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은 그동안의 자동수기인형 활동을 통해 공감 능력을 기르고
자기 감정도 더 분명히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사랑해"를
알게 되는 날도 가까워졌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별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더 깊게 이해할수록, 바이올렛은 그런 감정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린 '무기'로서의 과거에 대해 더 짙은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기약 없는 이별에 직면한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 삶의 길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과 남들이 공유하는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바이올렛은 다시 삶의 길을 찾아냅니다. 8화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든 것들의 도움을 받아, <바이올렛 에버가든> 9화는 불과
20여 분 안에 이 모든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1. 슬픔의 다섯 단계
8, 9화의 바이올렛은 전에 없이 격정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을
표출합니다. 그녀가 소령의 실종 소식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흔히
회자되는 순서와는 다르지만, '슬픔(또는 죽음)의 다섯 단계'라 불리는
도식을 활용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부정
바이올렛의 첫 반응은 강한 부정입니다. 모두들 소령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여기는데도, 바이올렛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 전 받아 적었던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현실은 비정해서 행복한 결말을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어느새 소령의 시신을 찾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바이올렛은 더없이
비통해합니다.
(2) 우울
하진스와 베네딕트에게 붙들려 반강제로 돌아올 무렵부터, 바이올렛은
잔뜩 부은 눈을 하고 축 늘어진 채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라이덴의 날씨는 화창하지만, 남국의 강한 햇살은 그런
바이올렛에게 아직 닿지 못합니다.
9화 내내 바이올렛은 오른쪽 의수를 잘 움직이지 못합니다. 자세히 보면
검지와 중지가 잘 오무려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인텐스의 폐허에서
돌무더기를 무리하게 헤집다가 조정이 흐트러졌는데, 다시 정비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이올렛이 꿈 속에서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때, 피 묻은 모습이 더
부각되는 것도 그녀의 오른손입니다. 과거 전투 장면들을 돌이키면 어느
한쪽 손을 더 탓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마 바이올렛은
주관적으로 오른손잡이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피를 묻힌 듯한 감각도
오른손에서 더 강하게 느끼고 있고, 그런 손을 다시 회복할 마음은 더더욱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7화에서 바이올렛의 꿈은 '무기'로서의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거기에 소령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졌습니다. 9화에서 바이올렛은 두 종류의 죄책감이 기괴하게 뒤섞인
악몽을 꿉니다. 5화 마지막에 나온 디트프리트의 차가운 일갈을 이번에는
소령의 목소리로 듣고, 바이올렛의 고통은 임계점을 넘어섭니다.
(3) 분노
바이올렛은 먼저 분수에 맞지도 않게 인형이 되기 위해 노력해 온
흔적들부터 파괴합니다. 그리고 그저 명령에 따라 거리낌없이 사람들을
해친 자신의 분신("길베르트의 개")에게 분노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 분신은 옛날의 바이올렛을 닮은 무표정한 얼굴로
'네 책임이잖아?'라고 묻는 듯 그녀를 응시합니다. 그래서 바이올렛의
분노는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4) 도피(타협)
그러나 "너는 살아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소령의 마지막 명령을 어기고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디 피할 곳도 없이 슬픔과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바이올렛은, 차라리 소령이
새로운 명령을 내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마지막 현실 도피를
시도합니다. 다섯 단계 이론에서는 본래 이 단계를 '타협'이라고 부르는데,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일종의 협상을 통해 미루려고 한다는 뜻에서입니다.
바이올렛도 여기서 어느 정도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만, '타협'의 어감이
잘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명령의 부재는 애당초 바이올렛이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입니다. 출발선으로 돌아간 바이올렛은 이제야말로 목적지를 완전히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진스의 생각은 다릅니다. 1화에서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감추며 소령을 찾는 바이올렛의 물음을 교묘히 회피하던 하진스는, 이제
그 손을 밖으로 꺼내면서 바이올렛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단계, '수용'을 다룬 9화 후반부는
'편지'와 '이름'을 매개로 하진스의 그 말이 옳았음을 입증합니다.
2. 편지
기진맥진한 바이올렛에게 에리카와 아이리스의 편지가 배달되고,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빛이 닿습니다. 그 편지를
배달해 준 집배원 할아버지 롤랜드가 늦은 시각까지 일하는 것을 보고,
바이올렛은 힘든 와중에도 이타심을 발휘합니다.
"어느 편지나 다 똑같이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이 담겼으니, 전해지지
않아도 되는 편지는 없단다."
원로 집배원 캐릭터가 필요했던 이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베네딕트가
갑자기 이런 대사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일 겁니다.
롤랜드의 말을 곧바로 입증하듯, 바이올렛은 자신이 배달한 편지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에리카와 아이리스가 보낸 따뜻한 편지가 자신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것을 느낍니다.
더욱이 세상에는 아직 그녀가 대필한 편지가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녀가 예전에 대필한 편지 덕분에 고통을 딛고 삶을 되찾았습니다.
그동안 길러 온 공감 능력 덕분에, 바이올렛은 지금까지
자동수기인형으로서 해온 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위로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아 준 것인지, 이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직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그녀의 얼굴에 드디어 햇살이 닿기
시작합니다.
3. 이름
우편사로 돌아가던 길에 바이올렛은 우연히 길가에 피어있는 제비꽃을 봅니다.
그녀가 아직 이름없는 무기였던 시절, 소령은 대포와 나무 그늘 사이에
피어난 제비꽃 한 송이를 보고 그녀에게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을
선물했습니다.
"바이올렛… 넌 바이올렛이야! 조금 더 성장하면, 넌 분명히 그 이름에
걸맞는 여성이 되겠지. 너는 도구가 아닌, 그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거야."
자신의 삶이 가진 아름다운 가능성을 방금 확인한 바이올렛은, 이제
소령이 피에 물든 '무기'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줄 때 어떤 희망과 기대를
품었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바이올렛은 그 기대를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시 우편사로
향합니다. 그녀의 힘찬 첫 걸음이 날아오르는 하얀 새와 겹쳐집니다.
바이올렛의 인형 드레스는 깃 장식이 펄럭일 때마다 날아오르는 새를
연상시키는데, 이미 7화에서 그녀는 물새처럼 호수 위를 날고 싶다는
올리비아의 꿈을 대신 이뤄준 적이 있습니다.
에리카와 아이리스가 바이올렛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창 밖으로 날아가는
새들은 바이올렛이 이제 우편사를 영영 떠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새들의 의미는
달라졌습니다. 바이올렛은 자동수기인형으로서, 소령의 마지막 바람대로
자유로운 삶을 끝까지 추구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려운 시절부터 주어진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것을 지어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삶의 용기를 얻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이름을 선물하던 소령의 눈동자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바이올렛에게, 자신의 이름이 얼마나 각별하게
느껴질지는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제비꽃의 꽃말은 종류와 색깔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바이올렛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말은 푸른 제비꽃(blue violet)의
"신실함(faithfulness)" 같습니다.
4. 편지와 이름
바이올렛은 편지가 열어 준 삶의 길에 대해 생각하며 인형 육성학교에서
받은 졸업 브로치에 오른쪽 의수를 얹고, 그녀가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란 소령이 준 이름에 대해 생각하며 에메랄드 브로치를
어루만집니다. 이 두 가지 브로치가 상징하는 것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삶을 개척해 왔듯이, 바이올렛은 앞으로도 자신이 받은 이 두 가지
선물을 간직하고 살아나갈 것입니다.
그런 그녀의 각오를 재확인하듯, 9화는 그녀가 받은 첫 편지와 그녀의
이름을 함께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5. Amor fati
로마 제국의 오현제 중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본래
정치보다 철학에 심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안 어르신(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유지 때문에 억지로 황제가 되어
병약한 몸으로 전쟁터에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책무를 다하기 위해 <명상록>을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순리에 따르는 한, 우리의 내적인 힘은 일어나거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알맞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그 힘은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목표를 추구할 뿐이다. 심지어 장애물을 연료로
삼아서라도 말이다. 마치 등불을 꺼트리는 물건이 오히려 큰 불길은 더욱
거세게 만드는 것처럼. 타오르는 불길은 그 속으로 던져진 모든 것들을
삼켜서 태워버리고는 더욱 더 높이 타오른다."
(Gregory Hays의 영역본, 박문재의 국역본 참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천으로 삼는 삶의 태도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비롯한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이상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자세를 라틴어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9화에서 바이올렛을 염려하는 카틀레야에게, 하진스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아모르 파티를 이야기합니다.
하진스가 그런 인생관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 자신이 장교로서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 심각한 과오를 범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무기 취급을
받는 바이올렛을 보고도 그냥 방치했던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작중 피가 흐르는 환영을 볼 정도로 과거의 충격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바이올렛과 하진스 뿐입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저는 화상투성이였습니다. 괜찮을까요? 이런 제가
자동수기인형이어도, 괜찮을까요? 살아도, 살아 있어도, 괜찮을까요?"
그래서 그런 죄책감의 대상인 바이올렛이 같은 고통을 호소했을 때,
하진스는 그만 눈물을 보입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그는
바이올렛에게도 아모르 파티를 가르칩니다.
"네가 해온 일들은 지우지 못해. 하지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만큼 남은 혈육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위해
삶을 이어나가는 남매.
공적인 책임을 다하면서도 그 안에서 개인적인 행복도 찾아낸 공주와 왕자.
딸을 잃은 슬픔을 창작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극작가.
더 이상 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삶의 아름다움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 고아 소년.
피 묻은 과거의 잘못을 교훈삼아 더 가치있는 삶의 길을 택한 사업가이자,
방금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
이들 모두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고, 그 경험으로부터 이제 자신도 구해낼
힘을 얻은 소녀.
"하지만, 네가 자동수기인형으로서 해온 일들도, 지워지지 않아.
바이올렛 에버가든!"
과거의 삶에서 입은 화상을 솔직하게 긍정한 것처럼, 이제 바이올렛은
자동수기인형으로서의 새로운 삶도 긍정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상반된
요소는 함께 지금의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만들어냈고, 그녀는 둘 모두를
원동력으로 삼아 앞으로의 삶도 개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내일로
<바이올렛 에버가든> 9화는 거의 최종화에 맞먹을 정도로 극적인
표현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9화의 결말은 여행의 끝이 아니라,
여행이 끝까지 계속된다는 약속입니다. 1화에서 바이올렛이 던진
질문들을 기억하는 분들은 바이올렛이 그 답을 얻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더욱이 9화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진스 말대로, 바이올렛에게
이제 명령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바이올렛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고, 명령에 따르던 과거의 자신이 거수경례로 작별을
고하는 환영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바이올렛은
괴로운 표정을 짓습니다. 명령은 소령과 바이올렛을 이어주던 가장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명령이 필요없다면, 둘의 결속 또한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바이올렛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길베르트의 '개'였던 자신이 미워서 바이올렛은 책상 위 강아지 인형을
거의 던질 뻔했지만, 그래도 '길베르트'의 개이기에 차마 던지지 못하고
바닥 위에 고이 내려놓습니다. 9화가 끝날 때까지 그 인형은 책상 위로
다시 올라오지 못합니다. 마지막 13화까지 그 인형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바이올렛은 과연 소령과 함께 했던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규정하게 되었는지, 시청자는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11화부터 13화에 걸쳐 천천히 풀립니다.
참고 자료
- Kate Greenaway, < The Language of Flowers >, George Routledge & Sons (London, 1884)
- Anime Philosopher, The Supporting Cast of Violet Evergarden
- Marcus Aurelius, < Meditations >, translated by Gregory Hays, The Modern Library (New York, 2012)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8)
* <바이올렛 에버가든> 9화의 연출 및 콘티를 담당하신 타케모토 야스히로
감독님은 2019년 7월 18일 쿄애니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으로
작고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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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의 명령을 갈구하던 순간에는 그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바이올렛은 그녀가 “그 이름에 걸맞는, 그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 소령의 바람을 제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녀의 남은 이야기는 그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 19.06.20 17: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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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 법이지요. 성장한 바이올렛을 보는 것은 소령도 우리도 흐뭇하겠지만,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 속에 있을 것입니다. 설령 새로운 사랑을 만나 세상에 없는 행복을 누린다 할지라도, 어느 날 문득 한숨 쉬거나 울면서 깨어나는 날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불완전한 성장이라는 말은 아니구요. 모나리자의 눈썹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네요. | 19.06.20 19: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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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셨군요. 동의합니다. | 19.06.20 21: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