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산길을 지나는 덜컹거리는 짐마차에서 소년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빌어먹을..."
양 손을 묶인 채 마차의 벽면에 기대 몸을 웅크렸지만 훤히 열린 짐마차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은 소년의 옷깃을 어김없이 파고들었다. 가죽으로 만든 지붕이 있는 마차였지만 소년의 말마따나 빌어먹게도 지붕은 열린 입구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젠장맞을, 적어도 춥지는 않게 해주던가..."
양 손을 뒤로 향해 구속당해 있어 꼼지락 대며 간단한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정도로 방한대책을 갈구한 소년은 웅크린 몸을 들어 마차의 밖을 바라보았다. 따스해 보이는 불빛,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있는 일단의 무리는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를 내며 소년이 탄 마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소년은 잠시 아련한 눈빛으로 횃불을 바라보다 다시 "젠장!" 하곤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마차의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해가 지는것을 두번정도 본 다음날 점심즈음, 마차의 가장 안쪽 구석에 앉은 소년은 딱딱하고 검은 빵덩이를 침으로 녹여 먹으며 마차에 추가로 태워진 사람들을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그들은 얼굴에는 군데군데 검댕이 묻어있고 살은 없이 뼈에 가죽만 씌어놓은 듯한, 소년으로서는 교과서에서 정도밖에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난민'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나마 혈색이 좋고 건강해 보일 뿐 구속된 건 같은꼴인 소년을 경계하듯 마차 외곽에 서로 기대앉은 그들은 마치 삶의 의욕을 잃은 듯 공허한 눈빛으로 마차 벽을, 바닥을, 그리고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다.
딱딱한 빵을 입 안에 머금으며 녹이고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던 소년은 지척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깻다. "으음-" 하고는 작게 신음성을 흘리며 눈을 뜬 소년이 보게 된 것은 마차 입구쪽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힌 채 두 다리로 일어서 있는, 그 또래의 난민 소년 소녀였다. 별빛에 비치는 그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여타 다른 난민들과 달리 공허함이 아닌 다른 빛나는 무언가가 비치고 있었다.
소년의 신음성을 들었는지 얼굴을 홱 하고 돌린 소년 소녀는 손가락,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입에 갖다대며 "쉬-" 하는 소리를 냈다.
이 빌어먹을 짐마차에서 눈을 뜬 이후로 다른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던 슬픈 문명인인 소년은 그 단순하고도 긴박한 바디랭귀지가 무엇인지는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소년 또한 손을 들고 검지를 세워 입가에 가져다 두려 했으나,
"읏"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얼른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다. 약 사흘정도 끈으로 묶여있던 손목은 자비없이 까끌까끌한 끈에 쓸려서 붉게 변해있었고, 약간의 움직임만 있어도 아프다고 표현할 수 있을만한 따가움이 소년의 손목을 덮치게 되었다.
그런 소년의 작은 신음성에 난민 소년과 소녀는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냅다 누워서 자는척을 했고, 소년은 괜히 머슥해져서 마차 안쪽 구석에서 가장자리로 나와 마차 입구의 턱에 허리를 기댄 채 밤 하늘을 바라봤다.
달은 두개, 몇번이고 봐도 익숙해지지 않지만, 달은 두개였다.
두개의 달을 홀린듯이 바라보던 소년에게 어느새 난민 소년이 다시 일어나 살금 살금,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소년에게 다가 어깨를 두드렸다.
"Bethi'th eor pekullak via?"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소년은 그나마 어떻게든 통하던 바디랭귀지로 그들에게 답하였다. 어깨를 으쓱이는 소년을 보며 난민 소년은 난민 소녀와 잠시 아이컨택을 한 후, 자신과 난민 소녀를 가리킨 후 다시 마차의 입구 겸 출구를 가리켰다.
"...탈출?"
"시-!!! 시!!"
소년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난민 소녀가 놀란듯 검지를 입에 가져다대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16층의 고층 아파트, 집의 거실 소파에 누워 한숨 자다 일어나보니 어느새 이상한 마차안에서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통해 이상한 사람들에게 납치당하듯 끌려가고 있던 소년은, 그 귀여운 모습에 "풋" 하고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요 사흘간 먹은것도 없는데다 배변때 정도만 마차에서 내렸던 소년은 간만에 느낀 즐거운 기분으로 그를 타오르는듯한, 그러한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난민 소년과 소녀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난민 소년과 소녀의 행동은 재빨랐다. 미처 그들을 묶을 끈이 모자랐는지, 혹은 다른 무언가의 이유때문인지 다른 난민이나 소년과는 다르게 끈으로 손발을 묶이지 않은 그들은 마차 안쪽에서 살금살금 입구쪽으로 다가오더니 사뿐, 하고 소리없이 마차에서 내려와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 또한 그들의 시선에 회답하듯이 마차에서 일어났으나, 두 손이 뒤로 묶여있는 소년으로서는 마차에서 그들과 같이 조용하고 사뿐히 내려오기에는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었다. 소년이 난처한 표정으로 마차 입구에서 난민 소년소녀를 바라보자 그들도 곧 소년의 상태를 깨달았는지 마차의 입구를 탁 탁 하고 손바닥으로 치며 앉는 시늉을 했다.
오, 위대한 바디랭귀지여. 소년이 한쪽 다리를 마차의 바깥쪽에 걸친 채 마차 입구의 턱에 엉덩이를 붙이자 마차에서는 '끼익-' 하는 나무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역시 난민 소년 소녀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휙휙 둘러봤지만 보초를 서는듯 장작불 근처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채 있던, 소년과 난민들을 끌고가던 일단의 무리의 사람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가볍게 마차에서 뛰어내린 소년은 숲 부분을 가리키는 난민 소년의 손짓을 따라, 그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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