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오만 카파 항을 떠난 지 열흘 만에 몰디브 최북단 섬 울리가무를 바라보니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태풍의 언저리에서 비바람과 싸우느라 매우 지친 상태에서 어렴풋이 나타난 울리가무는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단 우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비바람을 피해 섬의 동쪽 뒤로 돌았다. 해변에서 반마일 정도 떨어져 남진하다가 적당한 해변을 발견하고 접근해 해안에서 100여m 떨어진 지점까지 다가갔는데 세상에! 불과 10분 전만 해도 파도에 흔들리고 우비를 입지 않고는 추위를 견디지 못했던 기후가 습기를 머금은 따뜻함으로 변하고 해안가 파도는 방바닥 장판처럼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태풍이 와도 바람 반대방향의 섬 뒤쪽으로 돌아 묘박을 하면서 배에서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한 장소를 찾은 것이다.
“어이구 이제 살았네. 하하하.” 간단한 한마디와 함께 싱거운 악수 한 번씩으로 자축을 하고 이내 항해 후반기 안 좋은 날씨 탓에 흩어진 짐 정리와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휴식에 들어갔다. “일단 울리가무 출장소를 호출해 입국신고하고 섬에 들어가죠?” 하지만 선주인 김 선배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말레까지 가서 입국신고를 하자고 했다. 어차피 섬에 들어가서 식량도 보충하고 과일도 사먹고 땅도 좀 밟아보자는 의도였는데 아마도 재정적인 부담 때문인 것 같았다. 어차피 에이전트를 써서 도움을 받는 것은 울리가무나 말레나 같은 값인데 말이다. 울리가무에 도착했으니 하루 정도 쉬면서 정비하고 다시 몰디브의 수도인 말레까지 항해를 하기로 했다. 한밤중에 두 시간씩 근무를 서는 항해 견시 당번 없이 오랜만에 푹 자는 맛이란….
안녕, 인도양 훌루 말레의 이스트비치 카페에서 동료 최재훈과 드디어 맛본 몰디브의 모히토. 아쉽게도 무알코올이다(위). 리조트에서 42일의 원정 기간을 돌아보며 다음을 기약한 요트 삼총사.
6월12일 아침 이제는 몰디브 내에서 하는 항해라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두런두런 얘기도 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섬을 구경했다. 우편엽서나 꿈같은 신혼여행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방갈로와 리조트들이 짙푸른 코발트색 바다 위에 뿌려져 있었다. ‘저기 방갈로에 누워 모히토 한잔 하고 있어야 하는데…’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우리는 배에서 마시는 물 한잔이 더 좋았다. 이제 항해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돌풍의 ‘끝판왕’을 만나게 됐다.
■몰디브에서 만난 한류
울리가무를 떠난 지 몇 시간도 안돼 긴장을 풀고 있던 우리에게 순식간에 돌풍이 몰아쳤다. 비바람이 몰아치자 잽싸게 집세일(앞돛)을 축범했으나 윈치(로프를 감아 돌리는 장비)가 풀렸다. 그 바람에 집세일이 바람에 펄럭이다가 ‘퍼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집세일은 순식간에 세 조각이 나서 나부꼈고 배는 미친 듯이 돌았다. 불과 200m 옆에 섬이 있어 그쪽으로 배가 쏠려 가면 큰일이 날 상황이었다. 최재훈이 안간힘을 쓰며 키를 잡은 덕분에 배는 가까스로 원위치로 돌아와 안정을 찾았다.
대양을 건너면서도 끄떡없던 집세일이 항해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파괴돼 버리니 허탈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항해 시 방향을 잡아주고 배의 운항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메인세일은 이미 출발 전부터 고장이 나 있었는데 고치려고 애를 쓰다가 포기하고 그냥 출발했던 터였다. 어쨌든 이제는 돛 바람 항해를 못하고 엔진의 힘만으로 항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요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선주는 비로소 상황 인지를 했는지 급한 대로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아무 섬이나 들어가서 정비를 하자고 했다.
쿠리비섬에서 만난 ‘보고 싶다’ 문구, 현지인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따라 썼다고 한다.
포구가 있는 인근 섬을 해도에서 찾아보았더니 ‘쿠리비’라는 섬이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수심이 낮지만 그래도 정박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우리 배가 섬에 들어가자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인 듯 순식간에 주민 수십명이 모여들었다. 섬을 둘러보는데 익숙한 문자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 방갈로 울타리에 한글로 “보고 싶다”라고 써놓은 것이다. 분명 한국인 그 누구도 찾아올 만한 섬이 아니고 휴양 시설이 있는 곳도 아니어서 불가사의했다. 알고 보니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본 주민이 한글을 그대로 흉내 내 써놓은 것이라고 한다. 한류는 세계 어딜 가나 현재진행형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식당을 찾아 간단한 요기를 하고 배 쪽으로 왔는데 이번엔 벤치에 앉은 어떤 할아버지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노래는 신기하게도 ‘아리랑’이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그 노래를 아느냐 물었더니 과거 무역선을 타고 선원생활을 했는데 함께 생활하던 한국인한테 배웠다고 했다. 나는 그를 ‘시맨(Sea Man)’이라 불렀다. 그와 함께 아리랑을 끝까지 부르는데 콧등이 시큰해졌다. 나보다 그 할아버지가 더 울먹이는 듯했다. 뱃사람 시절이 생각나서였는지 아니면 한국인과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할아버지에게 아리랑이 각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육지를 밟고 호사를 누린 시간은 잠시였다. 불과 두어 시간이 흘렀을 무렵 몰디브 해경과 이민국, 검역관리가 찾아왔다. “어떻게 이 섬에 들어왔느냐”는 것이다. 원래는 울리가무에서 입국신고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쿠리비섬에 내렸으니 밀입국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응급상황 시에는 다르다. 풍랑을 만나 좌초 직전이거나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는 무조건 입항을 돕고 구조를 해주는 것이 국제 해양법상 일반적인 상식이다. 한참 설왕설래 끝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쿨헛휴퍼시’라는 몰디브 북부 지역의 섬으로 가서 입국신고도 하고 배도 수리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그쪽 항구가 요트가 들어갈 수 있는 수심이 되는지 물었더니 “걱정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 한마디는 또 다른 사고를 불러왔다.
쿨헛휴퍼시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문 지 한참 지난 밤이었다. 항구에 정박하려던 우리 배는 갑자기 돌풍과 맞닥뜨렸고 배는 순식간에 해안가 쪽으로 끌려갔다. 해안을 불과 몇m 남겨둔 지점에서 결국 배가 기울어지면서 좌초됐다. 자칫하면 인명사고가 날 뻔했다. 몰디브 해군이 급히 출동해 풍랑이 몰아치는 가운데 물속으로 뛰어들어 굵은 로프를 감아 배를 끌어내려 시도하고, 항구 쪽에서 승용차에 줄을 묶어 배를 끌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포기. 우리는 기울어진 배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덤프트럭이 출동해 배를 예인한 뒤에야 정상적인 정박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배가 좌초된 지형이 모래밭이라 배 밑 부분에 큰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전날 밤 배를 끄느라 배의 클리트(정박을 위해 줄을 묶는 장치)가 터져나갔고, 닻을 감아 올리고 내리는 윈치에 금이 가 손해가 막심한 상황이었다. 분명 몰디브 해경의 안내에 따라 정박하다가 벌어진 사태였다. 수심을 물어봤을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을 들은 터라 더욱 화가 났다. 외교적으로 공식 항의를 하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사고였다. 그걸 인지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몰디브 해경이 갑자기 매우 친절해지며 배 파손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준다고 해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날씨 문제로 하루 더 항구에서 시간을 보낸 후 13일 말레를 향해 출항했다. 물론 입국신고를 한 후!
■날이 좋아서 한잔, 힘들어도 한잔
온갖 사고를 겪어서인지 이제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겪어낼 자신은 있었지만 14일 오후 말레에 도착할 때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술이 다 떨어졌다는 점 외에는 별일 없이 안전하게 말레에 도착해 인도양 항해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술 이야기는 좀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일행 넷이 모두 술을 좋아하는 터라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조그만 페트병 소주 80병을 사갔는데 60병은 지부티에서 출항하기도 전에 다 마셔버렸다. 20병은 항해 중 아껴 마시겠다고 감춰뒀으나 매일 저녁 견시 당번을 제외한 멤버들끼리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잔씩 하는 바람에 아덴만 항해 중에 동이 나버렸다. 오만에서는 에이전트에게 부탁해 싸구려 인도산 위스키를 비싸게 주고 사 아껴 마셨지만 이미 인도양에 들어서서는 알코올의 ‘알’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항해 도중 날씨가 좋을 때는 술 생각이 간절해진다. 급기야 배에 있는 나침반 컴퍼스가 알코올로 채워져 있으니 그걸 깨서 물을 타 조금씩 나눠 마실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업용 알코올이라 실명 위험도 있고, 꽤 비싼 장비라 선주의 눈치가 보여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파인애플 통조림 국물에 설탕을 부어 발효되길 기다리는 것으로 자체 양조를 해보자는 잔머리를 굴리기도 했던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하필이면 우리가 지나온 지부티, 오만, 몰디브가 전부 이슬람 국가여서 술을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말레에 도착해 에이전트에게 술을 사 달라고 주문하니 몹시 눈치를 보는 듯했다. “(불법이긴) 하지만 꼭 원한다면 구해줄 터이니 외국 영토인 당신네 배에서 당신들만 마시면 된다.” 그런 조건하에 싸구려 위스키 한 병에 265달러를 불렀다. 우리는 꾹 참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 신혼부부들의 로망인 몰디브 휴양 리조트에 가서 술을 마음껏 마시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리조트에서 스노클링을 비롯한 해양레포츠를 즐기면서 음식과 술을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다.
스리랑카 대사관 영사협력원 최수지씨가 가르쳐준 대로 모 리조트에 아침에 들어가 저녁에 나오는 딱 하루 코스를 예약했다. 1인당 거금(?) 130달러씩 내고 하루 종일 술을 원 없이 마셨더니 그동안의 갈증이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말레 옆 신도시 훌루 말레 이스트 비치에 가니 1박 60~70달러 정도에 한국의 모텔급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림 같은 해변도 끼고 있는 곳이라 그간의 고생을 어느 정도 보상받을 수 있었다. 친구 최재훈과 나눈 대화 한마디. “우리 정도 나이면 몰디브까지 와서 하루에 몇 천달러짜리 최고급 호텔에 묵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요트 타고 인도양 건너서 거지꼴로 숙소를 찾았지만, 난 이게 더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아니겠나. 우리 팔자는 이렇게 요트 타고 돌아다니며 지지고 볶고 하는 겨.” 철딱서니 없는 어정쩡 실버인 우리는 정말 그게 더 좋았다.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잔?
이제 우리 마지막 미션은 ‘모히토에서의 몰디브’ 한잔. 그림 같은 해변 카페에 앉아 모히토를 주문했다. 최수지씨 말에 의하면 모히토를 찾는 동양인은 100% 한국인이란다. 영화 <내부자들>을 본 한국 사람이 많이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스트비치에서 파는 모히토는 알코올 성분이 전혀 없다는 것.
6월17일 드디어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살아(?) 돌아오게 됐다. 총 42일의 원정기간. 지부티 내에서의 항해를 포함해 20일 동안 사실 제일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태풍도, 장비 고장도, 식량부족도 아닌 인간관계였다. 요트를 시작할 때 지인한테 들은 얘기가 있었다. 1970년대인가, 한국인 두 명이 미국에서 출발해 요트로 태평양을 건너 한국까지 왔는데 환영회 참석을 끝으로 그들은 평생 보지 않는 사이가 됐다는 것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겪다보면 개인의 인성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 둘도 없는 멋진 여행이 될 터였다. 우리 일행은 식량 준비 부족과 메인세일의 고장, 기상메일 사용불가에 배터리 부족으로 레이더를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 등 모든 영역에서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선주인 김 선배에게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대화를 통해 오픈 마인드로 서로 양해를 바라고 배려했다면 좀 더 즐거운 항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남는다. 서운하고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그 시간도 지나고 나니, 그 좋아하는 술을 빌미로 또 풀고 좋게 지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가능할까 싶었던, ‘어정쩡 실버’의 로망 대양항해를 끝냈으니 이젠 그만 됐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한테 전화 왔는데, 우리 항해 얘기 들었다며 세계일주 해볼 생각 없느냐고 하던데?” “아이고 이 나이에 무슨 체력이 된다고? 돈은 있어? 그리고 인도양 했으면 됐지 뭐…. 그런데 말야, 그냥 무슨 얘기 하는지 들어보기나 해봐.”
기자, 방송작가, 라디오 DJ, 음악평론가, 성우, PD에 이어 현재는 TV프로그램 외주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다.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암벽등반, 스킨스쿠버, 패러글라이딩까지 익스트림 레저를 섭렵했다. 설악산 토왕빙폭, 몽블랑, 킬리만자로를 거쳐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120도 오버행 대암벽 리닝타워(420m)를 등정하고 필리핀에 가서 수심 100m 딥다이빙에 성공했다. <철없는 아빠는 자존심도 없다>의 저자이자, 손주 둘을 둔 도전 정신 ‘만렙’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