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루리웹 애니메이션 유저 칼럼 시리즈입니다. 일정기간 동안 루리웹 애니갤러리 상단 공지로 노출될 예정입니다.
필진으로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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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에서 가족간의 유대와 인간에 대한 애정을 매개로 한 실존주의라는 주제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반복, 변주된다. 이 서사는 현대와 근대를 넘어 중세, 고대, 유사 이전까지 갈 정도로 그 유서가 매우 깊은, 너무나도 진부한 소재이자 주제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애정어린 관조는 언제나 진중한 긴장감과 알맹이 찬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 현상으로부터 아주 의미있는 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사에 있어 큰 기점이 될 거라던 21세기가 지나 어느덧 2010년대도 2년이 있으면 끝나가고, 그 기간동안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냉전 이후의 세계는 미국의 독주체제에서 다극시대로 변해가고 있고, 기술의 발달은 그 정점이 될 특이점을 앞둔 상황이다. 기술적 특이점이란 무엇인가. 초인공지능이 등장하여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 시기가 그것이다. 인간은 신이된다고들 한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영생을 꾀할 수도 있고, 초인공지능과 스스로의 자아를 결합해 말 그대로 초인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지구 밖에서 생명체를 찾아 고집스런 유아론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고, 머지않은 시일내에 신경과 컴퓨터를 연결하면 생각이 현실처럼 이루어지는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꿈꾸는 모든 것들을 시뮬레이션 해볼수도 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 중앙의 쓰러져 있는 사람은 어떤 이유로 발기해있다
10만년 전, 처음 현생인류의 형태로 나타나서 어두운 동굴속에서 불을 피우고 벽화를 그리며 생각해 낸, 신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떠올린 우리 무리들은 그 대담한 상상력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낼 문자를 만들어냈고 거대한 문명을 만들어냈으며, 자연의 원리와 인간의 법칙은 물론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이름들의 각종 기관들을 발명해냈다.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며 인문학의 발달과 함께 인간 기본권이 보장되고 그것이 범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시기에 있다. 스스로가 상상한 신의 모습에 가까워져가는 것이다.
그 변화상과 함께 가족이라는 소규모의 무리에서 시작한 인간은 부족이라는 더 큰 무리로, 그리고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어냈으며, 인문학의 발달에 말미암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기로 돌아왔다. 신이 되길 앞둔 우리 스스로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인간이나 지금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 유전자적으로도 생화학적으로도, 그때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같다. 거대한 하나의 공동체를 상상해 낸 그 야심찼던 인간과, 신격화 될 정도로 전능한 단계에 이르렀지만 개인이라는 동굴에 발가벗겨 내던져진 우리는 아주 똑같은 수준의 뇌를 가지고 있다. 결국은 같은 걸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잇다른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도시의 생활 양식에 맞게 그 가족의 양태가 작게 변해갔으며, 폭발적인 경제의 양적 성장을 멈춘 오늘날 불확실한 미래의 전망과 어정쩡한 경제적 풍요에 기댄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가족을 이루지 않고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와중에 한 개인이 속하는 집단은 자꾸 작아진다. 최초에 도시에 정착한 부모의 다음세대는 한 인간이 되기 위해 (운좋게)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스스로의 미래를 다소는 비관하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노동의 시간 이외에는 취미를 갖거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훌륭한 어른이란 무엇인가
모에계열 창작물답지 않게 그 퍼스널리티가 불분명한 작중 코바야시의 모습은 전형적인 현대 20대 혹은 30대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타인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길 꺼리며 조용히 직장을 다니고, 취미가 다소 맞는 동료와 잠깐씩 떠들썩해지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조용하게 침잠한다. 혹은, 멋지게 일처리를 하며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는 모습은 어쩌면 동경할 수 있는 어떤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부모를 결코 싫어하지는 않지만 독립한 성인으로서 명백히 거리를 두고 있다. 한 가족이 스스로의 성채라면 1인가족이라는 그 어느 성채보다도 견고하고도 고독한 그것에 갇힌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더할나위 없이 안정된 삶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의 존재 의의나 마찬가지였던 공동체가 사라진 그 자리를 매꿀 수 있는 것은 과연 있을까? 그 물음에 답하고자 고독한 그 안정에 균열을 가하는 새로운 갈등요소 '드래곤'이 등장한다.
불멸의 생명력과 신의 권능을 지닌, 하지만 불완전한 드래곤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질적이면서도 신적 존재 '드래곤'을 거부하며 코바야시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 죄책감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죄책감은 책임을 수반하기에 느끼는 감정이다. 드래곤 토르 역시 신적 권능을 지녔으면서도 정서적으로 몹시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시사하는 점이 많은 등장인물이지만 어쨌든, 겉보기엔 그저 헌신할 뿐인 메이드의 캐릭터를 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는 그 죄책감의 정체가 뚜렷하지 않다.
가볍게 던진 같이 살자는 말을 지키지 못한 코바야시는
그 약속이 지키기 어렵다는 걸 알아차리고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한다. 가족이 되기는 이리도 어려운것이다.
그 죄책감은 부모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미숙한 드래곤 칸나의 운동회 불참때에도 반복될때 그 원인이 한층 뚜렷해진다. 스스로만을 돌아보며 살던 코바야시는 타인에 대한 불편한 책임감의 존재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어느 '깊은' 관계도 일방적인 것만은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것은 무척이나 당위적인 결과이다.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아이는, 하지만 부모의 어려움을 알기에 스스로의 욕심을 죽이려 하고
자녀의 애정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코바야시가 예와 같은 죄책감을 느낌으로서, 그것이 가족의 성장통임이 확실해졌다
그들 사이엔 어떤 혈연관계도 없지만 이미 어느 부부와 부모 자식보다도 끈끈한 유대가 형성되어있다.
메이드 드래곤은 코바야시를 위해 헌신하지만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코바야시 역시 그들과의 공동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들을 위한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자그마한 헌신의 행위들 한구석에서 코바야시는 기쁨을 발견한다. 혼자만의 동굴에 갇혀 살던 코바야시는 비로소 연대와 애정에 눈을 떠간다.
공동생활의 기쁨이라는 먼 서사를 돌아와 자아 성찰의 시간으로 돌아온 인간에게, 그 텅 빈 공간은
통속잡지나 정치학 서적 몇권으로 결코 차지 않는 빈 공간임을 자각하게 된다.
Cavemanman(2002), 토마스 허쉬호른 作
멸망의 권세를 이겨내는 것이 결국 하찮은 존재끼리의 유대라는 진부한 현실이라는 걸 깨닫기가 이렇게 힘들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위협을 마다하고 세상에 종말을 고하러 온 '종언제'에게 맞선다. 홀로 있는 시절의 플래시백은 자신의 동굴에서 스스로를 반추하던 그 시절이 사실은 텅 비어있었다고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 기쁨이 사망 권세를 이겼을때 인간의 궁극적 존재의 의미는 확실해진다.
'사랑하지 않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렇게 스스로의 의지로 지켜낸, 새로 생긴 가족을 데리고 오랫동안 찾지 않은 부모를 찾아, 코바야시는 고향으로 향한다.
모에로 일관한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교토 애니메이션은 실존과 관계라는 화두에 일관되게 천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마코 마켓] 일본 특유의 실존주의적 세계관의 복고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075/read/16307489
모에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스스로의 갈 길을 확실히 하는 쿄애니는 과연 포스트 지브리라 할만도 하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지브리 이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상당히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는, 상업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의외의 작가주의적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은 젖탱이를 강조한 만화 원작의 비 창작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스스로의 테이스트를 확실히 반영하고 있기에 특히 더 가치가 높아보이기도 한다.
무료로 풀어줄 때 많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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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갤유저 칼럼에 올릴만한 퀄리티의 글이란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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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읽어봐도 신청 방법은 못찾겠던데 어떻게 신청하는 거예요? | 18.01.10 13: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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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갤러리 게시판지기 양웬리님에게 쪽지를 보내시면 어떨까요? 칼럼 이벤트 공지(http://bbs.ruliweb.com/family/211/board/300075/read/30586581?cate=309&search_type=subject&search_key=%EC%B9%BC%EB%9F%BC)를 보니까 댓글이나 쪽지로 신청해달라고 되어 있어서... | 18.01.10 13: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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