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4년 초엽, 후금에서 비상이 터졌다. 후금 수도 동경성 인근의 황니와 방면으로부터 잇달은 포성이 들려온 것이다.
당시 후금은 신호용 포와 봉화등을 통한 경계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데, 포성이 잇달아 들린다는 것은 곧 적성세력의 대군이 임박했다는 의미였다.
서쪽에 대한 경계가 완벽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요양 인근에서 "최고 경계"에 준하는 수준의 포성이 잇달아 들린 것에,
동경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후금군 전군이 급히 소집되었다.
혹여라도 코르친이나 차하르등의 몽골 세력이 '수도 직공'을 노리고 기습을 했을 수 있었기에, 후금군의 소집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후금 최고위 전쟁군주 집단인 '사대 버일러'를 비롯한 버일러들이 전위부대를 이끌고 급히 먼저 출병하고 뒤이어서 후금의 한, 누르하치까지 본군을 데리고 출병했다.
그렇게 급하게 진군하던 차에, 누르하치는 전두 정찰 부대를 보내어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여간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두 정찰 부대가 돌아와 소식을 전달했다.
경계 파수대에서 화약 문제로 인해 포가 연달아 발사되는 바람에 최고 경계 태세에 준하는 포성들이 연이어 발생한 것이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명나라 군대도, 차하르의 군대도 요양 인근에 전혀 존재치 않았다.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졌고, 누르하치는 군대를 이끌고 다시 동경성으로 회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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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전군까지는 아님. 동경에 후금의 대군이 항시집결상태로 있던건 아니니까. 다만 최소 1만은 동원되었을듯. | 20.05.31 14:4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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