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입소문이 자자하던 인디게임 <스타듀 밸리>. 닌텐도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목장 이야기(하베스트 문)>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 청년이 혼자 4년 동안 개발한 게임으로 유명하다. 스타듀 밸리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하베스트 문 같아요!"라고 말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다. 별 볼 일 없는 레트로 디자인의 농장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했더라도, 혼자 음악을 포함한 모든 제작을 해냈다는 걸 알면 놀랄 수밖에 없는 게임. 플레이 해 보면 왜 이 게임이 칭찬 일색인지 이해할 수밖에 없다.
출시 직후부터 성공적인 판매 기록을 이어나간 덕에,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리고 콘솔 출시가 계속됐다, 며칠 전에는 닌텐도 스위치로도 정시 출시! 닌텐도 버전을 고민하다가 도전과제 누적의 기쁨을 위해 PC 버전을 구입했다. 휴대용 게임기로 하기에 몹시 적절한 게임이지만 PC로 구매하길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천사같은 유저들의 도움으로 한글화 패치가 가능하니까.
유저 캐릭터를 선택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시작부터 할아버지가 죽는다. 할아버지는 편지 하나를 건네주면서 삶이 고단해지면 열어보라는 유언을 남긴다. 사무실에서 지친 얼굴로 타이핑을 하던 나의 캐릭터는 편지를 꺼내 읽은 후, 할아버지가 알려준 인생 2막의 좌표로 향한다. 그곳은 바로 스타듀 밸리의 펠리칸 마을. 그러니까 이 게임의 기본적인 틀은 사무직에서 귀농 라이프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농장 시뮬레이션인 셈.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목수 로빈이 할아버지가 일구던 농장을 안내해 준다. 낯선 젊은이를 경계하는 마을사람들의 태도가 마음 아픈 본격 왕따 게임. 루이스 촌장님을 따라가 보면 허름한 마을회관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일하던 조자주식회사가 마을에 커다란 슈퍼마켓을 냈는데, 마을회관 건물을 창고로 매입하고 싶어하는 상황이다. 좋을 줄 알고 왔는데 사람들은 퉁명스럽고 마을은 망해가는 슬픈 현실.
마을회관의 번들을 채워 마을을 다시 부흥시키거나 조자마트의 멤버십에 가입해 마을을 개발시킬 수 있다. 나는 전자를 택했지만 멤버십에 가입하면 마을회관은 들어올 수 없고, 번들로 받는 보상은 돈으로 구매해야 한다. 어떤 결과를 맞든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엔딩은 크게 보면 이 두 가지 중 하나. 후자를 택해야 달성할 수 있는 도전과제도 있어서, 도전과제를 목표로 한다면 2회차는 필수다.
농사 일을 하다보면 우체통에 편지가 종종 도착한다. 아버지의 따뜻한 응원은 너무 사랑스러운 포인트. 마을사람들과 친해지면 선물과 함께 편지가 도착하기도 한다. 퀘스트도 우체통으로 받을 수 있는데, 마을의 피에르 잡화점 앞 게시판에서 광고를 통해 받을 수도 있다. 우체통과 광고는 다른 퀘스트들이기 때문에 잡화점을 종종 들르는 게 좋다. 잡화점 게시판에는 마을 사람들의 생일 알림도 있다. 달력을 집에 하나 걸어두면 집에서도 달력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타듀 밸리의 계절은 약 30일이 한 계절.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분명하게 다르다. 새 계절이 올 때마다 마음도 달라진다. 옷은 달라지지 않지만.
스타듀 밸리는 농장 시뮬레이션답게 계절과 시간에 공들인 게임이다. 특정 계절에만 구할 수 있는 작물과 채집 및 수렵 가능 아이템들이 별도로 있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서도 획득 가능한 아이템이 한정적이다. 낚시의 경우 계절은 물론이고 강, 호수, 바다에서 구할 수 있는 물고기가 다르다. 광산이나 사막, 비밀의 숲 등 특별한 장소에서만 낚이는 물고기도 있다. 수렵과 채광도 마찬가지. 지렁이가 있는 곳에 땅을 파면 아이템이 나오기도 하고, 특수한 아이템은 마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시스템도 있다. 계절마다 이벤트도 두 번씩 마련되어 있다. 계절감을 살려 구현한 시골 축제들은 매년, 모든 계절을 기다리게 한다.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들도 있다. 스크린샷의 장면은 제일 즐겁던 겨울낚시대회. 낚시는 늘 1등이었지만 봄에 열리는 달걀 찾기는 아비게일을 이길 수가 없었다.
대부분은 농장과 호수, 광산, 해변을 돌아다니기에 바쁘지만 나중에는 오아시스라든지 심지어 카지노에도 갈 수 있다. 마법사가 사는 마을이므로 신비로운 일도 많이 일어난다. 마법사 집 근처의 비밀의 숲부터 하수구 밑에 사는 괴생명체라거나 마녀의 집도 있다. 이벤트가 발생하는 조건은 특정인과 친해지고 아이템이든 돈이든 부자여야 하기 때문에 초반엔 쉽지 않다. 열심히 하다보면 발생하는 이벤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몰입도 높은 게임이다보니 정신차려보면 이미 일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두 해 지나며 모든 계절에 밤낮 없이 일하다 보면 마을회관을 복구하는 그 날이 온다. 마법사의 도움으로 번들 모으기를 시작할 때와는 달리, 마을사람들과도 친밀도가 높아져있고 마을에도 익숙해져있는 나. 펠리칸 마을에 정말 정착한 느낌이 든다. 촌장님의 감사인사와 상을 받고 훈훈하게 마무리.... 가 되나 싶을 때 조자마트의 모리스가 등장. 마을 복구 이벤트는 마을의 부흥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플레이 할수록 성취감이 클 것 같다. 번들을 힘들게 모을 수록 눈물겨운 결실. 1년은 계절과 장소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삽질로 보낸 내 경우가 그랬다. 귀농 초보가 그렇지 뭐.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연애 시뮬레이션이다. 생각해보면 귀농한다는 것 자체가 소규모의 사람들과 유대감을 높이는 체제에 들어가는 일이니, 굉장히 현실적인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인가 싶기도. 마을의 공략가능한 미혼자들이 몇 명 있는데, 이들과 결혼할 수 있다. 심지어 애도 낳을 수 있다. 도전과제에 애 둘까지 낳는 게 있으니 적극 장려되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을사람들과의 친밀도는 호감도 지수로 파악할 수 있는데, 하트가 2개 생길 때마다 이벤트가 발생한다. 호감도를 높이는 방법은 좋아하는 선물을 제공하는 것. 선물을 1주일에 두 번까지 하루에 한 번 줄 수 있다. 화요일마다 아줌마들은 잡화점집 거실에서 운동을 한다든가, 저녁에 술 마시러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든가, 점심 시간에는 밥 먹으러 집에 간다든가 하는 식의 스케줄이 있다. 찾아서 선물 주려면 공략 대상의 스케줄을 외우는 게 좋은데, 친해지면 누군가의 생활 패턴을 알아가는 것처럼 여기서도 아 이쯤이면 걔는 거깄을 거야 하는 파악이 가능하다. 이 얼마나 그럴싸한 게임인가.
사람들의 다양성과 각자의 개성이 잘 살려져 있는 것도 이 게임의 매력 포인트. 내가 여름밤 해파리 축제에서 멋드러지는 말을 하는 걸 보고 반한 엘리엇은 바닷가와 도서관에 출몰한다. 어떤 날 오후에는 다리에서 강을 보고 있고, 대부분의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해변에서 오두막을 짓고 사는 소설 쓰는 청년인데 얼굴은 중년. 신성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남자들은 어느 정도 친해진다고 해도 꺼지라는 식의 말투라 아주 불쾌한데, 나의 엘리엇은 처음부터 상냥하다. 술도 잘 못 마시고 좋아하는 것들도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
각자의 개성들이 있어서, 하트 2개 증가할 때마다 발생하는 이벤트들도 모두 다르다. 제일 열심히 만든 건 이 이벤트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다. 선택지를 고를 때에도 진심으로 고민고민. 이벤트 한 번 볼 때마다 실제로 그 사람과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엘리엇과 친구가 될 때엔 술도 못 마시는 녀석이 독한 술을 주문했다. 한 잔 마시고 비틀거리는 걸 보며 내가 와하하하(꺄르르르 절대 아님) 웃는데,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내 얼굴도 정말로 웃음이 나는 멋진 게임.
엘리엇은 드디어 소설을 완성했고, 좋은 사이를 이어가던 중 어느덧 엘리엇과의 호감도가 꽉 찼다. 스타듀 밸리에서의 "우리 오늘부터 1일"은 때가 되면 피에르 잡화점에 입고되는 꽃다발로 상징된다. 비오는 날에만 해변에 나타나는 덥수룩한 아저씨에게서 인어의 펜던트라는 특수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데, 이 선물이 청혼을 의미한다. 하트가 10개가 되면 청혼할 수 있다.
오두막에 가서 청혼했더니 식은 3일만에 자기가 다 준비한다며 갑자기 적극적이시다. 마을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했지만 너무 조촐해서 나는 옷도 농사일하던 그대로. 알아서 준비한다더니 지 옷만 준비한 엘리엇. 그래도 행복해보인다.
설마설마 했더니 결혼하자마자 농장 뒷켠에서 책이나 읽고 있는 남편. 부인은 뼈빠지게 농사일에 낚시질에 광산 가서 슬라임 잡고 광물 캐오는데, 고작 하는 일이라곤 아침에 커피 탔어 나 잘했지, 내가 울타리 고쳤어 나 잘했지, 고양이 물도 줬다? 진짜 잘했지 이게 다다. 울타리는 심지어 안 고쳐져 있는데 어떡하지. 이혼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감성적이고 자상한 나의 작가 남편을 사랑하니까 참아주기로 한다.
결혼하면 침실 옆에 남편의 방이 하나 더 붙는데, 엘리엇과 결혼하니 서재가 붙었다. 동성 결혼도 가능하다. 그럼 도전과제는 어쩌지 싶었는데, 애는 입양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또 멋짐 하나 더 추가. 연애와 결혼 이벤트가 붙으면서 2회차 뿐만 아니라 다회차를 부르는 설정들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결혼하니 안 그래도 다정한 엘리엇은 정말 스윗하다. 가끔 손발 없어질 것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하지만 그게 너무 순수하고 진정성 있어 보이는 캐릭터. 그래서 또 참고 농장으로...
결혼한 후에는 호감도가 12개로 늘어난다. 이 타이밍에 애도 둘 낳았다. 임신한 줄도 모르게 똑같은 모습으로 2주 정도 일하니 간밤에 애를 낳았다고 이름을 지으란다. 소가 새끼 낳았을 때랑 똑같은 프로세스라 잠깐 당황했다. 산후조리고 뭐고 임신 중일 때도 그랬듯 열심히 또 일을 하는 스파르타 농장 라이프 시뮬레이션.
농사일만 할 땐 일만 하다가 하루가 모자라서 쓰러져 자기 바쁘고, 사람들이랑은 또 언제 친해지나 고민이 많던 현실감 넘치는 게임이었는데, 결혼 이후로는 약간 현실과 다른 부분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결혼 이후에도 현실적인 디테일이 하나 있는데, 배우자에게만 선물을 주간 제한 없이 매일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마음의 표현은 결혼 후에 더 많이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지.
살아 있는 한 인생에는 엔딩이 없듯, 밥을 아무리 굶어도 죽지 않는 스타듀 밸리의 동물들처럼 내 캐릭터도 죽어버리진 않기 때문에 농장에서 계속 플레이를 하면 게임이 끝나버리는 엔딩은 없다. 마을 복구 혹은 조자의 정착이 이 게임의 가장 큰 목표였다면, 그나마 엔딩이라고 부를 만한 건 할아버지 유령과의 만남이다. 할아버지의 유언을 따르며 시작한 게임이기 때문.
농장 귀퉁이에 있는 할아버지 묘지에 적혀 있던 약속대로, 내가 마을에 온지 3년이 되는 날 할아버지 유령이 찾아온다. 내가 마을에 잘 정착하는 것을 보고 안도한 할아버지는 아련하게 멀어진다. 울컥. 할아버지, 열심히 살게요. 할아버지가 떠난 후 묘비에는 4개의 촛불이 켜진다. 귀농생활 성과에 따라 촛불이 다 켜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묘지에 다이아몬드를 바치면 다음 밤에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축제만 보내고, 선물 한 번만 더 주고,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 보니 지나간 좋은 66시간이었다.
유저 모드와 리텍스쳐가 굉장히 활성화 된 게임이라, 엔딩을 보고도 여러 가지를 수정해서 다회차 플레이 하는 사람이 많다. 리텍스쳐는 게임 느낌이 달라져서 선호하지 않지만, 불편한 UI/UX가 꽤 있어서 모드의 도움을 받으면 좀 낫다. 그나마도 2년차에 알게 되어서 1년차는 삽질을 정말 많이 했는데, UI/UX를 고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적인 모드는 게임을 시작할 때 알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이템 스포너나 수치 치트는 다회차 유저가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적극 추천. 엔딩 후에 조자마트 부흥 도전과제와 카지노 자금을 위해 돈 치트를 썼는데 너무 허무해져버리더라. 치트가 아닌 이상 도움을 받으면 좋은 정보들이 많으니, 이를 참고로 모두 함께 스타듀 밸리로 갑시다.
http://cafe.naver.com/starvall
https://www.nexusmods.com/stardewvalley/mods/searchresults/?src_cat=1
https://realkkan.blog.me/221117436428 (2017.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