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를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니 하밀부르크는 속이 쓰렸다.
고드프리는 하밀부르크의 표정을 빤히 보더니 능글맞은 웃음을 지은 채 웃었다.
“끌끌, 뭘 그렇게 깊이 생각을 하는 거지, 이 지부에 있던 이방인이 그만두고 나간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아쉽군, 이방인 중 손가락 안에 드는 강한 이방인이라 들었는데 잡아두지 않은 건가?”
“전 그녀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이방인을 사람처럼 취급하는 건가? 생각보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도구라니요, 이방인도 저희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 아니, 놈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들이다.”
고드프리는 능글맞게 웃던 미소를 싹 지우곤 진지하게 말했다.
“놈들은 하나 같이 말도 안 되는 능력들을 갖고 있지, 놈들이 조금이라도 불순한 마음을 가진다면 이 제국에는 엄청난 혼란이 생길 거야, 너희 자유 해방단은 놈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지.”
“그들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이방인은 없습니다.”
“없는 게 아니다, 드높으신 황제폐하께서 그들을 잘 조율하고 있을 뿐이지, 그들은 하나 같이 위험해.”
“지나친 생각입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저희 자유 해방단이나 경의 가문에서 머무르는 모든 이방인들을 척살해야할 겁니다.”
살짝 과장을 보탠 하밀부르크의 말에 고드프리가 놀란 눈으로 하밀부르크를 째려보았다.
이 정도 과장해서 말한다면 고드프리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자신의 가문에 속한 이방인들을 의심하는 건 가문을 의심하는 거라며 화를 내겠지.
그렇게 된다면 하밀부르크 자신은 잠깐 흥분한 노장을 진정시키면 된다.
하지만 하밀부르크의 의도와는 달리 고드프리는 격하게 기뻐하며 수긍했다.
“그래! 그 말이 맞아! 이방인은 모조리 척결해야하는 놈들이야, 이런 데서 나랑 생각이 맞을 줄은 몰랐군, 마음에 들어.”
“…….”
“하핫, 뭘 그렇게 굳어 있나, 하긴 이방인들을 죽이자는 말은 함부로 입 밖으로 힘들지, 그들은 강하니깐, 그렇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네, 지금은 조용해도 언젠간 이방인은 이세계의 해가 될 거야.”
그 말을 하는 고드프리의 표정엔 진득한 살기가 배어나왔다.
하밀부르크는 더더욱 표정을 굳혔다.
이 노인네는 위험하다, 진심으로 이방인에게 살의를 품고 있다.
살기에 반응한 하밀부르크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에 찬 칼에 손을 뻗었다.
고드프리는 살기어린 표정을 지운 채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핫! 뭘 그렇게 쫄아 있나?”
고드프리는 하밀부르크의 등을 호탕하게 치며 말했다.
“너무 쫄지 말게, 비공식이지만, 협력관계가 되었으니, 잘해보자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끌끌, 다음에 볼 땐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알겠습니다.”
고드프리는 기사단들과 함께 사라졌다.
고드프리와 기사단들이 사라지고서 해방단 본거지는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딱 한 명 하밀부르크만이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
단원들은 하밀부르크의 표정을 보곤 서로 수군거렸다.
“단장님 표정 왜 저래?”
“몰라, 오늘 같은 날 기뻐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우리한테 뒤처리를 맡기던 하룬가에서 벗어났잖아, 단장남이 일등 공신일 텐데.”
“그러니깐 말이야 해방단 간부들도 이 일로 단장님을 엄청 높게 평가할 텐데.”
단원들의 목소리는 하밀부르크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미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녀석 잘 지내고는 있는 건가, 바가지를 당해도 실실 웃는 녀석인데.’
미르가 자유 해방단을 떠난 날부터 하밀부르크는 온종일 그녀 생각만 했다.
그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건 결코 아니다.
그저, 미르가 자유 해방단에 있을 적 함께 다니며 전우애가 생겼을 뿐이다.
그 이상의 감정 따윈 있을 리가 없다.
하밀부르크는 아까의 고드프리의 말을 떠올렸다.
‘이방인들은 위험한 존재라.’
하밀부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드프리의 말을 부정했다.
그녀는 악한 존재가 아니다, 다른 이방인들을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이 본 미르라는 존재는 착하고도 순진했다.
능력을 쓸 때만 분위기만 변하지 평소 그녀의 모습은 선함 그 자체였다.
하밀부르크는 그녀를 떠나보낸 날을 후회했다.
노예와 해방단 지부를 떠난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을까.
아니 말리지 못했겠지.
처음 자유 해방단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그녀를 말릴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이방인이다.
그럼에도 하밀부르크는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떠나보낸 것을, 마지막 이별이 좋지 않았던 것을.
조금이라도 따뜻한 말이라도 해줄 걸, 해주지 못한 게 한이 되었다.
그녀, 미르의 얼굴을 한번 보는 것만으로 이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버텨낼 수 있었다.
노예, 그 놈만 아니었다면, 미르는 떠나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놈은 이런 차갑고도 무뚝뚝한 목소리을 가졌다.
어리고도 약한 노예 놈이 어떻게 미르를 꼬신 거지.
아무런 재주도 능력도 없는 노예 놈이 대체 어떻게…….
“생각이 깊으신 모양입니다, 마음 같아선 기다리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말이죠, 정신 좀 차려야겠습니다.”
짝.
하밀부르크는 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든 하밀부르크의 시야에 익숙한 꼬마가 보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미르를 떠나게 한 장본인 그 노예였다.
노예는 한심한 눈으로 하밀부르크는 쳐다보며 말했다.
“제 덕으로 트라야비야의 지원금도 얻었을 텐데 다 죽어가는 표정을 짓는 이유는 뭡니까.”
“너……네가 여길 왜, 여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데 가 아닐 텐데.”
“글쎄요, 하찮은 노예를 막을 생각이 없는 건지 편하게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하밀부르크는 이상함을 느끼곤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게 멈춰 있었다.
신나게 웃고 있던 단원들이나 고기를 먹고 있던 동료들, 모두가 돌처럼 굳은 채 멈춰 있었다.
흐르는 물과 고기에서 떨어지는 즙은 시간이 멈춘 게 아닌 사람들만이 멈췄음을 알리고 있었다.
하밀부르크는 혼란스러워하며 다시 노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노예는 고개를 까딱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보셨죠? 다들 저렇게 멈춰서 있더라고요, 아무도 제지를 안 합니다.”
“너, 너 대체 무슨 짓을!”
“제가 한 걸로 보입니까? 하찮은 노예인 제가 사람들을 멈추게 했을 리가 없죠.”
노예의 능글맞은 표정은 하밀부르크의 화를 돋우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하밀부르크는 이를 악물며 애써 참았다.
“……다시 묻겠다, 여긴 왜 온 거지?”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도움? 네놈 따위에게 줄 도움은 없다, 그보다 미르는 어디 있는 거지, 미르 녀석 성격상 널 여기에 혼자 보냈을 리가 없는데.”
“……말하자면 깁니다.”
능글맞았던 노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확연히 드러나는 노예의 표정 변화에 하밀부르크는 반사적으로 노예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멱살을 잡혔음에도 노예는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하밀부르크는 이를 드러낸 채 노예를 위협하듯이 물었다.
“미르, 그녀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냐?”
“…….”
“말해!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네 놈의 목을 베어버리겠다!”
하밀부르크는 여차하면 베어버릴 기세로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었다.
목이 날아갈 상황임에도 노예는 태연했다.
노예는 핏대어린 하밀부르크의 눈과 당당히 마주치며 차갑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다 했다, 너하고 이렇게 담소 떨 시간도 아까워.”
“노예 주제에 감히!”
일반인도 아닌 고작 노예가 자유 해방단 단장인 자신에게 대들고 있다.
하밀부르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칼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하밀부르크의 검이 노예의 목을 베기 직전, 노예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안 도와주면 미르는 죽어.”
“……!”
검 끝은 노예의 얼굴 앞에서 멈춘 채 하밀부르크의 손은 파르르 떨렸다.
이 노예 놈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일을 할 때나 잠에 들 때조차 항상 미르 생각만 하던 하밀부르크였다.
이젠 떠나버린 그녀지만, 그녀의 미소와 웃음은 그의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있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니.
하밀부르크에게 그녀의 죽음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예는 하밀부르크의 검을 치우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미르를 살리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허, 허튼 수작을 부리려는 거 아니냐?”
하밀부르크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충격적이지만, 저 노예의 말을 하밀부르크는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미르를 앗아가 버린 놈이다,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밀부르크의 의심은 천천히 그 힘을 잃어갔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미르가 위험에 처해 있다면?
도울 수 있는 게 자신뿐이라면?
미르의 안전이 노예의 입에 담긴 순간부터 하밀부르크의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하밀부르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지막이 물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트라야비야가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아직 하룬가랑 연을 끊지는 않았지?”
“그래, 함부로 끊었다간 보복이 올 수 있고 하룬가랑 연관된 지부가 여기뿐만이 아니니 적당한 시기를 봐서 다른 지부들과 함께 하룬가와의 연을 끊을 거다.”
“잘됐군, 아직까진 하룬가에서 더러운 일을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지? 그 중 하나를 나한테 맡겨줘.”
“뭐?”
하밀부르크는 말문이 막혔다.
태클 걸고 싶은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하룬가의 뒤처리 일을 노예가 맡겠다는 것 둘째 치고 이게 미르의 목숨과 무슨 상관인가.
하밀부르크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따지려 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해라, 대체 이거랑 미르랑 무슨 상관…….”
“나중에.”
“이 놈이.”
“나중에 다 말해줄 테니, 지금은 닥치고 내 말을 따라.”
노예답지 않은 거친 말투에 하밀부르크의 입가가 뒤틀렸다.
노예가 일반인과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한다는 것부터 하밀부르크는 당장 노예의 목을 쳐도 아무 죄가 없었다.
그럼에도 하밀부르크는 검을 들지 못했다.
노예는 처음 지부에서 볼 때와는 달랐다.
세상 다 포기한 듯 죽어도 상관없다는 모습이 아니었다.
노예의 표정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뭐든 하겠다는 절박함이.
건방진 태도와 말투는 불쾌하지만, 적어도 미르를 구하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밀부르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짓말이라면 네 놈의 사지를 찢겠지만, 일단은 믿어보자, 하룬가에서 자유 해방단에게 명령하는 뒤처리 일 리스트는 내일 중으로 갖다 주마, 그 중에서 하나 고르도록.”
“좋아, 내일 내가 찾아올 테니, 준비하도록.”
노예는 아랫사람을 부리듯이 말하곤 등을 돌려 지부를 빠져나갔다.
가온이 자유 해방단을 빠져나가자마자 멈췄던 모든 단원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먀냥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을 지키던 문지기들은 지부 입구에서 멀어지는 가온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방금 전에 저 꼬마가 우리 지부에 들어갔던 거 같은데.”
“너도 그렇게 느꼈냐?”
문지기들은 의아해했지만, 가온은 문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두 문지기는 가온을 잊고서 다시 담소를 떨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단장님이 하룬가랑 연을 끊는 다는 건 좀 아쉽네.”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역시 넌 나랑 생각이 잘 맞네, 하룬가에서 내주는 더러운 일들이 난 참 좋았는데.”
“큭큭, 저번에 마을 약탈하던 일은 참 좋았어, 노인이고 어린아이고 닥치는 대로 썰었을 때 기분은 표현할 수가 없었지.”
두 문지기는 듣기 꺼려질 정도의 질 나쁜 대화를 하며 시시덕거렸다.
멀어져가던 가온은 두 문지기의 더러운 대화에 발걸음을 멈췄다.
가온을 신경쓰지 않는 두 문지기는 대화를 계속했다.
“흐흐, 하룬가의 더러운 일만 계속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차라리 하룬가한테 이 일을 일러버릴까?”
“야, 그래도 되는 거냐? 그래도 범죄자인 우리 둘을 받아준 단장인데.”
“안 될게 뭐가 있어, 솔직히 자유 해방단에서 하는 일들은 전부 따분해 죽겠어, 남을 구한다고? 웃기고 있네, 이 미친 세상에서 남을 구할 시간에 죽이는 게 훨씬 재밌어.”
“그건 그렇지, 정말로 하룬가에 붙어버릴까, 어 저기 꼬마 우릴 보고 있는데.”
가온을 확인한 두 문지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혹시라도 새어나갈 자신들의 대화가 단장의 귀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
자신들의 대화를 들었을 꼬마를 그냥 두어선 안 된다.
두 문지기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꼬마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거기 가만히 서서 뭐하니?”
“여기 아저씨들이랑 재밌는 대화를 하지 않으련?”
꼬마는 두 문지기의 회유에 순순히 넘어갔다.
인적이 드문 골목기로 들어간 두 문지기는 이 꼬마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그냥 죽여?”
“일반인을 함부로 죽이면 나중에 골치 아파진다고, 적당히 칼질 해주고 겁만 해줘.”
“칼질하다 흥분하면 죽일 거 같은데.”
“미친 자식, 그럼 내가 한다.”
적당히 팔 한쪽을 잘라내기로 합의한 두 문지기가 꼬마에게로 다가왔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꼬마 아니 가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가온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문지기를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쓰레기들이네, 처리해줘.”
꼬마에게 다가가던 두 문지기는 꼬마의 당돌한 말에 돌연 웃음보를 터뜨렸다.
자기 팔이 날아갈 상황인데 대놓고 욕설을 내뱉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틀림없다.
“끄흐흐흑, 지금 저 꼬마가 뭐라고 한 거냐?”
“한창 망상에 빠질 때지, 어라, 저 꼬마의 목에 이상한 문양이 있는데.”
“노예다! 목에 각인이 있는 건 노예 밖에 없어!”
“노예란 말이지, 그럼 적당히 구슬릴 필요도 없지.”
사람만도 못한 짐승 취급을 당하는 게 노예다.
마침 인적도 없는 골목길이니 노예 시체 한 구 정도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두 문지기는 망설이지 않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문지기 중 한 명은 칼날에 혀를 할짝대며 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크흐흐, 오랜만에 피 냄새 좀 맡겠군.”
“너무 심취하지는 마, 빨리 끝내고 문지기 일을 하러 가야하니.”
“알아, 적당히 할 거야 흐흐, 노예 놈, 건방지게 우리를 쓰레기라고 했겠다.”
번뜩이는 눈으로 칼을 휘두르려던 두 문지기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곧 죽을 운명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는 끝까지 평온했다.
오히려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이었다.
바로 죽여주마.
두 문지기의 칼이 동시에 휘둘러졌다.
퍼억!
“끄아아악!”
“끄으으윽!”
두 문지기의 검은 서로의 목을 향해 휘둘려졌다.
피분수가 솟구치며 골목길에 진한 피비린내가 퍼져나갔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두 문지기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멱 따이는 돼지처럼 꺽꺽거렸다.
“끄, 끄어어억?”
“어, 어으으억!”
두 문지기는 지금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노예를 향해 검을 휘둘렀는데 어째서 서로의 목을?
“어, 어어어억.”
“크, 크으윽.”
죽기 전 생긴 의문은 풀지 못했고, 두 문지기는 오래가지 않아 절명한 채, 골목길 바닥에 쓰러졌다.
가온은 쓰러진 두 문지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며 조용히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자 그곳엔 약초 냄새를 풍기는 금발머리의 주근깨 소녀가 있었다.
금발 머리 소녀는 가온에게 다가와 킥킥거렸다.
“헤헤, 해방단 지부에서 수확은 있었어, 가온?”
“일단은.”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꼭 죽을 날 앞둔 사람처럼.”
아르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온 어깨 너머 골목길에 죽은 두 문지기를 확인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오는 끔찍한 시체지만, 아르실은 미소를 지었다.
“설마, 쓰레기를 치운 것 때문에 표정이 그런 거야?”
해맑은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이 아니었다.
아르실은 길가에 치이는 쓰레기를 치운 양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나 좀 칭찬해줘, 가온, 자유 해방단 지부에 있는 사람들을 몽땅 컨트롤 하느라 힘들었단 말이야, 그리고 방금 치운 쓰레기도 내가 한 거였고!”
“…….”
“칭찬 안 해줄 거야?”
“나중에, 해줄 게.”
가온은 힘겹게 입을 떼었다.
가온의 짧은 대답에도 아르실은 뭐가 그렇게 좋은 지 실실 거렸다.
“힘들어 보이니 숙소까진 내가 부축해줄게, 이 아르실님께서 직접!”
“됐어, 너 먼저 들어가, 난 좀 있다가 갈 테니.”
“에이, 알겠어, 대신 빨리 들어와야 해?”
“응.”
아르실이 사라지고서 골목길에 혼자 남게 된 가온은 힘없는 눈으로 죽은 두 시체를 바라보았다.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다.
아르실이 처리하지 않았다면 언젠간 다른 이들을 죽였을 인간들이다.
죽어도 싼 인간들이었다.
그럼에도 가온은 시체에게 다가가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죽어간 시체는 벌써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짙은 혈 향과 썩은 내에 가온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말했다.
“신이시여, 비록 신을 믿지 않는 저이지만, 만약 계신다면 여기 버려진 어린 양들을 보살피소서.”
기도를 하든 안 하든 저들이 벌였던 악행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저들에게 죽었을 희생자들이 살아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기도지만, 그래도 가온은 계속 기도를 했다.
“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죽어간 이들을 도우시며, 신의 고귀 하신 권능을 위하여 이들을· 건지시며, 간절한 심령으로 신께 아뢰는 이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죽은 이에게 기도 따윈 안 하던 가온이었지만, 미르는 기도를 했기에 기도를 한다.
가온은 그저 그녀를 따라하는 것뿐이었다.
미르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죽어간 시체들에 대한 명복을 마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온의 입가에 쓴 웃음이 번졌다.
이렇게 한다고 미르가 돌아오는 게 아닌데 어째서 난 그녀를 따라하는 건가.
그녀의 영향 때문에 이렇게 된 게 분명했다.
그녀는 태양이었다, 지금은 없을지언정 짧은 시간임에도 내게 이런 영향을 미쳤다.
‘보고 싶다.’
가온은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은 채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