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평점 :
10 더보기 +
글쓰기   목록 | 이전글 | 다음글

[잡담] 맥시멈 배틀 이후 사건에 대해... 벌어진 사건들을 조금 정리해보면... [7]


profile_image_default


(1789052)
0 | 7 | 896 | 비추력 10
프로필 열기/닫기
글쓰기
|
목록 | 이전글 | 다음글

댓글 | 7
1
 댓글


(IP보기클릭)221.153.***.***

셊곖쵮곲횞삾셊값
26.02.05 22:50

(IP보기클릭)112.222.***.***

개인적인 견해는 차려놓은 밥상이 뒤집어 엎어진 사건인건 분명하고, 의사 결정권자들 관점에선, 다큐에 나온 스폰서 아저씨들의 표정과 같은 입장이 된건 분명합니다.
26.02.06 09:08

(IP보기클릭)112.222.***.***

rchacha
근데 그게 이후 한국을 고의로 홀대했다라고 하는건, 인과관계가 좀 애매한게 그냥 세가가 ㅄ이라 그랬다는 느낌이 강해요. 비트라이브컵도 세가가 일절 지원한번 안한 대회입니다. 이 엄청난 대회에 세가가 발가락 대고 기웃기웃한게 2010년대 후반부터인가 그럴거에요. | 26.02.06 09:16 | |

(IP보기클릭)112.222.***.***

rchacha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스파4가 프로젝트 시작조차 많은 반대를 받았는데 오노 PD가 레츠고 저스틴 영상이 인터넷에서 반향을 얻는 걸 보고 확신을 갖고 밀어 붙인 결과 여기까지 온겁니다. 그 조차도 비난에 못버티고 정신적으로 탈진해서 리타이어 했어요. 지금 스파 판이 짜여진 것도 보통 노력으로 된게 아니에요. | 26.02.06 09:39 | |

(IP보기클릭)116.47.***.***

아무래도 나우누리 하이텔 시절이다보니 정보도 제한적이고 유저들 나이도 나이였던만큼 그때는 어쩔수 없는게 맞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정도 데이터(셊값흑역사)쌓인시점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오냐면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냥 셊값.. 은 상수지만 예를들어 이벤트도 한국은 제외하고 정작 다른국가를 갔다는 내용. 당시 세가가 해외 오픈하는 어뮤즈파크 오픈 기념행사로 영점프등의 잡지사와 연계해 선수도 아닌 응모자들중 사연보고 뽑아 투어(일정 대부분 관광) 하는데 한국을 와야할 이유가 없죠. 세가가 한국에서 사업을했다면 모를까. 본격적으로 피시방이등장하는 시기에 적절한 판단도 아니고 우리는 이후 결과를 다 알고 있죠. 우승자 인터뷰가 하나도 실리지 않은게 저도 굉장히 이해가 안되고 욕하는 부분인데. 전국 수백점포예선을 뚫고 본선에 올라와 언더20을 우승한 야나가의 인터뷰가 10초입니다. 오버20을 우승한 캬사오가 6초. 이대회 비디오에서 가장 떠드는건 붕붕마루 혼자죠. 제가 내린 결론은 차별보다는 그냥 못만든 비디오고 세가대회관련 비디오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한국을 배제하고 자기들만의 대회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자바티 배틀. 무명의 쿠리타가 우승하고 스즈키유픽으로 호주까지 다녀오지만 인터뷰가 30초,하단P 이야기만 하다 잘립니다. 세가가 차려논 밥상을 한국인이 엎어버린 쾌거인건 불변의 사실이지만 모든걸 한국중심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접근하는게 맥시멈 배틀 이후 세가의 행보를 이해(?) 하는데 그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26.02.06 13:04

(IP보기클릭)93.233.***.***

다들 연배가 생겨서 세가를 두둔하기 시작했군요. 반박을 하고 싶습니다...만 제 생각도 동일합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97년은 일본문화개방 직전입니다. 즉 대부분의 게임, 음반, 만화 등은 공식 발매가 없거나 불가능했고, 해적판이 판을 치던 시대 입니다. 세가 입장에서 한국 시장은 매우 작은 부분이었을테죠. 당시에 버파3도 일본어 음성이 있어서 심의에서 삭제되었던가 운좋게 그냥 나왔던가 여튼 그런 비하인드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맥시멈 배틀도 이 점과 당시 일본 상황을 생각해보면 매우 당연하게 이해가 됩니다. 일본에서 엄청난 규모로 벌어진 예선을 거쳐서 연령, 성별로 나뉜 우승자 3명을 뽑고, 최종 우승을 가리는 형태로 기획을 했을겁니다. 그런데 3명이서 최종전을 하면 모양이 애매하니 그냥 이참에 세계대회라고 붙이고 주변에 버파 기판이 수출되던 나라들에 1~2명씩 대표를 내도록 해서 머릿수를 채운 그런 기획이었을겁니다. 기획 당시 당연히 우승은 저 3인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을거에요. 다른 시장은 세가 입장에서는 (순수히 돈만 보면) 규모가 작아서 실력도 작게 보였겠죠. 그 증거가 바로 자랑스럽게 스폰서 높은 양반들을 대회 갤러리에 초대해서 앉혀둔거죠. 그리고 무시하면 안되는게 지금의 한국과 당시의 한국은 일본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릅니다. 당시는 민간 교류도 별로 없었고, 일본 입장에서 한국은 관심 밖에 있거나 우리가 동남아보는 느낌이었을거에요. 재일 차별은 지금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죠. 그런 상황에서 큰 홍보 기회인 대회에서 뜬금없이 한국인들이 나타나서 우승, 준우승 고춧가루를 포대로 뿌려버린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당시 이벤트 기획자 모가지 날라갔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세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후속 조치도 없고, 인터뷰가 아니라 우승 자체를 숨기고 싶었겠죠. 그 후로 다행히 한일 버파 유저간의 교류를 잘 이어왔고 이제 시간이 지나서 한국의 위상도 높아지니 자연스럽게 미화되고 추억이 된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야나가 인터뷰 보면 실력으로 진게 아니고 스타일이 너무 생소해서 졌다. 억울하다. 뭐 이런 내용이에요. 야나가가 원래 성격이 그렇기도 했었지만요 :P
26.02.06 23:11

(IP보기클릭)211.34.***.***

위에 다른 분들이 거듭 언급하셨지만 이런 추측과 해석으로 까지 않더라도 세가는 깔 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이미 너무 옛날 일이라 공소시효(?)도 한참 지난 주제이기도 하고 추측과 해석에 살이 붙어서 훨씬 과장된 음모론으로 이야기가 와전되는걸 지켜보는것도 좀 괴롭습니다. ㅠㅠ
26.02.09 13:52


1
 댓글




목록 | 이전글 | 다음글

버추어 파이터 5 레보

평점
10
장르
격투
한글 지원
한국어지원(자막)


플랫폼
PC, PS5, XSX
가격정책
패키지구매
개발사
용과 같이 스튜디오


유통사
세가
일정
[출시] 2025.01.28 (PC)
[출시] 2025.10.30 (PS5)
[출시] 2025.10.30 (XSX)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