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은 어제 대강 말해놨어. 데리고 묘렌사로 가면 돼. 길 안내는 얘가 해줄 거야."
"네에-! 맡겨주세요!"
다음 날, 모녀를 대동한 레이무는 아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명했다. 묶인 채로 듣는 세이자는 정말 아니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레이무의 소매에서 팔락거리는 부적이 금방이라도 날라들 것만 같아 칫, 이라며 혀를 차는 걸로만 불만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저기, 댁. 내 엄마라며? 이것 좀 풀어주면 안 돼?"
"……미안."
"안 돼. 이건 얘하고도 상의했어. 네가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해놓는 최대한의 타협점이야."
"…쓸모가 없어."
"뭔 말버릇이야."
"악!"
사구메가 아니었다면 이런 훈방조치로 끝나지 않았을 거라고 레이무는 불제봉으로 응징하며 얘기했다. 묶여있어 아픈 곳을 만지지도 못하는 세이자는 그게 사실이건 말건 억울할 따름이었다. 깡패짓을 일삼는 무녀가 남의 말버릇 운운한다는 것부터가 그렇달까.
물론 비아냥을 듣는 사구메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아무래도 고통이 앞서는 세이자는 알지 못하고 있엇다. 레이무는 가볍게 한숨쉬며 도착하면 풀라고 적당히 얘기했다. 또 훠이훠이, 손을 내저으면서 얼른 가라고 그녀들을 재촉했다. 딱 한 명, 그런 예의없는 인사에 예외가 있었다면, 유독 머리까지 쓰다듬으면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까지 남긴 아운이었다. 차별대우가 너무 적나라해서 짜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무녀가 자기한테까지 그런 오글거리는 인사를 하면 몸이 오그라들어버릴 테니 그냥 적당히 떠나기로 세이자는 결정했다.
"…솔직히 이제 풀어도 되지 않아?"
가던 도중은 그렇다 치고. 그런데 인간마을에 오고서까지도 포승줄을 풀고있지 않은 사구메에게 세이자는 눈치없는 자식이란 눈길을 보냈다. 사구메야 물론 풀고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동하고 있는 아운의 앙칼진 시선이 있었기에 망설이고 있었다.
"멋대로 풀면 안 돼요!"
"아니, 주위를 좀 봐라! 지금 나 묶여서 호송되고 있다고 뭐 광고낼 일 있어!?"
"그건 제가 상관할 게 아니에요!"
"뭣이 어째? 천진난만한 얼굴로 막말하네 어?!"
주위는 벌써 현상수배범 아마노자쿠가 잡혀가는 걸 구경하는 무리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사구메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새로운 이변해결사겠거니- 하고 넘기는 반응이 대다수라 세이자의 눈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눈길이 가는 건, 오히려 호송되고 있는 자신의 꼴을 보고 실컷 웃어대고 있는 풀뿌리 요괴 네트워크의 녀석들 쪽이다. 왜 같이 이변을 일으켰던 녀석들 중에 자기만 이런 심한 꼴을 당해야 하나- 세이자는 정말 진빠진 표정으로 세상을 탓했다.
■■하고 싶은 충동을 어떻게 넘기고 도착한 묘렌사의 앞이었다만, 또 이젠 아운도 사라져 줄도 풀렸다만. 세이자는 도무지 도망칠 기력이라곤 없어서 축 늘어진 채 사구메가 문을 두들기는 걸 멍한 눈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곧 네에-! 안녕하세요! 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쿄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둘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에에- 예정된 손님이었는데, 어떤 손님이었더라?"
"……키신."
"아니, 아니 아니! 말하지 말아요! 기억날 거 같으니까! 으음- 그러니까~!"
양 관자놀이를 검지로 누르며 쿄코가 생각하는 티를 냈다. 그러다가 알아챈 듯이 아! 하곤 말했다.
"응! 한쪽만 날개가 있는 이쪽이 키신 사구메! 그리고 이쪽이…"
"……."
"……이쪽이, 똑같은 키신~"
"키진이다 멍청아."
"아! 키신 세이가!!"
"다 틀렸어! 다 틀렸다고! 글러먹었어!! 으아아아!!"
"에? 그러면, 키신 세이란?"
"……풉."
"어이, 댁 지금 웃었지."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던 사구메는 세이자가 노려보자 시선을 급히 피했다. 그렇지만 입술이 들썩거려 가리는 손이 흔들리다보니, 티가 심하게 났다.
"……그렇지, 푸흡. 않아…."
"설득력없는 얼굴로 그런 말 하지 마!! 괜히 안웃는 척 하는게 더 기분나쁘다고!!"
"어음… 키신 세이메이!"
"넌 언제까지고 틀릴 생각이냐! 키진 세이자다! 세이자!!"
기어코 참지 못한 세이자는 쿄코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며 소리질렀다. 쿄코는 목이 덜렁덜렁 흔들리면서도 아아~ 그렇구나아~ 라는 식으로 태평한 대응이었다. 하다 지친 세이자가 멱살을 놓고 거친 숨을 쉬고있자 쿄코는 가볍게 제 머리를 치면서 말했다.
"경쟁사 쪽 선인이랑 착각해버렸다, 데헷."
"……."
오묘하게 틀리는 것부터 느꼈지만, 저 자식 분명 일부러다. 그렇게 생각한 세이자였다.
잠정적 고의인 조롱을 당하고 난 뒤 묘렌사에 본격적으로 입성한 세이자는 그래도 괜찮지 않으려나, 싶은 생각을 했다. 사구메와 절의 주지가 나름 수완좋게 얘기하는 걸 보며 하쿠레이 신사 때처럼 몹쓸 취급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안심이 들어서일까. 사구메가 귀빈 취급을 받는듯해서 녀석의 딸이라 주장되는 자신에게 위해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무튼, 패대기당하거나 부적에 맞아 퇴치되던 때와는 좀 동떨어진 일상이 될듯해 그나마의 안심이 든다.
"……심심하구만."
라고 중얼거리며, 세이자는 사구메와 주지의 뻔한 대화가 따분해서 잠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넓은데 비해 인적은 드물어서 그런지 누군가 있는 모습이 굉장히 부각되어 보였다. 세이자는 저 넓은 마당을 쓸고있는 갈색 롤빵머리의 누군가를 보고있었다. 하도 적나라하다보니 저쪽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세이자 쪽을 뒤돌아 바라봤다.
"……."
세이자는 녀석의 표정을 바라보자 심심했던 방금의 기분은 온데간데 없이 초조해져갈 뿐이었다. 퀭한 눈, 수척한 피부, 피골이 상접해있는 얼굴. 그런 꼴이라 시체같은 녀석은 아마도 신입이라 생각하는지 세이자에게 이런 입모양을 내보인다.
도 망 쳐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세이자는 과연 여기가 하쿠레이 신사보다 나은 곳일까 고민해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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