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치즈를 넉넉하게 만들어 놓으니(https://blog.naver.com/40075km/221234680558) 그냥 빵에 발라먹기보다는 이걸 활용해서 뭔가 다른 음식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역시 치즈 케이크입니다.
치즈 케이크에도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고대 그리스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초창기 올림픽 선수들에게 부드럽게 만든 치즈와 꿀, 밀가루를 섞어서 구워낸 치즈 케이크를 제공한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독특한 버전의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드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뉴욕 치즈 케이크.
통밀로 만든 과자, 버터, 바닐라를 묻어서 만드는 바닐라 설탕, 달걀, 크림치즈, 크림과 밀가루, 그리고 기호에 따라 레몬이나 레몬즙을 약간 준비합니다.
사실 뉴욕 치즈 케이크 쯤 되는 유명한 요리는 정통 레시피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초창기에 이 케이크를 만들어 낸 레시피냐, 뉴욕 치즈 케이크가 유명해지면서 명성을 얻은 레시피냐, 아니면 요즘 트렌드 기준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레시피냐에 따라 소소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생크림과 사우어크림, 스펀지 케이크와 쿠키 가루, 밀가루와 옥수수 전분 등 작은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초의 제작자가 누구인지부터가 논쟁의 대상이니 레시피가 다양한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루벤 샌드위치의 창시자인 아놀드 루벤(Arnold Ruben)과 유명 레스토랑인 Lindy's가 서로 자신이 치즈 케이크의 원조라면서 다투는 바람에 서로 다른 레시피들 중에서 어떤 쪽이 정통인지를 판가름하기 어려워 졌으니까요.
그 와중에 레시피를 변형시키고 전달하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레시피가 섞이고 섞여 이제는 구분하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일단은 통밀 쿠키를 가루로 만든 다음 버터를 섞어서 케이크 틀에 꾹꾹 눌러 크러스트를 만듭니다.
뉴욕 치즈 케이크를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사실은, 크림 치즈를 먼저 휘젓다가 설탕을 넣고, 달걀을 하나씩 천천히 까서 넣고, 크림과 밀가루를 넣고, 마지막으로 레몬즙을 넣는 순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급하게 굴지 말고 천천히 재료가 다 섞이고 나서야 다음 재료를 넣어주는 게 중요하지요. 급한 마음에 대충 다 때려넣고 휘저었다가는 실패로 가는 지름길을 밟게 됩니다.
참고로, 달걀 흰자를 머랭으로 만들어서 넣으면 일본에서 개발한 수플레 치즈케이크가 됩니다.
직접 만든 크림치즈만으로는 케이크 한 개 만들 분량이 안 나오기에 마트에서 파는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도 절반 정도 섞어주었습니다. 이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도 재미있는 것이, 필라델피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뉴욕 토박이라는 거지요.
1880년대에 뉴욕 낙농업자였던 윌리엄 로렌스(William Lawrence)라는 사람이 프랑스의 뇌샤텔(Neuchâtel) 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분 함량이 더 높고 부드러운 치즈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엔 필라델피아가 탑클래스 유제품을 생산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새로운 치즈에 필라델피아 크림 치즈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지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개발한 치즈인데 "대관령 치즈"라고 이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케이크 틀 옆으로 유산지를 한 번 둘러서 케이크가 들러붙지 않도록 해 줍니다.
내용물을 쿠키 가루로 만든 바닥 위에 고르게 붓고 좀 더 큰 팬에 케이크 틀을 넣은 후 물을 부어서 오븐에 증기가 차도록 만듭니다.
증기 없이 그대로 구우면 표면이 갈라지면서 갈색으로 익는 방식의 치즈 케이크가 됩니다.
175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한 시간 반 굽고, 꺼내서 한 시간 정도 식힌 다음, 최소 4시간에서 6시간 가량을 냉장고에서 굳힙니다.
뉴욕 치즈 케이크는 차갑게 먹는 게 특징이기 때문에 이 냉각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조리 시간이 늘어나는 주범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치즈 케이크의 완성은 깔끔하게 잘라서 접시에 올려놓는 데 있다고 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아무리 맛있게 만든 케이크라도 여기저기 부서지고 뭉개지면 감점 요인이 되지요.
하지만 뉴욕 치즈 케이크는 그 묵직한 질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깨끗하게 자르기 쉬운 케이크는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칼에 묻어나는 걸로도 모자라서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기 십상이니까요.
일단은 치실로 치즈 부분을 깔끔하게 나눠준 후, 뜨거운 물을 이용해서 칼을 뜨겁게 만든 후 물기를 닦고 자르면 각이 살아있는 치즈 케이크 조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좀 큼직하게 자르느라 8조각으로 나눴는데, 일반적인 조각 케이크 사이즈라면 12조각 정도로 나눠도 될 뻔 했네요.
케이크를 자를 때마다 언제나 오래된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 뇌리를 파고듭니다.
철수는 케이크의 1/4 조각을 먹고, 영희는 1/5 조각을 먹었다면 남은 케이크의 양은 얼마인가... 이런 기억 말이죠.
산수 문제가 대부분 그렇지만 참 현실성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똑같은 크기로 8등분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산수 문제의 케이크처럼 자르려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각도기 들고 각도 재가면서 잘라야만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에는 뉴욕에서 파는 치즈 케이크라도 위에 시럽을 얹거나 다른 재료를 섞어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래도 오리지널에 가깝게 아무 것도 뿌리지 않고 치즈와 달걀과 설탕을 주 재료로 기본에 충실한 레시피를 따릅니다.
다만 장식 삼아 딸기와 민트잎을 좀 곁들여 주기는 했지요. (딸기꽃 만드는 방법은 동영상 참조)
사실 엄밀히 따지면 뉴욕 치즈케이크는 케이크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케이크의 주 재료는 밀가루여야 하는데, 치즈케이크는 주 재료가 크림치즈니까요.
바닥에 쿠키 가루로 만든 크러스트가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타르트가 맞는 분류이긴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언어라는 건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약속이고 기술적으로야 어찌되었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단어라면 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자장면이 맞더라도 실제로는 짜장면까지 표준어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죠.
포크로 푹 뜨면 벌써부터 손끝에서 묵직한 질감이 느껴집니다.
입 속에 넣으면 차가우면서도 달달하고, 그러면서도 아이스크림보다 무겁고 진한 질감의 치즈의 맛이 입에서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소하면서 약간은 짭잘한 크래커 바닥이 뒤를 이으며 마무리를 담당하지요.
단 맛과 짠 맛이 대비되면서 서로 그 맛을 극대화시킨다더니, 짠 맛이 섞인 크래커 바닥을 먹으니 곧바로 다음 포크질이 이어지며 달달한 크림치즈를 다시 들이밀게 됩니다.
그리고 정신차려 보면 어느 새 한 조각이 다 사라져 있지요. 나머지도 다 뱃속으로 집어넣기 전에 이웃집에 한 조각씩 돌립니다.
몸에 좋은 건 숨어서 혼자 먹고, 칼로리 높은 악마의 유혹은 이웃들과 함께 이겨내야 하는 법이니까요.
(IP보기클릭)58.140.***.***
매번 좋은글 감사합니다. 진한 치즈케잌이 땡기네요!
(IP보기클릭)165.230.***.***
진한 커피도 함께 말이죠 ㅎㅎ
(IP보기클릭)118.130.***.***
워후!!!!!
(IP보기클릭)165.230.***.***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P보기클릭)58.140.***.***
매번 좋은글 감사합니다. 진한 치즈케잌이 땡기네요!
(IP보기클릭)165.230.***.***
진한 커피도 함께 말이죠 ㅎㅎ | 18.04.02 14:08 | |
(IP보기클릭)58.140.***.***
(IP보기클릭)165.230.***.***
하루키 단편은 안 읽어봤는데 코멘트보고 찾아 읽었습니다. 굉장히 좋네요. | 18.04.02 14:07 | |
(IP보기클릭)112.221.***.***
(IP보기클릭)165.230.***.***
드림 | 18.04.02 14:08 | |
(IP보기클릭)182.222.***.***
내가 할라했는데 ㅠ | 18.04.13 20:18 | |
(IP보기클릭)59.14.***.***
(IP보기클릭)165.230.***.***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8.04.02 14:08 | |
삭제된 댓글입니다.
(IP보기클릭)165.230.***.***
횔덜린
폴 오스터는 달의 궁전이 최고지요 ㅎㅎ. 뉴욕 3부작은 읽다가 때려치웠음다. 지금 다시 읽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 18.04.02 14:06 | |
(IP보기클릭)58.151.***.***
횔덜린
확실히 개인차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뉴욕 3부작]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거든요. [달의 궁전]도 재밌었습니다만, 너무 힘들게 읽은 책이 [고독의 발명], 그 안에서도 [기억의 서] 부분이 너무너무너무 힘들었었네요. | 18.04.06 12:14 | |
(IP보기클릭)112.219.***.***
(IP보기클릭)115.145.***.***
(IP보기클릭)125.189.***.***
(IP보기클릭)49.174.***.***
(IP보기클릭)112.216.***.***
(IP보기클릭)59.25.***.***
.
(IP보기클릭)121.160.***.***
(IP보기클릭)222.111.***.***
(IP보기클릭)58.232.***.***
(IP보기클릭)1.239.***.***
(IP보기클릭)165.230.***.***
설탕 종류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한데 200g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18.04.13 17:03 | |
(IP보기클릭)124.28.***.***
(IP보기클릭)125.128.***.***
(IP보기클릭)118.130.***.***
워후!!!!!
(IP보기클릭)61.97.***.***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IP보기클릭)112.218.***.***
(IP보기클릭)112.217.***.***
(IP보기클릭)211.44.***.***
(IP보기클릭)211.44.***.***
(IP보기클릭)119.194.***.***
(IP보기클릭)211.41.***.***
(IP보기클릭)221.151.***.***
(IP보기클릭)218.144.***.***
(IP보기클릭)112.222.***.***
.
(IP보기클릭)118.37.***.***
(IP보기클릭)218.151.***.***
(IP보기클릭)211.216.***.***
(IP보기클릭)1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