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참. 달리 좋은 말이 없었던 건가요..」
기자양반이 날 아주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그게 무슨 소리야?」하고 따지자, 기자양반이 보란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히로인들을 실망 시켰잖습니까? 혹시나 하는 가능성마저 없애버리고 말이죠.」
기자양반 나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 것 같은데, 핵심적인 부분에서 잘 모르겠다. 가능성을 없애다니? 아직은 혼자이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앞으로도 아니고, 아직은. 그러니까 나와 사귄다는 가능성을 없애버렸다는 기자양반의 주장은 틀린 거다.
「뭔가 다들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딱히 누구랑 사귀고 그러는 게 싫다는 게 아니야. 단지, 지금은 그럴 생각 없다 뿐이지.」
「언제까지 말인가요?」
「글쎄? 딱히 기한을 정한 게 아니라서 그럴 생각이 들 때 까지가 아닐까?」
「그게 문제라고요!」
기자양반이 내 말에 문제가 있다는 듯 토를 달았다.
「자신에 대한 호의를 뻔히 알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뒤로 미루는 거 말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겁니까? 1년? 2년? 아니면 10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간 같은 텐구인 모미지는 그렇다 쳐도 인간인 레이무는 홀몸으로 늙어 죽겠네요. 아- 불쌍한 레이무. 하필이면 저런 겁쟁이를 좋아하게 되서 노처녀인 채 늙어 죽다니.」
「어이. 죽고 싶어? 누가 노처녀로 죽는다고.」
레이무가 노려보자, 기자양반이 긴장한 얼굴로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차라리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말하시죠? 그러는 편이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역시, 내 우유부단한 태도가 문제였던 걸까?
나를 향한 모미지나 레이무의 호의는 솔직하게 말해 기쁘다.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것에 감사할 정도로. 오히려 나 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이러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모미지의 애정은 무서울 정도로 무겁다. 그래서 나는 미루고 있는 것이다.
한심하지만, 이게 나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져 고개가 절로 아래로 향한다.
그때, 모미지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대로도 괜찮아요. 아쉽긴 해도 지금 당장 사귀지 못할 뿐이니까요.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어요.」
「뭐.. 나도 기다리는 것 정도야 익숙하니까. 대답 정도는 나중에 들려줘도 돼.」
레이무도 모미지와 같은 뜻을 내비쳤다. 날 확실히 좋아하는 둘은 내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여자가 여기까지 신경 써주게 만들다니. 나 완전 남자실격이구나.
그런데도 미안하다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나를 기자양반은 혐오스럽다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녀는 「여기선 각오를 다지는 게 보통이지 않나요?」하고 남자답지 않은 내 행동에 쓴 소리를 내뱉었지만, 지당하신 말씀이라 무어라 반박할 수 없었다.
갈수록 나만 글러먹은 남자가 되어가는 가운데, 유카리님이 한결 같은 미소로 끼어 들었다.
「그렇게 몰아 세울 것 까지야.」
그렇게 날 변호하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말은 가차없는 언어의 폭력이었다.
「그야 저 멍멍이는 쫄보인걸. 둔감한데다 한심해서 암만 말해 봤자, 입만 아파. 얼마나 쫄보냐면 작년 가을쯤인가. 자기 때문에 상처 입은 레이무를 위로해 주지 못 할 망정, 내가 한 번 만나러 가라고 등을 떠밀어 줬는데도 계속 버텼다니까. 그때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그때는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건 너무 뒤끝 있지 않나요?
덕분에 나를 보는 기자양반의 눈이 더욱 싸늘해졌다. 지금 이 순간 나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을 것이다.
「이야~ 설마 그 정도일 줄이야.」
냉담하게 내뱉는 기자양반. 그녀의 시선이 너무도 따갑다. 안 그래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내 주가는 유카리님의 폭로를 결정타로 밑바닥을 치고 말았다. 이런 나를 그래도 좋아해 주는 모미지와 레이무나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사나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때, 기자양반이 반개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좋아. 이번 기사의 대문은 백랑텐구 카자네 소우지, 동성애 의혹으로 결정이다.」
「이것 보쇼. 이젠 아주 대놓고 왜곡 기사를 쓰겠다고 선언하네.」
「.....휘휘~♪」
황색언론지 기자답게 엉터리 왜곡 기사를 쓰겠다는 기자양반. 나는 바로 항의했지만, 그녀는 그런 내 시선 피해 휘파람을 부는 시늉을 냈다. 그렇게 모로쇠로 행동하던 기자양반이 날 곁눈질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싫으면 아무나 사귀시던가요.」
그리고 보란듯 짓는 얄미운 미소.
공신력도 없는 찌라시 언론 주제에 협박까지 하네. 그런다고 내가 곤란해 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맘대로 해.」
「정말인가요? 정말 제 맘대로 기사를 써버릴 겁니다?」
「그래.」
「네. 확실히 언질 받았습니다. 나중에 딴 소리 하기 없기입니다.」
나에게서 구두약속을 받아낸 기자양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순간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래봤자 붕붕마루다. 그딴 날조 기사를 믿을 텐구가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기분 나쁜 웃음소리였다. 머릿속엔 분명, 터무니없는 날조 기사를 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테지.
그런 기자양반을 내버려두고 나는 무의식중에 유카리님의 가슴을 흘겨봤다. 그 잠깐의 시선을 눈치 챈 유카리님이 후훗, 웃으며 말했다.
「내 가슴이 그렇게나 좋은 거구나.」
「... 싫진 않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엄청 좋아합니다 라고는 말 할 수 없어서 거짓이 아닌 선에서 얼버무렸다. 그때, 이쪽을 보고 있던 사나에가 갑자기 대항심을 불태우며 외쳤다.
「제 가슴은 어떤 가요?」
평가해 달라는 듯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하는 사나에에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쁘진 않네.」
「뭐예요. 그 적당한 평가는..」
내 평가가 썩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렇지만, 예쁘다고 말했다간 질투할 여자가 둘이나 되서 말이지. 솔직한 감상을 삼가할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 줬으면 한다. 안 그래도 날 보는 모미지와 레이무의 시선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지.
살짝 삐친 얼굴의 사나에가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시원함에 몸을 부르르 떤다. 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물속에 몸을 담가 볼까 하고 고민했다.
*
계곡에서 확인한 카자네 소우지의 문제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감 결여였고, 또 하나는 여자에 서투르다는 것이었다. 유카리는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레이무와 그의 관계가 지금 이상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달리 말하면 그 문제만 해결하면 소우지와 여성들의 관계는 단숨에 진전될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해결될까?
전자는 천성적인 성격 탓이고 후자는 자라온 환경으로 인한 탓이다. 단시간으로는 고쳐지지 않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시간을 들이기엔 인간의 생은 너무도 짧다. 지금의 젊음은 20년도 유지하지 못할 테지.
소거법에 의해 남은 방법은 충격요법 같은 강경수단.
「이렇게 빨리 협조를 구하게 될 줄이야.」
어느새 도복차림으로 갈아입은 유카리는 어떤 조력자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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