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으로 게임 음악을 만들기,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 작곡 강연
먼저 류휘만 음악감독은 “민족의 아름다운 음악인 국악을 잇고 발전시키는건 국가 차원에서 지원할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다. 현실에서의 음악과 예술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은 점점 괴리가 생기니 젊은 분들의 국악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데 이렇게 국악 전공자들을 위한 강연을 하게 되어 영광이고, 다 잘되어서 예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시길 바란다.” 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강연은 서양 음악 작곡을 전공한 4명의 작곡가들이 각각 어떤 과정을 거쳐 국악을 기반으로 게임에 들어간 음악을 작곡했는지에 대해 다루었다.
■ 류휘만 음악감독
류휘만 음악감독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는 조선시대를 모티브로 한 11번째 지역이다. 동양풍 게임은 많았지만 조선을 역사적으로 고증한, 그리고 오픈월드 시스템을 접목하여 잘 표현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국립국악원의 양질의 자료를 참고하여 창작 국악을 제작했다.
해외에서도 아침의 나라에 대한 반응이 좋았는데, 이전에도 해외에서 사물놀이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사물놀이를 좋아해서 2007년에도 ‘디제이맥스’ 의 음악에 사물놀이를 접목한 적이 있었는데 기반지식이 없어서인지 잘 안됐다.
작업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주까지 배우는건 불가능했고, 사물놀이를 배우면서 그 사물놀이를 컴퓨터로 연주하는 시퀀싱 공부를 했다. 그렇게 자진모리 장단부터 컴퓨터로 시퀀싱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신규 캐릭터 우사의 전투 영상에 사물놀이 음악을 배경으로 깔았다. 게이머들에게는 상당히 센세이션한 반응을 받았다. 영상의 반응이 예상을 뛰어넘게 좋았다.
기존에 이스트 아시아 라는 아시아 악기들의 음악 소리를 믹싱할 수 있는 시퀀서가 있는데 아무래도 좀 아쉬움이 있어서 직접 녹음하고자 했다. 꽹과리도 4개나 사고, 불교 관련 쇼핑몰에서 사고 징도 사고, 그렇게 악기를 한음 한음 녹음해서 컴퓨터로 연주할 수 있게 하는 샘플링 작업을 진행했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서 샘플링에만 한달, 가상 악기를 만드는데에도 한달이 걸렸다.
삼도가락의 주요 부문을 다 시퀀싱했고 시퀀싱한 장단을 최대한 활용해 곡을 만들었다. 이제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전에 나름 생각한 국악의 특징과 여기에 어떻게 내가 아는 서양음악을 접목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리랑 멜로디에 대해서도 오선지에 아리랑 멜로디를 표현하면 좀 어색하다. 분할된 음표들로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느낌. 음이 곡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반면에 서양 음악은 직선이 중심이 되어서 건축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리듬은 변화보다는 규칙이 더 중요하다.
이걸 아무 생각 없이 섞으면 물과 기름처럼 좋지 않은 결과일 것 같아 어떻게 섞는게 최선인가 고민을 많이했다. 다른 레퍼런스를 보아도 적합하지 않은 듯한 느낌의 것이 있었다.
서양의 리듬 구조를 따라서 국악의 농현을 많이 넣거나, 아니면 서양의 기초적인 화음으로만 된 음악에 국악 연주를 넣을 때 멋있지 않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국립국악원 자료에서 판소리와 국악 연주를 받아서 화음을 넣어보려고 했는데, 대체로 화음보다는 단독으로 들을 때가 느낌이 좋았다.
반면에 리듬이 너무 빡빡하지 않고 농현이 들어갈 수 있도록 여유로운 리듬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요즘 인기있는 이날치 밴드 같은 분들이 해온 작업처럼 펑키한 그루브에 접목하는게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촌스럽지 않게 하겠다는 목표 하에 4명의 작곡가가 곡을 배분하고 조금씩 결과물이 나왔는데, 다들 축제에 어울리는 화려한 음악들이 나왔고 마을 같은 풍경에 어울리는 친근한 부분이 부족해서 저는 그쪽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아침의 사람들
저잣거리의 이방인
'아침의 사람들' 은 솔라레미를 모티브로 멜로디를 작곡했고, 차분한 반복으로 아침해가 떠오르는 느낌으로, 국거리 장단을 기본으로 장단을 타고 변화시키는 느낌을 주게했다. '저잣거리의 이방인' 은 4분의 5박자인 원모리 장단이 흥겹게 느껴져서 볼레로 같은 느낌의 화성을 넣어보았다.
홍익의 꿈
이외에도 회상하거나 슬픈 느낌의 장면에서 쓰일법한 음악을 두곡을 썼다. '홍익의 꿈' 은 급하게 작업하게 된 곡인데, 태평소를 녹음하러 온 이영섭 선생님이
대금 소금 연주도 가능하다 하여서 진행했는데 단 한번만에 오케이가 났다. 전투 음악의 경우에는 무당령/손각시/어둑시니를 담당했는데, 작업하는 시기에 좀 건강이 안좋아서 청력도 떨어지고 하여 게임에 미완성으로 수록된 경우가 많았다. 향후 완성하여 다시 채널에 수록할 생각이다.
■ 김지윤 실장
김지윤 음악실장
그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아침의 나라 작업 전에 대략적으로 국악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둘 수 있었다. 목표는 가장 기본인 5음계를 가지고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동해도 전경
단순히 사물놀이적인 요소를 넣었다고 국악을 고려했다고 하기는 어려운데 이렇게, 사물놀이의 비정형성을 다른 서양악기와 함께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곡으로 완성한 것이 가장 기쁜 부분이다.
아침의 나라, 그 천의 얼굴
5음계의 기본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느낀건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단아하고, 소박하고 이런식으로 표현하는데, 그게 그냥 피상적인 표현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이 기본 음계를 가지고 참 많은걸 만들어냈구나 했다.
■ 오동준 작곡가
오동준 작곡가
저는 국악경험이 없는 실용음악과 학생이었는데, 20대에 덕수궁 취타대에 입단했다. 아무 지식도 연고도 없는 상황에서 지인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국악기를 다룰줄도 모르니 가장 첫번째 역할은 용고라는 악기였다. 다들 아실 것이다. 이게 가장 무겁고 간단한 악기다. 많이 힘들다보니 빨리 용고에서 탈출해서 편한 악기로 가고싶다고 생각해서 하나씩 배우다보니 태평소까지 익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 덕분에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검은사막에는 여러 지역이 있고 지역 테마가 결정되면 상황에 따라 분배하는데, 저는 국악은 확실히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던 가운데 키워드를 정해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첫번째 키워드는 익숙함이었다. 저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익숙하고 너무 낯설지 않게 들려야했다. 오히려 많은 대중 입장에서 쉽게 들리는 음악이어야 했다. 두번째 키워드는 애환이었다. 메인 스토리에 등장하는 여러 감정을 잘 담아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애환에 잘 어울리는게 국악이 아닐까 싶었다.
발레노스 - 오버추어
가장 먼저 이 곡의 기반을 잡고있는 이 오케스트라의 현악기의 느낌을 국악기에 접목하고 표현하는게 가장 어려웠다. 국악의 여러 악기 중 어느게 가장 어울리나, 이런 표현이 가능한가 고민이 많았고 동서양의 조금 다른 정서를 융합한다는 과제도 어려웠다. 그래서 템포를 낮추고 가야금으로 그 멜로디를 담아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가야금 가상악기로 저 분위기를 잡아보았다. 처음에 반복적으로 들리는 테마 선율을 가야금에 접목해보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악기를 구성할 때 쯤에 약간 아쉬운게 있었는데 애환을 표현하는게 아무래도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감정을 구성할 요소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바로 판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어느정도 곡의 템포와 비슷한 소리를 골라야 해서 다 들어봤고, 이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선택은 조일화 소리꾼이 부른 수양산가였다. 최대한 그대로 담기 위해서 타이밍 위치정도만 맞추고 공간을 맞추기 위해 리버브를 사용한 것 외에는 가공이 없다.
회한에 물든 석양
이 모든 작업을 거친 결과물이 곡 ‘회한에 물든 석양’이다. 이 한 곡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 드리면서 국악과 양악을 어떻게 한 곡에 담고자 했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었다.
■ 주인로 작곡가
주인로 작곡가
아침으로의 초대
그리고 그 이후 국악을 접할 기회는 아침의 나라 업데이트 덕분에 찾아왔는데 여기서 저는 국악 오케스트라와 서양 오케스트라를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 국악 / 양악 오케스트라로 똑같이 만들고, 여기에 가야금 독주와 사물놀이를 넣었다.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합친 오케스트라 곡이 바로 ‘아침으로의 초대’ 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