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말았어야 했다.
시작은 두 달 전.
산악 동아리에 속해 있던 나와 A, B, C 네 명이서
인접한 현의 유명한 산에 오르러 갔을 때였다.
그 산에 뭔가 저주가 있다거나,
신사를 부쉈다거나, 지장보살을 걷어찼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취업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하던 시기라
"이번이 마지막 동아리 활동이겠네"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정상에서 네 명이 함께 사진을 찍기로 했다.
가져간 삼각대에 내 스마트폰을 장착하고 타이머를 맞춘 뒤,
A-B-나-C 순으로 줄지어 촬영을 시작했다.
iPhone으로 타이머 설정해서 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셔터가 눌리면 연속 촬영이 되잖아?
그 중에서 제일 잘 나온 걸 고르곤 하지.
그땐 아침부터 계속 등산하느라 지쳐 있었기에
사진은 집에 돌아간 뒤에 확인하기로 하고,
그날은 그대로 산을 내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 밥 먹고, 씻고, 침대에 누워서
"아, 맞다" 하고 산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연속 촬영된 사진은 10장이었고,
슬라이드하면 마치 플립북처럼 사진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 보았을 때,
분명히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사진이 있었다.
1장부터 9장까지는
모두가 브이자를 하며 밝게 웃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10번째 사진이었다.
B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A, 나, C)이
B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은 브이자를 하고 있었지만,
얼굴만 B 쪽으로 돌려져 있었다. 무표정한 채.
9번째 사진과 10번째 사진을 번갈아 넘기면
두 장만으로 만들어진 GIF처럼
앞을 보고 있다가 B 쪽을 보는 식으로 변화해서
어딘가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어, 나 B 쪽을 본 적 있었나?'
기억에는 없었지만,
그냥 우연히 B를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대로 잠이 들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나머지 세 명에게도 그 사진을 보여줬다.
A와 C 모두
"B 쪽을 본 기억은 전혀 없다"고 했고,
B는 "야 너 내 얼굴 엄청 좋아하나 보네?" 하고 농담을 하며
각자 강의실로 향했다.
그 후 며칠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다 일주일 후, A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B가 차에 치여서 죽었어."
옆에서 돌진한 차량에 치인 B는
교차로에 튕겨져 나가며
트럭 아래에 깔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장례식 동안의 기억도 거의 없었다.
A와 C와 대화도 없이
나는 그냥 내 방으로 돌아와 계속 울기만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 사진이 떠올랐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앨범을 열어 다시 확인해보았다.
산 정상에서 찍은 그 사진.
1장부터 9장까지는 여전히 정상이었다.
2페이지
10번째 사진.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B가 사라져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C를 제외한 나머지 둘(A와 나)이
C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려 비명도 아닌 소리를 지르며
휴대폰을 내던지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다음은 C의 차례일 것이다.
나는 2주 동안 학교를 쉬었다.
A와 C로부터 전화와 메시지가 왔지만
도저히 답장할 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A에게서 온 LINE 메시지 하나가
모든 걸 바꿨다.
"C가 자살했어."
내가 학교를 쉬고 며칠 후부터
C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연락이 닿지 않자 부모님이 집에 찾아갔고,
C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죽어 있었다.
A는
"나 장례식 가니까 너도 와"라고 말했다.
A와 합류한 뒤
장례식이 끝나고 우리는 둘이서 귀갓길을 걸었다.
짧은 기간 동안 친구 둘을 잃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역을 향해 걸었다.
나는 A에게 그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B가 죽은 뒤 사진에서 사라졌던 일,
그리고 그 후 A와 내가 C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A도 이제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영매 일을 하는 지인이 있다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는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사라진 B,
그리고 C를 바라보는 A와 나.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사진 공유 버튼을 눌러 A에게 전송했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고,
A가 먼저 길을 건넜지만
나는 계속 사진을 보며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전송을 마치자마자
A에게 '읽음' 표시가 떴다.
그 순간,
몇 미터 앞을 걷고 있던 A가 걸음을 멈췄다.
A: "어, 야… 왜 이번엔 네가—"
그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쾅—!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A가 사라졌다.
A는 트럭에 치여
수십 미터 날아가
핏자국 위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A를 친 트럭에서 내린 남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른 듯한 얼굴로
A를 바라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대로 웅크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몸이 반응하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토하고 말았다.
지나가던 행인이 구급차를 불렀고,
도착했을 때 A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A가 실려가며 멀어져 가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A에게 보냈던 그 사진.
거기에는—
카메라를 향해 브이자를 하고 있는,
나 혼자만의 모습이 있었다.
그 순간
두려움보다도 "살았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더 컸다.
나는 그 사진을 바로 삭제했다.
그로부터 2주쯤 지났고,
졸업도 가까워졌지만
나는 대학을 자퇴했다.
친한 네 명 중 셋이나 연달아 죽자
아무도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도 있었지만,
이젠 바깥에 나가는 것 자체가 무서워졌다.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숨이 막힐 것 같아서
근처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순간,
양쪽 얼굴에 묘한 이물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아주 가까이에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면 안 돼’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스마트폰 앨범을 열었다.
앨범 맨 끝.
삭제했어야 할 사진이 남아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탭했다.
1장부터 9장까지는
혼자 찍힌 나의 사진.
10번째 사진.
죽은 세 명이—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