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적으로 꽤 예전에 작성된 1장을 열심히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부족한 졸작이나마, 부디 많은 평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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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졸작은 바탕체, 14px로 작성되어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계단을 올라간다.
시간을 확인해보면 낮 2시, 싱그럽기만 한 봄날의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어지고 있는 이 대낮에,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 계단을 한 발짝씩 오른다.
지하 1층에 곤히 박혀 있는 어두컴컴한 숙직실과, 봄의 생기가 흘러넘치는 지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계단.
서편 계단과 콘크리트 벽 하나의 두께로 갈라져 있는 지하 계단을 한 발짝 한 발짝 올라왔을 때, 비로소 따사로운 햇볕을 관망할 수 있었다.
한쪽 눈을 가려버릴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머리카락으로도 따사로운 빛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정도. 이 직업은 그렇게나 햇살에 목메여 있다.
완전한 지하세계인 숙직실에 계속 박혀 있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마치 지상과 숙직실은 다른 차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물론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조차 그렇게 느낄 것이리라. 그들에게도 숙직실뿐만 아닌 지하 계단 그 자체도 자신이 사는 세계와 떨어져 있는 다른 무언가로 다가올 것일 테니까.
원래 이렇게 단절된 공간은 절대………아니었을 것인데.
움직이기 편하기 그지없는 체육복과 검은 볼캡. 눌러쓴 볼캡에 눈을 숨긴 나는 천천히 느껴지는 봄의 양기에 눈을 가늘게 뜨며 입으로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서편 계단의 옆 지하 계단. 또 그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피부로써 느껴져 뇌 한구석으로 도달하여 깨달았을 때엔, 이미 늦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약 4학년으로 추정되는 소란스런 아이들의 시야에 내 모습이 포착되었을 때엔 이미 상황은 벌어진 뒤였다.
엘리베이터부터 소란스럽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정적이 흐르고, 마치 아무도 없었던 듯 쥐 죽은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 정적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직면하게 되었을 때의 본능적인 공포. 이른바 무지의 공포. 아니, 일말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무지의 공포일 것이다.
소문으로 넘겨짚은 내 자신을 바라보는 공포의 어린 눈동자가, 그 정적에 높은 농도로 뒤섞여 있었다. 그것을 피부로 하여금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정적만이 흐른 것이 수십 초 단위가 되었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알아서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3층까지, 4학년들의 교실이 모인 곳까지 닿았을 때 소란스러움은 시작되었다.
눈을 질끈 감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까까지와 같은 기분 좋은 한숨이 아닌, 학교 따위는 지하로 묻어버릴 만큼 무거운 한숨.
“……하하. 아하하.”
마른 웃음이 알아서 흘러나왔다. 힘이 빠져 입을 열고 있던 탓이니라.
오늘도 또 하나의───수십 가지의 소문이 무성히 생겨났을 것이라, 속으로 곱씹었다.
요컨대 정리한다면 그렇다.
나는 이 학교에서 유명하다.
유명하다면 유명하다. 전교생 중 일부를 제외하면 내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아예 없을 것이다.
그 일부에겐 미안하지만, 내 존재 자체는 이 주성(朱星)초등학교 전교생 사이에서 일종의 전설로 남은 모양이었다.
저 아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 계단 아래의 방에는 인간인 아닌 생물이 존재하고,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온다는 내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것들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전부 저주를 받아, 나중에 크게 다치거나 운을 빼앗긴다는 등, 본인 입장으로 곱씹어 보면 민폐일 뿐의 이야기가 제작되는 한창이다. 이른 바 현재진행형이란 것이다.
그 전설이란 것이 돌기 시작한 지 3달이 다 되어가며, 이젠 눈덩이처럼 불려진 그 전설 아닌 소문이 내 활동영역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자란 앞머리. 날카롭게 뻗는 옆머리와 길게 늘어뜨린 뒷머리. 전체적으로 보면 딱 산발이었다. 게다가 그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매는 굉장히 날카롭기 그지없으며 전체적으로 어두 칙칙한 분위기까지.
내 자신을 자신이 둘러보아도 높은 점수를 줄래야 줄 수 없었다. 딱 산적 꼴이었다.
……머리를 정리했을 때조차 겁먹어 도망갔다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렇게까지 가슴 아프진 않을 텐데.
생각해보면 생각해 볼수록 괘씸한 내용이 가득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는 내 자신은 진즉 사라진지 오래였다.
지금의 인식은 ‘어차피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을 자주 보는 직업도 아니니까 잘 피해 다닌다면 상관없겠지.’ 라는 안일해 빠진 인식뿐.
이제 “나타났다!” 라는 전령이 퍼진 뒤일 것이니 고학년 교실 쪽은 조용하겠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마친 나는 하교가 끝난 저학년들 교실로 멈춰있던 발길을 향할 뿐이었다.
◇◆◇◆◇◆◇
찰칵 소리를 내며 잠긴 본관의 유리문을 가볍게 흔들었다. 대리석과 쇠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문을 보며 작게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었다.
몸을 돌려 나지막이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골목과 골목이 만든 주변 풍경과 그 안에 위치한 작은 초등학교. 자신이 서 있는 이 대지.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에 초목이 흔들려─그 바람에 맞춰 살랑거리는 머리칼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곤, 내 앞으로 무언가의 꽃잎이 날아왔다.
손등에 얹힌 그 연분홍빛의 꽃잎. 벚잎이었다. 단지 그 몇 안 되는 벚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눈으로 묵시하며……질끈 눈을 감고는 검은 모자를 눌러썼다.
늦은 3월의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그에 벚나무는 벚잎을 몇 장 매달지 않은 채로도 가지를 흔들며 그 꽃잎을 떨구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 장면을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아까보다 모자를 훨씬 깊게 눌러쓰곤 학교 부지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학교 부지를 걸으며, 이 풍경의 동서남북을 시야에 담으면서, 자연히 수동, 수암골에 쉴 새 없이 뿌리내린 벚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필시 아름다웠다. 석양이라는 강한 색채를 뒤집어쓰고도 연분홍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벚잎도, 새하얗게 순백으로 물든 성주시 특유의 벚잎도. 한유진 자신이라는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아직도 거대한 벚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말해도 좋다.
하지만 지면에 팔랑팔랑 떨어지며…… 뺨에 스치는 부드러운 벚잎의 감촉에, 나는 뺨이 베인 것과 같은 쓰라린 표정을 지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한숨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도, 끝까지 시선은 수암골 동쪽 언덕에 위치한 벚나무의 일렬로 향해있었다.
단지, 그런 당연한 벚나무의 법칙을, 자연의 순환이라는 것을 있는 힘껏 부정하며 닫히지 않는 본관 건물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어둠이 내리 앉은 지하 숙직실로 발소리를 향하는 와중에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을 울렸다. 밝디 밝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눈을 찌푸리면, 빛에 익숙해진 눈은 나에게 몇 장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여러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스마트폰의 화상엔 생기가 돌았다. 각각의 다른 활기를 가진 선이 모여 한 가지의 움직임이 되었고, 하나의 피사체로 하여금 모여들었다. 애니메이션 화풍의 그림, 성주 대학교 애니메이션과 동기들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런 흑백의 서브컬쳐 화풍의 스케치 사이의 메시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내일 오후 5시 30분 경, 단편 애니메이션 과제 2차 보고회』
이후에 천천히 올라오는 장소와 필요한 것들을 읽어 내려가며, 의기투합한 동기들의 생기를 느끼며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외출 중>으로 돌려놨던 숙직실의 작은 팻말을 <재실> 표시로 바꿔놓곤, 이젠 익숙해져 버린 숙직실의 문 저편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아르바이트 준비를 하러 말이다.
낮에는 숙직 업무, 새벽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루하루 가난함을 이슬 먹으며 잔고를 채워가는 성주 대학교 애니메이션과 10학번 3학년.
낮의 비는 시간엔 개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그림쟁이.
현직 숙직실 근무원.
……만인 공통 통칭 수위 아저씨.
그렇다.
나는 휴학계를 내고 괜시리 지하실 음지 괴물 취급을 당하고 있는 24세 젊은 나이의 <초등학교 숙직 경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