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애니메이션 "나의 붉은고래" 를 보고 왔습니다.
제 감상평은 "너의 이름은"보다, "목소리의 형태"보다 더 추천드리고 싶은 애니메이션입니다.
메인 포스터가 아닌 이 포스터를 가장 위에 올린 이유... 여기엔 많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제가 많은 이야기들을 쓰고 싶지만
아직 애니메이션 퀄리티가 검증되지 않은 "중국 애니"라는 것과
"지브리와 그림이 닮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된 평점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보신 것 같으므로
최대한 본 내용이 드러나지 않게끔 조심하며 작성하겠습니다.
설정의 측면에서
동양철학과 중국신화에 관계된 이야기라서 배경 설정이 조금 어려운 측면도 있고
아무래도 동양신화이다보니 요괴들의 형태나 성격 등이
먼저 나왔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겹쳐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안그래도 인물이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과 닮았으니 오해를 살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중국도 일본식 미소녀부터 완전힌 서양식 극화체와 카툰체까지 모두 소화 가능한 인재 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오해를 살 그림체로 진행한 것은, 일부러 그 그림체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스틴 비버와 레이디 가가가 007의 주연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그림체가 세계관과 내용전개를 따져봤을 때 가장 빠져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내용의 측면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래도 살아라", "살아서 다행이야"라는 해피엔딩이 주입니다.
주인공들에게 고난들이 닥쳐와 그 고난을 딛고 성장하는 이야기죠.
그러나 이 애니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미 공개되어 있는 시놉시스처럼,
주인공인 여자아이 춘은 인간과 신의 사이 쯤 되는 요괴와 비슷한 존재로
다른 요괴들과 같이 중간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16세가 되면 1주일간 인간계에 나가 자연의 섭리를 몸소 깨닫고 돌아와야 하는 의식(성인식)이 있어
춘은 붉은고래로 변해 인간계에 나갑니다.
인간계에서 많은 것을 보고 돌아오던 춘은 인간이 깔아놓은 그물덫에 걸려 죽을 뻔 했지만,
그때 바닷가에 있던 한 청년이 구해줍니다.
그러나 청년은 그물에서 발버둥치던 춘에 의해 해류에 떠밀려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생명의 은인을 자신에 의해 죽게 만든 춘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삼도천을 건너게 됩니다.
삼도천 너머에는 영매요괴가 있었는데,
요괴와의 거래를 통해 자신의 목숨 절반을 댓가로 고래로 변한 남자아이를 구해오게 됩니다.
(죽은 자는 삼도천에 도달하여 쥐 또는 고래로 변해 보관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금기의 거래를 한 댓가는
사실 춘의 목숨 절반 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원인이 아닌 고난에 비운하게 떨어졌거나,
자기 자신만 책임지면 되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과 달리
"춘"이라는, 비록 인간은 아닐지라도 마음과 정신은 영락없는 작은 여자아이가 저지른 잘못된 선택 하나가
주위 사람들이 다치는 데 끝나지 않고 점점 커져 세계를 뒤흔들 커다란 재앙까지 불러왔다는 점은
마치 영화 "나비효과"를 연상시킬 만큼 암울한 인과응보의 세계이며 철저하게 거래로 움직이는 세계였습니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춘의 곁에서 그녀를 보살폈던 인물 "추"(위 포스터의 남자아이)는....
추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모든 것이 스포가 되서 얘기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쉽네요.
사실 춘보다 추에 대해서 쓰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아무래도 많은 리뷰들이나 한줄평에서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를 이 작품과 떼지 못하다보니
저의 글도 지브리를 자주 언급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점점 극악으로 치닫던 영화는 그나마 해피엔딩이 되어
할머니가 된 춘의 나레이션과 함께 끝납니다.
여기까지였다면, "뭐 괜찮은 애니" 수준에서 그냥 끝났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끝나고, 주요 스탭들의 스탭롤이 올라갈 때 많은 관객들은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나 붓글씨로 나타났던 주요 스탭들의 스탭롤이 끝나자 진짜 엔딩이 나타났습니다.
이 진짜 엔딩이 바로 제가 이 글을 쓰게 만든 이유이며,
영화 리뷰 및 소개글인 이 글에 홍보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던 메인포스터가 아닌 위 포스터를 올린 이유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울다 말았던 제가, 눈물샘이 완전히 터져버린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진짜 엔딩이라 부르는 이 부분은
춘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 "八百万"이라 쓰는 단어 "야오요로즈"는 8백만이라는 뜻이 아닌 "무한히 많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단어는 "八百(야오)"와 "万(요로즈)"로 나뉘며, 둘 다 모두 매우 많다는 뜻을 지닙니다.
이 이야기가 갑자기 이 타이밍에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서
춘이 자신을 위해 희생된 인간 청년을 살리기 위해 삼도천을 건너자
그 곳에는 죽은 자들 중 고래가 된 자들을 관리하는 요괴가 있었습니다.
그 요괴는 자기 자신이 이 곳에 800년 동안이나 갇혀 살았는데도 아직 자기 죄를 다 씻지 못했다며 분해합니다.
일본은 예로부터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요괴가 말한 "800년"이 단순히 봄과 가을이 800번 오고 가는 동안을 이야기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그리고 "진짜 엔딩"이라고 말씀드린 장면에 바로 이 요괴가 다시 나타납니다.
추가 했던 마지막 대사, 할머니가 된 춘의 나레이션, 그리고 춘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는 줄 알았던 영화는 스탭롤이 넘어가고 나서야 진짜 엔딩을 보여주며
관객, 적어도 저의 모든 감정을 180도 뒤집어버렸습니다.
메인 홍보 포스터.
아마 많은 분들은 이 포스터가 더 익숙하실 겁니다.
포스터를 보면 지브리의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달밤을 배경으로 했지만,
"반드시 인간 세계로 돌려보내줄게!" 라는 말을 하며 주인공은 약간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그래도 희망이 느껴지는, 왠지 모를 밝은 분위기가 어슴푸레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주인공이 고생은 하겠지만 그래도 소원 이루고 끝나겠거니 싶은,
흔한 엔딩이 연상되는 그림입니다.
드센 줄만 알았던 중국어 발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감명깊게 다가온 것도 처음입니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반드시 인간 세계로 돌려보내줄게!"
라는 말의 그 댓가는 너무나 참혹스러웠습니다.
마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 자의 말로를 보는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소원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댓가는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 간절하고 조그마한 소망마저 잔인하게 빼앗아버립니다.
이 글을 보시고 만약 시간과 기회가 된다면, 볼까말까 망설이고 계셨다면
정말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