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read/30560365
1화입니다.
-
2.
에스켈에게는 오래 전 아버지에게서 받은 마구(魔具)가 있었다. ‘뒤늦은 불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것은 마구의 강함을 정하는 5단계의 기준에서 당당히 A등급의 판정을 받은 물건으로, 등급이 높을수록 희귀한 마구의 세계에서도 매우 희귀한 물건이었다.
여러 개의 파편이 달라붙은 듯한 대검의 모습을 한 그것은 그대로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모습은 주인이 시동어인 ‘뒤늦은 불꽃’의 이름을 외치는 순간 나타난다. 하나의 세검과 가벼운 무장의 몸 전체를 가리는 가시 갑옷의 형태로 주인의 모습을 뒤덮은 형태로 변화한 ‘뒤늦은 불꽃’은, 그 이름대로 주인의 행동의 궤적을 따라 한 발짝 늦은 불꽃을 뿜어내며 주인의 신체능력을 향상시키고, 몸을 보호한다.
이 물건은 본디 딜라이트가의 보물이 아니었고 모스가의 가보로 전해지던 물건이었다. 뛰어난 무장의 핏줄로 불리던 명문이었던 모스가였지만, 전쟁이 없는 시대와 융퉁성없는 가산의 운용으로 가문은 서서히 몰락해갔고, 라이얀이 태어날 무렵에는 귀족의 이름을 가진 빈민에 가까운 형편이었다. 이를 비관한 부친은 자살, 모친은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의 어려움에 어린 모스를 딜라이트가에 팔다시피 맡겼고, 딜라이트가의 당주, 로널드는 아이를 맡아주고, 귀족으로써 금전적인 모자람 없는 생활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모스가의 가보인 ‘뒤늦은 불꽃’을 양도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이 이어져온 경위를 알고 있음에도, 에스켈 T 딜라이트는 오늘도 스스럼없이 라이얀의 앞에서 그 물건을 사용하고 있었다.
“뒤늦은 불꽃!”
그것도
“도망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노움의 장난!”
그를 도발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어푹!”
땅을 기는 에벌레처럼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에스켈을 말을 타고 쫓아오며, 라이얀은 오늘도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가시가 잔뜩 돋아난 형태의 갑옷의 덩어리가 바닥을 기는 것은 얼핏 보면 거대한 돈벌레의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하였기에, 라이얀의 표정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에스켈은 주인을 보는 눈이 주인을 보는 눈 같지 않다는 것이 영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입을 열어 자신에게 미칠 해악을 더욱 늘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았다는 것이 10년 전에 비하면 발전한 점이었다.
“대체 왜 저만 보면 도망치려는 겁니까. 아침부터 성가시게 굴지 좀 마십시오. 수행원을 떼어놓고 가려는 주인이 대체 세상천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있네..”
에스켈은 겨우 편한 자세로 몸을 돌리고 누워 뒤늦은 불꽃을 해제시켰다. 그의 몸을 둘러싼 가시의 파편들이 그의 오른손에 들린 세검으로 빨려 들어가듯 모여들어 하나의 대검이 되는 것을 빤히 지켜보다가, 모스는 말에서 내려 그것을 집어 들었다.
“안되겠습니다. 오늘 같은 일이 없도록, 당분간 이 것은 제가 관리하도록 하죠.”
“아, 아.. 자, 잠시만? 모스군.”
“늘 부르시던 것처럼 라이얀이라고 부르시죠, 에스켈님.”
라이얀은 차갑게 말하며 대검을 등 뒤로 빗겨 매었다. 에스켈은 갑작스런 압수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입술만 뻐끔거리다, 몸을 꿈틀대며 마법의 범위 밖으로 미끄러지듯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귀족의 품위!”
말에 오르기 위해 등자에 발을 걸던 모스는 뱀이 기어오는 듯한 기묘한 소리에 에스켈을 향해 눈을 돌렸다가 그 아연실색할 모습에 기함을 하며 외쳤다.
“기사의 품위는 곧 검이라고!”
울 듯한 얼굴로 외치며 기어오는 에스켈의 모습이 모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말안장에 머리를 꾸욱 누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예전부터 에스켈은 그랬다.
딜라이트가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여섯 대공가 중 하나이면서도 저주에 걸린 듯 구성원의 운명은 기이했다. 대부분이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고, 에스켈의 어머니와 그의 위의 형제 둘 또한 불의의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덕분에 에스켈의 아버지 로널드와 그의 형인 펠릭스는 죽은 가족들의 대신이라도 되듯 에스켈을 애지중지 키워왔던 것이다. 그 덕분에 에스켈 T 딜라이트는 손이 많이가는 응석받이로 훌륭히 성장했고, 라이얀이 에스켈의 시종이 된 이후에는 라이얀이 그 모든 응석의 뒤처리를 감당해왔던 것이었다.
“그런.. 비굴.. 아니, 추한 모습을 보여도 검은 압수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압수에요!”
라이얀은 에스켈의 교육담당이기도 했기에, 로널드가 보면 안색이 파리해질 정도의 추태를 그저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스트레스로 지끈거리는 머리와 위를 부여잡으며, 라이얀은 그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추태를 벌이며 마법의 범위를 빠져나온 에스켈을 바라보았다.
에스켈은 마법 덕에 옷에 먼지 한톨 묻지 않은 것이 신기한 지 자신의 옷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라이얀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곤 자신의 형이나 아버지에게 하듯 애교를 담은 목소리로 눈을 찡긋, 하며 라이얀에게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모스군-”
“그 토할 것 같은 목소리도 자중해 주십시오, 에스켈님.”
라이얀은 파리해진 얼굴로 입을 가린 채 뒤로 물러나 이런 애교를 허허 웃으며 받아주는 딜라이트가의 남성들을 아직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앞으로도 이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 애교가 자신한테 먹히지 않는 것을 모른 채 10여년 가까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에스켈의 징그러운 모습을 계속 봐주기는 힘들었기에, 라이얀은 서둘러 말 위에 올랐다.
“에스켈님, 이런 길바닥에서 낭비할 시간은 없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그래도- 검만 돌려주며..”
“공기 정령의 화살.”
결국엔 참지 못한 라이얀이 에스켈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영창을 하며 손을 뻗자 그의 손끝에서부터 무형의 화살이 맺히듯 형성되어 에스켈에게 날아들었다.
“와악!”
에스켈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자, 애초에 그의 몸을 향해 조준되었던 마법이 그대로 에스켈의 머리에 직격했다. 펑,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에스켈은 긴 비명을 지르며 땅을 나뒹굴었고, 이윽고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 라이얀은 그 일련의 상황을 처음에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점차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감정의 방향을 조정해, 이내 침착한(차거운) 얼굴로 에스켈을 내려 보았다.
“에스켈님, 에스켈님은 혹시 장래 직업을 공갈협박범으로 잡고 있으신 건지?”
라이얀의 차가운 목소리에 에스켈은 살짝 몸을 움찔, 떨었지만 여전히 땅 위에 드러누운 그대로 였다. 라이얀은 그런 에스켈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차고는 발의 배를 가볍게 차며 고삐를 쥐었다.
“먼저 갑니다.”
라이얀이 이렇게 침착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쓴 마법의 유래에 있었다. 본디 공기정령의 화살이란 마법은 마법사의 탑에서 말 안 듣는 제자를 어떻게든 체벌은 하고 싶지만 마법사의 체면에 물리공격이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한 마법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마법이었다.
마력을 얼마나 싣는가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 되는 이 마법은 그 은밀성과 높은 마력효용성에 이제 와서는 마법사들의 기본적인 공격수단으로 쓰이지만, 라이얀이 사용한 것은 분필을 던져 맞추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라이얀이 침착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에스켈의 질릴 줄 모르는 발연기의 퍼레이드 덕분이었다. 머리가 맞는 순간에서부터 몇초 늦게 시작된 비명이나, 쓸데없이 장렬한 비명과 헤드뱅잉, 그리고 트레뷸셋에 맞기라도 한 듯한 긴 비행거리를 지닌 몸 던지기까지. 마지막의 꿈틀거림에 와서는 방금 전의 벌레 같았던 에스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 라이얀은 속으로 걱정한 자신의 바보 같음을 한탄할 지경이었다.
“아, 라이얀, 라이얀! 같이 가자고!”
“2안(1안=성인 한 사람이 시야가 닿는 곳까지의 길이, 상인들이 편한대로 쓰던 것이 이제는 도량법의 기준으로 자리 잡혔다.) 정도 뒤에서 봅시다.”
“아 잠깐 기다리라니까!”
따라붙는 다급한 에스켈의 발소리에 라이얀은 오히려 말을 재촉하듯 고삐를 흔들며 앞으로 향했다. 하지만 에스켈도 일단은 서임을 받을 기사이니 만큼 어느정도의 각력이 단련되어 있기는 했고, 라이얀 또한 겉으로는 냉정한 척했지만 어느 정도는 봐주며 말을 몰아준 덕에, 에스켈은 금세 라이얀을 쫓아와 말꼬리를 붙잡았다.
“라이얀~ 미안해..”
사과의 말을 하며 말꼬리를 잡아당기는 에스켈의 목소리에 라이얀은 이제 슬슬 조금 풀어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가, 에스켈의 손이 닿아있는 곳을 보고 다시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의 주인이 여러 가지 상황에 있어 문외한에 가깝다곤 해도, 기사 서임을 받은-그 서임이 비록 아버지의 주선과 뇌물에 있었다해도-한사람의 기사였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일이 잦은 기사들에 있어, ‘말의 뒤’라는 위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말의 꼬리를 잡아당기는 행위는 말에게 있어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지에 대한 것은 기본 상식과 같은 것이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지할 줄이야.’
경악에 가까운 라이얀의 표정이 지어진 것과, 말의 뒷발굽이 뻗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에스켈의 몸은 과장 하나 없이 붕 떠서 날아갔고, 라이얀은 걱정을 먼저 할지 환멸을 먼저 할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나가떨어진 에스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보통이라면 말발굽에 차여 날아간 주인의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겠지만, 어린애나 할 법한 그 어리석은 행위에 라이얀의 머릿속은 이 멍청이가 자신의 주인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에스켈님은 마구간에만 가면 유독 말꼬리에 집착하셨지. 그때에야 사용인들이 잘 막아주었었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마구간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흙투성이가 되곤 하셨었어. 정말 별 수 없는 바보라니까..’
라이얀은 후후.. 하고 작게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하다, 곧 들려온 에스켈의 작은 신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에스켈님!”
“아야야야..”
한심한 목소리를 내며 팔을 부여잡고 일어나는 에스켈의 모습에 라이얀은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며 에스켈을 부축하듯 붙잡아주었다.
“기사라는 사람이 말 뒤가 위험한 것도 모르십니까! 말꼬리를 그렇게 잡아당기면 말이 화를 낸다는 것도 아셨어야죠!”
걱정과 염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분노가 깃든 라이얀의 목소리에, 에스켈은 말발굽에 채인 것인지 부어오른 팔을 매만지며 하하, 하고 작게 웃고는 이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하지만 말꼬리는 보면 만지고 싶잖아!”
“알면 하지 말라고요!”
에스켈의 의기양양한, 반성 없는 목소리에 라이얀은 기어코 에스켈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거세게 후려치며 외쳤다. 그 탓에 고개가 앞으로 크게 숙여진 에스켈은 균형을 잃고 앞쪽으로 넘어질 뻔하다, 겨우 자세를 다시 잡으며 일어나 라이얀을 돌아보며 외쳤다.
“포니테일이 뭐가 나빠! 포니테일을 했을 때 보이는 그 유려한 목선이 나는 좋다고!”
“말궁둥이 어디에 목선이 있단 거야!”
라이얀은 다시금 에스켈의 머리를 수도로 내려치곤 뒤늦은 불꽃을 던지듯 에스켈에게 건네었다.
“이걸로 일단은 다친 부분만 감싸두세요!”
에스켈은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눈물을 찔끔 흘리다 이내 다시 돌아온 뒤늦은 불꽃을 보고는 그것은 일부만 전개해 팔을 감싸며 버럭 소리쳤다.
“고맙다!”
“소리는 그만 치고!”
라이얀은 다시금 에스켈의 머리에 타격을 가하려다, 그가 자신의 주인임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키며 손을 내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을 되돌려드린 대신, 앞으로 이런 바보 같은 짓도, 상황도 더는 겪고 싶지 않으니, 제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라이얀은 그렇게 말하며 길가의 길게 자란 잡초 몇 개를 뜯어내어 고리처럼 엮어선 에스켈의 양 손목에 묶었다. 그리곤 에스켈의 양 손목을 잡고는 몇 마디의 영창을 중얼거렸다.
“드라이어드의 수갑.”
라이얀의 마력이 에스켈의 손목을 감은 잡초 고리에 스며들자, 잡초는 덩굴처럼 굵고 튼튼하게 자라나더니, 이내 에스켈의 양 손목에 길게 이어진 수갑처럼 변화했다. 에스켈은 처음에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 과정을 바라보다, 이내 자신이 지금 당한 처사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듯한 눈으로 라이얀을 바라보았다.
“라이얀..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 보시다시피, 더 이상 에스켈님의 만행들을 참아드릴 생각이 없기에, 에스켈님을 구속한 것뿐입니다. 자, 얼른 말에 타시죠. 이 길바닥에서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은 건지 정말. 내일 중에는 루셔가에 도착해야한다는 자각이 없으신 겁니까?”
라이얀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투덜대며 에스켈의 수갑을 잡아끌었다. 에스켈은 어벙벙한 얼굴로 라이얀의 손길을 따라 말에 끌어올려졌고, 후송당하는 죄인 같은 모습으로 라이얀의 등 뒤에 매달려 루셔가로 가는 마지막 여로에 올랐다.
-
구분을 연재로 해야할지 판타지로 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괜찮으시다면 여러 의견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화 입니다.
http://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read/30560387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