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43:32 ID:Sa2qFJaRc8c
현재 나는 부산에 서식하고 있는 고등학생이고,
여섯살 차이나는 언니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어.
언니는 공부를 썩 잘해서 산뜻하게 인서울을 한 인간인데
술 주정이 밤마다 나에게 전화에서 수다를 떠는 거였어.
(그러니 내 성적이 좋지 않은 건 다 언니 탓이지.)
그런 언니에게서 들은 괴담 하나가 기억나
2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47:42 ID:Sa2qFJaRc8c
이건 언니가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해.
그 친구는 모 대학 경영학과 학생이었는데
그 대학은 매번 축제가 끝난 날 일주일의 텀을 주고 시험을 치는 굉장히 구린 스케줄을 조직하고 있었어.
그 언니는 집과 거리가 편도 2시간 거리라서,
차라리 이 2시간을 버리느니 학교에 남아서 레포트를 쓰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낡은 구관에 있는 동아리실에 홀로 남아 레포트를 썼어.
(빈둥거리는 동아리에는 개떡같은 동아리실을 준다고 하더라.)
3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50:43 ID:Sa2qFJaRc8c
동아리실 내부는 매우 좁고, 간소했어.
천이 찢어진 낡은 소파와 큼지막한 탁자, 그리고 기타 등등 쓸데 없는 것들밖에 없었지.
그리고 굉장히 큰 유리창이 있었다고 해.
(그 유리창은 탁자와 마주보는 위치에 있었어.)
5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53:43 ID:Sa2qFJaRc8c
언니는 그 유리창을 마주한 채로 레포트를 쓰기 시작했어.
그러다 선배에게 카톡이 온 거야.
어디있냐는 선배에게 동아리실이라고 언니는 답장을 보냈대.
그러니까 선배가 동아리실에 혼자 있으면 꼭 문 닫고 작업하라고 했대.
그 언니는 고맙다고 한 뒤에,
동아리실 문을 닫고 다시 레포트를 쓰기 시작했지.
6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55:23 ID:Sa2qFJaRc8c
그런데 깜박 졸았을 때였어.
유리창 너머로 하얀 뭔가가 휙, 지나갔더래.
그 언니는 축제 기간에 남아있는 플랜카드인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오싹한 기분에 잠은 달아나고 말았지.
하필이면 비까지 쏟아지는 날이었어.
언니가 으스스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레포트를 쓰기 시작할 때였어.
7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56:01 ID:Sa2qFJaRc8c
그 때 갑자기 누가 문고리를
덜컹
덜컹
덜컹
거렸어.
언니는 놀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그러니 다시,
덜컹
덜컹
덜컹
8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57:51 ID:Sa2qFJaRc8c
언니가 쥐죽은 듯이 가만히 있자,
갑자기 건너편에서 경비 아저씨가 말했어.
아, 학생 동아리실 개인적으로 쓰면 안 된다고.
요새 여기 사건 사고 나는 거 모르냐고.
그제야 언니는 한숨을 쉬며 죄송하다고 사과했지.
그런데도 경비 아저씨는 짜증을 내며 당장 짐 싸들고 나오라고 말했대.
9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1:58:16 ID:pURKQCpz5+A
오오 재밌다
10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01:01 ID:Sa2qFJaRc8c
그런데 말이야
네, 나갈게요.
하고 언니가 문고리를 잡는 순간,
뭔가 쌔한 기분이 몸 전신을 훑고 지나갔어.
문 꼭 잠그고 절대로 함부로 열어주지 말라는 선배의 당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무서워서 이 문을 못 열었어.
경비 아저씨는 전기세 학생이 낼 거냐면서,
이러다 학교에서 짤리는 건 나라고 계속 신경질을 부렸지만,
언니가 문을 열지 않고 저자세로 나가자 경비 아저씨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대.
아침 되면 뒷정리 잘 하고 안 들키게 조심해서 나가라고.
언니는 아닌가, 하면서 괜히 미안해서 연거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어.
(물론 문고리는 열지 않았지. 이 언니도 우리 언니처럼 고집이 만만찮았나봐.)
11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03:39 ID:Sa2qFJaRc8c
그래서 언니는 밤을 꼴딱 새면서까지 꿋꿋하게 할 일들을 마쳤어.
하지만 유리창 건너편에서는 자꾸 플랜카드 같은 게 날아다니고,
경비아저씨한테는 죄송해서 기분이 영 복잡했나봐.
그렇다고 해서 졸립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이 언니는 교수님 이메일로 레포트를 보낸 뒤, 장렬하게 전사했어.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카톡이 왔지.
문을 꼭 잠그라고 했던 선배에게서.
선배는 간밤 잘 보냈냐고, 언니에게 안부 인사를 전했어.
12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06:41 ID:Sa2qFJaRc8c
언니는 별로 안 무섭던데요, 하고 뻔뻔하게 카톡을 보냈대.
그러니까 그 오빠가 동아리실 바로 앞이라면서 나오라고 보냈지.
언니가 문을 열자 그 선배가 진짜 박카스를 사들고 서 있더래.
언니는 괜히 설레는 기분으로 아직도 비 오냐고 물었어.
선배는 아니, 그쳤어, 나가자, 라고 언니에게 박카스 따주며 말했어.
언니는 박카스를 마시다가 간밤에 경비아저씨가 생각이 났더래.
그래서 선배에게 박카스 한 병만 들고 갈게요, 라고 말하고는 동아리실 앞에 있는 경비실로 뛰어갔지.
14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08:35 ID:Sa2qFJaRc8c
간밤에는 죄송했어요, 라고 언니가 경비 아저씨의 얼굴을 보는데
이상한 거야.
분명 어젯밤 들었던 목소리는 사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 정도로 들렸는데,
지금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저씨는 그보다는 훨씬 나이가 들어보이는 거야.
오육십대, 정도로 보였다나봐.
그리고 경비 아저씨가 입을 여는 순간,
언니는 깨달았지.
저 목소리가 어젯밤 그 목소리와 다르다는 걸.
16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10:43 ID:Sa2qFJaRc8c
언니는 경비아저씨한테 물었어.
어제 구관 동아리실에 오시지 않으셨어요?
경비아저씨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언니 얼굴을 뻔히 쳐다보기만 했대.
그러며 자기는 구관 동아리실은 순찰 한 적 없다는 거야.
언니의 얼굴은 굳어졌고,
뒤이어 언니를 따라온 선배 또한 이야기의 흐름이 짐작이 가는 지 얼굴이 좋지 않더래.
이어서 언니가 플랜카드, 하고 말하니까
경비 아저씨는 의아한 얼굴로 언니를 쳐다봤어.
17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13:11 ID:Sa2qFJaRc8c
어제 창밖에서 플랜카드 같은 게 날아다녔어요.
아님 커다란 비닐 봉지 같은 게 말이예요.
경비 아저씨는 언니 말에 그럴리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어.
학교 봉사부에서 싹 수거해갔다고.
쬐끄마한 비닐봉지면 모를까 그렇게 큰 건 이미 다 치운지 오래라고.
언니는 선배의 팔을 잡았어.
그리고 동아리실 앞 화단으로 두 사람은 뛰어갔지.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동아리실 창문 아래에는 화단이 있었어.)
18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16:17 ID:Sa2qFJaRc8c
어젯밤에 비가 왔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 화단은 질퍽질퍽해서 발자국 따위가 남기가 참 좋았지.
폭우처럼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잔잔한 이슬비였으니까.
그래서 그 언니는 발견할 수 있었더래.
자신의 동아리실 앞에 나 있는 무수히 많은 발자국들을 말이야.
시간이 지나 조금 흐려졌지만, 분명 그건 누군가의 발자국들이었어.
아니, 더 소름끼치는 건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았더라는 거야.
무슨 의미냐면,
비가 내리면 발자국 같은 건 지워지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그것들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는 건,
그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비가 그칠 때까지 그 언니를 지켜봤다는 말이 되겠지.
19 이름 : 이름없음: 2014/08/11 12:17:02 ID:Sa2qFJaRc8c
그리고 정말 얼마 후에,
그 근방에서 성폭행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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