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각 베스테 총독 사저는 파티 준비로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기묘한묘기를 연습중인 수인들이나 쉐이커로 보이는 엘프들을 뒤로 화려한 천막과 마법으로 구현된 듯한 빛나는 물체들이 이채롭게 빛나고 있었다. 분주한 그들 사이로 총독의 사병으로 보이는 병사들 또한 재식연습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베스테를 넘어 하이로센왕국에서도 손꼽을 만한 미녀들이 줄지어 모여있는 모습이 마법으로 빛낸 물체들 이상으로 빛이 나는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다 그 화려함 뒤에 웅장하게서있는 쿠드조프 총독의 사저 응접실에는 베스테의 유지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환담을 이어가고 있는 그때 응접실 문이 열리고 거구의 쿠드조프 총독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자베스테 귀족들은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쿠드조프를 향해 오른팔을 옆으로 내밀어 경의를 표했다. 만족스런미소를 보이며 쿠드조프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 중 총독인장이 새겨져 있는 상석으로 향해 앉았고 그를 뒤따르듯 5인의승천자 대표들도 일사 분란 하게 착석하기 시작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쿠드조프는 팔걸이를 가볍게 몇번 내려친 후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이시라고 한 것은 매년 신세만 지고있는 이 쿠드조프의체면치례라도 할 겸 여러분들에게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기 때문이오”
“신세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총독님 덕분에 저희 마이어 가문이 이렇게성장할 수 있던 것이라 생각하고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하하 기리에스님 아 이제 기리에스 남작님 이라고 불러드려야 겠소 최근 하이로센1세 국왕으로 부터 작위를 받았다지”
“그 또한 다 쿠드조프 총독님의 추서덕분 아니겠습니까 베스테 남쪽에 작은 영지를 받았습니다만 지금까지 받은 총독님의대한 은혜를 갚기엔 턱없이 부족한 땅입니다.”
기리에스 마이어의 말에 쿠드조프의 입근육은 더 이상 기쁨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실룩거리고 있었으나 쿠드조프의 ‘근엄함’을 위한 의지 때문인지 어색하게 경련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화자찬을 하기 바쁜 기리에스 마이어와 쿠드조프의 모습을 보는 귀족들은 위에서부터 역겨움의 신물이 올라오려는걸 억지로 삼켜내기도 힘들어 보였다.
‘쿠드조프 펜슬러’ 과거 4년혁명에서하이로센 1세를 도와 최전선에 섰던 불굴의 선봉장이었다. 당시혁명의 기록에 따르면 그때도 거구의 몸이었으나 지금처럼 탐욕에 젖어 불어버린 몸이 아닌 완벽한 전사의 가까운 육체였었다. 또한 술,여자,도박 같은유흥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고 오직 전장의 적과 하이로센1세의 안위만 생각하던 진짜 전사이자 참된 기사였기도했다. 허나 지금의 쿠드조프는 그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가장 충직한 부하를 가장 먼 영지에 보낸 하이로센왕의 의중은 알수가 없지만 베스테의 총독으로 부임한 쿠드조프는혁명이전부터 조용히 베스테 안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훈프 슈텐느’ 라고불리던 5인 귀족들에 의해 서서히 타락해가기 시작했다. 늦게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훈프 슈텐느의 수장격으로 있던 기리에스 마이어를 필두로
베스테의 경제를 쥐락펴락 하며 현재의 호화로운 총독사저까지 지어준
‘황금왕’ 슈탈즈 켈러의 금전적 뇌물 공세
여러척의 함선과 다수의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4년 혁명에 있어해안선 장악의 큰 공을 세운
‘병기창’ 우트 슈미트
베스테에서 일을 하려면 거쳐가지 않을 수 없다는
‘조합장’ 파울티아 슐체의 행정장악
그리고 엘프 이면서 베스테의 뒷면에서 더럽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던
‘등불’ 후츠하이프룬 크뤼거 와 그의 아내 세르핀 크뤼거
이들에게 쿠드조프는 세상에 밖 나온 어린아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야말로 하얀 도화지 같은 존재였기에 지금의쿠드조프로 만드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탐욕’ ‘오만’ ‘분노’ ‘나태’ ‘색욕’만 남게 된 쿠드조프는 그들의 완벽한 꼭두각시가 되었으나정작 쿠드조프 본인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만의‘평화’가 지속되는 것도 오래가지 않았고 쿠드조프에 대한 작업이 끝나자 그들은 이제 베스테의패권을 놓고 알게 모르게 견제하는 상태였으며 기리에스 마이어의 아첨은 나머지 귀족들이 보기엔 눈꼴시려운 것이 분명했다.
“총독각하 너무 기리에스만 신경 써주시는 것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총독님이 있기까지 저희 훈프 슈텐느 전체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둘 사이를 갈라놓는듯한 말에 쿠드조프와 기리에스는 말을 한 남자를 바라봤다. 바라본 자리엔 후츠하이프룬 크뤼거가 뾰족한 귀와 달빛에 젖은듯한 피부를 자랑하는 듯 앉아있었다.
“건방지구나 후츠하이프룬 네가 베스테에서 필요한 존재가 됐긴 하나 엘프 주제에 이만큼 커온 것도 여기계신 다른귀족분들의 도움 덕분이라는걸 잊진 않았겠지?”
‘엘프 주제에’라는 부분에서 뾰족한 귀가 꿈틀 거렸던 후츠하이프룬은불쾌한 표정을 감추진 못했으나 목소리 만큼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나 지금의 베스테를만든건 앞에 계신 쿠드조프 총독님과 우리 훈프 슈텐느 모두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음 맞는말이야’
‘그렇지 누가 혼자 한건 아니니까’
하는 주변귀족들의 소리와 함께 기리에스는 슬쩍 총독과 주변 귀족들의 눈치를 살피곤 조용히 찻잔을 들어 마시기시작했다. 그렇게 총독의 응접실의 정적이 얼마나 지속됐을까 못 참겠다는 듯 우트가 정적을 깨며 말했다.
“기껏 총독님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셨는데 이런 자리에서 알력싸움이나 하고 있다니 말이야 실력은 전투를 통해 가려야하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이게 뭔가 이런 자리라면 난 일 없으니 이만 가보겠네 내일 파티에 쓸 무기들과병사들을 확인해야 되서 말이야”
그런 뒤 우트는 자신의 호위병을 이끌고 응접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렇게우트가 나서자 다른귀족을도 하나하나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기리에스만이 총독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며 귀족들중 마지막으로 응접실을 나오게 되면서 커다란응접실 안에는 거대한 쿠드조프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허어..거참 친하게들 지내면 좋겠는데…”
무슨 영문이지 모르겠다는 쿠드조프는 ‘병기창’ 우트 슈미트에게 받은 롱소드를 허리에 차며 그렇게 마지막으로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응접실에서 짧은 회담이 있은 후 귀족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마차에 오르며 하나 둘 총독 관저를 떠나고 있었다. 후츠하이프룬의 크뤼거 가문 역시 화려하게 깃털장식이 된 마차에 오르고 있었으나 샤덴만은 마차에 오르지 않고따로 가기를 자청했다.
“어머니 아버지 혹시 상품들에 문제가 있진 않을지 따로 좀 확인해보고 와도 괜찮을까요”
샤덴의 말에 세르핀과 후츠하이프룬은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아무리베스테 뒷길에서 불법적인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이었지만 자기 자식의 의외의 행동을 눈치 못챌정도로 둔한 부모는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어머 샤덴 무슨일이니 그런말을 다하고”
장식된 부채뒤로 세르핀의 환희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샤덴은 조금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차분히 대답해 나가기 시작했다.
“저번에 어머님이 말씀하신대로 저희가 이렇게 유복하게 살수 있는 것도 제가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있는 것도 그들의 ‘땀과 노력’ 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럽지만허락해 주실 수 없으실까요”
그런 샤덴의 말에 후츠하이프룬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표시했고 그 뒤 후츠하이프룬의 손짓에 크뤼거가의 마차는 총독의 사저를 떠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샤덴은 마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한 후 옆에서 수행하던 메이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세실리아 아줌마 그럼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도련님, 도련님도조심 하세요”
“네 제 걱정은 마세요 세실리아 아줌마도 조심하시구요”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눈 세실리아와 샤덴은 자신의 상품들을 확인하기 위해 총독 사저를 나섰다.
고요한 베스테 항만 근처 집, 프로이데는 야심한 밤이 되도록 긴장감이가라앉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하던 머리정리도 왠지 모르게 더 신경쓰게 되었고대충 넣어놨던 붉은 드레스도 괜히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한번은 입어봐야겠지 싶어 꺼내어 놓고는 아직도 입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아닌 집안에 전신거울이 없기 때문에 입고나서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을 무렵 행인은 커녕 고양이 한마리 지나갈리 없는 위치에 있던 자신의 집에인기척을 알리는 소음과 함께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자로 잰듯한 일정한 박자에 어색함마저 느낀 프로이데는 한껏 긴장된 몸짓으로 문앞에 서며 물었다
“누구세요”
그러자 문밖의 인기척이 조용하게 대답해왔다
“뷰티 앤 아너의 세실리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