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신전생5, 여전히 모방할 수 없는 분위기와 깊이가 느껴진다
※ 세가 퍼블리싱 코리아의 프리뷰 규정을 준수한, 스포일러 없는 체험기입니다.
긴 기다림이었다. 전작으로부터 8년, 최초 공개로부터 4년만에 ‘진・여신전생 5(真・女神転生V)’가 드디어 국내 정식 발매를 목전에 뒀다. 이에 맞춰 아틀라스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한 특별 방송을 진행하여, 세계관 및 주요 등장인물과 게임 플레이 일부가 공개된 바 있다. 시리즈 특유의 세기말적 배경과 충격적인 설정이 펼쳐지는 가운데 평범한 고교생이던 주인공은 마계로 흘러 들어 합일신이란 초월적 존재가 된다. 과연 가혹한 운명은 소년을 어디로 이끌까? 그 전모는 오는 11월 11일 출시 후 확인할 수 있겠지만, 한 발 앞서 한국어판의 초반부를 조금이나마 살피고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닿았다.
금번 시연은 주인공이 모종의 사고로 터널 붕괴에 휩쓸려 마계 다아트(Da'at)로 넘어간 지점부터 1시간 가량 플레이가 가능했다. 도중에 몇몇 스토리 컷신이 나오지만 여기선 언급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게임 플레이가 이런 느낌이다’라는 감상만 전하도록 하겠다. 정신을 차리고 폐허가 된 터널을 빠져나간 주인공을 맞이한 것은 도저히 인세(人世)라곤 믿을 수 없는 황량한 풍광. 시야 저편까지 이어지는 사막 곳곳에 끝없이 치솟은 돌기둥이 가득한 세계다.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요귀 다이몬 무리가 날아들어 목숨을 위협받을 찰나, 한 줄기 빛과 함께 나타난 의문의 남자 아오가미가 주인공을 구한다.
곧이어 아오가미는 예의 트레일러 속 명대사 “…소년, 죽고 싶지 않으면 손을 잡아라.”를 시전하고 그에 응한 주인공과 합일신 나호비노로 하나가 된다. 어째선지 마계서 금기의 존재로 여겨지는 나호비노는 주인공의 특징은 남았으나 길고 푸른 머리칼을 지녔고, 손에서 나오는 검은 악마조차 베어버릴 수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실제 능력치는 Lv3, 힘/체/마/속/운 모두 5로 그다지 강하지 않으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보유 스킬은 검을 활용한 기본 공격과 전격계 마법 지오, 그리고 후술할 마가츠히 전용 스킬인 마가토키: 회심이 있다. 요귀 다이몬과의 첫 전투는 어차피 튜토리얼이라 위협적이진 않다.
전투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기존 시리즈를 충실히 계승하였는데, 본작으로 입문하는 이들도 적잖을 테니 기초부터 설명하겠다. ‘진・여신전생 5’의 전투는 전개 상 필수로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심볼 인카운터로 시작된다. 스테이지서 악마들이 이리저리 배회하다 주인공을 발견하면 경계 상태가 되며 접근한다. 그러나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검으로 베어버릴 수 있으면 선공권을 쥐게 되고, 역으로 악마에게 공격을 당했다면 적 차례로 개전하여 그만큼 손해를 본다. ‘진・여신전생’은 대대로 난이도가 악랄하기로 유명한 시리즈다. 선공권을 뺏겼다가 파티 절반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드러눕는 상황도 그리 드물지 않다. 별거 아닌 듯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요소다.
무사히 선공권을 얻었다면 전투 자체는 턴 기반이다. 다만 여느 턴제 RPG와는 약간 다른데, 본작에선 이를 ‘프레스 턴’ 시스템이라 부른다. 화면 우측 상단에 표시되는 파란 원형 문양(적은 빨간 악마)이 프레스 턴 포인트로 아군의 행동 횟수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프레스 턴 포인트만큼 행동하면 거기서 차례가 끝나지만 이걸 늘리는 게 가능하다. 악마에겐 저마다 약점이 존재하고, 그에 맞는 속성 스킬로 공격하면 큰 대미지를 줄 뿐만 아니라 추가로 프레스 턴 포인트까지 획득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공격이 빗나가거나 무효화되면 프레스 턴 포인트가 더 많이 깎이므로 속도 능력치가 중요해진다. 당연히 운도 따라줘야 한다.
문제는 프레스 턴 시스템이 양측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아군 파티는 합일신 나호비노인 주인공과 악마 셋(이 부분은 또 따로 설명하겠다)으로 구성된다. 동료 악마야 말할 것도 없고 나호비노 역시 약점 속성이 존재한다. 앞서 선공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래서다. 적이 먼저 차례를 얻고 약점을 찌르면 추가 프레스 턴 포인트가 넘어가 전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필자가 시연한 초반부 적들은 하급 악마뿐이라 속성 스킬을 거의 쓰지 않지만 어차피 후반부 가면 광역으로 폭격하듯 공격을 날릴 게 뻔하다. 그때는 아군도 호락호락 당할 전력이 아니겠으나 어쨌든 약점 공략이 ‘진・여신전생’ 전투의 핵심임을 기억하자.
입문자에게 다행스럽게도 ‘진・여신전생 5’ 초반부는 꽤 쉽게 느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존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지만. 워낙 짧은 시연이라 확언할 순 없어도 아마도 ‘진・여신전생 3’, ‘진・여신전생 4’보다 난이도를 낮췄다. ‘진・여신전생 3’는 랜덤 인카운터라 원체 고통스럽고 ‘진・여신전생 4’는 초반부가 비정상적으로 힘든 편이었다(첫 전투서 전멸했다는 괴담이 종종 들려왔다). ‘진・여신전생 5’도 여타 RPG에 비하면 난해하지만 학습 곡선이 전보다 완만하다. 튜토리얼도 친절하고 시스템도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영원한 진히로인 픽시도 일찍부터 합류하여 전력이 되어준다. 아틀라스가 어느정도 시대의 요구에 답한 듯하다.
그러면 왜 아군 파티에 악마가 셋이나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다. ‘진・여신전생’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시스템이 악마와의 협상이다. 전투 중에 대화(Talk)를 선택하면 잠시 싸움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주인공의 목적은 대부분 ‘너 내 동료가 되라!’인데 악마들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 별 이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특정 재화, 심지어 주인공의 HP/MP를 요구하기도 한다. 곧장 마음에 드는 답을 해주는 게 가장 좋지만 첫 요구를 거절하더라도 다른 제안으로 돌리는 게 은근히 인간적이다. 반면 줄 거 다 줬더니 내빼거나 다시금 공격하는 인성… 아니 마성이 쓰레기인 녀석도 간혹 나오니 주의하자.
필자가 시연한 부분은 다아트의 초반부 스테이지인데, 전작들과 비교해 규모가 몇 배로 커졌다. 오픈 월드라 칭할 정도는 아니지만 모험의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그만큼 주인공의 이동 속도와 동작의 부드러움도 훨씬 개선되었고 등반 포인트에선 벽을 타기도 한다.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고 NPC와 대화하여 서브 퀘스트를 수령하는 등 게임의 거의 모든 활동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흩뿌려진 마가츠히를 줍고 노란색 보물 상자나 숨겨진 요소를 찾기도 한다.
마가츠히는 악마에게 힘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가 결정화되었단 설정인데, 액션 어드벤처서 흔히 보이는 필드에 놓인 HP/MP라 생각하면 된다. 녹색 결정은 HP, 노란색 결정은 MP로 환원되고 빨간색 결정은 마가츠히 포인트를 올려준다. 이 포인트가 가득 차야만 앞서 언급한 마가츠히 전용 스킬을 사용 가능하다. 초반부에 주인공이 보유한 마가츠히 전용 스킬은 마가토키: 회심으로, 아군 전체에 마법을 포함한 모든 공격이 크리티컬이 되는 강력한 버프를 준다. 이외에도 용혈이란 곳에서 다른 용혈로의 빠른 이동, 유해의 은신처(상점이다), 사교의 세계, 행동 기록(세이브)가 가능하다. 그렇다. 본작은 아무 곳에서나 세이브를 할 수 없다. 진・여신전생’이니까.
구스타브란 악마가 운영하는 유해의 은신처는 그다지 설명할 게 없다. 게이머라면 매우 익숙할 게임 내 상점이다. 그리고 스테이지 곳곳에 숨어있는 미망이란 귀여운 하수인들을 찾아주면 일정 머릿수마다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 어떠한 보상이 준비되어 있을지는 게임이 정식 발매된 후를 기대하자. 다음으로 사교의 세계는 소피아란 여성 악마가 관장한다. 전작까지 악마 합체를 시켜주던 사교의 관이 떠오르지만, 시연에선 악마 합체가 해금되지 않아 악마의 스킬을 나호비노나 동료 악마에게 전승하는 허물 합체만 가능했다.
끝으로 그래픽 및 프레임레이트를 살펴봤다. 이미 실기 플레이가 공개된 바 있지만, 필자가 직접 만져본 ‘진・여신전생 5’는 그 이상으로 훌륭했다. 원화가 도이 마사유키(土居政之)의 디자인을 십분 살린 모델링과 넓어진 만큼 깊이를 더한 배경이 인상적이다. 그래픽 품질의 고하를 넘어 모방할 수 없는 분위기와 조형미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프레임 역시 게임 플레이를 헤치지 않는 수준으로 적절히 유지된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로딩도 그리 길지 않아 시연에 불편함이 없었다. 개발 기간이 길었던 만큼 최적화에 만전을 기했으리라. 본고를 통해 ‘진・여신전생 5’를 기대하는 독자 여러분도 필자처럼 걱정을 덜었기 바란다. 정식 발매가 기다려진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