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눈부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입원해 계신 할머니를 뵈러 병원에 잠깐 들렀어요.
할머니는 4인 병실의 한쪽 구석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제가 온 걸 눈치채시자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셨어요.
“어머, 사츠키가 와줬구나. 정말 기쁘다야.”
“오는 길이었어요. 그리고, 사츠키는 제 엄마 이름이에요. 전 안나예요, 할머니.”
“어머머, 그랬니. 저기 사츠키, 텔레비전이 안 나와. 왜일까~?”
정말 텔레비전은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치매와 암을 함께 앓고 있는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원인을 찾아보았죠.
보니까 텔레비전 콘센트가 빠져 있었어요.
원래 텔레비전 콘센트가 꽂혀 있어야 할 자리에,
옆 병실에서 이어진 전선이 꽂혀 있었어요.
“아, 할머니. 콘센트가 그냥 빠졌어요. 다시 꽂아드릴게요.”
“그랬구나~ 고맙다야.”
할머니는 계속 웃고 계셨고,
방 안에는 햇살처럼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어요.
콘센트 위에는 무언가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지만,
제가 아직 배우지 않은 한자가 많아서 읽을 수 없었어요.
붉고 굵은 큰 글씨로 쓰여 있었고,
뭔가 매우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할머니 병실의 것이니까 별생각 없이
그냥 콘센트를 뽑고 텔레비전 콘센트를 꽂았어요.
____그다음 기억은, 군데군데 끊겨 있고 희미해요.
옆 병실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나고,
간호사들이 우당탕 뛰어들어왔고……
그 뒤로 옆방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같아요.
저는 여러 질문을 받았어요.
“왜 뽑았니?” 같은 것들.
어른들이 매우 무서운 얼굴로 저를 둘러싸고,
엄마가 계속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
저는 무서워서 울어버렸어요.
결국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실수니까……”
“우리 병원 측에도 책임이 있다”며 마무리했어요.
그 뒤로 가족들은 그 일에 대해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고,
부모님은 자주 싸우다 결국 이혼했어요.
할머니도 곧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셨고,
저는 친척들 사이에서 눈엣가시처럼 여겨졌고,
결국엔 보호시설에 맡겨지게 되었어요.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해요.
그리고 그 종이.
기억이 흐릿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아마 이렇게 적혀 있었던 거 같아요.
____‘연명 장비 사용 중’
그때 왜 어른한테 묻지 못했을까.
아무리 후회해도, 후회해도 끝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