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 7 : 시미즈 히나코, 선택이라는 환상
반갑습니다.
지난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사일런트힐F 4회차를 플레이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제 그 재미도 끝내고, 좋은 감정을 안고 현실로 돌아갈 때가 되었군요. 다만, 아직 제가 할수 있는 일이 하나 남은 것 같습니다. 바로 남겨두는 일 말이죠.
여러분들은 사일런트힐F의 스토리를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이 게임의 스토리는 '해석의 여지'라는 말을 아주 폭넓게 응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스토리를 해석하는 과정이 없으면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진행하면 이야기의 앞뒤가 하나도 안 맞으니까요. 제작진들은 일부러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으며, 엔딩 역시 각자가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각자의 정답을 찾아 안개 속을 헤매이게 되었죠. 물론 저도 그 헤매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요.
그리고 이제, 저는 4회차 플레이를 통해 저 나름의 답을 찾아냈고, 제가 찾은 답을 정리해 이곳에 남겨두려 합니다. 제가 게임을 하며 찾아냈던 것, 해석했던 것, 그리고 고찰했던 것에 대해 정리해 남겨두는 이 몇 개의 칼럼은 사일런트힐F에게 바치는 제 작별 인사이며, 이 커뮤니티의 다른 분들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 추가로, 이 글은 원래 레딧에 게시하기 위해 작성했던 글이며, 영어로 썼던 글을 다시 한국어로 수정한 것이기 때문에 어투나 어순, 혹은 일부 용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최대한 다시 다듬기는 했지만, 보시면서 혹시 말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시더라도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서론을 살짝 길게 쓰고 있사오니 양해바랍니다. 이제 본론인 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 시리즈의 마지막 편, "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7: 시미즈 히나코, 선택이라는 환상”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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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히나코, 마음의 형태
(1) 히나코, 히나코, 히나코
(2) 영도, 자아의 경계
2. 그녀가 겪었던 일들
(1) 없는 것, 또는 그렇다고 생각되는 것
(2) 여성은 가축이니, 참으로 낭패로다
(3) 돌고 돌아 처음으로
(4) 누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3. 선택이라는 환상
(1) 그녀의 선택
(2) 환상의 한계: 책임
(2) 환상의 한계: 시간
4. 결론
+. 칼럼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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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나코, 마음의 형태
사일런트힐F는 사회적 이슈와 인간 심리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게임입니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현대 정신분석학의 시조인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인 융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죠. 특히 주인공인 히나코는 이 두 개념을 독특하고 설득력있게 구현하고 있어요. 이 구조를 알면, 게임의 내용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러므로 본격적으로 히나코의 서사를 파고들기 전에 먼저, 그녀의 정신 구조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1) 히나코, 히나코, 히나코
“불쌍한 자아는 세 명의 가혹한 주인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바로 현실, 초자아, 그리고 원초아라는 주인 말이죠.”
- 지기스문트 슐로모 프로이트 박사
프로이트적 관점부터 보죠. 사일런트힐F의 가장 핵심적인 반전 요소는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와 다크 쉬라인의 히나코가 다른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로 등장하는 시로무쿠도 히나코이므로, 이 게임에는 총 세 명의 히나코가 등장하는 거죠. 이것은 프로이트가 제시했던 인간 정신의 세 축, 즉 원초아, 초자아, 자아의 개념을 구현한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분석한 인간 정신의 세 축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A) 원초아: 욕망의 의지. 본능과 충동. 탐식, 성욕, 이기심, 공격성 등 본능적인 쾌락과 충동을 추구하는 축
B) 초자아: 제어의 의지. 이상과 양심. 도덕과 규범에 의해 스스로를 제어하는 질서를 추구하는 축
C) 자아: 중재의 의지. 현실과 이성. 충동을 조절하고 제어를 완화하여 조화를 추구하는 축
예를 들어, 집에 귀가했는데 테이블 위에 맛있는 간식거리가 놓여 있다고 해봅시다. 그걸 본 우리 내면에는 "이얏호! 당장 먹어버리자!"라고 외치는 충동(원초아)과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지!"라고 외치는 절제(초자아)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 둘을 중재하는 조화(자아)가 현실의 상황을 토대로 어느 쪽 주장이 더 올바른지를 판단하죠. 이런 식으로 세 축이 매 순간 경합하면서 만들어내는 연속성 파장이 바로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입니다. 많은 창작물에서는 이 세 축의 경합 과정을 내면의 독백이나 갈등 등으로 표현하죠. 혹은 '자아를 유혹하는 천사와 악마'의 삼자구도로 묘사할 때도 있고.
그런데 사일런트힐F는 이러한 구조를 획기적으로 비틀어서, 아예 세 개의 축을 분리해서 각기 다른 인물로 구현해버려요.
A) 원초아의 히나코: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라는 욕망의 화신
B) 초자아의 히나코: 시로무쿠. '사회적 압력'에 맞추어 자신을 재단하려는 질서의 화신
C) 자아의 히나코: 여우가면을 쓴 히나코. 현실에 맞춰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를 중재하려는 조화의 화신
< 원초아, 자아, 초자아. 자아의 피눈물: 언제나 가운데 끼인 쪽이... >
또한, ㅁㅇ 중독을 통해 이 셋을 분리하는 방식도 기발했지만, 이 셋을 다루는 방식도 아주 독특합니다. 각 히나코는 하나씩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고, 그 문제가 각기 다른 등장 인물과 엮여 전체 스토리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원초아의 히나코, 즉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굉장히 불안정하고, 감정적입니다. 실제로 우리 안의 본능적 욕망 또한 불안정하고 또한 감정적이죠. 그러나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슈의 ㅁㅇ으로 인해 튕겨져나간 쪽'이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원초아보다 훨씬 더 불안정했어요. 게임 내에서는 그런 것들이 맥락에 맞지 않는 행동이나 대사 등으로 표현됩니다. 특히 자업자득 엔딩이 그렇죠.
현실에서 초자아는 외부, 특히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힘내려는 마음도, 부모의 실망에 짓눌려 자신을 비판하고 처벌하는 마음도 모두 초자아에요. 즉, 외부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면 양심, 향상심, 도덕심의 원천이 되는 거고, 나쁜 영향을 받으면 자기비판, 죄책감, 수치심의 원천이 되는 거죠. 그리고 초자아의 히나코, 시로무쿠는 나쁜 영향을 받은 쪽이었어요. 그녀는 준코에게 지시받을 뿐 자신의 의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다른 두 히나코와는 달리 '말'조차 하지 못하죠. 다른 여우일족 신부들처럼, 가부장제의 억압에 의해 목소리를 잃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자아의 히나코는, 원래는 제일 멀쩡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첫 등장때부터 굉장히 불안정한 모습입니다. ㅁㅇ중독자의 자아라서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리고 고토유키에게 쓰담쓰담을 당한 후로는 상태가 셋 중 제일 안 좋아져요. 그 쓰담쓰담이 세뇌광선인지, 저주파인지, 주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거 한방으로 그럭저럭 멀쩡한 편이던 애가 단숨에 좀비처럼 변해버립니다. 어눌한 말투로, 멍하니, 시키는 것만 따라하는, 좀비.
* 혹시나 해서 보충해두자면, 옛날에는 원초아를 '욕망'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저 정신구조도를 자아-초자아-욕망으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으실거에요. 그 단어의 영어 원문은 ID인데, 정확한 정의는 '인간 내부의 본능적인 충동'이므로 욕망도 원초아도 맞는 번역입니다. 다만 원초아가 더 직관적이고 최신 용어라 이 칼럼에서는 일괄적으로 원초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또한, 이것을 '성욕'으로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텐데, 그건 에로스(생의 의지)-타나토스(사의 의지) 부분에서 나오는 개념인 성욕 리비도와 헷갈리신 겁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도 이 게임에서 아주 깊게 다루는 주제긴 하지만, 아래 챕터 융의 그림자 개념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이 칼럼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아요.
(2) 영도, 자아의 경계
"모든 빛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 카를 구스타프 융 박사
앞서 프로이트적 개념을 짚었으니, 이제 융의 페르소나-그림자 개념 부분을 볼 차례로군요.
융은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우리의 자아는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에 존재합니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가면, 꾸며낸 겉면의 자아입니다. 반대로 그림자는 내면의 부정성, 충동, 미성숙, 성적 욕망, 부정, 수치심, 공격성 등의 원초적 본능이죠.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자아를 지탱하는 두 축이므로, 서로 적절한 압력을 주어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자아가 가면에 짓눌려도, 반대로 그림자에 삼켜져도 좋지 않아요. 융은 그렇게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내면에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정신의 성숙을 이루는 길이라고 믿었어요.
< 앞면과 뒷면, 가면과 그림자, 양 쪽의 날개, 두 개의 다리. >
이 게임에서는 그 인간 정신의 그림자, 즉 본능적인 충동을 상징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영도죠.
히나코의 영도를 봅시다. 그 영도는 다섯 가지 부서진 재료로 이루어지죠. 각각 진흙으로 만든 신부 인형, 물통, 나막신, 화로, 그리고 시미즈 씨의 녹슨 검입니다. 신부 인형에서 느껴지는 '버려지는 공포', 시미즈 씨의 검에서 알 수 있는 '폭력의 공포' 등, 히나코 내면의 부정심리, 부서져버린 자아의 조각들. 그 조각들을 모아 벼려낸 것이 바로 영도입니다.
최초의 영도는 강렬한 공격성과 충동성을 지녔습니다. 히나코는 그 순수한 폭력성에 휘둘려 끌려다니죠. 그 폭력성은 순수한 만큼 강력하지만, 그만큼 히나코 자신에게도 위험합니다. 자칫 노리지 않은 상대를 향해 날아가거나, 상대에게 원치 않는 깊은 상처를 입히거나, 최악의 경우 히나코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융이 경계했던 무의식 속 그림자의 위험성, 그림자에 삼켜진 삶입니다. 자아의 경계란 결국 남을 거절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 거절을 본능적 충동에 맡겨버리면 폭력이 될 위험성이 높은 거죠.
반대로 정화된 영도, 즉 페르소나와 균형을 맞춰 자아를 지탱하게 된 그림자는 더 이상 위험한 폭력성을 띄지 않습니다. 히나코가 그림자를 인정하고 의식으로 끌어오면서 영도의 무기로서의 성능은 대폭 감소하지만, 대신 히나코는 그 무기를 자신의 뜻대로 다룰 수 있게 되죠. 마치, 우리가 성숙해갈수록 타인을 폭력이 아닌 존중으로 거절할 수 있게 되듯이.
< 폭력성에 휘둘리는 쪽과 폭력성을 휘두르는 쪽,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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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영도를 구성하는 다섯가지 재료는 동양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음양오행의 오행, 즉 목화토금수의 상징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완성된 최초의 영도와 정화된 영도는 자아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므로, 음양오행의 음양의 상징물이라 해석할 수 있죠. 이 칼럼 시리즈는 오컬트적 해석을 배제하기 때문에 다루지 않겠지만, 오컬트 쪽으로 해석하시는 분께는 생각해보실만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2. 그녀가 겪었던 일들
앞서 짚었듯, 이 게임은 히나코의 정신 구조를 굉장히 정교하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감탄이 나올 정도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설정의 정교함에 비해,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미흡해요. 지금부터는 분위기를 좀 바꿔서, 히나코의 행보가 이야기적으로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없는 것, 또는 그렇다고 생각되는 것
"여자에게도 감정뿐만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 조, 영화 작은 아씨들
< 감정, 그 너머에. >
서사적 측면에서 봅시다. 이 게임은 히나코의 정신 구조에 기반한 정교한 설정을 구축해놓고도, 정작 스토리 전개에는 설정을 거의 활용하지 않습니다. 내면이 아예 다루어지지 않는 시로무쿠를 제외하더라도,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든 여우가면 히나코든 모든 상황에 그저 감정적으로만 반응하니까요. 히나코의 내적 독백, 생각의 연쇄, 사고방식 등은 하나도 묘사되지 않아요. 오로지 떨떠름함 위에 혼란, 원망, 공포, 비명이 끼얹어져 있을 뿐.
거기다 어느 쪽 히나코든 감정선이 안정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그녀가 흥분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괴리가 심한데다 전환도 너무 급격해요. 이렇게 감정만 부각되고 생각이 묘사되지 않으니, 히나코의 모든 행동은 '감정적 폭발의 결과'처럼 보일수밖에 없죠. 안 그래도 이 게임은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경향이 있어서 히나코의 정당성이 애매한 편이라 더더욱.
결국, 게임 내에서 그녀는 '맛이 간' 사람처럼 보입니다. 물론 실제로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ㅁㅇ중독으로 해리된 '이상한 부분'이고, 여우가면 히나코는 고토유키에게 세뇌광선을 맞은 상태니까 진짜로 둘 다 맛이 간 상태긴 하죠. 그러나 그런 부분만 부각되다보니 히나코의 서사적 정당성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요. 그녀의 고통은 공감할 수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에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녀는 그저 매번 상황에 쫓기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끌려다닐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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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히나코가 이렇게 '생각없이' 행동하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두 히나코가 별개의 인물이라는 반전을 숨기기 위해서죠. 둘의 내면심리를 조명하면 그 즉시 둘이 다른 인물인 것이 드러나버리니까요. 따라서 이야기 내에서 두 히나코의 생각을 비추지 않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는 둘의 생각, 주장하는 바를 명확히 드러내야 했어요. 그래야 이야기의 인과가 맞아떨어지고, 설득력이 생겨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게임의 가장 마지막 부분, 진 엔딩처럼 묘사되는 '사일런트힐' 엔딩에서조차 히나코는 자기 생각, 주의주장이 없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뭐가 됐든 열정적으로 해보고 싶어, 지금부터 뭘 할지 생각해봐야겠어!"입니다. 즉, 마지막의 마지막 시점에서조차, 그녀는 자기 자신이 뭘 하고싶은지 몰라요. 그 직전, 그녀가 최종보스인 여우신+츠구모가미를 물리치면서 말한 대사는 "내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입니다. 그 말 자체가, 히나코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다는 고백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녀는 '진짜로' 아무 생각이 없던 거에요. 그래서 그녀가 그 수많은 비극을 넘어 최후에 추구한 것이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었던 거고요. 가정폭력, 여성차별, ㅁㅇ투여, 세뇌광선, 가문과 전통, 억압과 사랑... 그 수많은 주제와 사건 끝에 주인공이 쟁취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조잡합니다. 그게 플레이어에게 설득력이나, 깨달음이나, 하다못해 감동이라도 줄 수 있는 결말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이 전체 서사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칼럼 시리즈 내내, 이 게임의 스토리가 얼마나 여성차별적인 시각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비판해왔습니다.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 생각없는 존재, 감정적인 존재로 그려내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이야기해왔죠. 그리고 그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생각없는' 히나코입니다.
(2) 여성은 가축이니, 참으로 낭패로다
서사적 측면에서 '생각없는' 히나코가 어떻게 이야기를 망가뜨리는지를 짚었으니, 이제 주제적 측면에서의 히나코를 봅시다.
히나코가 핵심적으로 거듭하는 주장은 "여성은 가축이다"입니다. 이는 게임의 핵심 테마인 여성차별을 직접적으로 일컫는 말이죠.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히나코 자신은 여성차별을 당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없어요.
히나코가 당한 피해는 아래와 같이 정리됩니다:
A) ㅁㅇ투여: 소꿉친구가 그녀를 유인약취하기위해 ㅁㅇ을 먹였음
B) 가정폭력: 아버지가 위협 목적으로 식칼을 던져댐
C) 가정불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봤음
D) 왕따: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고, 친한 친구들도 그녀에게 안좋은 감정이 있었음
E) 매매혼: 잘생기고 멋지고 히나코만 사랑하는 부잣집 도련님에게 시집가게 되었음
이 중 히나코가 '여성이라서' 당한 차별이 있나요? 없어요. 그녀가 당한 피해는 범죄 피해니까요. '범죄 피해'와 '여성차별'은 다른 겁니다.
남성이 범죄 피해를 당한 것이 남성차별이 아니듯, 여성이 범죄 피해를 당한 것도 여성차별이 아닙니다. 여성에 대한 가해가 '여성이라서 당한 일'이거나 '여성에 대한 가해라서 정당화된 일'이어야 여성차별인거죠. 그런 의미에서 위의 피해사례들을 정리해보면, 히나코가 당한 피해에는 '여성차별'로 성립되기 위한 핵심 고리가 하나씩 빠져 있어요.
ㅁㅇ투여를 봅시다. 심각한 피해죠. 하지만 그녀가 '여성이라서' ㅁㅇ 피해를 입은 건가요? 아뇨,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의 일탈에 휘말린 겁니다. 개인의 일탈과 사회적 차별을 동일시하면 안돼죠. 이게 여성차별이 되려면, '여성에게 ㅁㅇ을 먹이는 범죄에 관대한 사회분위기' 같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진 않았어요. 현대의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그 당시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중 시점에서 10년쯤 전인 1951년에 이미 각성제 단속법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활발한 단속도 이루어졌어요.
가정폭력, 가정불화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나코가 당한 가정폭력은 분명한 피해입니다. 하지만, 그 피해는 히나코가 남자아이였어도 똑같이, 혹은 더 끔찍하게 당했을 거에요. 최소한 히나코는 직접 맞진 않았으니까. 당시에 소년들에 대한 가혹한 물리적 체벌은 굉장히 일반적이었어요.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남자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다'면서 심각한 가혹행위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가정불화의 문제도 마찬가지, 시미즈 부부의 불화는 히나코가 여자아이인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3번 칼럼에서 짚은 시미즈 씨와 시미즈 여사 사이의 이상한 관계를 고려해보면 더더욱.
왕따 문제, 이건 오래 전 여자애들이 히나코를 따돌린 것이 발단이 되었죠. 이후 히나코가 성인이 될 때까지 린코, 사쿠코하고만 붙어다니면서 자연스레 왕따가 된 거고요. 여기서 여자애가 여자애를 따돌리는 것이 '여성차별'인가요? 아니에요. 거기다 발단이야 어쨌든간에 히나코 자신도 다른 여자애들을 배척했어요. 굳이 말하자면, 상호 왕따 관계였던 거죠. 무엇보다 그녀는 중증 ㅁㅇ중독자이므로 애초에 사회적 관계 형성 능력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옆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 사쿠코는 영매기질 때문에, 린코는 싸가지가 없었기 때문에 왕따를 당했어요.
매매혼 문제도 똑같습니다. 그 결혼은 히나코가 거부할 수 있었어요. 고토유키가 몇 년간 그녀에게 구애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그 구혼을 받아들일지 말지 계속 고민했고, 심지어 슈와도 그 문제에 대해 상담했었습니다. 시미즈 부부도 그녀에게 "집안 빚을 갚아야 하니 네가 결혼해야 해!"라고 강요하지 않고, "네게 그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어?"라고 말로 설득하려 했어요. 시미즈 씨가 직접 히나코에 '고토유키와 결혼하든, 슈와 결혼하든, 결혼하지 않든, 히나코가 결정해라'라고 말하기도 했고. 심지어 신랑이었던 고토유키조차 결혼식 도중에 그녀가 파혼을 요구한것을 바로 받아들여 파토내줬죠. 그런 식으로 히나코에게 결정권이 주어진 시점에서, 그것은 매매혼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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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작중 히나코는 분명 심각한 고통을 겪지만, '여성이라서 당한 차별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여성차별과 개인의 성격적 결함, 가족 간 다툼, 오해와 오인, 일탈과 범죄라는 여러 개념을 구분하지 못해서 뒤섞어버렸어요. 심지어 그 와중에 각 가해자에게 면죄부까지 주다보니, 여성차별이라는 주제는 간판만 있을 뿐 정작 내용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강조하지만, 저는 그 당시 일본에 여성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할 생각도, 여성차별이 좋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히나코가 여성차별 때문에 고통받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준코같은 경우엔 부모가 결혼을 위해 미싱기 다루는 법을 배우도록 강요하거나, 중매를 통해 결혼을 강요한 듯한 정황, 여성차별의 정황이 슬쩍 비춰집니다. 하지만 히나코는 그조차도 없어요. 히나코가 미싱기를 배웠다는 이야기도 없고, 결혼 또한 고토유키가 반해서 먼저 구애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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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여성차별의 핵심 기반 중 하나인 '가부장제'에 대한 묘사 또한 히나코의 정당성을 해치고 있어요. 가부장제의 가장 큰 폐해는, 가장의 권위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되는 특성상 모든 가정 구성원의 행동, 감정, 생각이 가장에게 예속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히나코는 가부장의 핵심, 가장인 아버지에게 버럭버럭 대들고, 소리치고, "사과해!"라면서 따지고들어요. 그 시점에서 이미 '가부장제가 히나코를 짓눌러 아무 의견도 낼 수 없게 만들었다'라는 식의 서사는 성립되지 않죠.
심지어 히나코는 아버지한테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싸가지없이 행동합니다. 언니에게 대놓고 "언니는 틀렸어."라고 외치는 건 뭐 그럴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는 어머니에게조차 "엄마가 너무 싫어!"라고 외치거나, 엄마가 애써 구해온 옷을 마구 짓밟고 내다 버리라고 외칩니다. 그녀는 명백히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 가정 내의 작은 폭군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그 순간, 그녀는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차별의 피해자'라는 서사적 정당성을 잃어버립니다.
(3) 돌고 돌아 처음으로
장르적 측면을 봅시다. 이 게임의 전체 스토리는 4회차의 반복 플레이를 통해 구축됩니다. 따라서 '그렇다면, 각각의 회차는 독립시행인가, 루프인가?'라는 의문점이 반드시 생겨나죠.
물론, 이 게임의 많은 부분들이 그러하듯, 그 부분에 대해 직접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회차 시에만 추가되는 여러 요소들을 통해 각각의 회차가 연계되어있음을 알 수 있죠. 아래 세 가지 요소가 대표적입니다.
< 이전 회차에 잘려나간 오른손, ㅁㅇ을 끊으며 흘리는 눈물, 지장보살에 공양한 브로치 >
즉, 히나코가 루프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전 회차에서 벌어진 일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녀가 정확히 어떤 루프를, 어떤 기전으로 돌리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죠. 심리적 요소로든, 주술적 요소로든 설명 가능하니까요. 참고로 저는 그 부분을 오컬트를 배제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약물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루프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1번 칼럼 - 여우의 혼례식에서 '약물 중독자에게 발생하는 생각의 루프' 증상에 대해 짚은 바 있고요.
다만 이 '루프'는 주인공으로서의 히나코를 너무도 초라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루프물은 대체적으로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루프에서 탈출하는 것을 메인 서사로 삼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루프를 탈출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떤 깨달음이나 선택을 통해 끝내 루프에서 탈출했을 때 주는 쾌감이 루프물의 진수죠. 근데, 사일런트힐F의 루프 서사에서는 바로 그 '루프 탈출로 이어지는 깨달음이나 선택'이 애매합니다. 그 지점의 연결이 어색해서, 히나코가 루프를 이겨내는 서사의 인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자, 서사의 인과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이 게임의 1회차 엔딩은, 히나코가 ㅁㅇ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혼식장에서 난동을 부려 사람들을 해치는 '자업자득' 엔딩입니다. 그리고 이 1회차를 플레이에서는 다음 회차에서 해금되는 여러 '루프 요소'들이 잠겨있으므로, 이 1회차가 최초의 루프임을 알 수 있죠.
이 1회차에서 분기되는 추가 엔딩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A) 여우의 혼례식 엔딩: 히나코가 혼례를 무사히 치르고 잘먹고 잘 살았음
B) 호유기미 엔딩: 히나코가 결혼식 도중 난입한 슈와 함께 도망감
C) 사일런트힐 엔딩: 히나코가 결혼식 도중 고토유키에게 빌어서 도망감
즉, 각 루프의 최종 지점에서 히나코가 한 행동은, 고작해야 결혼식 도중 슈에게 이끌려 도망치거나, 고토유키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내 대답을 기다려달라"라고 빌어서 모든 책임을 다 떠넘긴 후 도망친 것 뿐입니다.
각 루프로 분기되는 요소들은 ㅁㅇ 끊기, 영도 얻기, 영도 정화하기, 브로치 반납하기입니다. 그런데 이 요소들이 이전 스토리, 이후 스토리와 연관되는 부분이 없어요. 그저 단순한 시스템적 기능, 게임적 요소로만 활용되어버립니다. 히나코가 왜 알약을 끊는지, 어째서 영도를 얻는지, 어떤 이유로 브로치를 시작부터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까요.
이처럼, 각 분기 요소들이 스토리 내에서 중간고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히나코가 루프를 탈출하는 과정의 인과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사일런트힐 엔딩으로 향할 수 있었죠? 아무도 몰라요. 히나코가 이전 회차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 깨달음이 어떻게 다음 회차에 전승되었는지 전혀 묘사되지 않으니까요.
결국, 히나코가 주인공으로서 해낸 일이 뭐죠? 없어요. 그래서 이 게임의 스토리는 루프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띄면서도, 정작 루프물이 줄 수 있는 쾌감, 노력과 극복을 통한 탈출의 기쁨은 전혀 주지 못합니다. 각 루프에서 깨달음을 얻고, 도전 끝에 하나의 정답을 향한다는 큰 줄기 부분이 비어있으니까요. 그 비어있는 부분이 앞선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히나코의 서사적 정당성'을 해치고 있어요.
(4) 누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마지막으로 인과적 측면을 봅시다. 창작물에서 가장 중요한 거죠. 누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4회차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체 스토리의 명백한 절정, 최종적인 변곡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4회차 후반부에 등장하는 시미즈 여사의 사정 설명과, 곧바로 이어지는 시미즈 칸타 씨의 사죄 장면입니다. 그 사죄를 통해 히나코는 진정한 결말인 '사일런트힐'로 탈출할 수 있었죠. 동시에 그 지점은, 이 게임 전체 스토리의 구성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리는 취약점이기도 합니다.
그 지점의 문제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가장 큰 문제는 '시미즈 부부가 먼저 찾아와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히나코 자신이 깨달음을 통해 문제의 답을 찾아내거나, 행동과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히나코가 시미즈 씨나 시미즈 여사에게 먼저 설명을 요청하거나 사과를 요구한 것조차 아니죠. 어머니인 시미즈 키미에 여사가 먼저 히나코에게 설명했고, 아버지인 시미즈 칸타 씨가 먼저 히나코의 방에 찾아와 머리를 땅에 대면서 사과했습니다. 즉, 히나코가 루프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 일은 시미즈 여사의 설명을 납득하고, 시미즈 씨의 사과를 받아들인 것 뿐이에요.
이미 그녀는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걸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그 사과장면으로 이루어지는 전체 인과는 '성격에 문제가 있는 히나코가 부모의 작은 결점을 크게 오해하고 있었는데, 그걸 깨달은 부모가 사과하면서 해결되었다.'는 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즉, 문제의 중심이 히나코 쪽으로 쏠려버립니다. 심지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부모님의 행동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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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가 시미즈 씨의 사과를 너무 빨리 납득해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 장면에서 시미즈 씨가 사과하는 대상은 현실의 히나코, 즉 여우가면 히나코입니다. 실제로 플레이어가 조종하고 감정 이입하는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그 사과를 옆에서 보는 입장이에요. 그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이제껏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일기장에 한가득 퍼붓고, 마지막에는 "괴물이 되어서 부모님을 쥐어짜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써놓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과 장면 전까지, 그녀는 부모님에 대한 견해가 바뀔만한 사건을 겪은 적이 없어요. 그녀의 내면 심리는 아예 묘사되지 않지만, 부모님에 대한 관점이 바뀔만한 사건이 없었으니 내면 심리가 갑자기 바뀌는 것도 어색하죠. 그런데, 그런 에비스가오카의 히나코는 그 장면에서 현실의 히나코에게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해줘!"나 "이야기는 들어줄 수 있잖아!"같은 소리를 하면서 설득하고 있어요.
그 사과 이벤트는 4회차의 마지막 30분 지점, 게임 전체로 치면 최후반, 시간으로 치면 98% 지점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게임 내내 부모님에 대한 원망, 저주, 울화를 주워삼기던 아이가 어머니의 설명 한번 듣더니 갑자기 변해서, 심지어 자기한테 하는 것도 아닌 시미즈 씨의 사과를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실제로 그녀는 그 이후 최종전 이벤트에서 "나는 불효녀일까?"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히나코가 부모를 용서하는 것, 부모가 히나코에게 사과하는 것 자체는 그럴 수 있습니다. 가족이니까 용서를 빌 수도, 용서를 할 수도 있죠. 참 보기 좋고 아름다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게 이야기로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더 먼저 나왔어야 했고, 더 차근차근 빌드업을 쌓았어야 했어요. 시미즈 여사의 설명과 시미즈 씨의 사과가 '최후반 반전'으로 등장하고, 히나코가 그 한마디에 태도를 확 바꿔버리는 순간, 히나코의 인과적 정당성은 사라져버립니다.
결국, 그 장면은 히나코를 '철없고, 속좁고, 징징거리는 미숙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묘사해버립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설명 한 번, 아버지의 사과 한 번이면 눈녹듯 풀릴 만한 '가벼운' 문제를 버티지 못하고 "여자는 가축이다." 어쩌고 하면서 곪아들어간 거니까요. 최종적으로 그 현상을 해결한 것이 '부모의 한마디 설명과 사과'인 시점에서, 히나코가 품었던 모든 고민의 무게는 '사과 한번의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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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그 장면에서 시미즈 씨가 히나코에게 '결혼의 선택권'을 고지해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앞서 여러 번 짚었기 때문에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시미즈 씨가 히나코에게 결혼의 선택권을 고지한 시점에서 전체 스토리는 완전히 비틀어집니다. '시대상에 의해 짓눌려 자신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이야기'가, 갑자기 '자기가 선택한 결혼에서 난동을 부린 ㅁㅇ 중독자에 대한 이야기'로 변해버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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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이 부분의 구성 의도는 알겠습니다. '가족의 화해'같은 좋은 이야기로 감동을 주려는 의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마침내 상처를 봉합해나가는 이야기라는 걸 제가 모르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시미즈 씨의 사과 계기, 히나코가 시미즈 씨의 사과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 히나코가 과거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부분이 있어야 했어요. 그 부분이 비어있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는 의도와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립니다. 사과 한마디면 풀릴 일에 꽁해서 성격이 뒤틀려버린 '생각없는' 히나코의 난동극이 되어버리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칼럼 시리즈 내내 반복해왔던 그 한마디 뿐입니다: "소재는 좋았지만, 전개가 엉망이라, 결과가 허탈했다."
3. 선택이라는 환상
"태초에 이곳이 존재했어. 하나의 세계, 하나의 역사. 하지만 인류는 탄생과 함께 자유 의지라는 환상에 빠졌고, 곧 혼돈이 찾아왔어...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너도 알다시피, 그게 바로 이 세계의 비밀이야."
- 아울맨, 영화 크라이시스 온 투 어스
< 이상과 욕망, 대립하는 가치, 요구되는 선택 >
(1) 그녀의 선택
히나코는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이야!'라는 외침이 대표적이죠.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작품 내에서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놀랍게도, 그녀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멍하니 상황에 휩쓸려다니기만 했어요. 능동적으로 해낸 일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게임의 가장 마지막 부분인 사일런트힐 엔딩에서도 그녀는 '자, 그럼 이제부터 뭘 '선택'할지 생각해보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 시점에서조차 자기가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몰라요.
- 히나코가 ㅁㅇ을 빨고 갱이 되기를 선택했나요? 아뇨, 슈가 속여서 먹였습니다.
- 그녀가 고토유키를 구해주고 그 댓가로 결혼을 요구했나요? 아뇨, 고토유키가 반해서 편지를 보내면서 구애했습니다.
- 그녀가 부모의 사정을 알아보려 노력하거나, 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했나요? 아뇨, 부모가 찾아와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했어요.
- 그녀가 친구들을 아끼고, 그들과 함께할 것을 선택했나요? 아뇨, 그녀는 친구들이 자신을 질투하거나 의존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을 뿐입니다.
그녀가 게임 전체에서 '선택'한 것이라고는, 어머니가 그녀를 위해 사온 빨간 원피스를 짓밟으면서 내다 버리라고 신경질을 부리거나, 남자아이와 우주전쟁 놀이를 하는 것 등의 사소하고 어린애같은 행동 뿐입니다. 심지어 언니인 준코조차도 히나코에게 "너의 말은 어린애같은 허울좋은 소리다."라고 단칼에 받아쳐요.
그렇다면, 이 게임은 어째서 히나코가 하지도 않는 '선택'이라는 테마를 그토록 강조하고 있을까요? 히나코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로, 지금부터 이 게임에서 그 선택이라는 테마의 의미와 구조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2) 환상의 한계, 책임
"선택이란 환상이다. 그것은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 메로빈지언,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
선택의 갈림길은 언제나 우리에게 갈등과 고민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선택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죠. 어려운 것은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한 순간, 우리는 두 가지의 결과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니까요.
A) 선택한 선택지에 대한 책임 발생
B) 포기한 선택지에 대한 권리 상실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해!"라는 히나코의 말에는 이 '책임'에 대한 고려가 완전히 빠져있어요. 그래서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준코가 '허울좋은 소리'라고 딱 잘라버리는 이유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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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대에서, 결혼을 하지않는다는 선택은 분명히 가능했습니다. 그로 인한 대가가 암울했을 뿐이죠. 히나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결혼을 거부할 권리가 분명히 있었어요. 시미즈 씨도 이를 재차삼차 고지했고, 실제로 작품 내에서 그녀는 결혼식 진행 도중 파혼해버린다는 기상천외한 일마저 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선택할 권리가 차고 넘치게 있었어요. 하지만 현실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그녀는 선택 그 자체보다는 선택에 따라오는 책임을 고려해야 합니다.
히나코의 친가인 시미즈 가는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어머니인 시미즈 여사는 수술비가 없어 오래 살지 못합니다. 아버지인 시미즈 씨도 알콜중독자라서 히나코를 그리 오래 보살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죠. 거기다 시미즈 씨가 급사할 가능성보다는, 알콜성 치매나 기타 질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다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것이 결혼하지 않았을 때 히나코가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역으로, 시미즈 부부가 한날 한시에 급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시 일본에서는 유산상속을 거절함으로써 부모 빚을 물려받지 않는 제도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았어요.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했고, 그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거나, 공공기관이 친절하게 서민들에게 안내하는 일이 없었어요. 만약 히나코가 제때 상속포기를 못했을 경우, 물려받게 될 빚 또한 그녀의 책임입니다.
1번 칼럼에서 밝혔듯, 그 시대의 일본에서는 가난한 집의 여자아이를 매매하는 회사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빚 때문에 창녀가 되는 일이 하도 많아서, 창녀들을 구제해주자는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었어요.
저는 히나코가 빚을 갚지 못하는 즉시 창녀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20대 성인인 히나코가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 정도는 깨달았어야 된다고 말하는 거에요. '선택의 중요성'같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말이죠. 그 부분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에, 히나코의 선택의 중요성 운운하는 이야기가 철없고 무책임한 소리, 준코가 말한 것처럼 허울좋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히나코가 무슨 노력을 쌓아서 직업을 잡았거나, 돈을 벌 다른 능력을 갖춘 것조차도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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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짚은 현실적이고 과격한 문제를 제외하고, 작품 내 상황만 보더라도 여전히 책임은 발생합니다. 사일런트힐 엔딩에서 히나코가 도망간 후, 결혼식 파탄의 책임은 누가 졌겠어요? 고토유키가 졌을 거 아니에요. 심지어 고토유키는 시미즈 부부의 빚 문제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 책임은 애초에 결혼을 하기로 선택해놓고선 중간에 도망가버린 히나코로 인해 발생한건데도. 심지어 히나코는 자신이 '선택'한 그 결과들을 모르고, 마치 평생 선택이라고는 해본적 없는 것처럼 "이제부터 뭘 할지 생각해봐야겠어!"라고 하고 있어요.
결국, 히나코가 그토록 강조하는 '선택의 중요성'이란 건 주체성의 선언이 아니라 무책임한 자기합리화가 되어버립니다.
(3) 환상의 한계: 시간
"인생이란 문제집을 푸는 것과 같아. 복잡하고, 답은 찾기 어렵고, 시간제한까지 있어. 제일 가혹한 건 행운을 기다리다가 다 놓쳐버리는거지. 순간에 선택해야만 해...선택을 미루는 순간 목숨도 줄어들고 있다고, 그렇게나 가르쳐줬거늘."
- 채플 더 에버그린, 트라이건
현실에서,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시간 제한입니다. 실제로 히나코도 최종보스전에서 "내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라고 외치죠. 그럼, 과연 그녀에겐 생각할 시간이 얼마나 부족했던 걸까요?
작중 고토유키는 히나코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그녀에게 구혼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결혼식은 그녀가 20대일때 이루어졌죠. 그러니까 그녀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년단위의 '생각할 시간'이 있었어요.
또한, 현실에서는 결혼식이 치뤄지려면 그 이전에 여러 절차가 선행됩니다. 전통 신토식 절차에 맞는 결혼식이 치뤄지는 시점에서, 고토유키와 히나코의 결혼이 그 사회적 절차를 제대로 수행했음을 유추할 수 있죠. 부모 상견례, 약혼 절차, 지참금 교환 등은 하루이틀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당시 신부 지참금이나 혼수 물품은 결혼식 몇주 전에 배달하는 게 보통이었고요. 그 과정을 혼수 나르기(嫁入道具運び, Yome-iri Doguhakobi)라고 불렀는데, 전통 결혼식에서는 마을의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화려하게 치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히나코가 '고토유키와의 결혼을 승낙한 시점'에서도 꽤 많은 시간, 최소 몇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 작중 상황인 결혼식이 진행된 것입니다. 전날에 결혼승낙하고 그 다음날 진행하던 게 아니에요.
그런데, 히나코는 자기가 결혼을 승낙하고, 절차가 진행되는 그 오랜 기간동안 가만히 있다가, 결혼식 당일, 그것도 결혼식이 끝난 이후 피로연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라고 외치더니 결혼식장에서 뛰쳐나가 도망쳐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히나코의 잘못이에요. 그녀에겐 년단위의 생각할 시간이 있었고, 결혼을 거부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정말로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거나, 결혼을 거부하고 싶었다면, 결혼식을 하기 이전 단계에서 의사를 밝혔어야 했어요.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이고,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사실 '보류'라는 선택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된 다음 선택하는 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매 순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죠. 제 생각에, 히나코는 그 사실을 알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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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히나코의 저 행동은 츠네키 가문 사람들 입장에서는 날벼락 그 자체입니다. 결혼사기로 시미즈 부부에게 소송을 걸어 이길 수는 있겠지만, 시미즈 부부가 지참금을 돌려줄 수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죠. 무엇보다, 그토록 전통과 절차를 중시하는 집안이 지역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명예가 깎여나갔으니, 그 집안 사람들이 심적, 물적으로 겪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여기서 히나코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가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인해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을 잃었다'는 식의 전개입니다. 그런 전개라면 그 모든 사태가 안타까운 비극이 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앞서 짚었듯 히나코는 가부장제의 핵심이자 억압의 주체인 시미즈 씨에게도 바락바락 대들고, 대놓고 사과를 요구하는 강한 아이였습니다. 아버지한테 그리 바락바락 대들고 사과하라고 따지고들면서, 결혼하기 싫다는 말은 못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질 않죠.
결국, 그 스토리에서 가능한 합리적인 설명이라고는 '히나코는 ㅁㅇ 중독으로 인해 정신이 나간, 무책임하고 철없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 일들이 벌어졌다' 뿐입니다. 참으로, 여성차별적이죠.
4. 결론
결론적으로, 사일런트힐F는 주인공인 히나코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어요.
기획 단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는 알겠고, 그 좋은 의도와 훌륭한 의미들도 뚜렷합니다. 심지어 소재들도 대중적으로 인기있을 만한, 아주 좋은 것들입니다. 프로이트와 융으로 시작되는 인간 내부 심리의 묘사, 여성차별과 가부장제, 루프와 심리 스릴러, 닫힌 사회의 문화, 그 시절의 시대상까지. 그러나 그 모든 재료들은 엉성한 전개와 어긋난 인과 속에서 연결되지 못하고, 그저 반짝하고 지나칠 뿐입니다. 히나코의 마음도, 그녀의 선택도, 그 지나치는 와중에 끝내 현실이 되지 못하고 하나의 환상으로 스러지죠. 저는 그 점이 너무 아쉬워요.
물론, 사일런트힐F는 게임으로서는 재밌었습니다. 대중적인 인기가 매우 높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부디 다음 사일런트 힐은, 그 인기와 더 많은 예산을 발판으로 더 좋은 소재, 더 깊은 주제의식, 더 탄탄한 이야기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이상 사일런트힐F 분석 칼럼 시리즈를 마칩니다.
+. 칼럼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 칼럼 시리즈를 게시하면서 제일 많이 받은 질문에 대해 답변하고 끝내겠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 칼럼을 왜 썼냐?"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궁금해하시는 분이 진짜 많더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히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별 생각없이 일기 대신 썼어요. 게임 플레이와 마찬가지로,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요. 실제로 제가 이 시리즈 7편을 모두 작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40시간인데, 이는 사일런트힐F 플레이타임과 얼추 비슷합니다. 게임을 두 배로 즐겼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원래는 사일런트힐F 3회차 플레이를 마치고 첫번째 감상문을 쓴 다음 '다잉라이트:더 비스트' 플레이로 넘어갔었습니다. 근데 그 게임이 너무 충격적이라, 마음을 가라앉힐 겸 사일런트힐F로 돌아와 4회차를 플레이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이 칼럼 시리즈를 쓴거죠.
더해서, 글쓰기 트레이닝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주제에 따라 문체를 다르게 써보는 것을 위주로 연습해봤죠. 제가 이 칼럼 시리즈를 쓰면서 연습한 각 파트의 소재와 주제, 그리고 문체는 다음과 같아요:
A) 칼럼1 - 소재: 게임 스토리 / 주제: 문화 / 문체 - 문화적 맥락을 안내하는 학술적 안내톤
B) 칼럼2 - 소재: 몬스터 / 주제: 상징 / 문체 - 상징 체계에 대해 해석하는 건조한 분석톤
C) 칼럼3 - 소재: 시미즈 씨 / 주제: 비평 / 문체 - 서사 구조에 대해 지적하는 날카로운 비평톤
D) 칼럼4 - 소재: 이와이 슈 / 주제: 심리 / 문체 - 윤리적 분노에 기반한 강한 비판톤
E) 칼럼5 - 소재: 고토유키 / 주제: 회고 / 문체 - 느긋하고 부드러운 해설톤
F) 칼럼6 - 소재: 준코 / 주제: 애정 / 문체 - 따뜻하고 서정적인 대화톤
처음에 썼던 감상문을 기반으로 각 소재와 주제를 추출하고, 그에 맞춘 문체를 설정한 다음, 문체를 의식하면서 각 칼럼을 쓴 것입니다. 그래서 편마다 문체나 어조, 글의 온도가 다른 거죠. 다만 문체나 어조는 번역을 거치면서 왜곡되기 쉬운 부분이라 별로 안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다 싶으시면 그게 정상이에요. 그리고 문체를 변경했어도 결국은 같은 사람이 쓴 글이므로 전체적인 어투나 논조, 글의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하죠.
작성 소감으로는 칼럼 1번, 스토리 해설 편이 제일 쓰기 힘들었습니다. 한 문장 쓸때마다 일일이 관련 파트에 대한 기억을 되짚고 자료를 찾아가면서 썼거든요. 1편 하나 쓰는데 걸린 시간만 거의 20시간으로, 그거 한편 쓰는 데 걸린 시간이 나머지 6편 쓰는 시간 다 합친것보다 훨씬 많아요. 반대로 애정과 따뜻한 감정을 기반으로 쓴 칼럼 6번, 준코 편은 마음가는대로 썼고, 쓰면서도 보면서도 즐거웠어요. 제일 힘을 빼고 편하게 쓴 것은 칼럼 5번, 고토유키 편인데 그래서 그 칼럼은 완성도가 낮지만, 대신 느긋하고 부드러운 이야기톤이 되어서 좋습니다. 이 7번 칼럼은 문체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따로 설정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한호흡에 쭉 써내려갔는데, 날카로운 느낌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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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만큼이면 이 게임에 대해 충분히 남겨둔 것 같군요. 마침내 모든 것은 끝났고, 막을 내리며 이 게임과, 제 작은 취미 생활과, 이 커뮤니티에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간 이 칼럼을 읽어주신 분들, 댓글 달아주신 분들, 메시지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무구한 행운을 빌며,
안녕히.
- 2025년 11월, 루리웹-3178120199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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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좋은 생각할 거리와 현학적인 즐거움을 드릴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좋은 하루 되세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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