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꾸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으니 다들 등하교 할 때 조심하거라. 공원에서 이상한 걸 봤다느니, 공원에서 노숙자들 몇 명이 실려갔다느니, 몸조심해서 나쁠 거 없으니 말이다.”
식탁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하던 중에 목사님이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말을 꺼냈다.
금선이는 한귀로 듣고 흘렸고 그나마 평소 귀가가 늦는 편이던 선예 정도가 조금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던 나의주 목사는 뭐라고 지적하는 대신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이런 가벼운 헛소문 정도는 평소에도 도는 것이다.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다.
“남해야, 밥을 자꾸 흘리는구나.”
“아, 아. 예.”
남해는 며칠째 준오가 했던 이야기가 마음 한구석에서 걸리적거렸다.
준오 말대로다. 자신은 목표도 없고 듀얼을 해야 할 구체적인 이유도 없었고 동기도 없었다.
식사시간에서조차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자야할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따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한참을 누워서 커텐을 쳐다보던 남해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오던 경익이랑 눈이 마주쳤다.
“연애하러 가?”
“그럼 좋겠다…”
“그럴 줄 알았다.”
아주 짧은 담화가 오가고 교회 바깥으로 나온 남해는 한번 숨을 쭉 들이켰다.
봄이지만 밤에는 아직도 쌀쌀했다.
…벌써 4월인데.
“4월이나 됐구나.”
자기가 기억하는 원래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은 3월 23일이었다.
원래 세계에서의 날짜도 이미 지나버렸고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기 기억 속에도 여기랑 비슷한 곳이 있었지만 지금 이 모습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여기에 터널도 없었고, 저런 가게도 없었으며 빌딩 위치도 조금씩 달랐다.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왔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생각은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목표 없이 걷기만 하던 남해는 공원 안을 그냥 쭉 걷다가 벤치에 앉아 왜 이렇게 된 건지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마음만 더 무거워질 뿐이고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 아빠… 보고싶다… 전부 다… 가족들이… 보고싶다…”
“그때 해황 쓴 그분 맞죠?”
그때 남해의 옆에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누가 말을 걸어오자 남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 아이는 가로등 불빛을 뒤에서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모자까지 쓰고 있어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목소리조차도 뭔가 이해를 하고 있지만 방금 무슨 목소리로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굉장히 섬뜩해왔다.
“어, 아… 응.”
“듀얼은 자신 있으신가봐요? 특례입학자라고 소문이 자자한걸요?”
“그 정돈 아냐…”
“그래요? 그럼 저랑 듀얼 한번 어때요?”
덱이라면 어쩌다 보니 들고 나왔지만 지금 남해는 D-패드도 없었고 왠지 저 아이가 너무 불길했다.
목사님의 말도 있었고 남해는 대충 듀얼을 거절하고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그랬었다.
거짓말처럼 주위가 어둠으로 뒤덮이며 가로등은 불빛은커녕 방금까지 자신이 앉아있던 벤치마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자신과 그 아이만큼은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너무 기묘했다.
헛것을 보는 건가? 피곤해서 그런가? 남해는 아직도 상황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듀얼 시작입니다.”
거짓말처럼 남해의 팔에는 D-패드도 돌아와 있었다. 남해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그 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D-패드에는 이름 대신 아이디만 떠올라 있었다. 마리오네트라는 찝찝한 단어였다.
“패가 별로 안좋은걸요. 카드를 두장 세트하고 종료할게요.”
-마리오네트/LP 8000/패 3장
“…드로.”
거부권은 없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남해는 더이상 뭐라고 말하는 대신 덱에서 카드를 쭉 뽑았다.
패드에 세팅된 덱은 평소의 수정룡성이었다.
“먼저 패에서 [해피의 깃털]을 발동!”
남해가 패드에 카드를 세팅하자마자 주위를 강풍이 뒤덮었다. 평소 솔리드 비전의 출력과 비교해봐도 아플 정도로 몰아치는 강풍에 남해는 자꾸 비틀비틀 거렸다.
“세트 카드 발동, [트윈트위스터]. 패의 [타락천사 마스테마]를 버리고 깃털을 파괴.”
마리오네트쪽의 필드에서도 강풍이 일어나며 바람은 거의 상쇄됐지만 주변에 몰아치는 바람소리에 남해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이윽고 강풍이 멎은 직후 쨍강하는 파열음과 함께 [트윈트위스터]와 세트된 [매혹의 타락천사]는 파괴되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 듀얼은 틀림없이 평소와 다르다.
아냐, 듀얼에 집중하자.
방금 버린 카드는 마스테마, 파괴된 카드는 매혹의 타락천사. 타락천사 덱이다. 여기서는 한발 빼야한다.
“카드를 한 장 세트하고, 몬스터를 하나 세트하고 턴을 마치겠어.”
-강남해/LP 8000/패 3장
“좋아 좋아, 내 차례로 돌아왔어. 패에서 [타락천사의 계단]을 발동해서 묘지의 마스테마를 부활시키고 여기서 차례를 마칩니다.”
[타락천사 마스테마/Lv7/2600/2600]
-마리오네트/LP 8000/패 2장
별 것도 하지 않고 다시 마리오네트는 차례를 마쳤다.
아까와 다른 것이라면… 묘지에 앞면 표시 몬스터의 컨트롤을 가져오는 [매혹의 타락천사], 필드에는 묘지의 마법이나 함정을 쓸 수 있게 하는 [타락천사 마스테마]가 있다는 것.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지금은 듀얼에 집중하자. 어느 것이든 살얼음판이다. 허둥대면 빠질 것이다.
남해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갔다.
“드로우, 패의 [보룡성-세피라후우시]를 소환하고, 세트된 [암룡성-죠쿠토]를 반전 소환.”
“여기서 마스테마의 효과를 발동, 라이프 1000을 지불하고, 매혹의 타락천사의 효과를 발동한다. 후우시를 데려올게요.”
-마리오네트/LP 8000 → 7000
레벨 3 후우시에 레벨 2 죠쿠토를 합쳐서 나올 5레벨 보우텐코우를 경계하는 것일까.
바닥에서 솟아난 검은 기운이 후우시를 집어삼키더니 이내 마리오네트의 필드에 생겨난 그림자 안에서 후우시가 솟아올랐다.
그림자 안에서 올라온 후우시의 모습은 방금 전과 달랐다. 날개는 검게 물들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탁했다.
죠쿠토는 룡성 몬스터지만 상대 턴 싱크로 소환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펜듈럼 몬스터인 후우시 역시 마찬가지.
이대로 턴을 마친다면 공격표시의 죠쿠토와 후우시만 덜렁 남아버린다.
“그렇다면 세트된 [룡성의 구상화]를 발동하고 배틀!”
죠쿠토는 흔들거리던 목을 멈추고 시선을 후우시에게로 고정했다. 죠쿠토는 남해를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바닥에서 검은 물살을 일으켜 후우시를 공격했다.
아무렇지 않게 물살을 헤치고 나온 후우시는 이마의 보석에 힘을 집중해 탁한 색의 광선을 쏘아 반격했다.
-강남해/LP 8000 → 6400
“죠쿠토는, 파괴됐고! 라이프, 잃으셨고! 아, 다리도 잃으셨네요!”
다리?
남해는 그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아래를 확인했다. 오른쪽 다리에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오른쪽 허벅지 중간 아래로는 어둠에 잡아먹힌 듯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 바로 윗부분은 금방이라도 어둠 속으로 사라질 듯 흐릿했다.
없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른발에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쨔-안!”
“뭐가 쨘이야 이 미-”
남해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힌 듯 그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마리오네트는 대신 조용히 하라는 듯 살짝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가에 가져갔고, 그 다음 남해의 필드로 떠오른 정수 두 개를 번갈아 가리켰다.
“무대에선 플레이부터 마저 하고.”
절대 이녀석은 정상이 아니다. 이 상황도 정상이 아니다.
“소개가 늦었지만, 이번 무대는 어둠의 게임! 라이프를 다 잃으신다면 거기서 모든 게 게임 오버랍니다. 한번 열심히 발버둥 쳐봐요!”
남해는 벌벌 떨면서 패드로 손을 가져갔다. 덱을 누르자 룡성 몬스터들의 이름이 쭉 출력됐고 그중 두장을 터치하자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는 깨끗한 정수는 각자 무지갯빛과 붉은색으로 변했다.
“슌게이와 후우시를 덱에서 불러오겠어. 여기서 후우시의 효과로 슌게이를 튜너로 취급.”
“그리고?”
“레벨 3 후우시에 레벨 4 슌게이를 튜닝해서, 레벨 7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을 싱크로 소환한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Lv7/2500 3000/2000]
슌게이와 후우시가 각자 불덩어리와 흙더미로 변해 이중나선을 그렸고 둘의 정수가 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사방으로 불티를 휘날리며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이 필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귀를 찢는 듯 날카로운 고음의 포효를 내지른 빛나는 날개의 하얀 용은 꼬릴 힘차게 흔들며 마리오네트의 필드를 노려봤다.
“후우시는 덱으로 돌아가고, 슌게이를 소재로 사용했으므로 클리어윙의 공격력도 500 오른 3000!”
“마스테마의 2600보다 조금이지만 더 높군요…”
“배틀! 클리어윙으로 마스테마를 공격!”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이 돌풍을 두르고 사방으로 불티를 튀기며 마스테마를 향해 돌진해왔다. 무릎을 꿇고 수비태세를 갖추고 있던 마스테마는 한방에 산산조각나며 파괴되었다.
-마리오네트/LP 7000 → 6600
“턴 종료야.”
남해의 턴 종료 선언과 함께 마리오네트의 필드에 있던 후우시도 다시 남해의 필드로 되돌아갔다. 후우시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다시 생기가 돌아온 눈으로 어리둥절해했다.
-강남해/LP 6400/패 3장
“흐흥, 간단하게 반격수단을 만들었군요. 저도 가만 있으면 안되겠죠. 드로우.”
클리어윙의 효과는 필드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패 유발 효과가 많은 타락천사 상대로는 반쪽짜리 방벽일 뿐이다.
“패의 [타락천사의 추방]을 발동할게요. [타락천사 유코백]을 패에 넣고 일반소환,
그 후 소환 유발효과로 [타락천사 이슈탐]을 묘지로 보내고 패에서 [타락천사의 계단]을 발동해 묘지의 이슈탐을 소생시키고, 카드 한 장을 세트한 후… 턴 종료입니다.”
‘유코백의 레벨은 3. 클리어윙의 효과범위 바깥이야. 그리고… 다음 턴이면…!’
[타락천사 유코백/Lv3/700/1000]
[타락천사 이슈탐/Lv10/2500/2900]
마리오네트의 필드에 검은 머리와 날개를 한 여성이 나타나 내려앉았다.
평소의 듀얼이었다면 예쁘다는 생각이라도 들었겠지만 지금의 남해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상황에 점점 조급해져갔다.
라이프를 잃었더니 몸이 어둠에 먹혔다고? 이 D-패드는 어디서 나온거지?
“턴 종료라니까요? 플레이 안 하세요?”
-마리오네트/LP 6600/패 없음
“…드로우. 먼저 패에서 [염룡성-슌게이]를 일반소환하고, 배틀.”
[염룡성-슌게이/Lv4/1900/0]
“거기에 체인 있습니다! 세트 카드 발동, [배덕의 타락천사]! 유코백을 묘지로 보내는 것으로 클리어윙을 파괴!”
유코백이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며 검은 그림자로 변해가다가 완전히 무너졌고, 그 그림자는 이윽고 클리어윙에게 마수를 뻗쳐왔다.
클리어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 했지만 그것보다 그림자의 움직임이 빨랐다. 클리어윙을 옳아멘 그림자는 클리어윙을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퍼미션 몬스터랑 싸우는 건 재미 없거든요.”
“…구상화의 효과 발동.”
“네~ 기다렸습니다! 거기에 이슈탐의 효과를 발동할게요. 묘지의 마스테마를 소생시키고 [타락천사의 계단]을 덱으로 돌릴게요.”
-마리오네트/LP 6600 → 5600
“소환할 몬스터는 [광룡성-리훈].”
“저기, 지겹지 않아요?”
마리오네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리훈을 척 하고 삿대질했다. 리훈은 움찔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틀림없는 자신이었다.
리훈의 반응을 본 마리오네트는 그 검지로 슌게이와 리훈 사이를 흔들거리며 둘을 번갈아 가리켰다.
“어차피 그래봤자 나오는 건 약소 몬스터뿐. 끝도 없이 불러내기만 해서 뭘 하게요? 하- 지겹지도 않아요? 그런 장난질 좀 집어치우자구요.”
그 말을 끝으로 바닥에서 올라온 그림자가 리훈을 집어삼켰다. 리훈은 물 위로 나온 잉어처럼 사력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그대로 그림자에게 집어먹혀서 땅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리훈의 정수는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여기서 마스테마의 효과 발동, 라이프를 지불하고 묘지의 [배덕의 타락천사]의 효과에 따라 자신을 묘지로 보내고 리훈을 파괴!
파괴된 리훈의 효과 처리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리오네트/LP 5600 4600
“설마…”
“배덕의 타락천사는 효과 처리에 따라 덱으로 돌아가니까요. 그런데 쨔쟌! 효과 처리가 끝났더니 타이밍을 놓쳤군요!”
룡성들의 리쿠르트 효과는 [~때 할 수 있는]효과다. 체인 2 이상에서 파괴되면 타이밍을 놓치지만 이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체인 하나만 쓰더라도 파괴 이후에 다른 효과를 처리해야 한다면 그 리쿠르트 효과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본래대로라면 [배덕의 타락천사]로 파괴된 룡성의 효과는 문제없이 발동하겠지만 지금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몬스터가 그 효과를 빌려온 것.
그 효과 처리가 끝난 이후, 룡성의 효과가 발동해야 할 타이밍에는 아직 [덱으로 되돌아간다.]는 효과 처리가 진행 중이다.
이렇게 타이밍을 놓쳐버린 룡성의 효과는 불발처리가 되고 후속 타자도 불러올 수 없다.
“후우시를… 수비표시로 돌리고, 카드를 하나 세트한 다음 턴을 마치겠어.”
궁지다. 진짜 궁지다. 정말로 궁지다.
아직 라이프는 있다. 패에도 카드는 남아있다. 하지만…
“이거면 그 귀찮게 구는 지렁이들도 죄~다 족쳐버릴 수 있지 않겠어요?”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강남해/LP 6400/패 2장
“드로!”
-마리오네트/LP 4600/패 1장
“여기서 이슈탐의 효과 발동, 라이프를 지불해서 또다른 유코백을 패에 넣고 [타락천사의 추방]은 덱으로 되돌아가요!
이어서 유코백을 내고 효과로 묘지로 보낼 카드도 당연히 [배덕의 타락천사]. 그리고 패의 [해피의 깃털]의 효과로 마법이랑 함정 전부를 박살냅니다!”
-마리오네트/LP 4600 3600
다시 한번 피부가 찢듯 매섭게 몰아치는 강풍이 필드를 뒤덮었고 남해의 세트 카드와 [룡성의 구상화]는 파괴되어 버렸다.
“후우시는 리쿠르트 효과가 없고… 슌게이는 배덕으로 박살내면 그만. 이슈탐으로 후우시를 공격할게요. 울티모 익스타브!!”
이슈탐이 한손을 휘두르자 등 뒤에서 광탄의 비가 후우시를 덮쳤다. 연달아 광탄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후우시의 파편이 튀었고 폭발의 연기와 불꽃이 걷힌 자리에 후우시의 흔적은 거뭇거뭇 탄 자국과 주인을 알아보기도 힘든 살점 일부가 전부였다. 그것마저 이내 흙더미로 변해 무너져내렸지만.
“턴 종료에요.”
-마리오네트/LP 3600/패 없음
남해는 카드를 드로우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세에 몰려도 구상화가 있다면 버티면서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룡성 개체 하나하나라면 그저 버티는 게 한계다.
“카드를… 하나 세트하고 턴 종료.”
-강남해/LP 6400/패 2장
“체인!! 라이프를 1000 지불하고, 이슈탐으로 [배덕의 타락천사]의 효과를 복사! 대상은 당연히!!”
-마리오네트/LP 3600 → 2600
라이프가 줄어들면서 어둠 속으로 마리오네트의 왼쪽 어깨가 사라질 때 남해는 마리오네트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 눈만은 기분 나쁘게 빛나고 있었다.
홀린 듯 마리오네트의 눈을 쳐다보던 남해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바닥에서 올라온 그림자가 슌게이를 꿰어버리고, 갈고리처럼 붙들어 그림자 안으로 집어 삼켜버린 후였다.
“당연히, 타이밍을 놓치니 리쿠르트도 불가능.”
-강남해/LP 6400/패 2장
“자, 차례 받아갑니다? 드로우.”
솔직히 이젠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죽은 자의 소생]을 발동해서 묘지의 마스테마를 부활시킵니다!”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지?
난 왜 듀얼을 하고 있는거야?
아니, 내가 왜 듀얼을 해야만 하는 거지?
“마스테마와 이슈탐으로 상대 플레이어를 직접공격!! 마신장!!”
-강남해/LP 6400 → 1300
마스테마가 손을 휘두르자 남해의 머리 위에서 시커먼 덩어리가 남해를 내리찍었다. 마치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고통에 남해는 숨을 쉬기도 버거웠다.
이제 어둠에 거의 다 집어삼켜진 남해에게 남은 거라곤 카드를 쥔 한 팔과 얼굴 정도였다.
“그 눈, 그게 뭐에요? 전의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데! 차라리 포기해요. 그럼 편하다구요?”
그 말대로다. 남해는 이미 전의가 없었다.
제대로 풀리지 않는 듀얼, 가족도 친구도 없이 미미한 접점만이 남은 이계의 외톨이 생활, 지표를 잃어버린 자신의 상황까지.
이대로…
이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가족이, 원래 세상의 인연들이 보고 싶었다.
“정신차려라 얼간아! 네가 그런 마음을 먹으면 우린 뭐가 되겠느냐!!”
그때였다. 귀에 쩌렁쩌렁 울리는 굵고 거친 목소리로 누가 남해에게 소리쳤다.
남해는 파르르 떨면서 소리가 들린 곳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어둠 속을 뚫고 가이저의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넌 뭐야?”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 지금은 이것 하나만 생각해라, 이겨서 살아남아라!!”
“귀찮은 방해꾼이…”
마리오네트는 가이저를 대놓고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솔직히 남해는 지금 가이저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판에 개판이 하나 더 끼어든 것 같았다.
“네 꼴을 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느냐? 이 듀얼에서 지면 다음 같은 건 없다. 친구들이랑 하던 장난질이랑은 차원이 달라!!”
“그렇게 말해도…”
“가족이 보고싶다 하지 않았느냐!!”
그 말을 들은 남해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 됐다. 그래, 아직이다. 아직 듀얼은 끝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늦게나마 앞으로 나아갈 이정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래, 나 그랬지.
계양 대회에서 그때, 기억나.
진공룡성, 진룡, 마술사, 십이수. 다 너무 강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세트를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은 마지막 순간… 아니, 지금 턴조차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 아직 난 더 할 수 있어.’
“자, 드로우한다!!”
듀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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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지 마십시오(진지) 9기 중후반 덱이나 10기 덱을 상대로 붙여볼 때마다 파워가 부족한게 느껴집니다. 최초 구상안에서는 시즌 3에서는 남해도 덱을 어느정도 갈아엎을 플랜이기도 했고... | 19.03.25 00: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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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약덱 순수 흑룡을 굴리는지라...(이외에 술사나 ww보옥같은 혼종을 굴린다)) | 19.03.25 18: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