘자작 그림 유게’로 게시판이 분리되었지만 해당 게시판의 게시글들(즉, 주로 그림들)은 꽤 활발히 유머 베스트에 올라오고 있으며 추천도 수십 개는 받는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자작 그림 유게의 베스트 컷 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유게와는 달리 추천수나 조회수가 조금 부족해도 유게 베스트로 올라가는 요건이 충족되는 걸로 보이고, 일단 베스트에 올라가면 유게이들이 조회를 하고 추천을 주기 때문에 추천수와 조회수가 계속 오르는 것. 더구나 그림유게는 비추천도 없기 때문에 떨어질 일도 없다.
생각해 보면 이는 현명한 조치였다. 사실, 유게에 모든 유동인구가 몰리는 특수한 성격 떄문에 생기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자작그림 탭은 만게의 그림 게시판들(만지소, 일러스트 소모임 등)과 중복되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분명히 게시판 관리자 입장에서는 사이트의 중복되는 게시판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또, 그러면서도 베스트 컷을 낮추어 베스트 노출 조건을 완화하고 또 가장 유동이 많은 유머 게시판에 노출되도록 하는 조치 역시 현명했다. 그럼으로써 약소한 게시판이었던 일러스트 소모임 게시판을 확실히 활성화하고, 유게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니까.
자, 그러면 이 결과는 스마일씨가 결국 일처리를 잘했음을 의미하는 걸까? 어제 스마일의 조치를 욕하던 유저들은 틀린 걸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내 평가는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지만, 결과가 좋다고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지는 않는다.
행정학의 정책학에서는 정책 자체의 특성뿐만이 아니라, ‘그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는 과정’ 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똑같은 정책이라 해도, 그 정책이 어떻게 수립되고 집행되느냐, 곧 그 과정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
예를 들어, A지역에 관개시설을 짓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하여 보자. 정부의 연구진이 타당하게 분석해 보았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 맞으며, 그럼으로써 그 지역의 가뭄이나 홍수 피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고 하여 보자.
그런데, 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A지역 주민들에게 미리 알리지도 않고, 자세한 설명도 하지 않고,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지역민들의 의견 수렴(설혹 그것이 요식행위에 불과할지라도!)도 하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고 해 보자. 당연히 A지역 주민들은 격렬하게 반발할 것이고, (관개 공사를 하느라고) 갑자기 땅을 뺏기는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분노한 A지역 주민들은 정부의 정책 집행에 매우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이고, 사사건건 정부의 정책 집행에 발목을 잡고 방해하거나, 아예 그 지역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그 결과는, 정부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시간과 비용이 들고, 정작 관개 시설을 지었더니 거기에 살 주민이 다 떠나고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책이 실패한 것이다.
황달이 어제 한 조치가 이와 비슷하다. 황달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실제로 올바른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변화를, 최악의 타이밍(하필 어제 유게가 관리자의 작가 고로시 건으로 불탈 때!!!)에, 두 게시판 유저들의 의견도 의향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 버린 것.
더구나 이 조치는 바로 직전에 진인환씨가 유저들과 소통하겠다고 사과문에서 천명한 직후에 일어났다. 유저들 입장에서는 배신감, 혹은 운영진끼리 의사소통도 안 되는 거냐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저와 창작자들이 반발하지 않으면 그게 호구일 것이고, 설령 황달의 본뜻이 그게 아니었을지라도 그 의도를 오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인가?
1)
먼저 이 사태에 환멸한 루리웹 유저들, 특히 원래대로라면 이 조치로 가장 활발히 활동했어야 할 창작자들이 대거 루리웹을 탈퇴하고 떠나는 현상이 발생했다(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7770636). 바로 그 조치로 인해 말이다. 콘텐츠로 먹고 살아야 하고, 콘텐츠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는 커뮤니티 입장에서 이는 커다란 손실이다.
2)
또한, 서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두 게시판이 갑자기 합쳐지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졌다. 탭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관리자는 누구이며, 게시글의 수위는 어디까지 조절해야 하는지, 이 탭과 저 탭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등. 하다못해 당일날에는 거기서 반말을 써야 하는지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의 문제조차 헷갈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림유게가 원만하게 굴러간다면 그건 순전히 유저들이 서로 잘 합의하고 선을 지킨 덕이지(즉, 유저들이 잘한 덕이지), 잘못했으면 게시판이 혼파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수도 있었다. 관리자로서는, 솔직히 무책임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리 가이드라인과 공지사항을 준비하고 합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유저들이 합의할 만한 기준이라도 던져주든지.
3)
마지막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행해진 이 조치로 인해 창작자들이 대거 떠나고 이 사태가 루리웹 외부(예컨대 나무위키, 디시, 트위터 등)로까지 알려지면서, 설령 그게 진짜 운영진의 의도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루리웹은 운영진부터 나서서 창작자를 적대하는 사이트’ 라는 낙인이 생겨버렸다(혹은 강화되었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7771965).
그게 잘못된 오해고 아니고를 떠나서, 어떤 인식이 한 번 외부로 나가면 그게 계속 돌고 돌면서 재생산되기 떄문에 불식시키기가 쉽지 않다. 창작자들이 나가버린 것도 모자라 유입시키기도 쉽지 않아진 것이다.
변화의 방향 자체는 옳았다면, 그러한 변화로 인해 앞으로 루리웹은 차차 이익을 볼 것이다. 변화가 바람직한 것이면 유입유저들도 생길 거고, 떠나간 유저들 중 다시 돌아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유동인구가 어느 정도 있다면 + 루리웹의 유명세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그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새로운 창작자들도 나타날 테고 말이다(결국 "수요 있는 곳에 공급 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이러한 피해를 감수할 정도로 큰 이익을 가져오는가?” 아니 “애초에 이런 피해를 감수할 필요도 없었지 않은가?” 는 물음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잃어버린 신뢰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과정이 올바르지 못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거나, 아주 초라한 결과만을 얻게 된다. 이미 수많은 금손들이 이 조치로 인해 계정을 지우고 루리웹을 떠났다. 루리웹의 모든 것을 지우고 떠났는데, 그들이 트위터나 픽시브, 디시 같은 더 유동인구 많고 이용이 용이한 플랫폼을 두고 돌아올 이유가 딱히 없을 것이다. 물론 일부는 나름의 사정으로 인해 돌아오기야 하겠지만, 떠난 이들이 전부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며, 그들의 루리웹에 대한 인식도 그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콘텐츠와 정보로 먹고사는 커뮤니티에는 커다란 손해다.
유저들은 그저 지배받는 존재가 아니고, 관리자는 그저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다.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려면, 적어도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까 이걸 해결하려고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어떠냐?’, 고 귀를 기울이는 흉내라도 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꼭 유저들 의견에 따라가야만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최소한 듣는 흉내라도 내라는 얘기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생각해보면 어제 하루종일 벌어진 사태 자체를 관통하는 문제도 이것이다)?
루리웹 관리자들이 그간 이렇게 할 능력이 없었던 건지, 의지가 없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부디 다음 번에는 좀더 잘해줬으면 한다.
어제 하루 대학원 연구실에서 이 사태를(그렇다! 나 연구실에서 루리웹했다!)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이 글에 찬성하는 유게이도 있고 반대하는 유게이도 있을 거다. 마음에 안 든다면 정말 미안하다. 그냥 내 개인적 평가니까, 양해해 줬으면 한다. 욕먹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떤 의견도 주장도 표명하지 않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약
1. 황달의 조치 자체는 그것만 보면 나쁘지 않다.
2. 그러나 그 조치를 집행하는 과정과 타이밍이 아주 잘못되었다.
3. 그 결과로 엄청난 역효과(창작자들의 대거 이탈, 준비되지 않은 두 게시판을 합침으로써 생기는 혼선 등)을 가져왔고, 또 그 독단적인 집행 과정 자체가 유저들의 환멸을 불러 일으켰으며, 사이트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켰다.
4. 왜 하필 그 시점에 그런 식으로 그랬어야 합니까, 스마일? 더 잘할 수 있었잖아요.
(IP보기클릭)211.197.***.***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안됐음 03패악질의 위험은 여전하며, 지금이야 일시적으로 이목이 집중됐지 결국 유게 원툴화문제는 해결이 안된상태고 과거에도 안됐었고 미래에도 안될상태일텐데 시간지나서도 이 일시적 상태가 과연 잘 유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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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문제는 해결안됐음 03패악질의 위험은 여전하며, 지금이야 일시적으로 이목이 집중됐지 결국 유게 원툴화문제는 해결이 안된상태고 과거에도 안됐었고 미래에도 안될상태일텐데 시간지나서도 이 일시적 상태가 과연 잘 유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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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거 베스트에 왜 못가냐 괜찮은글인데. | 22.06.30 02: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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