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어릴 적에 친구들을 따라 교회를 다닌 적이 있기는 하니 나도 반쯤은 크리스천이라고 해도 되는 거려나? 단순히 교회를 다녔다는 게 크리스천의 척도가 되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본 적도 없는 신께 땡깡을 부리게 되는 건 나도 반쪽짜리 신앙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딱히 종교에 대해 깊은 논쟁을 펼칠 만큼 종교관이 확고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를 차치하고서라도 나 같은 어린애들한테는 요즘 시대에 토속신앙이나 무당이라는 직업에 대해 깔끔한 인상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고양이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나무로 된 간판이 걸려있는 허름한 주택이었고 간판에는 한자 수업시간에도 본 적 없는 한자로 뭐라고 쓰여있는데 내 핸드폰에는 옥편어플은 안 깔려있으니 읽는 건 포기해야겠군.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긴 왜 온 거야?`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고 고양이가 데이트 코스를 잘 짤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점집에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런 데는 오래된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이 불안해질 때나 오는 거라고.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이런 오래된 점집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마법 소녀를 토속적인 점집에 데려오다니 너무 언 매칭 아니냐? 적어도 타로카드나 별자리 점집이라면 좀 어울리기라도 할 것 같은데. 들어가면 무서운 표정을 한 할머니가 첫 대면부터 버럭 소리부터 지르며 부적을 내밀 것 같은 분위기다.
`점 같은 걸 보러온 게 아냐.`
내 용돈을 부적값으로 뜯기는 게 아닐까 걱정 중이었는데 다행이다. 애초에 비싸서 살 수도 없을 것 같지만.
`여기에 내 동료가 있어.`
설마 처녀 보살 같은 이름의 고양이 친구는 아니겠지? 레반이라는 이름이랑은 너무 안 어울리잖아. 혹시 이곳은 고양이가 점을 봐주는 덴가?? 잠깐, 생각해보니 그런 컨셉이라면 의외로 엄청난 성황을 이룰지도 모를 것 같다. 말하는 고양이가 점을 봐준 다라 봐도 신기해서 뭔 말만 하면 복채를 마구 던져줄 것 같은데? 복화술을 연습하고 이 말하는 고양이를 데리고 육교 위에다 돗자리를 깔아볼까 하는 망상에 빠져 있으려니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푸드득 하고 날아와 내 머리 위에 앉았다.
`으악!`
순간 머리 위에 똥이라도 싸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버릇없는 꼬맹이!`
기품이라곤 1도 없는 난잡한 목소리와 함께 온몸을 반짝이는 원색으로 치장한 앵무새 한 마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우리 집 고양이 옆에 앉았다.
이 점집 점쟁이의 입버릇이 잘 반영된 앵무새가 말뜻도 모르고 부리를 뻐끔 대는 건가 생각했는데 건방진 앵무새의 목에는 자주 보던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미안하지만 앵무새가 말하는 건 하나도 신기하지 않다고. 안 놀랠 거다.
'오랜만이다. 레반.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냐 앵무.'
'관리자가 널 찾아오면 뻔하잖아.'
관리자 동료라고 해서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앵무새가 날아오니 이상한 부분에서 의외라고나 할까. 이번엔 어떤 말 하는 고양이가 나올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딱히 새라고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고양이 쪽이 좀 더 귀엽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일부러 친해지려 편의점에서 고양이 간식도 사 왔는데 아깝잖아. 눈알을 땡그랗게 뜨고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던 앵무새는 뭔가 알았다는 듯이 끄덕이더니 부리를 열었다.
'바보 마법 소녀다! 꽝이야 꽝, 꽝을 뽑았구만 앵무!'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고 했는데 남은 약정기간이 머릿속에 나타나 내 팔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앵무새는 대체적으로 사람을 놀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설마 이 건방진 앵무새가 날 평가 해주는 시험관은 아니겠지?
'패로, 장난치지 마. 어…. 음 여기 이 앵무새의 이름은 패로. 과거 나와 함께 마법 소녀의 가족 어를 하던 동료야. 저래 봬도 패밀리어 동료 중에 마법학에 관해선 가장 뛰어나거든.'
'그래…. 반가워 홍세라야.'
말과 표정이 따로 논다는 게 이런 것이겠지. 애써 웃으려고는 하는데 앵무새 앞에서 표정관리가 쉽게 될 만큼 나는 아직 사회생활 스킬이 좋지 못했다. 앵무새한테도 표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양이보다는 얼굴 근육이 부족해 보이는 게 표정 읽기가 어렵군. 내가 내민 손바닥에 날개를 올려놓는 게 긍정의 의사였으면 좋겠다.
'꽝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친구다 앵무. 레반이 선택한 마법 소녀답다 앵무.'
'그게, 선택한 게 아니라 얻어 걸린 거야.'
동그란 눈을 깜빡이던 앵무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늘구멍같이 조그만 눈이지만 약간은 동공이 움직이는 게 보이는군. 고양이도 그렇고 앵무새도 그렇고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눈을 깜빡이지 않아 눈싸움이라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자세한 능력은 확인해 봐야 알겠다 앵무. 들어와라. 앵무.'
날개를 푸득거린 앵무새는 창호지가 발려있는 방문의 작은 빗장을 부리로 요령 좋게 열고선 위에 작게 뚫려있는 구멍으로 쑥 들어갔다.
신기한 느낌이긴 했지만 울 집 고양이에 비해선 앵무새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은 아니로군. 평균보다 좀 똑똑한 앵무새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런 데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걸까? 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까망이가 데려온 건데 뭐 별일이야 있겠어?
나무가 조금 뒤틀리는 소리 가나며 향냄새가 확인하고 코끝을 자극했다. 방 안은 미디어에서 자주 보던 전형적인 점집의 분위기였다. 한자인지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의 글자가 휘갈겨진 종이가 이곳저곳 붙어 있었는데 뭔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신상이라던가 하는 사람 모양의 장식물이 없다는 것 정도. 한국적인 그림이 그려진 병풍의 중심에 작은 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고 탁자 위 구리그릇에 향초 몇 개가 향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뭐야, 손님이야?'
기어 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꾸물꾸물 탁자 밑에서 뭔가 나온다고 생각했더니 나온 것은 색동 한복이나 연지 곤지 같은 화장 대신 교복과 뿔테안경을 쓴 여자애였다.
'화정고 교복?'
척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내 목소리는 고양이, 앵무새, 여고생을 한 번에 돌아보게 만들었고 살짝 어두운 방 안에 동공이 익숙해질 쯤
'워, 홍세라잖아.'
라고 내 중학교 동창이 말했다.
어차피 나야 근방에서 유명한 여자고 다른 학교 학생이 내 이름 같은 걸 안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지만, 앵무새도 그렇고 여기 깃털 달린 부채를 펼치고 하품을 하는 여자애도 그렇고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이미지랑은 너무 다른 상황이 펼쳐지니 조금 머리가 멍했다. 역시 섣부른 일반화는 좋지 않다. 카운터를 맞으면 대처할 말이 없어지거든. 앵무새야 어쨌거나 무당 쪽은 아무한테나 반말해대는 개초딩이나 양복 입은 아저씨까지는 범주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여고생이라…. 잠깐, 그렇다면 이 애도 마법 소녀??
?살짜리가 무슨 고민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어?'
TV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왜 왔는지 막 알아맞히던데 용한 건 아닌가 보네.
'그건 손님 마음을 초장에 확 사로잡으려는 장사스킬. 막 던져보고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야. 보통 이런 데 오는 사람들이야 마음이 약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초반에 강하게 신뢰를 주면 지갑을 열기가 쉬워지거든. 울 할아버지나 쓰던 방식이야 나는 그런 거 안 써.'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시시하다는 듯 어깨 위에 올려져 있는 앵무새의 주둥이를 부채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름이 유소령이었던가..
중학교 때 본 기억이 나는 얼굴이다. 그동안 철저히 숨겼는지 이런 일을 하고 있었으면 학교에서도 꽤 유명 했을 텐데 하나도 몰랐다. 나름 새침한 얼굴과 스타일이 좋아서 눈에 띄는 모습이긴 했지만 이름이 날 정도로 유명한 아이는 아니었다. 아예 인연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중학교 3년 동안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고. 그래도 이런 데서 만나다니 반갑다고 말하는 게 좋으려나.
'그런데 왜 너는 일요일에도 교복을?'
'장사수단이지. 교복 입은 여고생 무당이라고 하면 재미있잖아. 특히 아저씨들이 좋아하거든. 어차피 용하기만 하면 케케묵은 저고리를 매고 있어도 상관없지만. 잡설은 됐고, 뭣 때문에 온 거야? 돈? 공부? 연애?'
미안하지만 셋 다 꽝이다. 내가 정말 점을 보러 온 사람이었으면 핑계를 대고 방금 문을 열고 나갔을걸?
'갈 테면 가라지. 손님은 충분히 오고 있고 나가봤자 옆집에 있는 울 할아버지한테나 갈 게 뻔하거든. 난 쓸데없는 신상파악에 영력 안 써. 거진 여고생이 할만한 고민이 그 정도밖엔 없으니까 물어본 거야. 아님 여기 못생긴 앵무새한테 볼 일이 있는 건가?'
'맞다 앵무.'
앵무새는 어딘가에서 뿅 하고 뭔가 두루마리 같은 것을 꺼냈다.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던 두루마리는 공중에서 팟 하고 펼쳐졌고 공기의 영향을 무시하는 듯이 가지런히 탁자 위에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누런색의 낡아 보이는 종이는 종이라기보단 가죽에 가까워 보이는 질감이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다 앵무.`
언젠가 오래된 판타지 영화에서 본 것 같기도 하네. 양피지 위에는 손바닥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 네모난 칸이 4개 있었다. 칸 위에는 마치 영어의 필기체를 연상시키는 난생 처음 보는 글자가 써있었고 묘하게 그림이 섞인 것 같은 글자도 섞여 있는 건 어디 동굴에 그려져 있는 상형문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무슨 글자인지는 숫자 말고는 도무지 알아볼 수도 없었지만 아무래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글자 중 하나인 것 같지는 않았다.
'점집에서 마법 같은 거나 쓰고 말이야. 솔직히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한테 묻는 거라면 전적으로 동감하다. 방안엔 이름 모를 한자가 가득인데 책상에는 마법 진과 마법 문자가 펼쳐져 있다. 뭐 이런 언밸런스가 다 있어.
'이 망할 앵무새가 날라오고 난 뒤부터 너 같은 마법 소녀가 자꾸 온단 말이지. 솔직히 귀찮아 죽을 지경이야.
돈 주는 것도 아니고.'
'뭐? 너도 마법 소녀 아니었어?'
중학교 동창은 시큰둥한 표정을 짓더니 앵무새의 목을 꽉 쥐고선 마구 흔들었다. 동물 학대 같은데.
'불꽃 슛을 던져대던 니가 할 말은 아니지.'
이상 한데서 끼어드는구나.
'이 빌어먹을 앵무새가 작년에 갑자기 날라오더니 마법 소녀가 되어줘 앵무. 라고 하는데 아무리 내가 신기 부리는 무당이라고 해도 당췌 상황이 이해를 못 하겠잖아. 뭐, 들어보니 계약 내용도 좀 나랑 안 맞고 무당이 마법 쓰고 다니면 있던 신기도 없어질 것 같아서 거절했지. 맨날 밥이나 축내는 주제에 마법 소녀가 되라며 지금도 맨날 귀찮게 한단 말야. 대신 가끔 점으로 마충의 위치 따위를 알려주고 마법 소녀의 대가를 약간 받는 것으로 퉁치기로 했지.
'대가??'
'뭐야, 계약 내용에 있었는데 몰라?'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 털 뭉치 녀석 계약 내용에 대해선 입도 뻥긋 한 적이 없었군. 자연스레 무책임 고양이한테 시선을 돌렸는데 왜 자꾸 시선을 피하는 거냐? 야, 말 좀 해봐.
'계약 내용을 안 알려 준 거냐 앵무?'
안 알려 준 거냐 까망?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말해봐라. 마법 소녀한테 뭔 대가를 주고 그래? 나도 고양이의 목을 한 번 졸라보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잠까아아안!!!!'
갑자기 귀가 아플 정도로 쩌렁쩌렁 울리는 박력 있는 목소리가 막 고양이의 목을 조르려던 내 손을 멈췄다.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 지르지 마라 무당이 소리 지르면 뭔 큰일 난 것 같잖아!
눈앞의 동창은 펼쳐져 있던 부채를 요령 좋게 촥 접더니 부채 끝을 내 코끝으로 향하며 하품하던 표정을 갖다버리고 무지 무서운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뿔테안경으로 가려져 있던 날카로운 눈매가 조금 소름 돋았다.
'방금 네 미래가 보였다!!'
'뭐, 왜? 갑자기 뭐야?!'
아직도 귀가 아프네. 아픈 귀를 문지르는데 제자리로 돌아간 부채녀가 고을 사또 같은 건방스러운 포즈로 앉아서 다시 부채를 부치기 시작했다. 야 팬티 보인다. 검은색이네…. 어른스런 취향이군…. '거기에 대해선 그냥 넌 모르는 게 낫겠다. 이건 무당으로서 충고야. 공짜로 점 쳐준 거니까. 고맙게 생각해. 내 점이야 믿어도 돼.'
'나 점 같은 거 안 믿는데.'
'그럼 동창으로서 충고야.'
'너 나랑 안 친하잖아.'
'따지지 마. 이 나라 학연, 지연인거 몰라?'
학연, 지연이라면서 왜 나보다 고양이 편을 드는 거냐. 그리고 원래 사람이란 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뭐 상관없다만 저 고양이 친구랑 오래가고 싶다면 지금은 그냥 모르고 있는 게 나을걸? 어차피 천천히 알게 될 테니까 그냥 지금은 모른 채로 있어.'
넌 몰라도 나는 다 알고 있지롱 같은 식으로 이야기하면 되게 재수 없거든. 무당들 특유의 비즈니스 어법 같은 거냐? 혹시 복채 주면 알려주니? 어쨌든 이놈의 고양이가 계속 시선을 회피하는 게 좀 거슬리긴 하지만 뭐 나름의 이유가 있긴 있으…. 려나? 친구한테 비밀을 가지는 건 서운한 문제지만 친구에게까지 비밀을 가지고 싶어서 하는 부분을 존중해 주는 것도 친구다. 적어도 윤아랑 나는 그런 정도의 관계고 친구 사이의 비밀은 분명 언젠간 안 알려줘도 저절로 알게 되도록 알고리즘이 짜여져있거든.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 놈도 친구고 두 번쯤 생사고락을 함께했는데 그 정도 배려는 어렵지 않지. 고양이의 목을 조르려던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디 날 서운하게 하지 말아주길.
`이야기 끝났냐 앵무? 기다리기 지친다 앵무. 이 손바닥 그림 위에 네가 잘 쓰는 손을 올려라. 앵무.`
양피지 위에 어설프게 그려져 있는 그림 위에 포개듯이 손바닥을 대었다. 갑자기 대고 있는 손바닥 아래서 파란빛이 뿜어져 나오며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빛이 스며 나왔다. 방 전체가 파란색 빛으로 뒤덮이며 내 등 뒤에 그림자가 새까맣게 졌다. 호기심으로 학교 스캐너 위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다. 스며 나오는 빛보다 더욱 번쩍이는 빛 바늘이 마치 나의 손금을 스캔하듯 내 손금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왠지 지나다닐 때마다 따끔거리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이 양피지가 너의 잠재력을 읽고 랭크를 판별해 줄 거다 앵무.`
파란 불빛을 견디며 눈을 가늘게 뜨고 본 양피지에는 손바닥 아래로 난 네모난 칸에 마치 종이가 타듯이 이상한 글자들이 쓰여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