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훈의 외침에 잠시 석실 내부에 침묵이 감돌았다.
“다콰즈! 분명, 들은 적 있습니다! 마법왕국을 이끌던 위대한 왕이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해 스스로 리치가 되었다고 하는, 인류의 배반자!”
[……호오, 이 몸의 명성이 그렇게까지 알려졌는가.]
침묵을 깬 것은 호프였다.
“이름이 그 따위면 알려지는 게 당연하겠지!”
[…….]
태훈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크, 크흠. 어찌되었든 이 몸은 마왕군의 제1군단장이었던 몸! 그런 몸을 깨우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뭐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몸을 깨웠다면 그 목숨을 내놓겠다는 뜻이렸다? 자, 살고 싶다면 이 다콰즈 님에게 빌어보아라!]
다콰즈는 양손을 펼쳐 로브를 펄럭이며 말했다.
“거참 잘 부서질 것 같은 약한 이름이네.”
[남의 이름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마!]
아무렇지도 않은 태훈의 반응에 다콰즈가 소리쳤다.
[다시 한 번 소개하지! 이 몸은 마왕군 제1군의 군단장이자 너희 인간 놈들의 죽음을 지배할, 죽음을 극복한 마법사왕, 리치킹 다콰즈! 가서 전해라, 인간들아! 우리 마왕군의 침공을 막는 용사라는 자, 죽음이 두렵다면 물러날 것을 말이다!]
낮고 소름이 돋을 듯한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치는 다콰즈를 보며 태훈은,
“개소리마!”
라고 외치고 있었다.
[?!]
태훈의 반응에 다콰즈는 당황한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왕군 군단장이라고? 그럼 널 잡으면 마왕이란 놈도 족칠 수 있다는 거 아냐? 그럼 내가 왜 물러나냐고!”
현재 이 영혼, 앞뒤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희 잡으려고 수능도 못 치고 이 세계로 소환 당했는데, 물러날 것 같냐? 죽음을 극복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는데, 너 잘 만났다! 그냥 여기서 요절을……!”
“으아아, 진정해요, 안태훈 씨!”
그리고 발광하는 태훈을 옆에서 티유가 뜯어말렸다.
[대, 대체 무엇인가 저건. 이 몸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알 게 뭐야, 이 해골대가리야!”
[해, 해골대가리?! 이 노옴! 감히 위대한 이 리치킹께 그딴 언동이라니!]
“웃기고 있네! 이름도 쉽게 부서질 것 같은 주제에! 그리고 마왕군 군단장 이름이 다콰즈면 뭐 마왕 이름은 마카롱이나 샤브레라도 되냐?!”
[네놈이 그걸 어떻게?!]
“……어, 진짜?”
다콰즈의 반응에 태훈은 당황했다.
[그 언동도 그렇고, 마왕님의 존함까지 알고 있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자로군!]
다콰즈는 목소리를 떨며 크게 분노했다.
[이곳에서 없애주마!]
다콰즈의 외침과 함께 그의 눈이 더욱 더 붉은 빛을 뿜어냈고, 그 빛은 모두의 시야를 가리기에 충분했다.
“윽!”
태훈이 빛에 시야가 가려진 순간, 오른쪽 손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뭐, 뭐야?!”
통증에 오른손을 감싸쥐고 앞을 보자 그곳에는 다콰즈가 없었다.
“저기예요!”
건너편에서 티유가 가리킨 곳은 계단이었다. 그 앞에 다콰즈가 떠 있었다.
[저주를 내려주마! 그리 자신이 있다면, 3시간 이내에 이 리치킹을 쓰러뜨리러 오거라! 만약 네놈의 운이 좋다면 이 몸을 쓰러뜨려 저주를 풀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만약 그리 못 한다면…….]
그 말과 함께 그의 눈이 붉게 빛나는 것을 보자, 태훈의 몸에 오한이 왔다. 오한뿐만이 아니라, 구토감과 알 수 없는 통증까지 같이 왔다.
“으웁?!”
태훈은 입을 막으며 휘청거렸다.
“아, 안태훈 씨?! 왜 그러세요!?”
놀란 티유는 태훈이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해골대가리!”
태훈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호프는 검을 뽑아들며 다콰즈에게 외쳤다.
[닥쳐! 해골대가리가 아니다! 리치킹이시다!]
다콰즈는 정말 화가 난 듯이 크게 소리쳤다.
[1시간 이내에 이 몸을 쓰러뜨리지 못 한다면, 그때는 그 용사가 죽을 것이다! 어디, 마음껏 발버둥 치다 죽어보아라, 용사여,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노옴!”
호프는 분노하며 그를 향해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곳에 다콰즈의 모습을 없었다.
[이 위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하하하하하…….]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며 조용해지며 낮은 울림과 함께 석실의 문이 잠겼다.
“언니, 빨리 치유를!”
“안 돼. 리치의 저주는 티케 여신의 축복으로는 해결할 수 없단다.”
티유의 말에 데미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용사님.”
티유와 호프는 태훈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태훈 님을 살리려면, 리치킹을 쓰러뜨릴 수밖에 없어.”
“하, 하지만 리치킹은…….”
데미스의 말에 티유는 머뭇거렸다.
“죽음마저 극복한 미치광이 마법사왕이에요! 저 같은 사람보다 더 강한 존재라고요.”
티유는 안절부절못하며 그렇게 말했다.
“엿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태훈은 비틀거리면서 어떻게든 일어났다.
“이 정도 오한, 감기몸살 정도라고. 교육과정에 12년을 바쳐온 인생인데, 그 정도로 죽을 것 같아?”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표정을 하면서도 태훈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점점 더 강해질 거예요, 태훈 님.”
데미스는 그렇게 말하며 태훈을 바라봤다.
“하, 내가 죽을 것 같냐. 빌어먹을 수능을 치지 않는 이상에는 안 죽어.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는 게 내 인생 계획이라고. 평범함에 대한 나의 욕망을 뭘로 보는 거야, 그 해골대가리 자식.”
태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
“하지만 안태훈 씨.”
“말했잖아. 이 정도는 감기 몸살이라고.”
“감기 몸살도 함부로 움직이면 죽어요!”
“……그건 그런데.”
티유의 너무나 당연한 지적에 태훈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방법이 없잖아. 1시간 안에 다른 곳에 있는 신관을 불러다가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거고.”
“확실히, 태훈 님의 말씀대로예요.”
태훈의 말에 데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야, 데미스.”
호프의 말에 태훈은 데미스를 불렀다.
“네?”
“너 아주 방법이 없지는 않지?”
“후후후, 그렇게 물어보시면 딱히 드릴 말씀이 없긴 하지만, 네.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랍니다.”
“좋아. 그러면 이제 내 얘기 잘 들어라, 너희들. 어차피 내 생명 카운트다운까지 1시간 밖에 안 남았으니까, 도박을 하나 하도록 하자.”
“도, 도박이요?”
“그래.”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내가 수능 말고는 도박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목숨이랑 인생계획이 달린 상황인데, 뭐 어쩌겠어. 한 번 걸어봐야지.”
그의 손에는 자신을 포함한 네 사람의 능력치가 기입된 카드가 들려 있었다.
“데미스 님, 용사님의 용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어요.”
태훈의 몸 상태를 묻는 호프에게 대답하며 데미스는 자신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운 태훈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호프, 문은요?”
“열릴 것 같지 않습니다.”
호프는 휘두르던 검을 내려놓으며 지친 듯한 기색을 냈다.
“큰일이네요. 안태훈 씨는 점점 죽어가고 있고.”
티유는 그렇게 말하며 태훈을 돌아보았다. 숨소리도 조금씩 약해지고 있는 게 죽기 일보직전인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제 마법으로……!”
“그러면 탈출하기도 전에 우리가 죽겠다.”
티유의 말에 방금 전까지 숨을 몰아쉬던 태훈이 힘겹게 말했다.
“……아무리 제 마법을 못 믿겠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은 좀 가슴 아픈데요. 하지만 어떡하실 건데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머리 울린다. 소리치지 마.”
태훈은 낮게 짜증을 내며 귀를 막았다.
“야, 데미스.”
“네?”
“얼마 지났냐?”
“이제 10분, 정도 지났네요.”
“10분? ……야, 솔직히 그 해골대가리한테 저주 걸린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긴 한데, 네들 너무한 거 아니냐. 검사라는 건 10분 만에 지쳐서 헥헥거리고, 마법사란 건 제대로 된 마법도 못 써서 도움도 안 되고. 그나마 도움이 되는 건 이 인성파탄 신관 말고는 없잖아.”
태훈의 말에 티유와 호프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젠장. 데미스, 치유 마법 좀 걸어봐.”
“알겠어요.”
데미스는 태훈의 말대로 그에게 치유 마법을 걸었다. 녹색의 빛이 태훈을 감쌌고,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지 태훈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마음 급한 건 알겠고, 나도 여기서 이딴 걸로 죽고 싶지 않아.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는 게 평생의 소원인 사람이거든?”
“그건 알겠지만요. 하지만 여기를 돌파하지 못 하면 안태훈 씨는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도박을 걸 거라고.”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카드를 꺼내들었다.
“내 능력치랑, 너희의 능력치에 다 걸 거야. 여기서 중요한 건, 너희 능력치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다.”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젠장. 이렇게까지 지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기운이 없어. 아무튼, 남은 시간은 50분이야. 그 안에 저 문을 박살내고, 올라가서 그 해골대가리를 박살낼 거다.”
“그래야죠. 안 그러면 안태훈 씨가 죽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아, 잠깐만. 데미스, 일단 나한테 치유 좀 걸어봐.”
“알겠어요. 후후, 그나저나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저…….”
“힘들어 죽겠으니까 제발 좀.”
“후후후.”
데미스는 웃으며 태훈에게 치유 마법을 다시 걸어주었다.
“후우.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 가지, 좋은 계책이 있다.”
“계책요?”
“하아, 그래. 계책.”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데미스와 티유를 보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너희 둘이 고생 좀 해줘야겠다.”
공동묘지의 공중, 다콰즈는 그곳에 뜬 채 멀리 보이는 왕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오오, 이 기운! 분명 마왕님의 마기다!]
다콰즈는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환희에 가득찬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 마왕군의 침략이 시작되고 있었구나! 이 어찌 경사스럽지 않으리! 마왕님의 뜻을 받들어 이 리치킹, 다콰즈! 우선은 이 가증스런 용사의 왕국을 바치겠나이다!]
다콰즈는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펼쳤다.
[자아, 이곳에 잠든 모든 이들이여, 깨어날지어다! 그대들의 주인이자, 영혼의 소유자인 이 몸, 다콰즈의 명에 따라 이 나라를 도륙하라! 리바이벌……!]
다콰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아래에 있던 하얀 무덤이 폭발했다.
[뭣?! 아직 주문도 안 외웠는데?! 얼마나 성질이 급한 언데드인 것이냐!]
다콰즈는 당황하며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쿨럭! 쿨럭!”
“으으, 앞으로는 생각 좀 하고 저지르세요! 죽을 뻔 했다고요!”
“닥쳐! 어쨌든 빠져나왔잖아! 그리고 그거 너한테 들으니까 엄청 짜증난다!”
“이 사람, 자기가 죽기 직전이라고 완전히 막나가기로 했나요?! 저희까지 길동무로 삼고 싶으셨던 거예요?!”
“내가 전에 말 안 했냐?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넌 끌고 갈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죽을 거면 혼자 죽으세요! 콜록, 콜록!”
“두 분 다 진정하십시오!”
“후후후후, 기운이 넘치시네요. 치유 마법은 필요 없으신가요?”
“아니, 필요해.”
요란스러운 대화에 다콰즈는 입을 벌렸다.
[뭐, 무슨……?! 지금쯤이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할 텐데?!]
“아니다, 이 리치야.”
[뭐? 아니, 하지만, 분명 탈출할 방법은 없었을 텐데?! 그 무덤의 문은 웬만한 마법이 아니면 열지 못 하게 되어있었을 텐데!]
다콰즈는 격분하며 그렇게 외쳤다.
[대체 어떻게 그 문을 연 거냐!]
“그야 당연히 우리에게는 이 민폐 덩어리 마법사가 있으니까.”
[뭐?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 거냐?]
“그야 티유의 마법은 하늘을 뚫을 마법이기 때문이다아아아! 커헉! 쿨럭, 쿨럭!”
태훈은 그렇게 소리친 뒤 피를 토했다.
“안태훈 씨, 그러게 소리치지 말라니까요! 몸도 성치 않으면서!”
[하, 하늘을 뚫을 마법이라고? 그건 또 무슨 되도 않은 헛소리냐! 고대에도 없던 그런 이상한 마법을 현재의 마법사가 해낼 리가 없다! 대체 어떻게 빠져나왔단 말이냐! 이 몸의 계산이 맞다면, 분명 네놈들은 왕궁 침략이 완전히 끝나고 난 뒤, 마왕님의 앞에서 죽었어야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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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말고사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이야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계속 읽어주시는 분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