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었다. 그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잦아들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을 멀다않고 달려갔으나 이미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세츠나가 보는 앞에서 그를 따라갔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 양,
이 세상에 아무 미련도 남기지 않은 듯 희미하게 웃으며,
그러나 세츠나에게는 몹시 미안한 듯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세츠나의 표현에 따르면-카즈사와 하루키를 반반 섞어놓은 듯한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 이것이 그들 3인 중 2명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다.
남겨진 세츠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양 아기를 안고 귀국한 것이다.
오기소가(家)는 발칵 뒤집혔다.
처녀가 애를 낳아온 것 이상으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기를
처녀가 애를 키우겠다니, 이것이 학창시절 뭇 남성의 선망을 한몸에 모은
오기소 세츠나의 선택이라니,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운명이라니,
아버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같이 화를 내었지만
당장 아기를 버릴 수도 없지 않느냐며 한숨쉬는 어머니,
그리고 타카히로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웬일인지 아버지의 편을 들었다.
세츠나의 친구들 역시...묘한 반응이었다.
모두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세츠나를 말리긴 하지만
역시 한때 친우였던 하루키의 유일무이한 혈육을 모른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자기가 떠맡겠다고 선뜻 나설수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세츠나는 오기소가에서 뛰쳐나와 혼자...아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토우마 오피스를 정리하면서 토우마 요코와 카즈사가 - 대부분은 전자의 힘이지만-
남긴 막대한 재산 덕분에 생계 걱정은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없다해도 역시 여자, 그것도 젊은 여자 혼자 아기를 키우는 것은 큰일이었다.
무엇보다 아이얼굴에 겹쳐보이는 두 사람의 흔적이 세츠나의 가슴을 죄였고 나직히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그 흔적은 세츠나에게 있어서 가장 괴롭고 가장 즐거웠던 인생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
- 오늘은 피아노 팬 여러분께 그리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토우마 요코, 토우마 카즈사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일본이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 모녀가 유명을 달리한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토우마의 3대째 피아니스트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화면에는 유려한 외모를 가진, 그러나 아직은 애티를 벗지 못한 청년의 모습이 비친다.
전신을 쥐어짜는 듯한 피아노 선율을 연주하는 청년의 영상과 함께
[오기소 카즈키(20), 죠반니국제피아노콩쿠르우승]이라는 자막이 아래에 흘러간다.
그리고 수상식 장면과 함께 기뻐하는 가족- 오기소 세츠나의 모습도 화면에 비친다.
'하루키군, 카즈사. 보고있어?'
세월은 쉼없이 흘러간다. 아무리 애닳픈 감정을 섞는다해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것이 3명이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이었을까?'
'후회는 하지않아. 나는 해야할 일을 했고, 카즈키는 우리들의 아들이니까.'
3명분의 인생을 짊어진 오기소 카즈키, 그의 화이트앨범은 어떤 색으로 채워나가게 될지
세츠나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것이다.
3명의 이야기가 한사람을 통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한사람을 통해 3명이 계속 미소지을 수 있기에...
하루키는 틀림없이 더할나위 없이 진심으로 미안해, 고마워라고 머리를 숙일 것이다.
카즈사는...글쎄 복잡한 마음이겠지...그래도 역시 뭐 어쩔수없으니까 고마워 라고 하지 않을까?
세츠나는 특유의 소악마적인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웃을 것이다.
이제 3명의 세계에서 자신만 외톨이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카즈키라는 끈이 그들 3명을 튼튼히 묶고 있으니까
그 끈을 쥐고 있는 건 물론 세츠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