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이 있는 곳으로부터 천정사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보통 걸음걸이로 이틀 정도면 도달할 거리였고, 도중에 크고 작은 집락촌이 있어 밤에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편한 여정이 될 터였다.
그러나 일행 중에 오니가 있다면 조금 다른 얘기다.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 그런 무서운 요괴가 발을 들인다면 필시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마을의 민박을 이용하는 건 저와 제 제자. 그리고 쿠모이 씨 정도겠군요."
어두컴컴한 밤. 촌락에 들어서는 입구를 앞에 두고, 센조는 일행들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인간인 자신과 호우렌. 그리고 일단, 인간으로 보이는 이치린. 이 셋만 숙박을 위해 마을 안에 발을 들이고 나머지는 근처에서 노숙을 하는 것으로 입을 맞추자는 센조. 당연히, 오니는 반발했다.
"너희들만 방바닥에서 자고, 우리는 흙바닥에서 자라고? 차별 아니야?"
"그렇다고 퇴마사 나부랭이인 내가 마을에 오니를 데리고 들어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자기 절에 들일 땡중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스승님께서 드물게 옳은 말을 하는 군요. 이참에 천정사에 초대하는 것을 물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호우렌이 이때다 싶어, 센라의 말을 인용하여 스승을 설득하려 했다.
"에엥? 싫은데?"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빈정대는 투정 뿐.
"마을에서는 외부자일 뿐이라서 안되는 거지만, 천정사에선 내가 주지잖아? 내가 결정한 일에 감히 누가 대든다고 그래?"
주지라는 자리를 이용해 제멋대로 구는 스승의 행동에 제자인 호우렌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저런 사람이 주지이자, 자신의 스승이란 사실이 참으로 유감인 한편, 그렇기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 자신이었다. 호우렌은 한숨을 내뱉었다.
"적어도 저는 대들 겁니다."
"어쭈? 이게 감히 나한테 대들겠다고 말해??"
센조는 양 주먹을 교대로 내지르며 한판 붙어 보자는 시늉을 냈다. 그 모습을 본 센라가 피식하고 웃었다.
"뭐야? 하극상이라도 일어나는 거야!?"
"그전에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으려고 말이죠."
센라의 말에 맞장구친 센조는 제자를 노려보며 그를 도발했다.
"어디 한 번, 실력이 얼마나 붙었는지 볼까?"
그에 호우렌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자신의 스승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호우렌. 둘 사이에 긴장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먼저 움직인 것은 제자쪽이었다. 손으로 빠르게 인(印)을 맺고 진언을 중얼거리는 호우렌. 그 모습을 센조는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윽고, 진언을 끝맺은 호우렌이 양 손바닥을 센조를 향해 뻗었다.
그 순간, 호우렌의 양 소매로부터 금색을 띤 암기가 사출되어 나갔다. 암기는 센조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고, 그의 몸을 꿰뚫기 직전에 휘둘려진 석장에 튕겨졌다.
"공격이 너무 정직하지 않아?"
휘두른 석장을 다시 원래 자리에 돌리고 그 끝을 가볍게 땅에 찍은 센조가 비아냥하듯 말했다. 튕겨나간 암기는 어느새 호우렌의 양 어깨 위로 체공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도 금색 빛을 띤 암기, 금강저의 일종인 앞뒤로 한개의 날이 있는 독고저가 술자의 의지에 따라 다시 쏘아져 나간다. 이번에는 정직한 직선이 아니라 각각의 독고저가 좌우로 크게 벌리며 센조의 양옆을 노리며 날아갔다. 그것은 눈으로 쫒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지만, 센조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냈다.
허무하게 허공만 가른 독고저가 다시 호우렌의 곁으로 귀환한다. 두 번의 연이은 공격을 막아내고 피해낸 센조는 다소 따분한 얼굴로 하품했다. 그에 비해 호우렌의 얼굴엔 초조함이 드려나 있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사제간의 싸움에 이치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센라에게 물었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이치린과 달리 센라는 마치, 물 건너 불구경하듯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하극상인데, 그런 아까운 짓을 왜 해?"
"저러다 다칠 것 같으니까 그러지!"
"싸우는데 다칠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말리자는 거야. 나 다치는 거 보기 싫으니까!"
이치린은 품속에서 금륜을 꺼내들어 당장이라도 운잔을 부릴 준비를 했다. 그때, 그런 그녀를 말린 것은 놀랍게도 코우였다.
"저 두 사람은 괜찮을 거예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치린은 코우의 행동이 의아했다. 그라면 자신과 같은 생각이었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그간 코우가 보였던 모습을 비추어 봤을 때, 지금의 그의 행동은 무척이나 의외였다. 싸움을 말리기 위해 선배를 설득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말리다니.
"너라면 이런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도 저 둘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서요."
"지켜보고 싶다니... 너?!"
놀라하며 쳐다본 코우의 얼굴은 진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진지했다. 그 여리고 예의바른 요괴인 코우 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두 눈은 열망으로 가득했고, 굳게 다문 입은 그의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었다.
센라는 그런 코우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낮게 읊조렸다.
"변한건가."
그것이 좋은 쪽이건 아니면 나쁜 쪽으로건 변한건 분명했다. 이치린과 처음 만난 그 날을 기점으로 변해갔을 테고, 계기는 더 이전인 카기라는 퇴마사와 사투를 벌인 그날 밤일 것이다. 어차피 자신과의 여행을 통해 차츰 변해가야 할 후배이긴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저 변화는 과연 바람직 한 걸까?
'그건 아니야.'
센라 자신이 바란 코우의 변화는 결코, 힘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것 보다 여러 장소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경험과 견문을 쌓아, 살아갈 이유와 목적을 가지게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하나의 존재로서의 성장. 지금 코우가 얽매여 있는 '힘'. 그걸 추구하는 건 그 다음이어야 되는 것이었다.
내가 좀 더 의지할 만한 선배였다면 달랐을 테지.
지금 와서 해봤자, 부질없을 뿐인 후회였다. 센라는 자조하듯 혀를 '쯧'차며 계속되고 있는 두 사제간의 싸움에 집중했다.
싸움의 행방은 아직 어느 쪽에게도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았다. 호우렌의 독고저 두개가 센조의 사각을 노려 쏘아져 나갔지만, 예상한 듯 휘둘려지는 석장에 튕겨져 나가거나 피해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제자의 공격에 여유 있게 대처하는 센조는 어째서인지 반격에 나서지 않고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허공을 가른 두 독고저가 호우렌의 곁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진심이 아니면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건가."
분한 듯 이를 갈면서 염불을 외듯 진언을 중얼거리는 호우렌. 손으로 인(印)을 맺자, 허공에 체류중인 독고저가 열기를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붉게 달아오르더니 화염에 휩싸였다.
"흐음. 불길이 전 보다는 강해진 것 같긴 한데.."
어두운 밤을 순식간에 밝힌 두개의 불을 보며, 센조는 품평을 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손으로 턱을 쓸며 살며시 눈웃음을 지었다.
"아직 미숙해."
실망의 말에 조소를 담아 내뱉은 그는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두개의 불덩이를 보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휘저은 궤적을 따라 강한 불길이 솟아나 순식간에 두 불덩이를 집어삼켰다. 불이 사라지고, 밝혀졌던 밤이 다시 어둠에 잠식됐다.
불길에 삼켜졌던 독고저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불을 빼앗긴 금속은 달구어졌던 신체를 점차 차갑게 식혀갔다.
자신의 술법이 너무도 간단히 무력화되어버린 호우렌은 망연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독고저를 응시했다. 센조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이런 실력 가지고 용케도 대들 생각을 했구나?"
호우렌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의 실력으로는 스승님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그 뿐인가. 처음부터 손대중으로 농락당했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차를 절감한 호우렌은 순순히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했다.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대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저로서는 스승님을 당해내지 못하겠습니다."
"알면 됐다. 근데, 호우렌아. 네 술법은 내가 손 한 번 휘둘렸다고 깨져버렸다. 왜 그런지 아느냐?"
"그건 스승님의 술법이 저의 술법 보다 격이 다르게 높기 때문입니다."
"그지?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쪽이 술법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거 웃기지 않나? 너는 주둥아리로 웅얼웅얼하면서 손가락까지 바쁘게 움직였는데, 손만 휘두른 내 것보다 떨어지니 말이야."
센조의 말대로 그것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째서 진언에 인까지 맺은 호우렌의 불이 손만으로 일으킨 센조의 불보다 못한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 제자인 호우렌 만이 아닌 싸움을 지켜본 센라, 이치린, 코우,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목이 센조의 입에 집중된 가운데 조금 뜸을 들인 그가 설명했다.
"그건 니가 허접해서야."
"엥? 그것 뿐??"
무언가 그럴싸한 이유를 기대하고 있었던 센라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휘청거렸다. 기대가 빗나간 이치린도 한숨을 토해내며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호우렌 만큼은 익숙한 듯 반개한 눈으로 센조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넘어가니까, 제가 발전이 없는 것이지 않습니까."
"화두는 스스로 고뇌하여 깨닫는 거지, 직접 알려 주는 게 아니야."
"이건 불교의 수행이 아닙니다! 스승이시라면 제자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르쳐 주셔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래서 가르치잖아! 가르쳐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말이 많다."
방금 전까지 치고 박고 싸우던 두 사제는 이젠 가르침을 놓고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센라는 재밌어했고, 이치린은 다소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코우는 사이가 나쁜지 좋은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 두 사제간의 모습으로부터 자신과 선배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두 사제의 관계가 어쩌면 자신과 선배와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코우는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고, 그런 그에게 그들에 대한 경계심은 이제는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
아침이 밝았다.
먼저 눈을 뜬 코우는 맑은 공기를 폐에 한가득 들이 마시는 것으로 잠기운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아직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센라를 양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것으로 깨게 했다. 두 요괴가 잠이 깬 곳은 마을 인근의 풀숲. 다른 일행들은 마을 안에 있는 민박에서 밤을 보냈을 것이다.
아직, 정오가 멀었기에 일행과 합류하기 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마냥 자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수상한 인기척 때문이었다.
풀숲을 헤치는 발소리를 경계한 코우가 이제 막 깨서 눈을 비비고 있는 센라에게 소곤댔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