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동안 TVA 시리즈를 평가할 때 첫 3화를 보고 첫인상을 파악하면서
이 시리즈와 끝까지 함께할 지 아니면 여기서 헤어질 지 판단하는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아마 그 유명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3화의 임팩트가 그 시작이었다고 추측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기당 40개가 넘어가는 시리즈를 일일히 다 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3화를 기준으로 커트를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죠. '슈타인즈 게이트'가 그랬고, '신세계에서'와 '잔잔한 내일로부터'가 그랬듯,
처음 3화는 고사하고 1쿨 전체가 진입장벽이 되지만, 이후 전개가 고평가받는 애니들도 많아졌죠.
물론 이런 전개가 TVA 시리즈라는 매체로서 작품성에 좋은 평가를 주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3화 법칙'은 이제 무조건 믿고 어느 때에나 적용할만한 일은 아닙니다.
이번 글에서는 나름 유망한 애니메이션이 6~7화까지 온 시점에서 중간평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게이머즈!
한줄평: 객관적으로 보면 건강에 해로운 연애관계를 하이텐션 성우연기과 연출로 먹기 좋게 만든 요리.
잡지 이름 아닙니다.
나름 잘 만든 라이트노벨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전 아직 읽어보지는 않은 관계로 배경지식 없이 애니를 봤고,
지금까지의 인상은 '월간소녀 노자키군'을 떠올리는 감상이었습니다.
개그 연출이 탁월하면서도 연애 장르의 뼈대는 잘 유지되고 있는 작품.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오해하는, 삼각관계를 뛰어넘어서 거미줄 관계가 형성된 작중 상황이지만,
자칫하면 타르 저리가라 할 정도의 발암을 재치있는 개그코드로 잘 커버하고 있는 애니입니다.
즐겨볼 가치, 차고 넘칩니다. 추후 전개가 다소 걱정되지만, 지금까지는 만족스러운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2. 이세계식당
한줄평: 감독이 무능한건가, 원작이 넘사벽인건가
'심야식당'의 분위기에 '고독한 미식가'의 리액션을 넣은 채로 이세계 세계관을 끼얹은 애니입니다.
감독의 아주 화려한(안 좋은 의미로) 경력에 많은 분들이 걱정을 표했지만, 이번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작화 상태가 좋다는 것이 포인트. 에나미 카츠미 선생의 원작 일러를 훌륭히 표현했고,
작품의 포인트인 음식 작화도 새벽에 시청하는 사람들의 지갑과 현관문이 열리기를 고대하게 할 정도로 잘 뽑았습니다.
다만 원작이 가진 텍스트의 화력이 너무 강렬한 걸까, 리액션 연출은 많이 아쉬운 점이 돋보입니다.
'행복 그래피티'처럼 찰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씨처럼 사람을 끌어당기기는 것도 약하죠.
심야식당처럼 음식에 집중하지 않고 드라마 위주로만 승부하는 스타일은 애초에 원작이 그렇지 않고요.
못 만들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애매해진 애니입니다.
3. 카케구루이
한줄평: 기대만큼, 기대대로, 제대로, 미쳤다.
학교라는 데가 강원랜드는 고사하고 마카오보다도 더한 애니입니다.
원작 만화의 작화와 연출은 초일류. 애니화됐을 때 음향감독은 성우에게 서커스를 시킬 것이 확실한 상황.
어느 제작사도 감히 건드리기 어려운 원작의 애니화 난이도에 'Yuri 온 아이스'로 돈방석에 앉은 MAPPA가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만족'. 수우미양가로 분류하면 '우'. 딱히 실망할만한 건덕지가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하야미 사오리는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화가 진행되면서 요사스럽지만 매력적인 쟈바미 유메코를 잘 소화해냈고,
작화진은 모에와 극화를 오가는 원작의 광기 넘치는 작화를 기어코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진격의 거인'이 떠오를 정도의 임팩트있는 원작초월급은 아니지만, 그건 '원작차이'정도의 문제이고요.
새로운 음악 장르로 돌아온 supercell의 ryo의 오프닝 곡은 덤입니다.
4. 나이츠 & 매직
한줄평: 주인공 정신상태가?
최근에 '책벌레의 하극상'이라는 라이트노벨 시리즈를 읽고 있는데, 그와 다소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하나의 목적(책, 로봇)에 집착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온 힘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세계관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주인공은 '뭐래 X까'라는 식이죠.
그나마 '하극상'의 마인의 경우에는 다소 개념은 있어서 어느 정도의 줄타기를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에르는 그냥 메카에 ㅁㅊㄴ 수준이라서, 주위 사람들의 머리가 매우 아픕니다.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이고, 흔하디 흔한 이세계 전생 깽판이 베이스인 애니입니다.
믿고 거르기에는 아주 부족함이 없는 낯짝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준수합니다.
전생에 천재 프로그래머임과 동시에 메카 10덕후라는 적당한 설정으로
작중 행하는 메카에 대한 전문기술을 납득시켜버리는 제작진.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개연성이 충분한, '무리수'가 없는 전개입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단연 3D 메카 작화.
'창궁의 파프너 EXODUS'를 떠올리는 역동감 넘치는 3D 액션이야말로 이 애니의 하이라이트로서
에르 주위 사람들 뒷목잡는 리액션 연출과 함께 이 애니의 주요 포인트 쌍두마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낭자아이'인 에르의 목소리를 맡은 타카하시 리에의 열연 역시 좋은 조미료 역할이고요.
명작 수작 평작이라는 구분에 대해 생각할 필요없이, 킬링타임 용으로는 손색이 없는 애니입니다.
5. 뉴게임 2기
한줄평: 현실을 키라라로 덮어도, 현실은 현실이다.
'시로바코'도 상당히 미화한 편이지만, 뉴게임은 현실을 아예 키라라화했죠.
원작에서 보아하니까 옆팀 팀장이 미소년을 좋아하는 DEEP DARK한 취향이라서
주인공 쪽에는 남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마 그 팀장은 키라라 편집부 국장도 역임하고 있을 겁니다.
덕분에 이쪽은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새하얀 백합이 만개한 상황이 되었지만, 키라라 원작이 다 그렇죠 뭐.
원작 3권과 4권, 5권은 스킵하고 아마 6권 분량까지 애니화를 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뉴게임 2기는
1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1기에서 우리의 주인공 아오바는 신입사원에 불과한 위치라서 그저 배우는 자세 일심입니다만,
2기부터는 우연찮은 기회로 캐릭터 디자인에 관여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동경하던 야가미 코우와의 충돌에 아오바는 상처를 입고 다시 극복하며,
추후 키비주얼 담당에 대해서도 다시 충돌하며 고뇌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섭니다.
결코 연출이 특별하지도, 작화가 눈부시지도 않지만, 그래도 모든 사회인, 특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십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 다소 마음이 울리죠.
어차피 4컷 키라라 난민을 위한 작품이라서 여자애들이 꺄꺄우후후하는 맛에 보는 뉴게임입니다만,
그래도 6화는 나름 의미가 있는 에피소드로서 머리 한 구석에 남을 것입니다.
6. 메이드 인 어비스
한줄평: 이거야말로 '판타지'! '환상'! '두근거리는 모험'! 그로테스크함과 멘붕은 덤이다!!
이 커뮤니티에 서식하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요시나리 코우'라는 이름이 익숙하겠죠.
2003년판 '강철의 연금술사' 4쿨 오프닝에서 폭포로 뛰어내리는 씬으로 유명해진 애니메이터입니다.
아무리 봐도 3D 같지만 실제로는 전부 다 손으로 그렸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그분.
그런 분이 맘먹고 판타지 세계를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하지만, 아주 흥분되는 비주얼이 나올 것입니다.
메이드 인 어비스는 우선 아동 애니메이션 같은 동글동글한 그림체가 눈에 띕니다.
그 다음에 눈에 띄는 것은 1화 전체적으로 퍼져 있는 압도적인 배경 작화.
마지막으로는 어린애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세계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확천금을 동경하면서 어비스로 뛰어드는 어린아이들이 보이죠.
요시나리 코우를 작화의 한 축으로, 무려 감독이 3명이나 되는 빠방한 제작진을 보유한 이 애니는
판타지의 탈을 쓴 학원하렘물에 너무 익숙해져서 차마 잊고 있던 우리들의 마음에
소년소녀 소리를 듣던 시절 체험한 판타지 세계의 두근거림을 다시금 지핍니다.
아, 물론 세계관이 세계관인 만큼 그림체와 대비되게 상당히 자극적인 수위이니 조심하시길.
원작 그대로라면 애니 막판 즈음에는 쇼 터커 MK2가 나올 겁니다.
7. 프린세스 프린서플
한줄평: 어느 때는 007. 어느 때는 TTSS. 어느 쪽이든 간에 좋다.
스팀펑크 세계관에 소녀 스파이를 얹었습니다. 과연 당첨일까요?
대충 만들면 뭔 짓을 해도 꽝이고 잘 만들면 다 당첨입니다 여러분.
왠지 모르게 비주얼 담당 직책이 많은 것에서 짐작했듯이, 이 애니가 보여주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예술입니다.
칙칙한 시대임과 동시에 영광의 시대. 거기에 첨가된 스팀펑크 기술의 조화는 가히 아름다운 수준.
내용 면으로 넘어가면, 이 애니는 두 가지 스탠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007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화려하고 초인적인 액션씬과,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TTSS)'를 떠올리게 하는 숨막히는 첩보전.
1화는 두 가지 스탠스가 섞여있고, 2화와 6화는 TTSS, 3~5화는 007 스탠스인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TTSS 스탠스가 마음에 들지만, 5화의 카타나 액션을 생각하면 007도 나쁘진 않다고 여기게 되죠.
공주와 앙제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해지는 것이 가장 큰 전개 상 포인트인 이 애니.
앞으로의 전개가 매우 걱정됨과 동시에 기대되는 이번 분기 최대 기대작입니다.
8. 오와리모노가타리 <하>
한줄평: '아라라기 코요미'의 집대성
2009년 '바케모노가타리' 이후, 수많은 이야기들을 끌고 다닌 모노가타리 시리즈.
소년 아라라기 코요미의 고등학교 3학년 봄방학부터 졸업까지 길게 이어진 이 이야기는
본고사 수험일 때의 이야기인 오와리모노가타리 <하>에서 마무리짓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시리즈가 종막을 내릴때면 대충 올스타전 같은 느낌으로 모든 캐릭터가 모이거나,
아니면 최종보스를 쓰러뜨리는 형태로 끝나게 되죠.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경우가 좀 다르게, 아라라기 코요미 개인의 이야기의 종막으로만 결착이 지어집니다.
타인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은 어찌돼든 간에 상관없다고 여기는 소년.
누구를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행동원리였던 소년은
이번 이야기에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동합니다.
이게 애니인지 그림동화인지 구별이 쉽게 가지 않는 모노가타리 연출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이 연출 외의 방법으로 니시오 이신의 문체를 표현하는 것이 쉽게 상상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오와리모노가타리의 연출은 그냥 '적절했습니다.'
모노가타리는 애초에 연출/작화 지분보다 와타나베 아키오 그림체와 성우연기의 지분이 압도적이니까요.
이번 이야기의 주역인 아라라기와 오우기 콤비를 연기한 카미야 히로시/미즈하시 카오리.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그 캐릭터 그 자체였다고 밖에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무수한 비판점이 있는 모노가타리 시리즈지만, 성우연기는 차마 흠잡을 곳이 이번에도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약점을 찾기 힘든, 아주 모노가타리다운 결말이었습니다.
3분기도 이제 반환점을 돌고, 슬슬 9월이 다가옵니다.
근 8년을 매 분기 챙겨보고 있고, 지칠만도 하지만, 다음 분기에 기대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티고 있네요.
...솔직히 좀 지치긴 합니다. 애니와 동덕질로는 요새 너무 버티기 힘들어서
모바일 게임하면 치를 떨던 제가 소전을 시작했으니까요.(2주 조금 넘은 지금 벌써 53렙...)
그러면서도 소전 애니 pv를 보고 언젠가 정식 애니화가 되는 것을 바라는걸 보면
앞으로 몇년은 애니 덕질을 끊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최근에 덩케르크를 보고 다시금 놀란뽕에 빠진, 입덕술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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