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들의 배틀로얄
먼 과거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전생자가 끊이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시공간과 차원을 넘은 전생자들로 환상향은 큰 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이렇다보니 전생자들 끼리 서로 협업을 하거나 또는 목숨을 건 배틀로얄을 찍는 경우도 잦았다.
그 환상향은 그렇게 전생자들로 인해 오염되어 본래의 목적도 잃은 채 폐기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전생자들이 전생해 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또 다른 환상향.
서기 20XX년. ??차원 우주의 환상향은 수많은 전생자들의 지옥으로 변했다. 치트 능력을 지닌 전생자들의 수는 총 6798명. 어떤 전생자는 머나먼 과거로 전생해 지금까지 플래그를 쌓아왔고, 또 어떤 전생자는 신이 되어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전생자는 기존 환상향에 거주하던 인물에게 빙의되었으며 또 어떤 전생자는 자신이 태고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환상향을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만들기 위해 방해가 되는 다른 전생자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환상향은 곧 불바다가 되었으며 인외지옥이 되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전생자와 공산주의를 부르짖는 전생자가 만나 치열하게 싸웠다. 환상향은 불바다가 되었다. 최애캐가 겹치는 전생자끼리 만나 치열하게 싸웠다. 환상향은 불바다가 되었다. 하렘을 형성하고자 하는 전생자끼리의 싸움은 가장 흔하고도 또 가장 치열했다. 환상향은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홍염의 불꽃에 휩싸였다.
이런 전생자들 끼리의 싸움에 환상향을 지키고 유지하던 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정의만을 부르짖으며 끊임없는 파괴 행각을 벌이는 전생자들의 횡포를 막을 수 없었다. 한 때, 수많은 신앙을 모으던 신들도, 대요괴로 경외 받으며 공포를 공양 받던 요괴도 전생자들에겐 한낮 성노예에 불과할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월인들이 사는 달은 이미 옛적에 사라져 바깥 세계에는 종말이 찾아온지 오래였다. 지구가 멸망하고 환상향도 멸망하기 일보 직전에도 전생자들의 횡포는 그치지 않았으며, 그곳의 모든 주민들이 죽어갔다.
어째서 그 환상향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그것은 전생자로 인해 왜곡되고 바뀌는 미래가 수백, 수천이나 되는데 그 모든 경우의 수가 하나의 환상향에 모여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생자도 수백, 수천. 그 만한 수의 치트 능력이. 옳다고 주장하는 에고이스트가 맞부딪쳤는데, 무사할 리가 없었다.
최후에 최후에는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고 창조해내는 창조주의 힘을 지닌 전생자들만 남았다. 자신이 우주의 의지라 믿으며 진정한 태초의 존재가 되기 위해 싸움을 거듭했다. 우주가 파괴되고 은하계가 파괴 되었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권능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기에 끝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이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자신만의 지구를 환상향을 만들기 위해 싸움만을 반복하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소치였다.
그걸 알아차릴 정도로 똑똑했다면 모르나. 안타깝게도 전생자들은 하나 같이 교양이 부족했으며 자신이 배우고 습득한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둔한 자들뿐이었다. 근대의 지식을 지닌 그들의 눈엔 근대가 아닌 모든 것들이 수준 낮아 보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 같이 교만했으며 철저하게 근대의 신사를 연기했다. 그런 주제에 월인을 거만하기 짝이 없는 선민사상에 찌든 귀족주의라고 비판하는 자가 이들이었다.
겉으로는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모두를 얕잡아보는 그 시선만큼은 감출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시선이 서로에게 향하게 된다면 불화로 이어지는 건 당연지사. 결국, 전생자들에게 서로의 싸움을 피할 운명 따윈 없었던 것이다.
하기사, 전생하기 전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찐따였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이런 찐따들 때문에 멸망한 우주가 애석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찐따에게 강한 힘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존재들이었다. 제 아무리 태고의 존재가 되었던, 전지전능한 힘을 지녔던. 그들은 그저 단순한 찐따에 불과했다. 미소녀들에게 둘려 쌓여 칭송 받고 싶은 욕망에 눈이 먼 최악의 강아지. 아니, 강아지라는 표현도 아깝다. 민폐 스케일이 우주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우주 쓰래기.
이세계 치트물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심으로 시작된 싸움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알면 이것도 꽤 순화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사멸되고, 은하계의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들이 몇 개나 소멸 되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이들을 과연 무어라 불러야 하는 걸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전지전능한 전생자들의 싸움도 그 끝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찐따들에게 지나친 힘을 부여한, 한 여자에 의해서.
유사 차원이 붕괴해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소멸해 가는 데도 찐따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 또한 사라져 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전지전능하다 여겼기에 그런 가능성 따위 조금도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게 하나의 차원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쓰래기통에 버려졌다.
*
시시한듯 공처럼 구겨놓은 종이를 쓰래기통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은 유카리는 이런 결말을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이것 봐봐. 결국 이렇게 되잖아. 그러니까, 전생자들을 잘 대해 줄 필요는 없는 거야."
그에 불만 가득한 그녀의 식신이 어처구니없다는 어조로 따지고 들었다.
"뭡니까? 이런 촌극은!? 차원 하나 멋대로 만들어 놓고 결과를 논하다니요."
"유사 차원이야, 유사 차원. 진짜와 비슷할 뿐인 가짜!"
"그래서 그런 가짜로 뭘 알 수 있다는 거죠?"
"어머, 너도 봤잖니? 전생자들의 행동 패턴이야. 치트 좀 가졌다고 멋대로 행동한 결과, 파멸만을 가져다 온 거."
그것은 즉, 진짜와 똑같은 유사 차원을 만들어내어 그곳의 환상향에 무수한 치트 능력자들을 전생시켜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얘기였다. 어차피 진짜가 아닌 가짜. 생명 자체도 만들어진 가짜이기에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유카리의 입장. 하지만, 유능한 식신인 란에게는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이유였다.
"가짜면 맘대로 만들고 없애도 된다는 건가요?"
"그럼, 안 돼?"
"하아..."
란은 두통이 이는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인을 살벌한 눈으로 노려봤다.
"유카리님."
"응? 왜??"
"한 대 맞읍시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카리의 허리가 갑작스럽게 뽀각 하고 부러졌다. 란이 혼신의 힘을 담은 사커킥을 주인의 허리에 냅다 꽂은 것이었다. 상체를 지지할 허리가 아작 나자, 유카리의 머리는 점점 뒤로 넘어가더니 이윽고, 뒤통수가 발바닥에 닿아버렸다.
그 상태에서 유카리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불평했다.
"란, 무슨 짓이니?! 네가 내 허리를 부순 탓에 내 머리가 발바닥 위에 놓여졌잖니!"
허리가 부셔져 몸이 반대로 접혀진 상태에서도 태연해 보이는 주인의 모습에 란은 그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 보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한 동안 그렇게 있으면서 반성 좀 하세요."
란은 그 말만을 남기고 안방을 나왔다. 남겨진 유카리는 어디선가 흘려드는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야? 대체 어디서 이런 꼬랑내가 나는 거람?"
그게 자신의 발냄새인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