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옥탑때 좀 괜찮다싶어서 컴파일하트 게임을 접한건 이번이 두번째인데 참 미묘한 감상이 남는 게임이네요. 콥스파티 라이터와 신옥탑의 일러레만 보고 일단 시작한 게임이긴 한데 좋거나 맘에 든 점도 있었고...별로거나 나쁜 점도 있었고...일단 스토리는 긍정적으로 보기 힘든 결말로 끝나버리네요.
일단 스토리에 대한 감상부터 말하자면...초반과 후반은 완급조절 다 말아먹고 오히려 중후반 부분이 제일 몰입 잘되고 긴장되서 좋았던거 같습니다. 게임 안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현실오브젝트의 의문을 풀기위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제일 재밌었네요. 아파시스 교단과의 접점부분은 후반으로 갈수록 계속 플레이어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에피소드도 떡밥도 없어서 흐지부지한 느낌이고...게다가 사실상 극후반부는 루덴스와의 접점이 더 많아서 아파시스는 겉절이고...
개인적으로 데엔리는 등장인물들의 분배가 너무 조잡한거 같습니다. 게임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중요성과 등장빈도가 전혀 안맞는 느낌...루덴스 삼인방은 사실상 수없이 루프를 반복한 아라타와 제일 접점이 긴밀한 관계가 되는 위치인데 정작 게임 내에선 얼굴 비추는 비중이나 보여주는 역할이 너무 없습니다. 게다가 줏대도 없는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아이리스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후반부의 중요한 사건을 벌여놓은 인물들인데 아라타의 몇 마디와 아이리스의 불완전환 부활이후로 그냥 아라타 서포터로 우디르급 태세전환...앨리스의 대사들을 보면 아라타가 데드엔드를 막기위해 수없이 루프를 돌리던 그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온 중요하고 희소한 포지션의 캐릭터들인데 그냥 게임 마무리 지을 사건 터트리기용으로 너무 싸게싸게 버려진 느낌입니다.
그에 비해서 글록은 전체적인 흐름에 엄청 깊게 관여되있는 인물은 아닌데 아라타를 서포터해주는 일은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급이고...물론 설정상 글록이 아파시스와 깊은 연관이 있는 캐릭터라 전혀 중심 스토리와 동떨어진 인물은 아니지만 애초에 그 아파시스가 후반으로 갈수록 스토리상으로 의미없는 집단이 되어가는데 거기에 얽힌 글록은 수만번의 루프를 지켜봐온 루덴스 이상으로 아라타를 전폭지원해주고...오히려 글록이 프로토 루덴스라 해도 믿을 정도로 아라타에게 해주는 일이 더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글록이 아라타를 지원해주는 중요 파트들은 사실상 죄다 루덴스 삼인방이 요모조모 도와주거나 지원해주면서 이미 수없이 반복되온 루프에 대한 떡밥들을 살살 던져줬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개연성이 맞지않나...단편적인 예시를 들어도 아라타가 NPC의 플레이어화를 위해 앨리스 코드를 공부하는 부분만 해도 앨리스가 오디세이아 안에서 이리저리 조언을 해주거나 아라타가 코드 해석에 막힐만한 순간에 타이밍맞게 찾아와서 도와주고 아라타는 앨리스의 호의나 앨리스 코드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있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서로 문답으로 신경전을 벌인다거나 하는게 더 몰입감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게다가 루덴스 중에서 리프카도 너무 소모적으로 버려진 느낌입니다. 각자 관장하는 감정과는 전혀 관계없이 아이리스 하나로 움직이기만 하는 재미없는 삼인방과 달리 정말 자기 감정에 충실하게, 아이리스에 얽매여있는 삼인방과 달리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그 때문에 고통받는 캐릭터인데 그냥 스토리 진행을 위한 도구로밖에 쓰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탄생의 기원이 되는 살의에 따라 아이리스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리프카의 심정이나 심리에 대해 좀 더 풀어줬으면 루덴스라는 배역의 캐릭터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텐데요. 어찌보면 완벽한 지성생명체의 탄생을 기원했던 아파시스의 기대와는 달리, 자기 감정에 휘둘리고 주체하지 못해서 고통받는 불완전한 모습을 가진 캐릭터니까요. 더 많은 생명을 죽이기 위해서 아이리스와 루덴스 삼인방의 세계융합을 반대하지만 지금 당장 살인을 하고싶어서 아이리스를 저지하려는 주인공 일행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참 이 캐릭터 차지하고 있는 비중에 비해 너무 조잡하게 쓰인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엔딩이 참 오묘하게 끝나던데...왜 그렇게 결말이 났는지는 이해가 되도 꼭 그렇게 결말을 냈어야하는가는 이해하질 못하겠네요...시이나와 아이리스 둘다 살리기 위해 수없이 세계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지금껏 내온 미세한 균열들과 리디와와 앨리스의 도움으로 디그레이드의 제어구문을 완벽하게 다룰수 있게되자 그 균열을 이끌고 세계를 뒤바꿔버렸다는 건 알겠지만...그래서 뒤바뀐 세계 속에서 오디세이아의 일행들과 현실에서의 일행이 서로 별개의 인물들이 되서 공존하게 된것도 이해하겠지만...이걸 갑자기 에필로그에 와서야 전조없이 바꾸는 김에 다바꿔버렸습니다 하는 식으로 결말내니 이해하기도 힘들고 이해하고도 싶지 않고...
이럴거면 차라리 제대로 디그레이드에 성공했지만 시이나의 죽음이 세계의 코드상으로 정해진 운명이어서 아무리 정석적인 디그레이드로는 시이나의 죽음을 막을수 없는 결말을 노멀엔딩으로 내고 그래서 시이나의 죽음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고 마음먹은 아라타가 프로그래머의 기질을 발휘해서 세계의 구성 자체에 조금씩 버그를 일으켜 지금의 에필로그를 맞이하는 식으로 진엔딩을 내던가...수없이 겪은 데드엔딩, 그리고 정석적인 방법으로 되감은 디그레이드로도 바꿀수 없는 운명, 그 운명을 틀기위해 정상적인 세계에 일부러 버그를 남기는,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반대되는 짓을 벌여서라도 원하는 결말을 내려는 스토리로만 끝냈어도 평범하고 흔한 흐름이어도 지금 이런 식의 뜬금없는 에필로그보단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쓰고보니 리디아도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너무 맥없이 퇴장한 인물이네요. 사실상 현실이 또다른 게임같은 코드의 세계라는 떡밥을 가장 직설적으로 던져주고 풀어줄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였는데 남몰래 현실의 버그를 고치다가 아라타한테 들키니 그대로 등장비중 증발하더니 마지막에 잠깐 나와서 사실 현실은 코드로 이루어진 세계였어 라고 앨리스가 떡밥 다 풀어놓은 뒤에야 이야기하고는 사라지고...그냥 고문서랑 펜 셔틀이었다고 밖에...
아무튼...개인적으로 현실의 오컬트 = 게임 상의 버그 라고 접점을 이어서 현실을 또 하나의 게임같은 세계로 표현했던 점은 좋았는데...그 좋은걸 다 말아먹은 느낌이네요. 루프물이란게 게임이든 애니든 엄청 흔히 쓰이는 소재라서 진부하게 끝날 수도 있긴한데 데엔리는 그 진부함에도 도달하지 못한 결말이란 감상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신옥탑 때처럼 스토리가 엄청 좋은건 아니어도 다른게임 평균 수준의 결말만 냈어도 좋게 끝맺었을 게임인데...초회판 특전에 든 사운드트랙은 6곡 미수록이라 짜증나고...하필 제일 맘에 들었던 6곡이 사운드트랙 시디에 누락되있더군요. 테마 사건도 있고해서 이번 컴파일하트 게임은 그냥 게임 내외적으로 부실하게 허접한 면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외적인 헤프닝들은 컴파일하트보단 CKF쪽의 문제겠지만요
결국 저한테 이 게임에서 건진건 세리카랑 릴리 뿐인거 같습니다. 주인공 일행 중에서 바그에게 빼앗긴 감정때문에 괴로워하던 에피소드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캐릭들이고 갭모에가 취향이라서 평상시와 글리치 모드가 됐을 때의 차이를 보자마자 맘에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평소에 활기찬 세리카가 후반부때 자기 손으로 동료를 죽였었단 죄책감때문에 의기소침해진 모습이 귀엽......
그리고 오프닝이랑 최종결전 후 나오는 삽입곡, 엔딩크레딧 곡들은 어째 검색 자체가 안잡히네요...일본 공식사이트에 곡제목이나 아티스트 정보등은 다 올라와있는데 정작 그 곡들 자체는 찾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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