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어비스'
이 애니메이션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단순히 귀여운 아이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마마마식 클리셰를 기반으로 한 애니라고 볼 수도 있고,
고전적인 판타지 세계관의 부활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메이드 인 어비스에 대해서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어서 좋았다는 감상도 있을 수 있고,
아름다운 배경작화에 힘입은 경탄스러운 세계관이 좋았다는 감상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이 애니메이션을 2017년 최고의 TV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메이드 인 어비스라는 13화 애니메이션이
기적이라는 요소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는 지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마지막 화에서 미티를 떠나보내고 남은 리코, 레그, 나나치 3인방은
지상을 향해 전보선을 보냅니다.
심계 4층에서 보내는 이 전보선이 지상에 도달할 확률은 지극히 낮죠.
하지만 수없이 흔들리고 상처를 입고 중간에 멈춰도
이 전보선은 결국 지상으로 돌아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봐야하는 확률을 뚫고 말이죠.
이 전보선은 사실상 지난 13화 동안 리코가 행한 여정의 재구성이자 오마주 역할을 합니다.
식인 생물에게 붙잡혀서 거친 상승부하로 정신을 잃고,
레그를 업고 위험에서 도망치는 동안에 또 상승부하로 구토와 환각을 경험하고,
이윽고 목숨을 위협받는 치명적인 상처로 모험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 처하죠.
하지만 그리운 환각에 흔들리더라도 레그를 떠올리며 다시 나아가고,
팔을 잃더라도 여행을 할 수 있게 팔꿈치를 잘라내라고 레그에게 부탁하는 등,
그야말로 불굴의 영혼의 소유자라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리코의 생애는 기적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태어나자마자 죽은 상태였던 리코는 마침 라이자가 얻어낸 유물의 힘으로 되살아 났고,
설령 라이자의 편지를 받았어도 불가능했던 여정을 레그의 협력으로 감행했고,
무작정 3층으로 뛰어들었다가는 목숨을 잃을 운명이었던 두 사람은 오젠의 가르침으로 그것을 극복했으며,
4층에 나나치가 없었다면 리코와 레그의 모험은 리코가 가시에 찔린 순간 끝났을 겁니다.
'기적'은 다른 말로 '작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창작물도 '작위성'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죠.
심지어 다큐멘터리조차도 편집자의 작위적 요소가 들어갑니다.
이 작위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부자연스럽다.'랑 '의도가 뻔하다.'입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을 예로 들어보도록 할까요?
수천명을 죽인 장본인인 카야바 아키히코가 1부 종료 이후에 계속 등장하면서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기 행적을 예쁘게 꾸미는 것을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납득을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카야바가 죽었다고 '땡, 끝!'하며 책임자 문책 없이 끝나는 것이야 둘째 치고,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계속 정의의 편에 서있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냥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봐도 작가가 개입해서 일부러 띄워주려고 하는 묘사가 뻔히 보이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작위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이 주로 쓰입니다.
작위성을 기반으로 최대한 극의 카타르시스를 크게 하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과,
작위성만큼의 개연성을 첨가함으로서 작위성이 가지는 단점을 희석하는 방법이 있죠.
전자의 경우는 '너의 이름은'을, 후자의 경우 '바스터즈'를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메이드 인 어비스의 경우는 개연성을 첨가하는 방향을 추구합니다.
문제는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가 개인적인 모험 서사이기에
현실의 개연성보다는 '판타지니까'라는 마법의 변명이 더 앞설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메이드 인 어비스는 한 가지 놀랍고도 감탄스러운 선택을 합니다.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본디 보여서는 안 될 작위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것을 '인간찬가'라는 포장으로 원래의 부자연스러움을 숭고함으로 바꿉니다.
8화에서 오젠의 회상에 나온 라이자의 대사가 그래서 명대사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인간의 생애는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비스에 발을 딛는 모든 탐험가들은 그 기적을 양분삼아 불굴의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어비스에 두려움과 경외를 보내며 어비스에 도전하는 자들이 마땅히 가져야할 정신적 덕목임과 동시에
이 메이드 인 어비스가 가지는 핵심 주제의식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죠.
다시 전보선 장면으로 돌아가보도록 하죠.
리코와 레그의 친구인 너트와 시기가 지상에서 상처투성이인 전보선을 수령하고
고아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흰 꽃잎들이 휘날립니다.
그 꽃의 이름은 토코시에(永久)코우. '영원'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이 꽃은
유용한 향신료임과 동시에 탐험가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는 꽃입니다.
연중 여러번 피고 지는 이 꽃과 불교의 윤회론을 기반으로 한 어비스 신앙으로 볼 때
서양의 백합보다는 불교의 상상 속 꽃인 우담바라에 더 가까운 토코시에코우.
이 꽃의 의미는 '불굴의 정신' 혹은 '인간 영혼의 찬란함'으로 보입니다.
너트와 시기가 기적의 결실인 전보선을 들고 돌아가는 길에 휘날리는 토코시에코우 꽃잎.
이 장면에 깃든 의미와 주제, 그리고 정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울 따름입니다.
'메이드 인 어비스'라는 애니메이션은 분명히 2017년 최고의 TV 애니메이션이자,
'인간찬가'를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들 중 두 손 안에 드는 작품성을 갖춘 애니메이션입니다.
오늘 메이드 인 어비스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원래 투고하겠다고 한 날짜보다 근 일주일이나 늦어졌네요.
글을 대체 몇 번 퇴고했는지 모르겠고, 중간에 주제도 몇 번 바꾸고, 아예 인터넷이 튕겨서 다시 쓰기도 하고...
막상 써보니까 또 그렇게 잘 썼다는 자신도 없네요;;
그만큼 이 애니메이션은 상상 이상으로 할 말이 많고, 숨겨진 의미도 많다는 것에 볼 때마다 놀랍니다.
다음 글은 오늘 방영한 용왕이 하는 일 화수 리뷰입니다.
최대한 빨리 올려보도록 하죠.
지금까지, 입덕술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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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애니메이션이 드문드문 보이기에, 아직 애니계에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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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자가 나레이션으로 하는 독백들도 죄다 명대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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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자가 나레이션으로 하는 독백들도 죄다 명대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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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가 가진 엄청난 추진력을 보면 레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혼자서 어비스에 도전했을 것이고, 죽었겠죠. 하지만 리코는 레그를 만났잖아요? 리코의 강렬한 호기심과 행동력은 기억을 잃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레그를 이끌어주게 되고, 그렇게 서로 지탱해주는 두 아이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리코가 무모함과 호기심만으로 행동한다고 하신 부분도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리코는 정보를 알 수 있는 곳 까지는 포켓몬 도감 수준으로 자세한 지식을 가지고 그 위험성또한 잘 알고 있죠. 여기까지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비스에 도전하는 무모함'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리코가 보여준 독가시에 찔려서 고통스러워 하는 와중에도 팔 아래를 절단해서라도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무모함이라기 보다는 꿈을 향한 근성과 그 앞의 위험에도 굴하지 않을 강한 용기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 18.01.23 1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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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해피엔딩이어야만 인간찬가인 것은 아니겠죠.... 위에도 나왔듯이 이 작품은 개연성 부족이 어느정도 드러납니다. 아마 그런 부분을 노리고 일부러 어린어이를 주인공을 내세운게 아닌가 합니다. 사실 전형적인 주인공은 '지르오'거든요. 이 작품은 설정과 클리셰, 플롯의 인과를 치밀하게 신경쓰기 보다는 동화나 환상소설에 가까운 텍스쳐를 지니고 있습니다. | 18.01.23 17: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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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호기심을 기반으로한 감정적 행동이 중심입니다. 위험을 정확히 알고 이기기 어려울것을 알면서도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지만 그건 그거고 난 당장 하고싶은 행동을 한다는 쪽이죠. 아이스러움이 드러나는 부분이고, 그게 나쁘다는건 아닌데, 그걸 용기로 해석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 이해없이 달려나간 방향이 한계를 넘어선 방향에 불과하거든요. 아쉬운 부분은 그러다보니 이게 미완결과 겹치면서 주제가 정리가 안되요. 보여주고 싶은건 잘 보여줬는데, 끊어버렸죠. 근데 그걸가지고 인간찬가수준까지 긍정적으로 해석해버리니까 지나치다고 보고요. 심지어 애니는 희망적인 메세지로 마무리 지어버림으로서 작품에서 더 깊게 보여줄 무언가를 한정해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 18.01.24 00: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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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개연성은 잘 맞아떨어집니다. 우연이 심한걸 당연하게 만들어버려서요. 정확히는 라이자를 두고선 인간찬가를 이야기할 순 있지만, 리코로는 아직...이라는 입장. | 18.01.24 0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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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찬가는 용기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위에 쓰신 희망을 놓지 않는 근성도 충분히 인간찬가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 18.01.24 00: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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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근성과 무모한 도전, 그리고 겹쳐지는 억지에 가까운 행운, 네 저도 똑같이 인간찬가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본작은 지브리로 대표되는 자연찬가의 훌륭한 트리뷰트죠. 주인공을 막무가내 어린아이로 표현한것도, 무력하게 휘둘리며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는 인간 이라는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죠. 레그와 나나치등과의 인연은, 어찌보면 그저 리코를 살려놓기 위한 장치일 뿐일수도... 둘뿐만 아니라 만나게되는 많은 인연들(마르르크, 폴슈카)이 하얀호각과의 관계가 각별한만큼 이 장치라는 말이 마냥 메타적인게 아니라 진짜로 작중 인물의 의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8.01.24 03: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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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애니메이션이 드문드문 보이기에, 아직 애니계에 머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