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서 오시오!
오늘도 이 에피카의 공연을 찾아와주어 정말로 고맙소!
어디보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볼까?
묵은 감정을 털어내지 못해 심술을 부렸다가 교주님과 요정 왕국의 여왕에게 호되게 혼난 엘프 도시의 여제의 이야기?
그도 아니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쌍검의 수인이, 교주님과 만나면서 바뀌게 된 이야기?
으음... 고민되는구려. 엘리아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너무나 많으니 말이오.
이 모두가 교주님의 덕이오. 교주님이 이 세상에 오게 되면서부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고 샘솟으니 말이오!
그렇다면, 이 행복한 고민거리들 중에 어떤 걸 먼저 해치워야할까? 응?
으음... 아! 그렇지! 그게 좋겠군!
은이 녹아내려 수은이 된 이야기를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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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수은을 집어삼켜 용이 된 여인이 있었소.
그러나, 배신감으로 인해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 탓에, 그녀는 스스로를 수은이 아니라 은이라고 불렀지.
수은이 얼어붙어 고체가 되려면, 정말 차가웠을 것이 분명하다고?
그것 참 멋진 이야기구려!
실제 금속의 어는 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그 차가움이 실감이 나서 더욱 멋진 것 같소!
아무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 자신의 마음을 차갑게 얼어붙게 만든 이에게 복수하고자 자신의 정체마저 숨긴 그녀는, 언젠가 있을 복수의 그날만을 기다렸다오.
아무런 문제도 없는 척.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척 하며 말이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삶에 변화가 생겼소.
얼어붙어 녹을 줄 몰랐던 그녀의 마음에, 태양이 솟았소.
"하하, 넌 그런 컨셉의 사도구나?"
"엣?"
교주.
이야기를 존재케 하는 자.
이야기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열을 품게 하는 자!
그의 등장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게 된다오.
그녀의 악의.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수은의 능력은, 이상하게도 교주님께는 전혀 듣지 않았다오.
용족의 여제 다야님처럼, 자신의 능력이 거의 듣지 않는 이들은 종종 있었지만
조금의 영향조차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일부러 교주에게 다가가, 그에게 친한척을 했소.
이유는 조금 비겁했다오. 시간이, 그녀의 독으로 하여금 교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 믿었으니까.
그렇지만, 교주에겐 그것이 통하지 않았소. 조금조차도 말이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중독이라고 볼 수 있는 증세가 조금도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조바심마저 잃어버린 채, 그를, 교주님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생각했지.
계획을 바꾸고 나니, 그녀는 교주와 친한 척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무척이나 귀찮았다오.
긴 시간을 함께하거나, 시도때도 없이 그와 친한 척을 하는 바람에, 이를 단박에 그만두었다간 이상한 소리가 들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오.
복수를 목표로 한다고는 하나,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고싶지 않았던 그녀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행동들을 계속했지.
하지만,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교주님을 중독시키려던 그녀는, 얼마 전부터인가 이상한 것을 느꼈소.
교주님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심장이 아려오는 감각을 말이오.
그 감각이 왠지 싫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를 부끄러움이 함께 느껴져, 그녀는 교주에게 서먹서먹하게 대했다오.
대체 이 감각이 무얼까? 그녀는 고민했소.
혹시, 교주에게도 누군가를 중독시키는 능력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사도들은 왜 교주님을 보며 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천진하게 행동하는 거지?
그녀는 고민했소. 혹시라도 교주와 교단의 뜻에 반하는 이들에게만 걸리는 저주라면, 자신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패배한 것이니까.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그 감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오.
다야. 그녀와 친한 다이아몬드가, 교주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며 몸을 배배 꼬는 그 모습을 봤을 때,
비비는 마찬가지로 가슴이 아려오는 감각을 느꼈소.
하지만, 이번에는 교주를 바라볼 때와는 조금 달랐소.
다야와 함께 있는 교주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고 있었소.
이쯤하면 다들 눈치챘을 거요. 그녀가 사랑을 시작했다는 것을.
하하하, 다들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하시는구려!
당연한 일이기는 하오. 사랑!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아무튼,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된 비비는, 자신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 교주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부러 교주를 만나지 않았다오.
이건 그저 중독되었기 때문이라며, 언제라도 시간만 들이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소.
이 모두가,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그러나 역효과였소.
야속하게 쿵쾅거리던 가슴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마음에 그녀를 아프게 했지.
원래 중독된 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직전이 가장 아픈 것이다. 그로부터 떨어져서 지내면, 결국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아플 지언정, 참을 수 있다. 배신당한 아픔보다 아프지는 않으니까.
그런 그녀의 고집이 한 번에 무너진 건, 교주가 그녀의 안식처에 찾아오면서였다오.
비비와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교주 또한 그녀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피어올랐소.
아직은 사랑까지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도들보다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었던 게요.
그렇기에, 그는 그녀를 찾아갔고, 그녀의 의지와 노력은 무너져내렸소.
애써 까칠한 척을 해봤지만, 그녀의 표정과 날개는 기쁨을 숨기지 못했으니 말이오.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교주는 태양만큼이나 환한 미소를 지었고, 비비의 마지막 의지는 꺾여버렸소.
그녀는 인정해야만 했소. 자신이 교주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소. 그저, 교주와 친한척 하며, 그를 속이고, 그를 이용하려고만 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마른 리넨에 안개가 스며들듯, 그녀는 어느새 교주라는 인물에 흠뻑 빠져버리고 만 것이오.
말해봐야 입만 아픈 이 감정에, 그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빠지고야 말았소.
복수도, 사랑도, 모두 그녀를 위한 것.
그러나 복수를 하려면 사랑을 포기해야만 하고, 사랑을 하려면 복수를 포기해야만 하오.
둘 중 하나를 기회비용으로 소비하는 행위는, 그녀로서는 차마 선택하기 힘들었소.
그러나, 둘 모두를 함께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결국, 그녀는 선택의 책임을 교주에게 미루기로 하였소.
자신이 배신의 아픔을 느꼈을 그때처럼, 그 또한 배신의 아픔을 느끼면 자신을 미워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 이 시시한 사랑놀음은 끝날 것이라고.
그녀는 단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다며 교주를 불렀고, 교주는 이에 응했소.
그리고, 웬만한 이들은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녀의 보금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수은 창을 겨누며 그에게 폭언을 내뱉었다오.
"오~호호호! 정말이지 멍청한 것이와요!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순진하고 어리숙하게 굴면, 언젠가 배신을 당할 것이라고 말이에요."
"비비. 어째서?"
"별로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닌 것이와요. 그저, 교주님이 제 계획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 뿐이죠."
그녀는 최대한 가증스러움을 연기했소.
그래, 연기.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연기를 하고 있었소.
이걸로 끝이다. 이걸로 내게는 복수만이 남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오.
"당신같은, 키만 멀대같이 커다란 이상한 존재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처음부터 연기였답니다! 오~호호호호! 그저 교주님을 제 능력으로 중독시켜, 죽지만 못하는 신세로 만들 생각 뿐이었사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능력이 통하지 않아, 당신을 이용해 교단을 제 입맛대로 다루는 방식을 생각했사와요~. 물론, 그마저도 당신이 쭉정이라서 쓸모가 없겠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지만 말이와요~. 오~호호호호!"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말아주시와요~.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바보처럼 아무나 무턱대고 믿었다간, 결국 상처받을 거라고 말이와요~."
"그럼, 자신의 무능력함과 어리숙함을 후회하도록 하시와요~. 오~호호호호!"
"비비..."
"정말 바보같사와요! 더 많은 빵을 먹는 것 말고는 아무런 욕심도 없는 요정여왕처럼 말이와요!"
"비비."
"후후. 그래요.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마지막 한마디는 들어드리겠사와요. 무슨 말씀을 하고싶으시죠?"
그녀는 반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뻔뻔스럽게 웃으며, 다음번에 그녀에게 들이닥칠 저주의 말을 기다렸소.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듯.
그러나, 교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 말이었소.
"왜... 울고있는 거야?"
그제야 그녀는 알아차렸소.
그에게 상처를 주려고 꺼낸 말의 가시를 견디기엔, 그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신이 던진 그 말이 너무나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말이오.
"으, 으흑... 흑..."
너무나도 괴로운 연기였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정도로 말이오.
"...비비."
"으아아아앙!!"
결국, 그녀는 모든 걸 내려놨소.
복수심. 그 복수심을 지속시키기 위한 의지.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마저도 말이오.
"그렇게, 그렇게 바보같이 굴면서, 왜 이럴때만큼은 속지 않는 건가요?"
"맨날 길쭉한 귀 달린 놈들에게 바보처럼 속아넘어가는 주제에, 왜 제게는 속아넘어가지 않는 건가요?"
"왜 항상 제 계획에 방해가 되는 거죠?"
"당신이 제 모든 걸 망쳤어요!"
"당신이 나타나면서, 내 모든 게 망가져버렸다구요!!"
그리곤, 세상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소.
이제 거기엔 고고한 용족은 없었소.
"그냥... 그냥 속아주면 안 되는 건가요...?"
숨겨온 상처가 드러난 아픈 이가 존재했을 뿐.
"그냥, 딱 한 번만 눈 감고, 제가 싫다고 해주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그녀의 말에, 교주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은의 용을 그 커다란 덩치로 감싸안아주며 말했소.
"미안. 그런 말은 들어줄 수 없어."
"..."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사도들은 모두 좋아하니까."
"...."
"더군다나, 그게 너라면 더더욱 불가능해. 난 이미 네가 좋아져버렸는걸."
"...네?"
교주님은 예의 그 바보같다는 소리를 들은 얼굴로,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다만, 조금만 시선을 떼도 우후후...하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걸 숨겨버렸지 뭐야."
"엣...?"
그 말에, 그녀는 슬픔과 야속함이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붉혔소.
"그런 네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네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걸 바라보는 게 좋아서, 내게 다가와주는 네가 좋았지. 히히."
"다, 다 알고 있었던 거시와요...?"
"응. 전부 알고 있었어. 대놓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뉘양스를 풍기는데, 모를 수가 있나."
"그럼... 그럼 대체 왜 저를...?"
그녀의 말에, 교주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답했소.
"음? 말하지 않았나?"
아주 뻔뻔스러운 대답이었지.
"나, 너 좋아한다니까."
그 말에 은의 용은 처음 얼굴을 붉혔을 때보다 훨씬 더 붉어진 얼굴로, 수치심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쑥스러움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복잡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했지.
그 작은 손으로 말이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교주님은 흡족하게 웃더니, 그녀의 가벼운 몸을 어렵지 않게 안아들며 말했소.
"이제 다시 사와요~하고 말하네?"
"우우..."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모르겠어. 네가 하려는 그 복수라는 게, 정말 절실하다는 것도 이번에 알 수 있었고.
하지만, 그 복수를 도와줄 수는 없어도,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 있지."
"해줄 수... 있는 거?"
그리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의 입속에 넣어줬소.
그건, 그녀가 즐겨 찾던 계피맛 사탕이었지.
"비비 네가 좋아하는 음식 먹여주기. 헤헤."
"..."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환하게 웃어주는 교주를 올려다보던 그녀는 이전처럼 고고하게 굴지 못했소.
부끄러움이 너무 심해 열이 오른 탓일까? 아니면 한 명의 사람의 관심이 너무나 뜨거웠던 탓일까.
차갑게 얼어붙은 은의 용은, 녹아내려 수은이 되었다오.
그것이 교주 때문에 부끄러워서일지, 그도 아니면 교주님과 조금이라도 더 맞닿고 싶어서인지는 나도 모른다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오.
그녀는, 이제 더이상 복수를 찾지 않소.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라오!
이 긴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소! 이 에피카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경청해주어 감사하오!
그러면, 다음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소!
그럼 그때까지 안녕이오! 모나티엄의 관객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