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옷가게에서 들었던 목소리였다.
“아 세실리아씨 이시간엔 어쩐일로 오셨나요”
“일단 문 좀 열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방문한 손님께 실례되는군요”
그 말을 들은 프로이데는 앗차 싶어 서둘러 현관문을 열어 세실리아를 맞이했다.갈색 로브를 둘러쓴 세실리아는 잠시동안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선 프로이데의 집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테이블 앞에있는 의자에 앉으며 한참동안을집안은 살피는 듯 하더니 다시 일어나서는 창문을 열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한참동안이나지켜보던 프로이데는 조심스레 세실리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세실리아씨 저희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요? 혹시 제가드레스 금액을 지불하지 않아서…”
가만히 프로이데의 이야길 듣던 세실리아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고 나서 집안의 단면도를 그릴 수 있을정도로 세심하게 둘러보던 세실리아는 어느정도 안심이 됐는지 로브를벗어 옷장에 걸어놓곤 우아하게 집안에 앉아있던 의자중 하나를 빼내 프로이데에게 앉을것을 권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 있었다.
“늦은시간에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일단 앉아 계시면 차를 내드리도록하겠습니다.”
‘어 저기요 여기 저희집인데요…’
너무나 당연하게 접객을 하는 세실리아의 모습에 어이없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내 안내해준 의자에 앉아 세실리아를기다리기로 했다. 프로이데가 의자에 앉자 세실리아는 주방으로 들어가 능숙하게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차를올릴 준비를 하고있었다.
‘덜그럭 덜그럭’
고용한 밤 주택가엔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어색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잠시후물끓는 소리와 함께 세실리아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을 찻잔에 능숙하게 차를 따라서 프로이데 앞에 살포시 내려놓고는 프로이데 에게 말했다.
“차를 준비했습니다.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향이 좋네요 제가 해서는 이렇게 잘 안되던데..”
“차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양과 찻잎의 양 그리고 물의 온도입니다.”
“아..네.. 다음에 시간이되면 꼭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말하곤 찻잔을 향해 손을 뻗던 프로이데는 왼쪽으로 향해있는 찻잔의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어 차를 조심히들이켰다.
-후루룩-
조용한 집안에서 프로이데의 차 마시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
….
….
“저기 세실리아씨…?”
“네”
….
….
….
….
프로이데가 찻잔을 모두 비울때까지 옆에 가만히 서있던 세실리아는 프로이데가 다 마신 것을 확인하자 아무말 하지않고 찻잔을 거둬 다시 정리해놓고는 본인의 로브를 챙겨 두르곤 프로이데의 집에서 나가려던 때였다.
“저기 세실리아씨 돌아 가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잘 계신가 확인하라는 샤덴님의 부탁을 받고 왔을 뿐입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 예… 안녕히가세요 밤 늦었으니까 조심하시구요”
“그럼 편히 주무시길 바랍니다.”
-털컥-
그렇게 세실리아는 떠나갔다. 도대체 뭐 때문에 왔을까 하는 의문이컸지만 세실리아의 방문으로 긴장이 풀렸는지 프로이데도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베스테 중앙 상점가 인근의 뷰티 앤 아너
“샤덴님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이상 없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세실리아 혹시 다른 이상한점은 없던가요?”
“별 것 아니었습니다. 다만 프로이데양 집 주변에 수상해 보이는 이들이몇 있어 제압했습니다.”
세실리아의 말을 들은 샤덴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실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수상한 사람들…말인가요? 혹시어머니가 벌써 움직이신건가요”
“아니요 저희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로는 안보였습니다. 아마도 마이어가문의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 전 총독 사저에서의 일도 있고 하니 어떻게든 저희 가문에 흠집을내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세실리아의 말을 들은 샤덴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자신들의 행동이 혹시나 그 눈치빠른 여우에게 들키진 않았을까 걱정되었지만 그런 모양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군, 그래도 집 주변에 경비 한둘은 붙이지 않았을까싶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샤덴은 세실리아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세실리아 주변에 정말 저희 가문 사람이 한명도 없었던 것이 확실한가요?”
“네 제가 제압한 사람들 외엔 다른 사람들은 없었고 프로이데양 집 안에도 특별히 감시가 있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전부일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세실리아 정말 고마워요”
“샤덴님 오래전부터 샤덴님을 아무 말 없이 따라온 몸 이지만 이번일은 걱정하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어째서 그녀에게 이렇게 신경쓰시는 건가요”
갑작스럽기도 하고 평소에 별말 없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던 세실리아 로부터의 질문이었다
“첫 눈에 반했다.. 정도로는 안될까요?”
“네 안됩니다.”
-하아….-
그 어느때보다 단호한 세실리아의 대답과 도대체 왜 그러냐고 꾸짓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던 샤덴은 한숨을크게 내쉬며 눈빛을 진지하게 바꾸어 세실리아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프로이데양이 처음 가게왔을 때 기억하시나요? 세실리아 아줌마가 평소대로접객을 했을때요”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모든 하베스터에게 그렇게 하도록 세르핀님으로부터 주문을 받았을 뿐이에요`”
세실리아의 감정이 없는 듯한 말투속에 섞인 신경질적인 억양이 샤덴에게 까지 전해졌다.
“그걸 나무라려는게 아니에요 그때 프로이데양의 모습을 보셨나요? 위축되는모습 없이 오히려 세실리아 에게 맞섰었죠 사실 한쪽팔이 없는 하베스터 여자가 가게에 방문하게 되면 그녀가 이번의‘특상품’ 이라던 어머니의 말을 듣고 왜 그녀를 골랐는지 알 것 같았어요“
“그래서요 뭐가 샤덴님을 이렇게 메달리게 만들었나요”
“그건…”
하려던 말을 잠시 끊었던 샤덴은 후회하는 듯한 얼굴로 천장에 매달려있는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머님이 뷰티 앤 아너의 관리를 맡기신 이유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하나 둘 어머님의 부탁으로 ‘상품들’에게 표시를 남기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게됐을 때 부터 죄책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걸로는 그녀에게 집착하시는 이유가 설명이 안됩니다.”
“절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과 똑같이 만드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죄책감도잠시 였고 서서히 죄책감보단 의무감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그녀들이 와도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게 된거에요”
-퍽-
말을 이어가던 샤덴은 꽉 쥐고있던 자신의 주먹을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내리 꽂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음에도 세실리아는 미동조차 하지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샤덴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제 자신에게… 너무 실망스러웠어요.그러다가 프로이데양을 만나게 된 거죠 하베스터이고 한쪽팔도 없고 모든 게 부족해 보이는 그녀이지만 눈빛과 행동만큼은 베스테에서 모든걸누리고 있는 저보다 훨씬 아름답고 당당해 보였어요”
순간 샤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실리아는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다루듯 샤덴에게 다가가 샤덴의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그래서… 그녀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마저 보내면.. 제 자신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조용히 샤덴을 안고있던 세실리아가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며 샤덴에게 말했다.
“샤덴님 저는 샤덴님이 어떤생각과 행동을 하시더라도 끝까지 따를겁니다. 저의과분한 질문에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하신 바 이룰수 있도록 저 세실리아가 몸과 마음을 다해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세실리아.. 그리고 물어봐줘서 고마워요..정말..고마워..요..”
샤덴의 말이 감정에 삼켜져 떨리고 있었다.
“샤덴님 오늘은 못본걸로 할 테니 마음 껏 우셔도 좋습니다 지금의 세실리아는 이 가게에 수많은 마네킹중 하나입니다.”
세실리아의 품에 안긴 샤덴은 어머니에게서 조차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에 참고 있던 감정이 폭발해 나왔고 그렇게가슴속에 있는 응어리와 죄책감들을 토해내는 듯 울고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샤덴은 부끄럽다는 듯 세실리아를 밀어내곤 말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세실리아 그치만 본인이 마네킹이라고 한거 치곤…따듯했어요마네킹들은 심장이 뛰지도 않고 피가 흐르지도 않고 체온이 느껴지지도 않거든요”
“이제 진정이 좀 되셨나요 샤덴님 농담도 하시구요. 밤이 늦었습니다. 슬슬 돌아가시죠 내일은 중요한 날 이니까요”
“네 베스테에 둘도 없을 총독의 생일파티가 될거에요 아 그리고 세실리아 아줌마”
“뭐죠? 말씀하세요 샤덴님”
“아까 첫눈에 반했다는 말 진짜에요”
순간 세실리아의 얼굴에선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
“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부끄러우니까…”
세실리아는 서둘러 얼굴의 표정을 고치며 생각했다. 평소 샤덴은 자신이여기서 벌이고 있는 행동과 어머니 라는 여자에 대한 반감으로 이성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기 때문에 샤덴의 지금의 말은 놀라지 않을 수가없었다.
“샤덴님을 반하게 하는 여자라니….”
“그러니까 세실리아 아줌마 내일 잘 부탁 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되 선 안되요”
결의를 다진듯한 샤덴의 표정에선 아까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찾아 볼수가 없었다.그 모습을 보던 세실리아 마저 전투의 나서기 전 대열에 선 병사가 된 것만 같았다.
“맞겨 주십시요 샤덴님 꼭..제가 꼭 샤덴님의 바람 이뤄드리겠습니다.”
“어리광 받아줘서 고마워요 세실리아. 이제 진짜 들어가야겠어요 더늦으면 그 암여우가 의심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말을 마친 샤덴과 세실리아는 뷰티 앤 아너에서 빠져나와 자신들의 저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