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ㅁ…충만한 게임성의 미소녀 RPG ‘스타시드’, 마니아층 홀릴까
한때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로 통하던 미소녀 RPG이 어느덧 당당히 메이저가 됐다. 이제 더는 대중교통서 미소녀 RPG 광고를 접하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러 게임이 국내외 앱스토어 매출 상단에 오르며 큼직한 행사가 곧잘 열리고 아예 상설 매장이 서기도 한다. 그만큼 이 장르에 도전하는 곳이 늘어나 어설픈 완성도로 뭇 유저의 ‘간택’을 받기는 힘들어졌다. 매력적인 원화는 기본에 뛰어난 그래픽, 성우 연기, 음악, 짜임새 있는 구성과 착한 BM을 두루 갖춰야 흥행할까 말까다. 그야말로 미소녀 RPG 과공급 시대에 여기 야심 찬 국산 신작이 하나 나왔다.
개발은 ‘주사위의 신’을 만들었던 조이시티 산하 모히또게임즈. 당초 ‘프로젝트 M’으로 알려졌던 작품이 ‘스타시드: 아스니아 트리거(이하 스타시드)’란 이름을 받았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 하이브를 보유한 컴투스가 서비스 제공 및 운영을 맡는다. 개발사와 운영사 모두 미소녀 RPG 관련으로 좋게도 나쁘게도 인지도랄 게 없는 만큼 본작의 흥행 여부가 무척 중요하겠다. 상술했듯 작금의 미소녀 RPG판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서 공급이 넘쳐나 유저 눈높이가 한껏 치솟은 상황이다. 과연 ‘스타시드’는 어떠한 풍ㅁ…아니 충만한 콘텐츠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할까.
국산 미소녀 RPG 흥행을 이어갈지 주목되는 '스타시드: 아스니아 트리거'
인터넷 방송 문화 한복판서 탄생한 화제의 걸즈 밴드 QWER이 여는 곡 불렀다
8등신 미소녀 AI들과 함께 세계를 구원할 아키텍트님
‘스타시드’의 도입부는 대략 이러하다. 본래 평화와 번영을 기치 삼아 생성된 AI 레드 시프트는 제2차 아스니아 프로젝트가 가동하던 날 돌연 폭주하여 인류를 적대한다. 이미 사회 전반에 AI가 깊숙이 자리잡은 인류로선 너무나 뼈아픈 기습이었고, 마지막 희망으로 주인공의 정신을 가상세계로 전이시켜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세븐 테마즈란 명칭처럼 일곱 가지 사상을 추구하는 도시들에 수많은 AI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가상세계. 그곳에서 프록시안이라 불리는 AI들은 당연히 전원 미소녀다-적어도 아군은-. 여기서 주인공은 희망의 설계자, 아키텍트로 다시 태어난다.
세븐 테마즈는 기본적으로 인류 친화적 AI로 레드 시프트에 맞서 싸우지만 그 방식과 개성은 저마다 다르다. 가령 문화를 숭상하는 아르세즈는 가수 같은 예술계가 많고 학원도시 리메이트는 학생들로 이루어졌으며 전략전술에 능한 스팅스는 완전히 군대 분위기다. 즉 근미래 SF물인 동시에 밴드물, 학원물, 밀리터리물 등 다양한 컨셉의 미소녀가 등장하는 종합선물세트인 셈. 다만 그렇더라도 쏟아지는 미소녀 RPG 가운데 ‘스타시드’를 대표할 정체성이 필요할 텐데, 대다수 캐릭터가 그… 신체 어느 부위가 매우 크다. 가뭄에 콩 나듯 작은 경우는 눈속임 용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본래 번영과 평화를 위하여 고안된 제2차 아스니아 프로젝트와 AI 레드 시프트
물론 이렇게 전개되는 이야기 가운데 AI가 멀쩡히 가동하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
이로써 나는 지휘관 겸 함장 겸 선생 겸 여행자 겸 개척자 겸 아키텍트님이시다
무조건 특정 부위를 강조한다고 팔릴 거라고 생각하다니 후… 잘 알고 있잖아?
보통 미소녀 RPG의 캐릭터는 라이브 2D나 3D, 후자라면 늘씬한 등신대와 귀여운 SD로 표현된다. 혹은 2D 일러스트와 3D 모델을 혼용하는데, 그 경우 아무래도 개발 공수가 덜 드는 SD를 택하는 추세. 반면 ‘스타시드’는 수집 가능한 프록시안 전원을 아름다운 8등신의 3D 모델로 조형하는 동시에 SD와 라이브 2D도 모조리 섭렵했다. 메인 로비와 전투를 비롯한 대다수 상황에서 8등신이되 아스니아 아카데미서 수업을 듣는 장면은 SD로, 플러그인이나 몇몇 이벤트신은 라이브 2D로 보여준다. 한 캐릭터를 놓고 성숙함과 귀염움은 물론 생동감까지 느낄 수 있는 좋은 안배다.
아울러 ‘인스타그램’서 모티프를 얻은 인스타시드는 뭇 프록시안과 일상을 공유한다는 므흣한 기분이 들게 해준다. ‘블루 아카이브’ 모모톡이나 ‘니케’ 블라블라처럼 호감도 시스템을 SNS 형태로 풀어낸 시도는 꽤 있었으나 이만치 본격적인 UI/UX를 갖춘 작품은 ‘스타시드’ 정도다. 인스타시드 접속 시 아예 세로 화면으로 전환되어 그녀들이 게시한 글과 사진이 쭉 뜬다. 거기에 좋아요 누르거나 DM을 보내-미리 작성된 대화를 감상하는 것에 가깝지만-는 등 될 건 다 된다. 앞으로의 숙제는 프록시안 머릿수만큼 필요한 수많은 포스팅을 얼마나 빨리 제작 및 게시하느냐겠다.
메인 로비를 포함하여 대다수 콘텐츠서 늘씬한 등신대의 3D 모델을 사용한다
다만 아스니아 아카데미서 귀여운 SD 캐릭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전용 장비에 해당하는 플러그인이나 이벤트신 등 곳곳에 라이브 2D가 쓰이기도
이러한 SNS 형태의 소통 및 호감도 시스템 중 가장 발전된 결과물이 아닐까
후발주자다운 승부수, 새롭진 않아도 더 나은 모습으로
각종 설정과 인스타시드 등을 통해 엿보이듯 ‘스타시드’는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정립된 흥행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좀 더 개선하려는 쪽이다. 그래서 전반적인 시스템 및 콘텐츠 역시 ‘AFK 아레나’로 대표되는, 평소 모바일 수집형 RPG를 즐겨온 이들에게 퍽 익숙할 구성을 취했다. 행동력 개념 없이 난이도로 콘텐츠 소모를 억제하는 모험 모드, 도전 콘텐츠인 데이터 타워, 자원 수급을 위한 물자 탐색, 아레나, 보스 챌린지, 길드 작전, 같은 등급 캐릭터를 계속 소모하는 육성 방식, 전용 장비의 존재, 접속하지 않아도 알아서 쌓이는 성장 재화 등등…
모든 프록시안은 해석, 결속, 연산, 창조, 파괴 다섯 속성 중 하나에 속하며 R, SR, SSR, UR, MR, LR순으로 희귀하다. 해석이니 결속이니 생경할 텐데 그냥 ‘포켓몬’식 불<풀<물 빛<>어둠 상성이다. 유불리에 따른 추가 피해는 20% 정도. 이외에 어태커, 디펜더, 레인저, 서포터 네 직업이 다시금 암살, 방해, 단일, 광역 등 세부 역할로 나뉜다. 전, 중, 후열 셋씩 총 아홉 칸에 프록시안을 다섯까지 배치 가능하고 일종의 패시브 버프인 진형과 액티브 스킬인 지휘도 제공된다. 여러모로 자동 전투에 맞춰진 게임이긴 해도 스킬 발동 시기, 범위 지정 등 손수 조작했을 때 유리한 점은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기 보다 이미 확립된 흥행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편
비교적 단순한 상성 및 역할군이지만 전략적 판단, 수동 조작의 여지는 있다
상대 전력을 분석하여 최선의 조합과 배치를 택한다면 얼마간 격차는 극복 가능
등신대 3D 모델이 귀여운 맛은 없어도 동작들이 세밀하고 연출 역시 화려하다
특기할 사항은 스토리와 전투 콘텐츠가 완전히 별개라는 것. 여느 게임처럼 이야기 → 전투 →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 이야기 / 전투 → 전투랄까. 우선 모험 모드부터 밀어야 메인 스토리가 해금되긴 하는데, 콘텐츠 구성이 그럴 뿐 내용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간 한정 이벤트 ‘레트로 게임 어드벤처’도 마찬가지라 전투 한번 없이 스토리만 끝까지 봐도 무방하다. 내용상 어울리지도 않는 전투를 억지로 끼워 넣느니 아예 분리시키자고 판단한 모양. 덕분에 모험 모드 밀 때는 전투에만, 스토리를 즐기고 싶을 땐 감상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스타시드’의 장점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스타시드’를 독창적인 작품이라 평할 순 없다. 그래도 모모톡 혹은 블라블라가 인스타시드로 대체되었듯 모든 면에서 조금씩 나은 면모를 보인다. 아니면 최소한 있을 건 다 있다는 풍성함을 갖췄다. 캐릭터 가짓수든 육성 관련이든 스토리 콘텐츠든 갓 론칭한 시점에 게임이란 어딘가 나사가 빠졌기 마련인데 ‘스타시드’는 다르다. 시장을 선점하고 락인 효과를 누리는 경쟁자들에 맞서 후발주자로서 일견 뻔뻔할만치 벤치마킹을 잘했다. 좋은 옵션이 붙은 뱃지를 얻고자 훈련하는 아스니아 아카데미가 ‘우마무스메’를 연상시키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특이하게도 '스타 시드'는 모험 모드와 메인 스토리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그 외에도 개인별로, 단체로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어마무시한 텍스트 분량
첫 기간제 이벤트인 '레트로 게임 어드벤처' 역시 스토리만 쭉 봐도 무방하다
여러모로 이제 막 론칭한 게임치고 있을 건 다 있다는 풍성함이 강점이겠다
웰메이드 ‘AFK 아레나’류, 그러나 영혼이 다소 흐릿한
그렇다면 여러 굵직한 흥행작을 벤치마킹한 ‘스타시드’가 마니아층의 사랑을 나눠 받게 될까. 마치 옆 동네 ‘리니지’류가 매년 쏟아져도 어느 정도 -소위 ‘라인’이 되는 데 실패한-유저들이 순환하며 벌이가 보장되듯 말이다. 여기서 선뜻 밝은 전망을 내놓기 어려운 건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이들의 외골수 성향 때문이다. 익숙한 시스템 및 콘텐츠 위에 얹어진 어디서 본듯한 세계관, 어디서 본듯한 미소녀, 어디서 본듯한 소동과 사랑과 비극과 결전과 구원의 서사는 뭐랄까… 다소 모질게 평하건대, 창작자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브컬처란 무엇보다 영혼이 중요함에도.
서브컬처에서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란 수식어는 자칫 누구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가 되기 쉽다. ‘라스트 오리진’이나 ‘트릭컬’처럼 지나칠 만큼 특정 취향에 파고든 게임이 결국 나름의 위치를 점한 선례를 보자면, 세븐 테마즈 같이 종합선물세트를 추구한 게 다소 안일했을 수 있다. 반쯤 우스개로 프록시안들 가ㅅ…배포가 크다고 칭찬했지만 정말 그쪽 마니아층을 노린 디자인이었다면 열 배는 더 커져야 눈에 들까 말까다. 즉 모히또게임즈와 컴투스는 서브컬처 팬덤 전체를 겨냥하여 무난하게 포용력 높은 결과물을 뽑아낸 셈이다. 그게 정답이었는지는 좀 더 지켜볼 일.
'AFK 아레나'류 RPG로 보면 웰메이드인데, 서브컬처로서 좀 애매하달까
늘 무난하게 통하니까 클리셰인 거라지만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미래가 위험하다면서 도입부 바로 다음 스토리가 '품평회와 유령 소동'!?
세븐 테마즈라는 것도 잘 풀리면 종합선물세트지만, 타깃이 모호한 느낌
그래도 만듦새 자체는 확실히 준수하고 서비스 역시 아직까지 안정적이다. 구글플레이 스토어 평점을 4점 이상 유지 중이니 어떻게든 유입만 된다면 반응이 괜찮다는 것. 거기다 애당초 원조 ‘AFK 아레나’가 미소녀 RPG가 아니라 그저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는 유저층도 충분히 존재할 터다. 서브컬처 팬이라고 모두가 ‘블루 아카이브’나 ‘니케’를 거쳐올 리 없으므로 ‘스타시드’를 통해 이 장르를 처음 접한다면 몰개성이 문제되지 않을 테고. 뭣하면 기반이 잘 닦인 게임이니 캐릭터, 스토리에 대한 아쉬움은 추후 업데이트로 대응 가능한 부분이다. 그… 거기가 더 커지든 작아지든 하겠지.
후발주자라는 자각이 있어서인지 각종 재화도 인심 좋게 뿌리는 중이다. 이틀만에 BM이 착하다 나쁘다 속단하기 어려우나 일단 지금 시작하면 고단한 반복 작업 없이도 SSR 5인이 쉬이 갖춰진다. ‘AFK 아레나’는 무과금 유저도 캐릭터 획득이 비교적 쉽고-고강화는 어렵다- 매일 쌓이는 재화로 조금이나마 성장하는데, 이 역시 ‘스타시드’가 잘 계승했다. 단발성 이벤트와 별개로 소소하게 유료 재화가 주어지고 뽑기 마일리지를 이월해주는 것도 장점이다. 몇몇 인게임 기능 강화에 유료 재화를 요구하지만, 어디까지나 효율이나 횟수가 늘어나는 식이라 딱히 지탄받을 일인가 싶다.
'AFK 아레나'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매일 조금이나마 성장한다는 것
단발성 배포 외에 소소하지만 유료 재화를 종종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소위 '리세마라'는 본인 선택이지만, 따로 반복 가능한 선별 모집권을 준다
론칭 기념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스타시드'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이 적기
완성도는 충분하다, 마니아층의 인정받는 것이 숙제
컴투스는 올해 초 열린 미디어 쇼케이스서 ‘스타시드’ 등 신작 3종에 힘입어 글로벌 톱 퍼블리셔로 도약하겠노라 호언했다. 그만큼 ‘스타시드’는 미소녀 RPG로서 대작 반열에 들 규모와 만듦새를 겸비했다. 그저 미리 쌓아둔 콘텐츠가 많다는 뜻은 아니다. 화제의 걸밴드 QWER이 열창한 오프닝 ‘Shine All Night’을 비롯하여 중요 대목마다 애니메이션 컷신이 마련됐고, 우치다 마아야와 타카하시 리에 등 유명 성우를 적극 기용했다. 그간 여러 미소녀 RPG를 즐겨온 유저라면 정기 업데이트든 시즌 이벤트든 타사 IP 콜라보든 운영측 투자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않을 터다.
서브컬처 팬덤은 화끈한 열정과 폭발적인 애정을 자랑한다. 그것이 작금의 미소녀 RPG들이 앱스토어 매출 상단으로 오르내리는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먼저 진심 어린 애정을 쏟을 만한지 깐깐히 따진다. 가끔은 도가 지나쳐 “무슨 전국인정협회에서 나왔냐”고 반발하는 여론도 생겼으나 아직까진 팬덤의 인정을 받느냐 마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분명 ‘스타시드’는 웰메이드 RPG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장르에 미소녀라 써 붙이자니 너무 시장을 분석하고 재며 반듯하게 짜맞춘 공산품스러움이 못내 거슬린다. 그 점만 아니라면 참 풍ㅁ…충만한 작품이다.
이 정도로 장기 흥행을 낙관하긴 이르지만 좋은 첫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라이브 서비스는 게임 완성도가 반, 운영 진정성이 반이다. 꾸준히 소통하길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