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억 속에 묻어버리고 있었던 건데 몇년 전인가
방송을 보다가 기억난 건데...
<용감한 형사들>에서 울산 강낭콩밭 살인사건에 대해 형사들이 나와서 이야기할 때
1997년 7월 초였죠.
초딩 시절 꼬꼬마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가 그 소주방이 있었던 울산 남구 신정5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구태여 걔네 집에 제가 자진해서 놀러가는 편도 아니었는데
그날 따라 평소에는 집에 짱박혀서 TV보거나 책만 읽어버릇하던 제가
왠 바람이 불었는지 걔네 집에 놀러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신정5동에서 큰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는 옆동네에 살고 있었고
그 친구네 집까지 문제의 소주방을 끼고 돌아서 가면 도보로 10분 남짓한 거리였어요.
사실 걔네 집에 종이나라였나 그 색종이 회사...
거기서 출간하던 종이접기백과였나 그 책이 있었는데
제가 그때 막 종이접기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서 그 친구랑 놀려고 가는 거라기보다
그 책 좀 빌려와야겠다 이런 생각에 가려고 했던 거였어요.
7월 초여서 아직 여름방학까지는 조금 남았던 무렵인데 그 당시 초딩 저학년이라서
한 오후 3시 넘어서였나 잠깐 나갔다 온다고 엄니한테 말하고 나갔죠.
반바지 주머니에 손 찔러넣고 갔다오는 길에 동네 닭꼬치집에서 닭꼬치 사먹으려고
용돈 좀 모아놨던 거 동전지갑 같은 거에 넣어서 그러고 터덜터덜 큰 도로 횡단보도 건너서
그 동네- 신정5동에 들어섰습니다.
조금 들어가서 이제 그 친구 집으로 가기 위해 꺾어져야 하는 소주방 조금 앞에 다다랐을 때
동네 어른들이 좀 떨어져서 모여서 웅성웅성 하고 있고
경찰차랑 구급차가 그 소주방 앞에 와있는 게 보였어요.
스펀지 실험복같은 머리부터 후드처럼 뒤집어쓰듯이 입는 그 하얀 뭐야 그게 위생복같은?
그걸 입은 사람들도 와 있는데 그 사람들이 소주방 뒷문 쪽으로 들락거리면서
구급차에서 꺼내놓은 환자용 이동침대 그런 거에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뭔가를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꺼내와서 거기 올려놓더라고요.
경찰들은 폴리스라인인가 그 노란 테이프 쳐놓고 동네 사람들 가까이 오지말라고 막고 있었고...
저는 애초에 뭔 사건이 났나? 우리 동네나 이 동네나 경찰 올 일 거의 없는뎅...
이러면서 그러고 있는 걸 멍하니 서서 보고만 있었죠.
그런데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표정들도 너무 안좋고 경찰이나 그 하얀 옷 입은 분들도 표정이
너무 뭐랄까 창백할 정도로 질려있달까? 개중에는 봉지 안에 확인해보고 나온 건지
헛구역질하는 분도 있었고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신정5동 그 인근 코앞에 제가 살던 동네 쪽이랑도 지척이긴 하지만
울산 KBS 별관이었나 그 방송국도 있고 해서
방송에서도 나와서 취재를 하는데 카메라가 사건현장을 쭉 한바퀴 둘러서 찍잖아요.
그래서 멍하니 보고 있던 저도 찍혔었죠.
사람들 표정이 너무 안좋고 막 그러니까 멍하니 10분 넘게 보고 있다가
저까지 기분이 영 안좋아지더라고요, 뭔진 모르겠지만 여기 계속 있다간
저까지 뭔가 안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무서운 기분이 들었어요.
어린 마음에 영문을 모르는 상황이더라도 직감이랄까 그런 게 그냥 집에 가는 게 낫다
이런 판단을 들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갔다오는 길에 사먹으려고 했던 닭꼬치 생각도 싹 까먹고
그냥 잰걸음으로 집에 들어왔어요. 엄니는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보는데 당장 대답이 안나와서
손 씻고 냉장고에서 물 꺼내마시고 그러고 좀 있다가 엄니한테 말했습니다.
OO이네에 종이접기 책 빌리러 가려고 했는데 걔네 집 앞에 소주방에
경찰차 오고 구급차 오고 막 형사랑 경찰이랑 여기저기서 사람 나오고
동네 어른들 막 표정 안좋으시고 그래서 무서워져서 그냥 걔네 집까지 안가고
거기서(소주방 앞길) 한동안 보고 있다가 집에 들어온 거라고,
방송국에서도 와서 찍던데요? 이랬죠.
엄니도 그때는 생각없이 방송국에서까지 와서 찍었음 뭐 사고 났나? 이랬는데
이상한 게 지역방송국에서까지 와서 기자가 취재하고 현장도 찍고 그랬으면
저녁에 지역방송국 뉴스 시간에 잠깐이라도 나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안 나오는 겁니다. 울산KBS도 그렇고 울산MBC도 그렇고요.
그렇게 다다음날에서야 사건의 전모가 인근 동네에 다 알려지게 됐습니다.
전국적으로 시끄러워질만큼 무시무시한 사건이었지만
사건의 잔혹성이라던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보도관제가 걸려서
부산일보나 조선일보에서 기사로 다룬 정도로 끝났던가 그랬어요.
그 당시만 해도 흉악사건 같은 게 일어날 일이 거의 없었던 인근인지라
저희 동네도 그렇고 사건이 있었던 신정5동도 그렇고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시 초딩 저학년이었지만 살해당한 소주방 여주인의 동거남이
그 여주인 아줌마 딸한테 몹쓸 짓을 했고, 평소에도 많이 얻어맞고 돈도 많이 뺏겼던
여주인 아줌마가 딸까지 그런 일을 당하자 폭발해서 그런 범행을 했다는 내용에 대해
듣고 나서는 사건의 원인에 대한 동정보다는
너무 무서운 이야기다보니 필사적으로 잊어버리자 잊어버리자 이랬던 것 같아요.
더욱 애써서 잊어버리려고 했던 건
한동안 꿈 속에서 그 이동식 구급침대? 거기에 하나하나 얹혀지던 그 검은 봉지...
봉지가 찢어지면서 거기서 손이 굴러떨어지고 발목이 굴러떨어지고
이런 악몽을 계속 꿔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도 있어요.
실제 사건현장에서 그런 걸 진짜 본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 상상이 붙은 거였겠죠.
그렇게 20년도 더 넘게 잊고 살았는데
재작년이었나 <용감한 형사들> 재방송을 우연히 보다가 그 사건이 언급되는 걸 보고
애써서 기억 저편에 쑤셔박았던 그때의 이미지가 확 되살아나더라고요.
지금은 그 당시만큼 무섭거나 그러진 않은데
(이런 면에선 세월의 무심함이라는 게 실감되기도 합니다)
이제 와서 사건에 대해 검색해보니 나무위키의 사건사고 정보에서도 항목이 없을 정도네요.
네이버에서 검색해봐도 사건 당시의 보도기사 두어 건이랑
<용감한 형사들> 해당 방송분에 대한 이야기랑 뭐 그런 것만 있고
그 당시 범인이었던 그 소주방 여주인 아줌마에 대한 뒷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분명 친구네 집 오고가고 할 때 몇번은 봤던 그 아줌마의 얼굴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건 자체의 씁쓸함 때문에 앞으로도 종종 다시 생각날 것 같네요.
어제 진종일 비도 오고 오늘도 맑다가 침침하다 오락가락하니
그냥 이 기억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을 데가 필요해서 써봅니다...
이 글 자체만으로는 그렇게 크게 무섭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여 몰라서 제목에 무서움 주의를 달긴 했는데...
혹여 이 사건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권장하진 않겠지만 네이버에 울산 소주방 토막살인사건 요걸 찾아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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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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