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은 바지에 묻은 눈을 털고 일어났다.
“폰 잃어버렸지?”
누나에게 반말로 말하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상대방도 반말하고 있으니 상관없을 거라 시원은 생각했다.
“응. 맞아. 주웠어?”
예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얘랑 부딪힐 때였구나.
“뭐... 그런 셈인데.......”
시원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폰은 가지고 있지 않다.
좀 전에 안내 방송에 나왔던 한예원의 이종 사촌 박현준이 가지고 있다.
부딪히고 나서 따라갔다가 뺨 맞는걸 보고........ 지금에 이르렀는데.
이걸 다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그 와중에 희생된 내 소중한 폴더들.
그들의 숭고한 소멸은 절대 빠뜨릴 수가 없다고!?
영화로 치면 클라이막스라고?
“......그런 셈이라니, 그게 뭔데?”
난감한 표정을 짓는 시원을 향해 예원이 물었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탁, 하고 넘겨 줄 거라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더니 그대로 침묵.
예원은 불길한 예감에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고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이름도 알고 있고.
어쩌면 부딪힌 것도 계획적인 일일지도.
이런 인적이 드문 곳까지 쫓아와서.......
“스토커!?”
예원은 양팔로 몸을 감싸면서 한걸음 물러섰다.
“뭐, 뭐라고?”
시원도 놀라서 한걸음 물러섰다.
“뭐, 뭘 원하는 데?"
"원하는 거 없어!"
".......모, 몸은 줘도 마음은 못 줘!”
시원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이 녀석도 세연이랑 좀 비슷한 구석이 있구만.
뭐, 세연이라면 “나 고문 받는 거 좋아해.” 라며 내 반응까지 다 헤아리고서 멀리,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곳까지 아주 멀리 가버렸겠지만.......
아니, 나 고문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별로가 아니라 안 좋아해!
해본 적도 없어!
스토커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몸은 줄 거야?”
“닥쳐. 죽어. 그냥 죽어.”
“니 몸 따윈 관심 없거든!?”
“그럼 뭐야?! 폰 같은 거 훔쳐서 얼굴에 비비거나.......”
예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변태 자식.
부딪혔을 때도 팬티나 빤히 바라봤었지.
“비비거나 뭐?”
시원은 발끈했다.
내가 초딩이나 중딩이냐!
그런 짓하게.
아, 중딩이긴 하지.
폰하나 구했, 비벼보싈?
“.......폰이나 내놔.”
“없어.”
“없다고!? 너, 너! 내 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 짓도 안했다고! 비비지도 않았고! 핥지도 않았어!”
“.......핥았어?”
“.......아니.”
이래선 도저히 끝이 없겟다 싶어진 시원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얘는 대체 이제까지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길래 이런 반응이야?
“폰 주웠다가 폰 주인에게 스토커 취급당했다. 질문 받는다!”
“그거 뭐야?”
시원의 외침에 예원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표정이 잘 안보여서 상대가 어떤 느낌인지 잘 알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물어보면 답해주겠다는 거다.”
예원의 이마에 십자 주름이 빠직, 하고 생겼다.
이 녀석 뭔가 으스대는 것 같다.
스토커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건 뭐 그것대로 다행이지만......
질문 받지 말고 그냥 설명하라고! 댕청아!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방송 나올 때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걸로?
예원은 의혹을 거둘 수 없었다.
“니가 말했잖아.”
“내가?”
“한예원 맞다고 니가 니 입으로......”
“아. 진짜!”
왜 그런 걸 묻느냐는 태도에 예원은 상대방의 말을 확 잘라버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식 엄청 짜증나!
“니가 먼저 물었잖아. 한예원 맞냐고. 왜 그렇게 물었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아.......”
“왜?”
예원의 다그침에 시원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했다.
“니 폰에 뜬 메시지 알람들에 너 부르는 걸 봤고, 니 사촌 오빠도 널 그렇게 불렀고.”
“사촌 오빠?”
“......어머님 아들요.”
“아.”
사촌 오빠 이야기를 듣자마자 생각에 잠긴 예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원.
시원은 다음에 올 질문을 예상해보고는 우울해졌다.
분명히 그거랑 내가 얘를 한예원이라고 여긴 거랑 무슨 관계가 있냐고 그럴 거고 그럼 또 기나긴 설명을 해야겠지.
제대로 설명하려면 소설로 치면 10페이지는 족히 나온단 말야.
그만해.
독자들의 HP는 이미 제로야.
“내 폰은 어딨어?”
예원이 말했다.
예원도 시원의 대답에 엄청나게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어버렸단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캐묻고 싶진 않았다.
스토커가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했다.
사촌 오빠로 알고 있긴 해도 현준이를 아는 눈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궁금하긴 하지만.......
폰만 회수할 수 있다면 됐어.
이런 느낌의 대화는 이미 자주 겪었지.
예원은 프로그래머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래도 이 정도로 꽉 막힌 건 아니었지만.
“너네 사촌 오빠한테 맡겼어.”
시원이 대답했다.
예상과는 다른 질문에 시원은 안도했다.
10페이지를 더 읽지 않아도 된 독자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오빠랑 만났어?”
“응.”
“스토커 맞아?”
“아냐.”
거봐.
이 녀석 틀림없이 이과에 프로그래머야.
예원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었다.
“핥았어?”
“아니! 그런 짓 안 한다고!”
“폰에다 아무 짓도 안했지?”
“......아니.”
시원은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USB 파일을 복사했었다.
멋대로 그런 일을 했다.
옳지 않은 일이다.
예원은 시원의 그런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뭐 했어!?”
“......알람으로 온 메시지 내용 본 것 뿐이야. apk 최종 버전이 어떻고 저떻고. 너네 팀원들이 너 찾는 것도 봤고. 하도 폰 울려대서 어쩔 수 없었어. 미안하다. 멋대로 봐서. 워낙 급해보여서 너 찾으려 했는데 사촌 오빠 분이랑 만나게 돼서 드렸어.”
(*apk :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앱 설치 파일)
시원은 그렇게 둘러대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노트북으로 옮긴 파일은 돌아가서 지우자.
폰 주인 찾으려고 한 일이었고 목적은 달성했다.
시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라? 근데 뭐지?
한예원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단 걸 시원은 깨달았다.
역시 남의 폰 멋대로 보는 게 아니었어.
시원은 여자애가 난리칠걸 예상하며 목을 움츠렸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 으응. 아니, 미안할거 까진.......”
예원은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예원으로선 의외였다.
그런 일로 사과 받을 줄도 몰랐고, 자기 입으로 그런 일을 실토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있을 줄도 몰랐다.
상황은 대충 이해했어.
이 사람은 스토커도 아니고 변태도 아닐뿐더러 폰 주워준 사람.
은인.
그런 걸로 사과까지 받다니 적반하장이지.
“그러니까...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
“고, 고마워. 폰 주워줘서. 그리고 오해해서 미안해.”
예원은 까닥 하고 고개를 숙였다.
시원은 예원의 반응에 크게 당황했다.
이렇게 똑 부러지게 고맙다고 할 줄은 몰랐다.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이라기 보다는 그래야한다고 해서 한 일들 뿐인데.
“아, 아니. 나, 나도.......”
나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 했는 걸.
시원은 마주 고개를 까닥 숙이며 중얼거렸다.
설명하기 귀찮다는 건 핑계다.
말 주변이 그렇게 좋지 않다.
세연이랑 지내서, 라는 것도 핑계다.
그냥 자신의 스탯일 뿐이다.
세연이랑 떨어지고 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평범한 대화는 괜찮지만 무언가를 설명하는 게 힘들다.
명제를 세우고 논리를 쌓아나가는 데엔 익숙해도 그걸 말로 표현하는 일은 어렵다.
어라. 인과 관계가 이상해?
세연이랑 같이 있어서, 가 아니라 이래서 세연이랑 문제없이 지냈던 건가?
고개를 든 시원은 갑자기 깔린 어색한 침묵과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예원의 시선이 쑥스러워서 발치를 쳐다보았다.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
“아니. 그런 거 바라고 한 일 아니라서.”
시원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깔렸다.
“개발자....맞아?”
예원은 머뭇머뭇하면서 입을 열었다.
뭔가 어색했다.
그래서 일부러 말 끝을 활기차게 덧붙였다.
“아니. 아냐.”
“프로그래머인줄 알았는데.”
“그냥 취미야. apk가 뭔 지는 아는 그 정도. 별거 아냐.”
“난 기획.”
“아....... 그렇구나. 참. 안 급해?”
시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화제를 바꾸었다.
“사촌 오빠나 팀원들이 엄청 찾고 있잖아.”
“아....... 괜찮아. 이젠 서두를 필요도 없고. 그런다고 탈락한 게 바뀌지도 않고.”
예원은 무심결에 그렇게 털어놓았다.
“탈락?”
“인디 게임 컨테스트. 알아?”
“.......알아.”
모를 리가 없지.
시원은 생각했다.
“근데 그거 3차 통보도 일주일 전이었잖아? 그런데 왜 오늘 그렇게.......”
팀원들도 그렇고 눈 앞의 여자애도 그렇고 왜 이제와서?
시원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리허설 때 프로그램이 뻗어버렸거든. 그래서 오늘 탈락 결정 났어. 그래서 다들 놀랬을 거야. 나도 놀라서 온 거고. 그래서 너한테도 부딪히고.”
아빠한테도 그래서 그런 거고.
예원은 말을 삼켰다.
“아....... 아. 그래서 그랬구나.”
시원은 서로 부딪혔을 때를 떠올렸다.
황망히 서두르던 모습.
뭔 가에 홀린 듯한.
그리고 뒤집혔던 치마와 물방울 무늬 팬티가 차례차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예원은 시원의 수긍에 얼굴을 붉혔다.
폰 찾아주려 했었지.
아빠랑 있었던 일도 다 봤을 거야.
“......봤어?”
“어? .......물방울 무늬?”
뭐 그런걸 가지고 얼굴을 붉히고 그래? 하며 시원은 대답했다.
탁, 하고 짖쳐든 예원의 한 발짝.
시원이 엇? 하고 놀라는 사이 예원은 시원의 품 안에 있었고 시원의 심장에 코크스크류 펀치가 작렬했다.
시원의 몸이 ㄹ자로 꺽였다.
“크윽.”
시원은 무릎을 꿇었다.
아픈 쪽 무릎이었다.
“진짜...... 델리커시가 없어. 델리커시가. 너 남중에 남고지? 여자랑 말 섞어 본적도 없지? 꼭 이런 애들이 십이월 이십오일이 뭐냐고 여자가 톡 보내면 0.48 같은 답이나 보내지.”
예원은 폭발했다.
머릿속에 그 딴 생각밖에 없는 놈에게 뭘 털어놓고 있었던 거야?
정말 최악.
저질.
죽어라.
나쁜 자식.
링의 로프를 잡고 일어나는 복서처럼 시원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거 인터넷 유머냐? 유머였냐?
초6때 세연에게 [12-25 가 뭔지 알아?] 하고 메시지를 보냈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꺼내서 같이 지내고 싶었었다.
0.48초도 되지 않아 답이 왔다.
[정수나 유리수 범위 내에서 답하면 되는 문제야? 아니면 자연수?] 라고.
그걸 보면서 세연이가 정말 심각하게 글러먹었다고 새삼 생각했었다.
“너야 말로 여중에 여고냐? 팬티가지고 뭘 그래? 본다고 닳아? 그리고 나 여자랑 맨날 말 섞거든!? 팬티 따위는 맨날 봐서 아무런 느낌도 없거든!”
“어?”
“음?”
“아. 더...문란해.”
“너 지금 더러워라고 하려고 했지.”
“맞아.”
“웃기지마! 여동생 팬티라고. 니가 상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집에 가면 팬티 따위 널부러져있다고.
여기저기. 후후훗.
시원은 벽에 기댄 채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내 상상보다 더 하잖아!?”
“......그만 상상해. 니 상상보다 더 대단한 게 이 세상에 있을 거 같진 않다.”
“별로 상상하는 거 없는데? 진실이 눈앞에 있는데 상상할 필요가 뭐가 있어?”
“무슨 진실.”
“내 눈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변태에 로리콘에 스토커에 매일같이 여동생 팬티나 훔쳐대는 동정이란 거.”
“니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천만에요.”
“칭찬한 거 아냐!”
“나도 그래.”
으아아아.
진짜.
한마디 한마디 질 생각이 없구나.
시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원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이래서 프로그래머들은 짜증나!
예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폰 주워준 사람에게 잘도 그런 누명을...... 사례는 못할망정 너무한 거 아냐?”
“니가 싫다고 했잖아. 그럼 계좌번호 불러. 내 폰 살 때 가격 20프로 줄테니까.”
둘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가득 묻어났다.
“됐어.”
“아니. 그 딴 소리 못하게 제대로 할 테니까. 얼른 불러.”
“됐다고. 돈 바라고 한 일 아니라니까. 난 간다.”
시원이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시원의 배에서 굉음이 울렸다.
꾸르르르르르르르릉-
“.......................어.”
시원은 깜짝 놀랬다.
이제껏 살면서 인간의 뱃속에서 그런 소리가 소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너 지금 그거 웃기려고 한 거야?”
풉, 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은 예원이 얼굴 근육을 씰룩거리면서 물었다.
“이런 걸 일부러 할 수 있겠냐!”
“할 수 있으면 편리하겠네.”
“어디다 쓰게?”
“회식자리에서 장기자랑?”
“회식?”
“모임 뒷풀이나.”
“오....... 그래?”
“그렇긴 뭐가 그래. 바보냐?”
“네네. 전 스토커에 바보에 여동생 팬티나 뒤집어쓰는 변태입니다.”
“동정은 왜 빼?”
“.......그냥. 어쨋건 난 간다.”
시원은 이번에야말로, 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는데 등 뒤에서 예원이가 시원을 불렀다.
“그럼 밥이라도 살게.”
예원이 말했다.
예원도 배가 고팠다.
어차피 밥은 먹어야하고 지금 당장 팀원들이나 현준이를 보는 건 싫었다.
제대로 먹고 부어오른 뺨도 식히고 그러고 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사례가 어떻느니 그런 말 들은 이상 물러설 수 없지! 라는 그런 오기도 있었고.
“아니. 정말 괜찮아. 아까 했던 말 신경쓰지마. 농담이니까.”
시원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말 심하게 하고 드센 녀석이었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은근 세연이랑 사이 좋게 지낼 때 느낌이 나기도 했고.
어쨋건 눈도 계속 오는데 이젠 퇴장할 때지.
시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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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은 길을 따라 멀어지는 남자애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더 권하지는 않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그럼 뭐, 나 혼자서 먹어야겠네.
혼밥은 익숙한 일이니까.
한예원은 원래 혼밥충입니다.
그렇게 맘 먹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은 그치지 않았다.
저 멀리서 색이 훨씬 짙은 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후엔 눈이 더 심하게 쏟아질 것 같았다.
시야가 눈 때문에 더 흐릿했다.
경사가 야트막한 길이었지만 꽤 쌓인 눈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예원은 벽에 손을 짚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그 때였다.
“괜찮아?”
좀 전의 남자애였다.
예원은 깜짝 놀라 몸을 굳혔다.
맞아. 나 얘 이름도 모르네.
그런 생각을 멍청하니 하면서 바라보았다.
“넘어졌을 때 어디 다쳤어?”
“아니. 그냥.......”
뭐야. 작업 거는 거야?
변태에 스토커에 여동생 팬티나 뒤집어쓰는 동정남 주제에, 배로 이상한 소리나 내는 주제에.
“렌즈 잃어버려서 그래. 아픈 데는 없으니까....... 신경 쓰지마.”
아픈 건 마음뿐이야.
그것도 이젠 괜찮아.
“자.”
남자애가 손을 내밀었다.
예원은 그 손을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들어 남자애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전히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딴 데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애가 엄청 부끄러워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손 잡아줘. 폰 주워준 사례로.”
“뭐?”
“여친이라곤 사귀어 본 적도 없는 동정이라 밥 보단 그게 훨씬 좋을 거 같으니까. 뭣 하면 벽 대신이라고 생각하든지.”
“지금 나 꼬시는 거야?”
“아빠한테 맞고 얼굴 퉁퉁부은 사람 꼬시는 놈이 어딨어.”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남자애의 말이 맞았다.
뭔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감정이 이상하게 날뛴다.
해야 할 일들을 얼른 해치우고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싶다.
자고나면 나아지겠지.
예원은 남자애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동정은 동정이네. 손 잡아주는 게 사례라니.”
“시끄러.”
“밥도 같이 먹자.”
“싫거든? 전시동까지만 같이 가줄 테니까.”
이 녀석.
은근 슬쩍 같이 가준다라니.
내가 같이 가주는 거라고!
예원은 남자애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 어디선가 출동한 죽창부대가 둘을 습격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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